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2년 40살 때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한 기업의 중간 간부였고 아들 둘과 79세 된 어머니가 있었다. 남편 말에 따르면 자기는 오독 구전[사기, 도박, 작당, 마약, 협창(挾娼)을 갖춤]한 사람이고 마작을 즐겨 했고 술을 많이 마셔 중독됐다고 했다. 거기에 아들 둘도 그다지 철이 들지 않았고 집에는 농사지어야 할 땅도 있었으며, 나는 일자리가 있어 일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사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었다. 98년 초겨울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점차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반본귀진임을 알았다. 나는 대법의 ‘진선인(眞 善 忍)에 따라 살았더니 병이 없고 온몸이 가벼워졌고 관념도 다소 변했으며 집안사람들도 정신이 맑아지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2016년 11월, 남편이 열이 나 병원에 갔는데 말기 암이고 매우 심각한 상태라 바로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남편이 가망성이 없어 보이고 큰 수술이기에 수술 후 많은 출혈과 일부 위험이 생길까 봐 수술해주고 싶지 않아 했다. 나와 두 아들은 의사에게 “병원에 온 것은 수술하여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온 것이에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수술을 받았고 의사가 말한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온 후에야 나타났다. 초하루 저녁 무렵에 집에는 우리 둘만 있었고 침대 옆에서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는데 그는 갑자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안 외울 거요, 당신도 사부님께 빌지 말아요. 나는 실컷 살았소!”라고 했다. “당신 괜찮은데 왜 그런 말을 해요?” “내가 평생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했는지 당신도 잘 알잖소. 살기 싫소.” 그리고 눈을 감고 날 보지 않고 더는 살지 않겠다고 했다. 초사흗날 저녁 무렵에 그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세상을 뜬 후 며칠 동안 힘들었고 정신적 육체적 감당도 극한에 이르렀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으며 밥 생각도 없고 누워 잠만 자고 싶었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서 ‘누구도 날 깨우지 말라, 이틀 동안 푹 자고 쉬고 싶다. 너무 힘들다.’라고 생각했다. 이 마음은 악마에게 틈을 타게 했고 구세력은 바로 죽음으로 향해 날 잡아당겼다. 아침에 일어날 수 없었고 몸에 열이 나고 쑤시고 아팠다. 조문하러 오가는 많은 사람은 나에게 병원에 가거나 집으로 의사를 부르라고 했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모두 거절했다. 아이들이 데리고 온 무당은 애 아빠가 날 부르고 있다고 해 아이들과 동생들은 몹시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말을 해 주지 않고 나에게 막내아들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사실 나에 관한 일을 의논할 때 다 들었고 속으로 ‘난 대법제자인데 남편이 어찌 날 부를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면서 발정념하고 제거하기도 했다.
막내아들 집에 도착하여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지만, 잡생각으로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아 사부님의 시가 ‘마음고생’을 외웠다. 구들에 누워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아주 괴로웠고 몸이 몹시 아팠으며 숨이 차, 순식간에 배와 온몸이 부어올라 왔다. 돌아가기 전 남편의 증상과 똑같았다. 나는 사부님을 외치며 구해달라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가 바로 옆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힘없이 외치고 있는 것을 듣고 불을 켰다. 전신이 변한 날 보고 몹시 놀래 “어머님, 어떻게 된 일이에요?”라고 외치며 날 일으키고 병원에 데려가려고 전화로 사람을 불러오려고 했다. 나는 손으로 전화를 가르키며 하지 말라고 했다.
연공인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 알기 때문에 마음은 조용했다. 끊임없이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외치자 좀 지나 숨을 쉴 수 있었고 통증도 없어졌다. 며느리에게 괜찮으니 모두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나는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허망한 생각 다 떨쳐버리면 부처 수련 어렵지 않도다”[1]를 소리내 외웠다. 그리고 안으로 찾아보자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수련인의 정념이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남편이 갔으면, 2개월 동안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세 가지 일을 하지 못했던 것을 보완해야 했으나, 먼저 너무 힘들다고 잠자고 이틀 동안 푹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남편이 날 불러 죽을까 봐 걱정해 피하려고 아들 집에 와서도 제때에 정념으로 구세력의 모든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섣달 그믐날 수련생이 보내온 사람을 구하는 진상 자료를 제때에 법공부팀으로 보내지 못하고 아직 집에 놔두는 바람에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고 글자를 고쳐야 할 경문을 절반밖에 못 고치고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다. 이것들은 수련인에게 있어서는 안 되고 일을 질질 끌어서는 안 되며 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했어야 했다. 며느리에게 “아침에 일 좀 도와다오. 수련생 언니를 찾아가 우리 집 주소와 내 물건을 전달하고 내 정황을 그녀에게 알려줘.”라고 했다. 며느리는 “어머님, 마음 놓으세요.”라고 했다. 그리고 또 “그녀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내 건강상태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말아라.”라고 했다. 며느리는 “네, 알겠습니다. 약속할게요.”라고 했다.
아침에 아들과 며느리는 밥도 먹지 않은 채 차를 몰고 떠났다. 나는 혼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아파서 참기 어려울 때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외쳤고 ‘홍음’을 외웠고 안으로 1시간쯤 자신을 찾아보았다. 수련생 언니는 수련생 4명과 함께 날 보러왔다. 수련생들은 구들에 누워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며칠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변했어요?” “정념이 없어 초래한 번거로움이에요. 이것은 저의 생사에 대한 시험이에요. 반드시 신사신법하고 고비를 끊고 생사고비를 넘기겠어요.” 수련생은 “정념이 있어야 해요. 함께 발정념해서 구세력의 사악한 요소, 흑수 난귀를 해체해요.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승인해서는 안 돼요.”라고 했다. 수련생이 날 도와 안으로 찾고 법리상 교류하자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았고 수련생도 금방 봤을 때보다 정신이 들어 보인다고 했다. 수련생은 “우리와 함께 있어야 편안하니 집으로 돌아갑시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당일 십여 명 수련생이 날 보러 왔다. 수련생은 나와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면서 날 격려해줬고 법공부 팀을 우리 집으로 옮겼다. 이튿날 먼 곳에 사는 수련생도 날 보러 왔다. 내가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음식을 먹어야 몸에 힘이 난다고 발정념을 해서 구세력이 밥을 먹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수련생의 열정적인 도움으로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동시에 속인 친구와 친척들은 매일 강온 양면 정책을 번갈아 구사하고 비꼬면서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특히 가족은 아무 때나 와서 “법공부는 법공부 대로 하고 병은 병원에 가서 치료해야 해요……”라고 번갈아 가며 권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전화로 권해, 후에 아예 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사부님께서 관할해주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일이 없을 것이고 나타난 현상은 병이 아니에요. 당신들은 연공인을 잘 몰라요. 아무튼, 당신들의 말을 들을 수 없어요.”라고 했다. 그들은 속인의 이치로 수련생에게 뭐라고 하는 바람에 더는 수련생이 날 보러 오지도 못하게 됐다. 나는 바보처럼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느라 바빠 시간이 없는가’라고 생각했다. 막내아들은 침대 곁에 서서 울면서 “어머니, 이런 상황이면 저희도 생각해줘야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계모가 병이 있는 데도 병을 치료해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욕할 것 아니에요. 이후에 어떻게 살라고요? 병원에 가서 무슨 병인지만 검사받아요.”라고 했다. 아들은 계속 말했다. 나는 짜증이 나 화를 내며 “나가라.”라고 했다. 나는 ‘병’이라는 글자만 들어도 귀에 거슬렸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수련생 언니가 물만두를 가져왔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배추소 물만두인데 우리가 아침밥을 먹을까 봐 일찍이 빚어 가져왔다며 침대 앞으로 들고 와 먹으라고 했다. 당시 음식과 물을 삼키기 어렵고 숨도 쉬기 힘들어 먹을 수 없었다. 언니는 맛을 보며 먹어야 힘이 생긴다고 했다. 언니도 80이 넘었는데 물만두를 빚어, 내게 보내온 것을 보고 감동했지만 속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마비되어 표정이 없고 울 줄도 모르고 웃을 줄도 모르게 됐기 때문이다. 수련생 언니는 좀 앉았다가 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로, 수련인의 착한 마음,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고 수련생을 구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봤다. 정말로 뒤떨어지지 말라고 힘껏 날 잡아당겨 주는 수련생들의 마음이었다.
그날 수련생을 기다리는데 또 오지 않았다. 수련생을 생각하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자 저녁에 열이 나기 시작했고 아파 참을 수 없었고 숨이 차자 ‘빨리 못난 제자를 구해주십시오.’라고 사부님을 불렀다. 큰아들이 집에 있었는데 소리를 듣고 들어와 “어머니, 괜찮아요?”라고 하며 손을 이마에 대고 체온을 측정했다. 그리고 바로 “우리 어머니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요. 빨리들 오세요.”라고 전화했다. 아주 빨리 낮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왔고 다짜고짜 날 병원으로 보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이미 병원 응급실의 침대에 누워 손에 링거를 맞고 있었다. 침대 곁에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둘째 동서가 나와 제일 가깝게 있어서 “형님, 정신 들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 링거를 향해 ‘약물아, 내 혈관으로 들어오지 말아라.’라고 했다. 의사는 내 심장 소리를 듣더니 “이렇게 심각한데도 왜 병원에 안 왔어요, 오늘 10분만 늦게 왔으면 죽을 뻔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혀 병이 없으니까요.”라고 했다.
이튿날, 우리 오빠의 친구도 멀리서 날 보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여기는 병원이에요. 당신들이 여기 있으면 저도 속이 타요. 정말로 괜찮고 꼭 나아질 것이니 모두 마음 놓고 돌아가요.”라고 했다. 저녁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어폰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으며 ‘논어’를 외우고 사부님의 ‘홍음’을 외웠는데, 어떤 것이 생각나지 않으면 사부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외웠다. 누워서 외우다가 후에는 앉아서 외웠다.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다시 외웠다. 사람들이 다 잠들면 단 가부좌하고 결인했다. 외우다가 힘들고 괜찮게 외웠다고 생각하면 누워서 잠을 잤다.
후에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물속에 누워있는 것 같았고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아파서 참기 어려웠다. 정말로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아팠고 몸이 붓지 않은 곳이 없이 퉁퉁 부어 반듯이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고 밤이든 낮이든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누군가 나를 쫓아오기 때문이다. 저녁에 꿈을 꾸는데 누가 쫓아와 날 죽이려고 하는데 놀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부님을 부르자 그 물건들이 없어졌다. 또 한 번은 꿈에서 두 사람이 흰 천으로 내 목을 조르면서 무릎까지 꿇으라고했다. 나는 대법을 얻었고 사부님이 있어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눈을 감았다. 결과 다시 눈을 뜨자 다 없어졌다. 이렇게 두려우면 사부님을 불렀고, 괴롭고 고비를 넘길 수 없는 일이 있으면 사부님을 외쳤다. 사부님이 바로 내 곁의 위쪽에 있고(볼 수 있다), 삼장,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사부님의 아래에 앉아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7일간 수련생 여럿이 병문안 왔는데 내게 사부님의 ‘홍음’을 가져다줬으며 나의 정념을 가지해줬고 날 도와 안으로 찾았다. 수련생은 반드시 정념으로 다른 공간의 악을 제거하고 전반으로 부정하고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줬다. 나는 “명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수련생이 간 후 내가 정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누구에 대해서도 내려놓을 수 없는 정이 있음을 알았다. 특히 동생 넷에 대해서. 어릴 적부터 내 중심으로 살았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 또 우리 집을 중심으로 살았다. 수련하고 정을 없앨 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배치로 고민하고 슬퍼하며 다 내려놓았다. 남편에 대한 정을 생각했다. 이때 갑자기 사부님께서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2] 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남편과 25~6년 살았다. 그에 대한 원망의 원인도 정이 아닌가?
마음속에 숨겨져 있었던 남편에 대한 원망은 간혹 다른 사람과 말할 때도 아주 원망스러워하며 말했다. 이걸 없애지 않으면 되겠냐?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큰 손이 술 한 잔을 들고 내 가슴으로 가져오더니 나에게 마시라고 했다. 술잔 안으로 보니 수수쌀 물 같은 물이었다. 사부님께서 마시라고 한 것이면 마시고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면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술잔은 갑자기 내 입가로 왔고 나는 그대로 마셨으며 나도 깨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고 어찌 그냥 마셨냐고 돌이켜 생각했다. 좀 지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사람이 다 잠들었고 둘째 동서와 간병인도 달게 잠자고 있었다. 그녀들을 깨우기 미안해 혼자서 일어나려고 시도해봤더니 정말로 일어났다. 그리하여 침대를 지탱하며 화장실까지 걸어왔고 혼자서 변기에 앉을 수도 있었다. 아주 많이 배뇨했다. 아주 통쾌했다. 또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고 숨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몸과 가슴이 많이 편안해졌다! 아주 편안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렇게 화장실에 4번 오가면서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다 나았고 배가 작아지고 다리, 발, 손의 피부도 쭈글쭈글해졌다. 너무 신기했다! 저 같은 못난 제자를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깨달을 줄 모르고 안으로 찾을 줄 몰라 사부님께서 마음고생을 하시게 해 드렸습니다. 증오함은 정이고 미움도 정이고 연공인의 아주 좋지 않은 마음이고 없애야 할 집착이라는 것을 깨닫자 사부님께서는 바로 나의 마난을 제거해주셨다.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둘째 동서와 병실의 사람들은 일어나 내가 침대에 앉아 그들을 향해 웃는 것을 보자 기쁘고 의아해 “형님, 다 나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다 나았다고 했다.
병실의 간병인 셋은 내 부기가 가라앉은 것을 보러왔다. 저희 사부님께서 물 한 잔을 주셨다고 했더니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내게 무엇을 믿느냐고 물었다. 나는 진선인(眞 善 忍)의 파룬따파를 믿는다고 했다. 병실에 침대 3개가 있는데 3호 침대의 아주머니는 “어쩐지, 사람이 좋더라고요. 두 아들이 친자식이 아닌데도 얼마나 잘해주고 동생과 조카도 얼마나 잘해주는가 봐요. 정말 부러워요.”라고 했다. 1호 침대는 “당신 며느리가 당신을 대하는 것이 저의 친자식이 저에 대하는 것보다 더 잘해줘요. 정말 복이 터졌네요.”라고 했다.
아침에 간병인은 출근하듯이 왔는데 아주 의아해 첫 마디에 “다 나았어요?”라고 했다. 큰아들은 기뻐서 의사를 찾아갔다. 회진할 때가 되지 않았지만 먼저 날 보러 왔다. 의사도 아주 의아해 전신검사를 받아야 하고 혈액분석을 해야 하니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하지 말라고 했고 정상이면 퇴원해도 괜찮다고 했다. 결과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법공부하고 연공하자 회복이 아주 빨랐다. 일주일 후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받았는데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됐고 나와 함께 동행한 사람들도 마음을 놓고 출근했다. 친구와 친척, 이웃들도 모두 파룬따파가 좋고 신기하고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전법륜’을 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그에게 내 책을 줬다. 이전에 삼퇴를 권해도 듣지 않던 사람도 주동적으로 “탈퇴해줘요.”라고 했다.
건강이 회복된 후 수련생과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고 주동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했다. 가족도 내가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지지했다. 수련생들은 나에게 사부님께서 목숨을 구해주신 과정을 써내 법을 실증하라고 했다. 다시 한번 목숨을 구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고비를 넘기는 중 도움을 준 모든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가: ‘홍음-무존(無存)’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9/3580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