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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으면서 수련생들과 함께 제고하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5년 대법수련에 들어선 노제자이다. 예전에는 펜을 들어 한 마디를 쓸 때마다 법을 좀 일찍 얻은 것은 자신의 한 가지 영예라고 생각했다. 대법에서 22년을 수련했다는 내가 마치 대법의 문에 이제야 들어선 것 같아 오늘 나는 진심으로 자괴감을 느낀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해 제자 때문에 사부님께 많은 시름을 끼쳐 참으로 부끄럽다. 지금껏 대법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다. 사실, 대법 일을 하자면 반드시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잘하는 기초 위에서 해야 한다. 사람의 관념을 지니고 일을 하는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수련을 통해 안으로 찾음에 대한 끝없는 법리를 느꼈다. 오직 안으로 찾아야만 우리는 법에서 제고할 수 있고, 수련 가운데서의 고비, 난관을 넘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라고 한 이상, 우리가 날마다 부딪히는 매 한 가지 일은 모두 수련의 요소인데 무슨 기쁨과 증오가 있겠는가? 기쁨과 증오를 모두 자기의 심성에서 무슨 마음이 자신을 이렇게 하도록 했는지 찾아보면서 그 마음을 버리면 그것이 바로 하나의 제고인 것이다.

자신은 속인 가운데서 직장 지도자여서 사당(邪黨) 문화의 것으로 자주 자신의 수련을 교란했다. 더욱이 수련에서 늘 남을 수련시키려 했다. “누구의 말이 법에 있지 않다” “누구누구가 어떻게 하는 것은 법에 있지 않다” 등 거울로 남만 비춰보고 자신은 비춰보지 않았다. 또 예를 들면 어느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는데 협조인 수련생이 나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며 도와주라고 했다. 나 자신에게도 그 수련생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모두 대법제자이고 그녀의 일이자 내 일이라고 여겼다. 그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는 외 또 심성 방면의 문제도 찾아주었다. 다른 수련생을 도와주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도와주는 수련생이 만약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법에 있지 않으며, 안으로 찾지 않는다면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 1년 남짓 법으로 대조하면서 안으로 찾았는데 일부 사람 마음을 찾아내고 법공부를 강화했다. ‘전법륜’으로부터 사부님의 각지 설법, 다시 신경문까지 공부하면서 감성적인 인식에서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했다.

한번은 한 노인 수련생에게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내가 볼 일이 있어서 그의 집에 갔더니 부부 수련생은 모두 유달리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렇게 오셔서 참 반가워요.” 그러고 나서 아내 수련생은 남편 수련생이 어떤 상태라면서 나에게 발정념을 해주라고 했고 또 그들과 교류하자고 했다. 우리는 함께 발정념을 하고 나서 이번 교류에서 나는 그 수련생의 심성 문제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아보았고, 수련생도 안으로 찾아보았으며 우리는 모두 법에 비추어 자신을 찾았다. 작별할 때 수련생은 시간을 내어 다시 와 달라고 했고 나도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집에 와서 자신을 찾아보니 나는 정말로 이 수련생에게서 우리 모두에게 있는 심성 문제를 보았는데 참으로 마땅히 자신을 수련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을 수련하겠다는 솔직한 마음을 품고 또 이 수련생의 집에 갔다. 우리는 또 함께 정념을 발하고 또 진일보 각자 안으로 찾았다.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나았어요, 어제는 스스로 서서 연공도 할 수 없어 침대에 의지해서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혼자서 연공할 수 있어요.” 그렇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수련인은 만난 일에서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또 예를 들면, 한 번은 내가 갑 수련생이 납치된 일을 알아보려고 다른 수련생 집에 갔더니 그 수련생은 내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제 언니가 외지에서 왔는데 수련에서 고비를 만나 넘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 함께 교류 좀 해요.”

그런 다음 그녀는 언니가 어떻게 먼 곳에서 왔는지 말했다. 남편과의 가정 난이 커서 80이 다 되고 쌍지팡이를 짚은 언니가 그녀 집으로 찾아왔고, 언니는 그녀 집에 와서는 갈 생각을 하지 않으며 이곳에서 집을 산 후 작은 딸을 데려다 자신을 보살피게 하겠다고 했다. 동생은 언니와 교류할 때면 언제나 한 마디로 정곡을 찔러 언니의 잘못을 지적했고, 언니는 늘 자식과 남편이 모두 자신에게 잘하지 못한다고 원망했다. 듣고 나서 나는 자신이 예전에 어떻게 잘하지 못했고 자신을 닦지 않았으며 남편의 일을 봐 주지 않았는지 그녀에게 들려주었으며, 이후 일에 부딪히면 가족들의 감정을 배려해주어 지금은 남편에게 변화가 생겼고 내 법공부와 수련을 지지한다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또 어떤 수련생이 수련 과정에서 자신을 개변하니 가정에 변화가 생긴 실례를 들었다. 보아하니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여전히 불만이 있는 것 같아 집에 돌아와 나는 다시 안으로 찾아보았다. 뿌리는 사심에 있었고 이 마음이 나를 교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뿌리를 깊이 파 보았다. 나는 또 사부님의 ‘휴스턴법회 설법’을 읽었더니 아주 좋았다. 이튿날, 나는 사부님의 이 책을 지니고 수련생 집에 갔더니 또 세 수련생이(약속이나 한 듯) 와서 함께 법공부를 했다. 우리는 한 글자 한 마디씩 사부님의 설법을 배웠다. “나는 늘 말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업신여길 때,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줄 때, 혹은 당신이 무슨 고통을 받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다.”[2] 법공부를 마치고 우리는 간단히 교류했다. 주로는 우리가 일에 부딪혔을 때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겨야 하고,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안으로 자신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우리가 돌아간 후 언니의 작은 딸이 이모에게 말했다. “오늘 엄마의 기분이 아주 좋아서 바나나를 드셨어요.” 그 후에 동생과 교류할 때 언니가 말했다. “그 수련생은 가지고 온 사부님 설법을 한 마디 한 글자씩 나에게 읽어 주었고, 사부님 법에 대조하니 그래도 내가 잘못했구나, 난 늘 남편이 나를 때린다고 말했는데 실은 처음에는 남편이 나를 때리지 않았어. 내가 먼저 남편 뺨을 때렸던 거야. 난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어.”

그렇다, 수련인으로서 늘 남을 개변시키려 하고 자신을 개변하지 않는다면 이건 수련이 아니다! 수련인으로서 한 가지 일에서 수련하지 않으면 이 일에서 우리는 수련인이 아니다. 날마다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그럼 속인인 것이다. 우리는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안으로 찾는 이것은 하나의 법보(法寶)”[1]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이 법보를 사용해야 한다. 이는 만능열쇠로서 관을 넘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요괴를 제거할 수 있다. 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나는 여기서 수련하지 않겠어. 이틀 후 여동생의 생일이 지나면 나는 집에 돌아가서 자신을 잘 수련하겠어. 난 지금 남편을 미워하지 않아. 또 애들도 탓하지 않아. 아들이 나에게 돌아오라고 늘 전화가 와. 인터넷으로 표를 사주겠다나.” 그녀의 작은 딸은 말했다. “엄마, 아들과 며느리가 마중을 오게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도 얼마나 체면이 깎여요.” 수련생 언니는 말했다. “그들에게 오지 말라고 해. 아들이 하루 출근하지 않으면 3백여 위안을 받지 못한대. 난 체면은 싫고 수련만 할 거야.” 수련생은 관념을 바꾼 것이다. 내가 다시 갔을 때 그녀는 지팡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물으니 그녀는 지팡이를 쓰지 않고 비닐 의자를 지팡이 대신 쓴다고 했다. 나는 비닐 의자를 쓰지 않으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고 했다. “의자를 던져보세요”라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걸어보더니 아주 쉽게 집안을 몇 바퀴 돌았다. 그 수련생의 개변 과정은 실은 바로 우리의 수련 과정인 것이다.

근 1년 사이 사당(邪黨)은 노크 행동으로 대법제자를 교란했다. 현지 대법제자는 장쩌민을 기소했다는 이유로 납치, 구류, 실형을 선고당했다. 나도 좀 두려웠다. 한 번은 두 사람이 와서 우리집 문을 노크했다. 도어 스코프로 보니 수련생이 아니어서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속으로는 두려움이 나왔다. 하지만 즉각 남편에게 노크하는 것이 교란이므로 발정념으로 제거하자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입장하고 사악을 제거했다. 이후에는 법공부를 시작했다. 사부님의 법이 분명하게 뇌리에 들어왔다. “이미 법을 얻었다. 나는 생사마저도 다 두려워하지 않으며 명(命)마저도 가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떠한 일을 또 집착하겠는가?”[3]

그렇다. 스스로 자기는 대법제자라고 날마다 말하지만 당신은 생사를 내려놓았는가? 당신은 진정한 대법제자인가? 당신은 안으로 찾는가? 맞다. 나는 생사의 난관 앞에서 두려워했으니 이 일에서 나는 닦아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제고할 기회가 아닌가? 오늘 나는 두려운 마음을 버렸으니 나는 대법제자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나는 그것을 갖지 않겠다. 나는 생사를 내려놓겠다. 정말로 순간에 두려움이 종적 없이 사라졌다. 사부님께서 두려움이란 물질을 제자에게서 떼어버려 주셨다. 내가 다시 발정념을 할 때 내 온 공간장은 전부 붉은빛이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관념이 개변되고 심성이 제고됐다고 점오해주신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그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확실히 그랬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자신의 수련 문제를 발견하고 즉시 자신을 바로 잡으며 심성을 승화하면 이것이 비로소 수련이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마음을 반드시 닦아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휴스턴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법회 설법–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108년 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2/3595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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