글/ 허난(河南) 대법제자 칭허(淸荷)
[밍후이왕] 1996년 7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이 중국 대지에 널리 전해져 집에는 이미 여러 가족이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모든 가족들이 대법 수련의 여러 가지 좋은 점을 느꼈다. 가족으로 인해 나도 수련 행렬에 들어섰다. 그때 내 나이는 22살이었다.
1. 대법을 수련해 아주 환영 받는 유치원 교사가 되다
내 직업은 매일 순진한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유치원 교사다. 유치원 일은 번잡하고 자질구레하며 섬세하다.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선생님이 세심하게 돌보고 인내심 있게 인도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친 ‘진·선·인’ 중의 ‘선’을 기억하고 곳곳에서 아이들을 선한 마음으로 대했다. 유아반 아이들은 부모가 떠나면 안정감이 없어 울고 보챈다. 나는 어머니처럼 그들을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면서 그들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시시각각 아이들을 보살폈다.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에게 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르쳐 아이들은 선생님이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느끼고 얼른 울음을 그쳤다.
이어서 아이들에게 선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선량함으로 넘치는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으로 넘쳐 양보할 줄 알고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알아 학부모는 모두 나를 아주 존경하고 믿었다. 우리 유치원 선생님들도 모두 자기 집 아이를 내가 맡은 반에 보내길 원했다. 근무 시간에 나는 전력을 다해 모든 아이들을 돌봐주었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수업을 열심히 했다. 날마다 변함없이 꾸준하게 가르쳐 줄곧 학부모와 동료들의 호평을 받았다.
학부모는 고마움에 나에게 선물 및 상품권 등을 주려했지만 나는 모두 예의 있게 거절했다. 사부님께서는 일에 부딪히면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가르치셨기에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 한번은 한 학부모가 나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나는 받지 않았다. 그 학부모는 나에게 왜 다른 사람과 다르냐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쩌민 박해 집단이 꾸며낸 거짓말 영향을 받은 그녀는 당시 아주 놀랐다! 나는 인내심 있게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여태껏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모두 진심으로 대하고 선한 마음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대하고 일에 부딪히면 양보하고 참으면서 타인을 위해 생각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더 조화롭지 않을까요?” 또 그녀에게 중국공산당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것은 모두 파룬궁을 비방하는 거짓말이라고 알려주고 진정한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고 대법은 지금 세계에 널리 전해졌으며 이르는 곳마다 선량한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알아듣고 더 이상 나에게 선물을 주지 않고 나의 신앙을 존중한다면서 아이를 나에게 맡기면 시름을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파룬궁이 박해 받은 초기 몇 년간 나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연이어 네 차례나 강제로 세뇌반에 잡혀갔다. 한 번은 내가 세뇌반에서 석방되어 돌아오자 유치원 상사는 ‘610’ 박해자의 협박을 받고 나에게 반을 맡기지 않고 뒤에서 잡일을 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기에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잡일을 잘 했다. 어느 날 내가 계단을 닦고 있는데 원장이 나를 사무실로 불러 말했다. “내일 원래 맡았던 반으로 가세요.”
반에 돌아간 후에야 나는 학부모들이 원장에게 간절한 편지를 써서 원장이 감동해 나를 반으로 돌아가게 한 것임을 알았다. 편지에는 이런 한 단락 내용이 있다. (대체적인 뜻) “O선생님이 반을 떠난 후 아이는 늘 떼를 쓰며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늘 O선생님이 그립다고 합니다. O선생님은 유치원에 돌아오셨지만 반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멀리에서 O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불렀지만 선생님은 듣지 못해 예전처럼 아이를 안아주지 않고 몸을 돌려갔다고 합니다. 아이는 집에 돌아온 후 엉엉 울었습니다. 우리 학부모들은 단체로 O선생님이 반으로 돌아오게 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 편지 때문에 나는 귀여운 아이들 속으로 돌아가 계속 사랑으로 근면하게 어린 새싹들의 성장을 돌봐줄 수 있었다.
1999년 박해가 발생하기 전 나는 여러 차례 ‘모범 교사’로 선정됐다. 1999년 ‘7.20’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나는 진·선·인을 신앙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 몇 차례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강제로 잡혀가 세뇌를 받았다. 돌아온 후 ‘모범 교사’로 선출될 권리를 박탈당했지만 동료들은 여전히 투표용지에 내 이름을 적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O선생님이 모범이 될 자격이 있다고 여겨 뽑지 말라고 해도 선생님을 뽑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뽑지 않을 겁니다!” 선거가 끝난 후 직장 책임자는 화가 나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이 함부로 썼어!” 당시는 대법 박해가 가장 심할 때여서 직장 책임자도 연루될까 봐 두려워했다.
마지막으로 세뇌반에 수감됐을 때는 2005년이었다. 당시 나는 사악한 세력에게 전혀 타협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현지 ‘610’은 나를 보복하기 위해 직장에 나를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하라고 하고 내 봉급을 낮추게 했다. 나는 도서 관리원으로 근무하게 됐다. 나는 박해 때문에 소침해 하지 않고 어느 부서에서든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정직하고 선량한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책임자도 아주 감동하며 말했다. “위에서 선생님을 모범으로 뽑지 말라고 하는데 유치원에서는 제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해마다 선생님을 유치원 모범 교사로 선정할 것입니다.”
3년 후 내가 또 유치원으로 돌아가니 책임자는 바뀌었지만 내가 학부모와 동료들의 한결같은 호평을 받은 것을 보고 내 업무 능력과 인품을 인정해 상부에 나를 핵심 모범 교사로 보고했다. 상부가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해!”라고 말했지만 유치원 책임자는 말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무슨 문제 있나요? 제가 보는 것은 어떻게 일하는가 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해 1급 유치원의 ‘모범 교사’로 선정됐다. 유치원 책임자가 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을 때 나는 그녀의 선한 마음을 보고 아주 기뻤다. 나는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고 우리에게 일을 잘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좋은 공법입니다.”
유치원에는 공용 사무실 하나가 있다. 매번 사무실에 가면 나는 시간을 좀 내어 깨끗이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려 사무실 동료에게 깨끗하고 정연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이후에 열쇠를 교육과 연구 조장이 통일적으로 관리한 후에야 나는 청소하러 가지 않았다.
2. 책임을 다 하여 가정에서 각종 배역을 잘 맡다
여성 대법제자로서 금생에 가정에서 맡은 주요 배역은 아내, 며느리, 딸, 어머니 등이다. 가정에서 나는 책임을 다해 인간세상의 각 배역을 잘 맡았다.
며느리로서 나는 최선을 다하여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르신의 생활을 관심하며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위로해주었다. 시부모님이 병이 나 입원했을 때 나는 침대에서 전력을 다해 돌봐주어 같은 병실 사람들은 시부모에게 “딸이 정말 잘 해줍니다!”라고 말했다. 시부모는 자랑스럽게 “제겐 딸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며느리입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병실 사람들 모두가 칭찬했다. “지금 같은 사회에 이렇게 좋은 며느리는 정말 보기 드물지요.”
시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는 몸이 허약해져 주위에 항상 사람이 지키고 있어야 했다. 나와 남편 및 시동생 일가는 번갈아 가며 돌봐주었다. 우리가 돌볼 차례가 되면 나는 시어머니에게 입에 맞는 음식을 해드리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목욕과 빨래를 해드렸다. 시어머니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 늘 내가 효도한다고 칭찬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부모님이 남긴 재산을 나는 한 푼도 다투지 않았다. 형제와 동서 사이에서 양보하고 화목하게 지내며 진심으로 대하면서 돌봐주자 시어머니 이웃은 나를 만나면 칭찬했다. 시동생도 진심으로 말했다. “형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셨어요.”
어머니로서 나는 가급적 아이에게 명랑하고 낙관적이어야 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부딪힌 모든 일을 대하라고 인도했다. 아이는 어떤 때 놀이에 탐하긴 했지만 인품과 덕성이 아주 좋았고 공부하기 좋아했으며 남을 도와주기 좋아했다. 한번은 내가 아이를 데리고 슈퍼마켓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일이다. 아이는 탈의실에서 옷을 입어보다가 바닥에서 지갑 하나를 주웠다. 안에는 신분증, 각종 은행카드 5,6개와 1백 위안 현금 한 뭉치가 들어있었다. 아이의 첫 반응은 “어머니, 우리 얼른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줘요”였다. 지갑에 연락처가 없어 우리는 슈퍼마켓 직원에게 맡기려 하다가 그녀들도 주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파출소에 맡겼다. 당직 경찰이 헤어보니 안에는 2100위안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이튿날 경찰은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전화를 걸어와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는 정말 뜻밖이라면서 지갑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대법제자라면 누구든 지갑을 주우면 다 돌려줄 것이고 대법제자가 아닌 사람이 주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치원에서 도서 관리원으로 근무할 때 유치원 책임자는 나를 믿었기에 유치원의 모든 창고 재산을 다 나에게 맡겼다. 창고의 물자는 큰 데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가구, 문구, 생활용품, 크고 작은 전기기구 등 많은 물품이 장부에 없었다. 이런 물품을 관리할 때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직장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은 새로 도서를 구독하면 무료로 증정하는 작은 카드를 작은 손으로 만지며 아주 좋아했지만 “엄마, 내 것이 아니면 가지면 안 되지”라고 말했다. 아들은 정말 각별히 좋아하는 것이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사달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대법의 바른 법리로 자신의 행위를 단속할 줄 알았다.
작년 여름방학 때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학교 선생님이 주관하는 특별지도반에 참가했다. 교실은 우리가 거주하는 단지 부근에 있었다. 선생님은 누가 집이 가까우면 열쇠를 맡아 문을 열어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학부모 회의에서 얘기를 꺼내 나는 아들과 상의할 기회가 없어 자진해 일을 맡았다. 이후 아들은 본인과 상의하지 않고 나만의 생각으로 결정했다고 원망하긴 했지만 매일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상관없이 제때에 반시간 먼저 가서 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학부모 두 사람에게 매일 청소를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들은 매일 반시간 먼저 가서 교실을 샅샅이 청소하고 흑판과 교탁을 깨끗하게 닦고 바닥을 앞에서 뒤에까지 쓸고 쓰레기를 버렸다. 선생님과 동급생들은 아들의 별도의 노력에 주의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소리 없이 줄곧 특별 지도반이 끝날 때까지 견지했다.
이 일을 나에게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내가 바닥 청소할 때 아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바닥은 지도반 바닥보다 쓸기 좋아요. 우리 그곳 바닥은 쓸면 흙이 아주 많고 책상과의 간격도 좁은 데다 동급생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 한 번 쓸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아들의 착한 행동에 나도 아주 감동했다.
어떤 사람은 늘 대법제자는 직장일, 가정도 버린다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는데 대법제자의 실제 행동에서 이런 거짓말은 스스로 무너졌다. 거꾸로 대법제자를 접촉한 세인들은 모두 대법제자는 가정에서 책임을 다할 뿐만 아니라 직장 일에서도 근면하게 일하는 것을 보았다. 대법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선량한 좋은 사람들이다.
3. 불광(佛光)에 젖어 대법에서 심신이 혜택 받다
1996년 대법을 수련한 후 내 몸도 건강해졌다. 근무시간에 하루도 병가를 낸 적이 없었고 열이 나고 감기 걸리는 일도 아주 적었다. 어느 한 해 독감이 특히 심하게 돌아 내가 맡은 반에도 독감이 폭발했다. 의사는 온종일 우리 반에 지키고 있었고 나는 끊임없이 아이들의 체온을 쟀다. 열이 난 아이가 나타날 때마다 즉시 학부모에게 집으로 데리고 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연락했다. 저녁에 학과가 끝났을 때 반에 30몇 명 아이 중에 6, 7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 며칠 같은 반의 두 동료도 열이 나고 기침하며 목이 아프고 온몸에 힘이 없다면서 2주 동안 링거를 맞아서야 호전됐다. 공교롭게도 그 며칠 유치원 전체 교사들이 한데 모여 공개수업을 들었다. 어디에 앉든 앞뒤좌우 동료들이 모두 기침을 했다. 나는 공기 중의 바이러스가 내 몸을 공격하는 것을 뚜렷하게 느꼈다. 이런 환경에서 하루 이틀 있으면 나도 몸이 불편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목에 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고 기침을 하면 온 가슴이 다 아팠으며 온몸이 숯불처럼 뜨거웠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간단한 저녁밥을 해주고 침대에 누워 휴식했다. 남편은 내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다가와 나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당신 열이 나네. 안 되면 병원에 가거나 약이라도 먹지!” 나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고 잠시 잠을 자고 동공과 정공 5장 공법을 다 연마했다. 이튿날 나는 불편한 감이 거의 없이 원기완성하게 출근했다. 다른 사람은 돈을 들여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서 1,2주 후에도 괴로워하던 질병이 내 몸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가뭇없이 사라졌다. 파룬따파의 신기한 치료효과가 없으면 어찌 이렇게 즉시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또 한 번은 버스를 탈 때 넘어져 발을 접질리어 즉시 부었다. 이튿날 발등과 발목이 검붉은색으로 됐고 부어서 아주 굵었다. 남편은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든지 홍화유를 바르라고 했다. 나는 나에게 조절할 방법이 있으니 필요 없다고 말했다. 상식적인 이치대로 말하면 발을 이 정도 접질렸으면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나는 조용히 누워있을 여유가 없었다. 시어머니를 돌봐야 할 때가 됐기에 나는 시어머니 집에 가서 예전처럼 장을 보고 밥을 지으며 안팎으로 바쁘게 보냈다. 시어머니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걸을 때 가급적 평형을 유지했다. 나흘째 되는 날 시어머니는 나의 검붉은색 발과 부은 발목을 발견했다. 이때 발에 어혈이 너무 많아 흩어질 곳이 없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시어머니는 기어이 중약을 발라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완곡히 사절했다.
엿새 되는 날 유치원에서 휴가 중 외부 검사를 하게 되어 직원들은 유치원에 가서 풀을 뽑아야 했다. 동료들은 내가 발을 접질린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사진을 찍거나 정골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경험담을 말하면서 이런 상태라면 제때에 치료하지 않으면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본인의 경험 혹은 가족이 발을 접질린 정황을 말하면서 약을 바르고 약을 먹고 정골했는데도 몇 달, 심지어 1년이 넘어도 발이 여전히 아팠다고 했다. 나는 동료들의 소개한 방법을 취하지 않고 매일 가부좌 연공을 견지하고 내재적인 조절을 했다. 신기하게도 발이 아무리 아파도 가부좌하기만 하면 아픔이 덜해졌다. 발을 접질렸으면 인근에서 활동하기도 불편했지만 나는 18일 후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서 여름 캠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해야 했다.
발을 접질린 후 20일 뒤에 개학해 우리는 새로운 유아반을 맡게 됐다. 아이가 어렸기에 각 방면에서 돌보고 지도해야 했다. 매일 끊임없이 바쁘게 일해야 했지만 휴식시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내 발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상으로 회복됐다. 파룬따파의 신기함이 없으면 심하게 발을 접질린 정황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렇게 빨리 회복될 사람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파룬궁이 약을 먹지 못하게 한다고 유언비어를 날조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에 걸리는 문제와 약을 먹는 문제 사이의 관계를 알려주었을 뿐 병에 걸렸을 때 약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사실 치료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꼭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하는 것만이 가장 좋은 경로는 아니다.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는 모든 약을 다 쓰고 환자가 모든 돈을 다 쓴 후에는 머리를 흔들면서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 요양하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많은 약은 부작용이 있어 내장을 손상시켜 환자는 내장이 약해져 죽을 수도 있다. 입원해 치료를 받는다 해도 병원에서도 매일 많은 사람이 죽지 않는가?
그러나 파룬따파 수련자 단체는 보편적으로 몸이 점점 건강해지고 심정은 점점 명랑해지며 성격도 평온해졌다는 반응이 있다. 파룬따파가 심신에 주는 혜택을 이루다 말할 수 없다.
4.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질의를 평온하게 대하다
어떤 때 직장 책임자 혹은 파출소 경찰은 명령을 받고 나를 찾아 대화를 나눴다. ‘610’ 박해자가 어떻게 사람을 세뇌시켰는지 직장 책임자나 파출소 경찰들은 모두 사부님 주택에 흥미를 가지고 끊임없이 “당신들 사부는 미국에 별장이 있다” “호화주택이 있다”는 유언비어를 반복했다.
처음에 나는 그들에게 해석했는데 그들이 믿지 않아 아예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 별장이 있더라도 문제될 게 있습니까? 안 될 게 있습니까!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의 돈을 받으려 하신다면 우리 모든 제자는 즉시 사부님께 집을 지어 드리고 안에 보석을 가득 박아 넣은 집에 사부님을 모신다고 해도 사부님을 섭섭하게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돈 한 푼도 받지 않고 사심 없이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바치셨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건강을 주셨고 좋은 사상을 주셨으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지만 우리의 아무런 보답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실제상황입니다. 게다가 선생님도 직접 우리 사부님의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보지 못했으니 근거 없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비방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그들도 ‘610’이 퍼뜨린 거짓말은 논리성이 입증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당신들 사부가 사회에 무슨 공헌을 했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말했다. “우리 사부님께서 사회에 공헌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가르친 판사는 공정하게 안건을 판결할 것이며 ‘원고나 피고를 모두 공갈과 사기를 위한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가르친 교사는 근면하게 학생을 가르치고 학부모의 선물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가르친 가정부도 전력을 다해 주인집 일을 하면서 절대 주인집의 바늘 하나 훔치지 않을 겁니다. 박해가 가장 심한 시기에도 어떤 자영업자 사장님은 노무시장에서 경리를 뽑을 때 ‘이곳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를 따라 오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는 대법제자가 회계를 담당하면 절대 돈 한 푼도 탐오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부님께서 가르친 대법제자는 이 사회 어느 구석에 있든 다 이 사회에 바른 에너지를 내보낼 것입니다. 이보다 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까지 들으면 그들은 사존에 대한 불경스러운 말을 더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선량함과 양심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원문발표: 2017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28/35832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