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수련생의 집에 들어서는데 그녀가 자기 가족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허허, 뭐 하세요? 좀 듣기 좋지 않은 말인 것 같아요. 우리가 수련인이란 것을 잊은 건 아니죠?” 이렇게 말하면서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는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통해 나를 일깨워주시는 게 아닌가. 나도 남편을 그렇게 대했지 않았나.
사존의 가르침이 생각났다. “어떠한 모순이 나타나고, 어떠한 일이 나타났을 때,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었다. 모순이 발생한 두 사람이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외에, 제삼자마저도 자신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왜 당신에게 보게 했는가?”[1]
나는 1년 넘게 병업에 처해서 종일 집에 있었기에 외부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남편은 심성을 제고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늘 사소한 일로 그와 다퉜다. 나는 늘 ‘타인에게 상처주면 안 되지만 남편은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며 그야말로 남편에게는 앞뒤 생각해볼 것도 없이 행동했다. 온갖 심한 말도 거리낌 없이 내뱉으며 화풀이를 했다. 위아래도 없이 기어코 말로 그를 이겨야 직성이 풀렸는데, 남편이 할 말이 없어 어안이 벙벙해질 때까지 계속했다.
특히 최근에는 하는 일이 없게 되자 성격이 더 난폭해지고 남편을 더욱 함부로 대했다. 내가 밥을 못 해 남편이 하는데 나는 심하게 잔소리를 해댔다. (남편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거동이 느리고 예전에 밥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한 밥은 질지 않으면 되어서 입에 맞지 않아 쓴소리를 몇 마디 하기도 했고, 그러지 않으면 채소를 너무 오래 썬다, 소금을 너무 많이 쳤다, 간장을 너무 적게 넣었다 등등 잔소리를 했다.
사부님께서는 알려주셨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으로 찾는 것만이 수련이리라”[2]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우다 깨달았다. 이는 장기간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는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해선 안 되는지, 또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알고,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생각해 스스로를 법의 표준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신이 수련인임을 잊고 제멋대로였는데, 집착심이 전부 드러났다. 사심, 원망. ‘나’를 중심에 놓고 밖을 향해 보며 억지를 부리고 억울한 기분이 들면 조금도 감내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등이었다. 선량함, 참음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제거해야 할 마음 하나하나가 모두 장벽으로서, 거기에 가로놓여 당신이 수련하는 길을 막고 있다.”[3] 평소에는 개의치 않아 했는데 지금 자세히 생각해보니 남편은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그를 마음으로부터 아끼지 않고 돌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더러 나를 봐주게끔 했는데 그런 식으로 그를 힘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남편의 잘못을 찾고 있다니, 선한 마음이 어디로 간 건가? 자비심은 어디로 갔는가? 내가 닦아낸 참음은 또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평생 처음으로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남편에게 함부로 하던 습관을 반드시 고치고 수련인답게 할 거라고 했다. 가족을 선하게 대할 뿐 아니라 모든 중생을 선하게 대할 것이다. 자신의 일언일행이 모두 법에 따랐는지 생각해,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바로 잡고 사존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을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코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사: ‘홍음3-논쟁하지 말라’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정진요지-환경’
원문발표: 2017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8/3580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