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롄(大連) 대법제자 푸메이(普梅)
[밍후이왕] 이전 한동안 수련생들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모순이 나타났다. 표면적인 원인은 다르지만 모순의 표현 형식은 거의 비슷했다. 어떤 수련생은 문을 안 열어주고 어떤 수련생은 일어나서 가버리거나 거절하는 등등이었다. 당시 나는 얕은 인식으로 자신이 문제를 가늠하는 표준은 법에 있지 않고 많은 때는 자아를 중심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은 법공부를 마친 후 수련생에게 인정 없이 거절당했을 때 나는 자신이 헤어지기 싫어하는 정이 있고 이기적이고 자아의 요소가 존재하는데 다만 이전에는 이것을 흐리멍덩한 개념으로만 생각했다. 문제는 이미 매우 심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이 모순 형식으로 자신을 깨닫게 하셨고 반드시 엄숙하고 진지하게 대해야만 이후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비록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최대한 마음속 감정을 계속 억제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나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계속 배척하거나 억누르지 못했다. 사상 중에서는 종종 다른 수련생의 행동을 생각하고 종종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며 그들의 부족함을 생각하면서 마음속 불평도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종종 또 그들의 문제를 찾으려 했는데 듣기 좋게도 그런 것도 조사정법이고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해체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튿날 다른 수련생들이 나를 찾아와 법공부를 한 후에야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수련생들이 간 후 또 모순 중 다른 수련생들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내심에는 아직도 불만이 존재했으며 마음속 불평도 더 심해졌다. 그래서 자신이 진정하게 제고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를 직면하면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으려 생각했지만 또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하기 싫어졌으며 내심은 늘 불평이 존재했다. 그리하여 사람의 표면도 이끌려 좀 안절부절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발버둥을 겪은 후, 나는 엄숙하게 ‘이렇게 계속하면 안 된다’고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반드시 이지적으로, 밖으로 보지 말고 평소처럼 확고하게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는 염두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막 시작했을 때 사상 중에서는 여전히 다른 수련생의 부족함이 반응했고 내심은 자기도 모르게 또 불평했다. 하지만 안으로 찾으려 노력하고 조용히 법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결심하자 사부님께서는 자신이 불평하는 것은 질투라는 것을 나에게 뚜렷이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이 물질과 저항하려고 결심했고 어찌됐던 조용히 법공부를 견지하고 조용히 안으로 찾아 되도록 자신 몸에 나타난 불평과 각종 부정적인 사유를 억제하겠다고 결심했다.
진정하게 자신의 이런 상태를 직면하고 확고하게 안으로 찾았을 때, 자신이 전에 안절부절못하고 불평하는 원인은 모두 안으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념으로 자신 몸에 존재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진정하게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조건으로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뚜렷이 알게 됐다.
이렇게 조용히 법공부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자신의 전체 몸이 떨고 있는 것 같았고 내심도 매우 고통스러웠으며 몸 전체가 거의 오므라드는 것 같았다. 한동안 지속한 후, 떠는 현상이 자기도 모르게 사라졌고 몸에는 전혀 없었던 에너지가 나타나 매우 편안하고 평온했다. 동시에 이전에 온몸에 가득 차있고 자신이 매우 괴롭다고 느꼈던 물질이 갑자기 심장으로 집중되어 가슴이 점점 더 아팠다.
이때 나는 책을 내려놓으려 시도해봤지만 그 고통은 더욱 강렬했고 거의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때 나는 법공부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계속 법공부를 해야만 자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통의 물질을 이기고 해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좀 지나자 갑자기 내심의 아픔 범위의 강도가 줄었고 편안한 느낌이 온몸에 퍼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부님의 해외 설법을 보았을 때 법은 질서 있게 자신을 지적했고 이전에 전혀 보지 못했던 문제와 법리를 알게 되었다. 이 대법의 계시를 받고 나는 매일 ‘전법륜’ 두 강의를 읽고 또 평소대로 시간을 짜내 ‘정진요지’를 몇 번 베끼는 이외에 저녁에 연속으로 사부님의 기타 지역 설법을 읽고 아침 혹은 점심 등의 시간에 고밀도 발정념을 견지하면서 약 한 시간 동안 자신 공간장을 청리하는 것을 강화했다.
이렇게 법공부를 견지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서 때로는 타인에 대한 불만이 나타나면 아주 쉽게 주의하고 안으로 찾을 수 있었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반대로 자신을 대조하면서 자신이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黨)문화의 사유방식과 대인 관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문제에 부딪히거나 모순이 발생했을 때 사람의 측면에서 문제를 생각할 때가 많았으며 매사를 수련인의 각도에서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를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아주 작아 보이지만 도리어 발견하지 못한 문제와 집착이 자연적으로 이미 형성되었다. 사상에서 여전히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사부님의 법은 또 끊임없이 나에게 펼쳐졌고 문제의 원인을 보여주었다.
법공부를 견지한지 4일째 저녁에 사부님과 제자 문답 중에서 갑자기 정과 색욕에 대한 관념을 인식했다. 그것은 바로 이성 간에 서로 잘 지내고 사이가 좋은 행위는 바로 남녀관계이며 바르지 못한 사상염두로써 깊이 말하자면 사념(邪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와 동시에 갑자기 자신의 온몸은 편안한 에너지가 가득 차 있었으며 좀 지나자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계란껍질 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미묘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 관념을 인식하고난 후 이튿날 수련생들은 잇따라 와서 수련 중에서 부딪힌 문제를 교류했고 동시에 일부 일시적으로 모순이 발생해 떠났던 수련생들도 돌아왔다. 연이어 진일보로 자신의 많은 집착을 제거하지 못하고 일을 잘하지 못한 것은 정확한 이념으로 지도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많을 때는 모두 인위적인 관념과 부정적인 사유가 작용을 일으켰다. 마치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는 정확한 사상을 지도로 삼지 못해서 그렇게 끊어버리려 해도 그리 쉽지 않다.”[1]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 신체의 미시적인 곳에서 마치 한 짝의 문이 점점 열리는 것 같았다. 마음을 닦고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은 말로 묘사할 수 없는 에너지가 침투해 새로운 내재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다시 사부님의 자비와 불법의 박대정심(博大精深)과 끝없는 법력을 체험했으며 동시에 자신이 인식한 문제, 법에 대한 이해 범위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줄곧 중생을 아끼고 보호해주셨으며 순서 있게 법으로 제자를 깨닫게 하셨으며 제자의 수련제고를 안배하셨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고, 제자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면 사부님께서도 모두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이 우주 중에는 또 이런 이치가 있다: 당신 자신이 구하는 것, 당신이 가지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간섭하려고 하지 않는다.”[1] 나는 수련 중에서 최종 얻은 결과는 우리가 마음을 쓰는 정도,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본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로서 수련 제고하려는 생각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 마음을 써서 법공부를 견지하며 무조건으로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바르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법에서 법을 인식해야만 생각이 열리고 깊은 층의 문제와 서로 다른 층차의 법리를 볼 수 있으며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 못했던 신기함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은 자신이 현 층차 중에서의 조그마한 체험이다. 층차의 한계로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일체를 모두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부족한 곳이 있으며 수련생들이 포용하고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1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5/3592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