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청년제자
[밍후이왕] 나는 국어 교사다. 한번은 교실에서 구양수(歐陽脩)의 “걱정과 고생을 하면 나라가 흥하고, 안락하면 몸을 망칠 수 있으니, 이는 자연의 이치로다”란 구절을 강연할 때 마음속에 의혹이 생겼다. “걱정과 고생을 하면 나라가 흥하고”는 이해가 되는데 안락함을 즐기면 왜 “몸을 망친다”고 할까?
나는 90년대에 태어난 신세대다. 어려서부터 부모 슬하에서 응석을 받으며 자라서 고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안일에 대한 추구는 불변의 진리이고 자연의 이치로 생각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안일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줄곧 근본적으로 이 안일심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몇 년간 비교적 느슨했다.
한 번은 사부님의 법 “이 신체가 있어 그에게 고생을 겪게 한다”[1]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 원래 사람으로 된 것은 고생하러 온 것이구나!’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안일심을 버리라고 점화해 준 것임을 알았다. 이후에 ‘전법륜’ 제1강에서 ‘진정하게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다’를 외울 때, 나는 안일심에 대해 또 더욱 깊은 이해를 갖게 됐다. 원래 생명은 고층에서 왔는데 나쁘게 변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여기까지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신은 자비로워 다시 한 번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 사람에게 이 저층에서 고생하며 수련해 최후에는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나는 이미 이 쓰레기 더미에 떨어졌는데 아직도 이 쓰레기 더미에서 안일을 추구하고 즐거움을 도모하면서 쓰레기를 꼭 붙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으니 이건 신의 요구와는 갈수록 멀어지는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되돌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계속되는 윤회와 훼멸이다.”[1] 안일을 추구하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좋지 않게 변해 이 일보까지 떨어진 것이므로, 당신은 편안할 수 없다.”[1] 그러기에 속인에게는 ‘좋은 날은 사흘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실 신은 사람에게 고생을 좀 하게 한 것이다.
현대 번화한 세계를 한 번 다시 돌아보자. 어느 하나의 새로운 사물의 출현치고 사람에게 더욱 더 안일과 향락을 추구하게 하며 결국에는 소멸되게 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예를 들면 갈수록 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갈수록 더 편리한 스마트폰, 갈수록 더 현란한 의상 등이다. 더 돌아보면, “곳곳마다 모두 마이다.”[2]
최근 내가 사는 화장실 변기가 늘 막혀서 사람을 시켜 몇 번이나 수리했지만 얼마 못 가서 또 막히곤 했다. 이건 틀림없이 수도관에 뭐가 막혀서 그런 것이니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서 다시 막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갑자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이건 내 수련상 근본 집착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조금 생각해 보고 나는 알아맞혔다. ‘이 안일심이 바로 내 수련 중의 근본 문제구나.’ 내가 대법을 수련한 염원이 바로 영원한 안일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간윤회의 고생에서 벗어나 천상에 가면 영원히 고생하지 않고 영원히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상의 마음을 찾아내니 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속으로 나는 너를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화장실에 갔을 때 변기가 기적처럼통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 마음의 격동을 어디다 비기랴! 수련이란 원래 이렇게 기묘한 것임을 발견했다!
개인의 최근 깨달음으로서 옳지 않은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마음고생’
원문발표: 2018년 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4/3592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