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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 대한 층층의 집착을 내려놓자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얻은 그날부터 나는 사부님의 좋은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또 줄곧 수련을 괜찮게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주 많은 시기에 어떻게 수련할지 잘 몰랐는데 왜냐하면 아주 많은 시기에 행한 것은 모두 표면적인 공부였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아주 노력하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본질적인 것들은 닦아서 제거되지 않았다. 더욱이 ‘자아’에 대한 집착이 표현되어 나온 것은 바로 층층에서 체현되어 나오는 위사(爲私)의 요소였다.

법에서 우리는 알게 됐는데 우리 예전의 생명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법 실증, 이렇게 신성한 일을 할지라도 역시 층층의 사심과 잡념을 섞고 있어 자신으로 하여금 아주 많은 굽은 길을 걷게 했고 중생구도에 손실을 끼쳤다. 지금 진정으로 무척 명석하게 인식했는데 수련은 너무나 엄숙했고 그 층층의 ‘자아’를 모두 내려놓아야 하고 층층의 사(私)에서 모두 벗어나야 하며 반드시 완전히 순정함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정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만약 이 근본적인 문제에서 손을 대지 않고 자신을 개변하지 않으며 자신을 제고하지 않고 자아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수련 햇수를 증가시켜도 층차 제고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1. ‘자신의 층차를 제고하고 위덕을 쌓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자

그해 나는 개인 원만을 추구하고 개인 해탈을 목적으로 삼고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가정 출신 문제로 젊은 시절에 줄곧 사당(邪黨)에 의해 억압과 박해를 당했기에 이후에 그들은 나의 출세를 통해 사회 하층민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리하여 당시 내 인생은 줄곧 이 목표를 위해 분투했다. 나는 30살이 채 되기 전 진(鎭)에 한 부서의 간부가 됐고 주변 친구들은 모두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관리들 속에서 본 타락한 현상은 젊은 나로 하여금 이미 세속에 실증을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나는 법을 얻을 때 천국세계의 영생불멸과 순정한 아름다움을 강하게 흠모했었고 수련을 위해서는 인간세상의 일체를 전부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자아원만과 자아제고에 집착하고 자신을 위해 더 큰 위덕을 쌓겠다는 이 사심으로 ‘4.25’, ‘7.20’ 이후 일련의 반(反)박해와 법을 수호하는 행동에 참가했다. 그러나 구세력에 의해 박해 구실을 붙잡혔고 한동안 굽은 길을 걸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기에 사부님께서 내가 개인 수련과정에서 하루 빨리 이 근본 집착을 인식하고 그것을 내려놓기를 얼마나 바라셨는지 느낄 수 있었다. 1999년 7월의 거대한 난을 순조롭게 넘고 정법 수련으로 나아갔지만 그 시기의 나에게는 너무나 강한 자아가 있었다. 거기에 업력의 저애로 사부님의 점화에 대해 잘 몰랐고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법공부를 통해 사부님께서는 더 한층 점오해주셨고 이 입문 시기의 근본 집착을 인식하게 됐다. 점차 자아원만과 위덕에 대한 추구를 내려놓을 수 있었고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자신의 중생구도에 대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었었다.

2. ‘대법 항목 중에서 자아를 실증’하는 집착을 내려놓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 하에 2005년 나는 해외로 왔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욱 마땅히 시간을 다그쳐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동시에 많은 항목에 참여했고 늘 하루에 3~4시간만 잠을 잤다. 이후에 나는 무척 바쁜 시기에 신체에 비교적 심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고 나는 이것이 구세력의 교란임을 알았다. 그러나 구실을 붙잡힌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께서도 그것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수련을 시작해서 사부님께서는 늘 점화해주시는 방식이 남의 입을 통해 직접 내 문제를 지적하거나 직접 관련된 법을 나의 머릿속에 넣어주셨다. 그날 내 머릿속에서는 사부님의 ‘북미 순회법회 설법’에서의 한 단락 법이 직접 나타났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비롭게 점화해주심을 알았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다소 미혹이 있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속인이 중하게 보는 이른 바 장래, 사업, 이익을 나는 모두 내려놓았고 자신의 원만과 위덕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여전히 표면에서 내려놓은 것인가? 나는 내심 깊은 곳에서 무슨 본질적인 이익을 고수하고 있는가?

그러나 나는 수련인으로서 안을 향해 찾는 것 외에 이 관을 돌파할 수 있는 두 번째 길이 더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일을 할 때의 기점이 도대체 무엇인지 자세히 분석했다. 이후에 끝내 찾아냈다. 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법 일을 하는 것은 완전히 자비심에 의해 사람을 더 많이 구도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부님의 가장 좋은 제자가 되기 위해서였고, 다른 수련생들과 비교했을 때 격차가 없기를 바라서였는데 안에는 쟁투와 승리하고 싶은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사실 자신의 수련을 실증하기 위함이고 최종 목적은 여전히 사(私)를 위함이었다! 마침 구우주의 위사의 기점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비로소 구세력에게 교란당할 구실이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이 항목을 많이 하고 일을 하려는 마음이 강한 것이 중생구도의 소원이 강한 것으로 오인해 은폐됐다. 만약 사부님의 점화가 아니었다면 남들이 나에게 지적해주어도 나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사부님의 ‘지난 설법’을 들었을 때 나는 알게 됐는데 완전히 남을 위하려면 반드시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아야 했다. 항목에서 자아를 실증하지 말고 법의 위력만 나타나게 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본 후 신체의 부정확한 상태가 아주 빨리 사라졌다.

3. ‘자신의 관념과 방법을 견지하고, 자아로 타인을 가늠’하는 집착을 내려놓자

자아를 실증하는 집착을 인식하고 또 내려놓겠다고 결심한 후 나는 자신이 기본상 무슨 자아적인 것이 없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나는 또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발견했다. 아주 많은 방면에서 자신의 감각과 반응을 발견했고 또 하나의 ‘자아’가 수시로 뛰쳐나와 교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방향으로 일이 발전하지 않을 때 소극적으로 되고, 자신이 가끔 말할 때 어투가 무척 단정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마치 자신은 늘 옳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의 느낌과 요구로 한 가지 일을 가늠하고 자신이 개의치 않아하는 일은 남도 마땅히 개의치 않아 해야 한다고 여겼다. 자신이 아주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남들이 홀시한다면 매우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다.

항상 자신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이는 모두 아주 강한 자아가 아닌가?

아울러 나도 발견했는데 일부 항목들 중 어느 한 방면에서 능력이 아주 강하고 비교적 정진하는 수련생들 역시 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늘 자신의 견해와 관점이 맞는다고 여기고 일단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주 많은 원망과 질책이 있었다. 사실 바로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과 그 가장 근본적인 자아가 건드려진 것이다. 이때 만약 진짜로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으면 자신이 억울하고 상처를 받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울러 또 진정으로 남의 각도에 서서 남을 이해할 수 있고 진정으로 더욱 좋은 방법을 생각해서 항목을 원융하는데 자신의 일체 인식과 관념은 모두 중요하지 않게 된다.

4. ‘자신의 소원과 목표를 대법에서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집착을 내려놓자

이 한 점은 인지하기가 아주 쉽지 않다. 왜냐하면 표면적인 이 소원과 목표는 아마도 모두 좋은 것이고 조사정법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사람 마음의 집착으로 수련에서의 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사례인데 나의 아이가 션윈에 합격하기를 아주 희망했고 아이의 키가 아직 크지 않아서 아주 걱정되고 조급했는데 이 소원과 목표가 실현되지 않을까 봐 걱정됐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약 아이가 정말로 션윈에 합격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아주 실망하고 상심했다. 조사정법(助師正法) 이 신성한 일을 속인 중에서의 목표로 여기고 추구했으며 아이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사부님의 배치가 있으니 사부님의 배치야말로 가장 좋은 것임을 잊었다.

이런 자아 소원(비록 좋은 소원이라도)을 실현하는 집착이 반대로 사람을 구하는 면에 가끔씩 영향을 준다. 사실 무엇이 발생할지라도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아야 하고 머릿속에는 오로지 사부님의 요구만 있어야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풍모다. 왜냐하면 사부님의 배치는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이고 사람을 구하는 각도에서이든지 아니면 자신의 수련 제고에 대한 각도에서이든지 막론하고 사부님의 배치는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이다. 오로지 사부님께서만이 일체를 꿰뚫어보시고 일체를 주재하신다. 션윈에 들어가는 최종 목적은 션윈에 들어가기 위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람 속에서의 이상이나 포부를 실현하기 위함이 아니라 법을 실증하기 위함이고 사람을 더 잘 구도하기 위함이다. 만약 사부님께서 아이를 기타 영역에 배치해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게 한다면 그것은 같은 것이다. 만약 션윈에 들어가는 것에 강렬한 집착이 생긴다면 역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 표현이다.

나는 진정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하고 마음속으로 늘 차분하고 담담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어떠한 정황에 부딪히더라도 모두 정념과 결심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법에서 우리를 위해 일체를 잘 준비해주셨다. 오로지 우리가 수련인의 상태이면 일체는 모두 순서 있게 배치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늘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자아의 생각, 배치를 견지한다면 구세력이 배치한 올가미에 빠져서 결국에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게 되고, 가장 엄중한 것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일에 영향을 주게 된다.

어떻게 자아를 내려놓는가? 나의 체험은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잘 배우는 동시에 어떠한 모순과 충돌에 부딪히더라도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정법과 사람을 구도하는 기점에서 문제를 사고하면 정법 중에서 환골탈태하고 철저히 위사위아의 구우주의 특성을 제거하고 신우주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를 성취시키려 하시고 기타 어떠한 생명들이 인위적으로 어떤 방식을 이용해 어떤 목적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매 대법제자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부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서 걷는 것이며 이 또한 수련인의 최대의 오성(悟性)이다.

이 가장 귀한, 잠깐이면 곧 스쳐지나갈 최후의 시간에 자신을 잘 닦는 동시에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하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자! 사부님의 구도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3588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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