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을 구출하려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에 일부 곤혹과 소감이 있어 교류하려 한다. 앞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수련생에게 귀띔과 건의를 주기 위해 경험이 있거나 비슷한 과정을 겪은 수련생들도 의견을 발표해 보완해주시기 바란다.
1. 맹목적 숭배
오래 전 나는 조마조마하게 우리 시에서 유명한 변호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파룬궁 안건이라고 하자 변호사는 위에서 받지 말라고 문서규정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당시의 속상함과 실망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환경이 개선됐고 파룬궁을 위해 변호하려는 변호사를 수시로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뻤다. 나는 무턱대고 따랐고 수련생이 소개해준 거면 거의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비록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적어도 희망이 보였고 게다가 수련생들이 함께 돈을 모았기에 돈도 큰 문제 같지 않았다.
첫 번째 변호사는 베이징에서 왔다. 아무래도 처음이라 마음이 설레었고 우리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인지 다들 좀 어리벙벙했다. 변호사는 아주 온화하고 교양이 있어 보였다. 우리와 얘기할 때 차근차근 조리 있게 얘기했고, 우리는 초등학생처럼 변호사의 수많은 설명과 의견을 들었다. 전혀 자신의 주견이 없었고 마치 장님처럼 이끌려 다니면서 맹목적으로 고마워하고 탄복만 했다. 물론 많은 법률 절차가 있기에 법률지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우리는 시키는 대로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는 우리에게 만약 나눠준 자료가 400부를 초과한다면 판결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당시 이 기준이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볼 생각을 못했고 더욱이 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신앙을 알리는 것은 원래부터 합법적인 것으로 진상자료를 얼마나 많이 나눠주든 모두 죄가 없다.) 변호사는 우리에게 감시카메라에 찍힌 사람이 본인이라는 것을 시인하지 않으면 그가 변호하기 쉽고 반드시 그 어떤 구두자백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약점을 이용해 서로 짜고 거짓 진술을 할 수 있기에 아주 번거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는 이미 구두자백을 했기에 절대 그녀와 만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는 머리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했다.(이 ‘내막’ 때문에 수련생을 구출할 때 한동안 ○○수련생을 제외했음)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법정에서 변호할 거냐고 묻자 그는 우선 이걸 갖고는 증거가 부족하고 수량이 모자라는 등을 얘기하고 마지막에 신앙에 죄가 없다는 것을 말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게 어찌 무죄변호인가? 왜 여전히 먼저 유죄에 관련된 증거를 얘기하는가?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그는 만약 처음부터 파룬궁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면 그를 법정에 있게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건 잠시적인 대책이고 법정에 설 수 있는 것만 해도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사부님께서는 전면 부정하라고 하셨지만 이런 속인의 계략대로 일을 처리하고 이것저것 덮어 감추는 것이 정말 수련생에게 작용을 일으킬 지 의심이 들었다.
우리가 그에게 당사자 가족은 속인이고 대법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자 그는 우선 급히 진상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그가 가족에게 어떻게 하면 변호에 더 잘 협조할 수 있을지 가르쳐주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에 동의했다. 이후에 이 의견을 따른 것을 몹시 후회했다. 진상을 알리지 않았기에 이 속인가족은 기어이 ‘유죄 변호’를 하는 변호사를 선임해 이 ‘무죄변호’ 변호사를 해고했다.
사실 어디에 문제가 있으면 어디에서 진상을 알려야 했지만 우리는 이 인간 법률전문가 앞에서 사부님의 가르침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2. 정의와 불의 변호사, 무죄와 유죄변호를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
이후에 한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아주 영리하고 개성이 있었다. 그는 사전에 변론 문장을 준비하지 않고 법정에서 현장 발휘를 했고 법률적 허점을 틈타 검찰관을 공격하는데 능란했다. 하지만 증거 실물을 갖고 흠을 잡았기에 이 증거 ‘약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비록 수련에 죄가 없다고 얘기하고 법정에서 효과가 괜찮았으며 피고인과 변호사도 할 말을 다 했지만 여전히 아주 중하게 판결을 받았고 조금도 감형되지 않았다.(예전부터 파룬궁에 대한 재판 결과는 변호에 달린 것이 아니라 610이 법관 한 무리를 협박하고 기만해 내정한 것임)
계속 항소하겠다고 하자 그는 상소장에 파룬궁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걸 구실로 삼아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전제 하에 법률만 말하겠다고 했다. 그의 문서는 아주 전문적이고 법률적이어서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가 파룬궁 수련이 합법적이라는 변호를 하지 않는데 대해 이의를 가졌다. 그러자 그는 변호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성질 변호이고 하나는 증거 변호로서 파룬궁의 무죄를 얘기하는 변호는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물증을 얘기하지 않는 변호사는 모두 사기꾼으로서 그렇게 하면 효과가 없기에 그는 결과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변호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고 말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또한 그를 수련자로 여기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을 선임했으면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그가 어디까지나 속인이기에 정말 강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전문가여서 말한 말을 반박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진상 알리는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밖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에 생각해보니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속으로 이게 어떻게 무죄변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 누군가 물었다. “그럼 이제 법정에서 진상을 알리거나 사람을 구하지 않습니까?” 나 역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상소장을 쓰거나 법정에서 변호할 때 확실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면 어찌 다른 공간의 사악을 해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증거는 대체 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가, 아니면 죄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가? 가끔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당신 말 대로면 증거가 있든, 부족하든,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모두 죄가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게 아닌가? 이 변호의 기점은 이미 진상자료를 나눠주는 것이 죄가 있다는데 입각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고방식이라면 무죄변호도 유죄변호로 변한 것이 아닌가? 법정 안팎을 크게 놀라게 했든, 어리석은 사람도 일깨워주는 저우샹양 변호사의 정의로운 무죄 변호도 모두 소용없단 말인가?’
때마침 이 과정에 다른 수련생 가족도 이 변호사를 해고했다. 원인은 속인 변호사를 청해 여전히 유죄변호를 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변호사를 선임할 때 우리의 인식이 똑똑하지 못하고 법리가 명확하지 못하며 변호사와의 심도 있는 사전 교류가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는 ‘정의’와 ‘무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우리는 오직 당사자 개인을 위해 소송하는 것이 아니라 파룬궁을 위해,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진리를 위해 변호하고 있다. 소송에서 이기려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속인도 정의로운 항의, 선의 힘, 바르지 못한 것은 바른 것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데 왜 우리 수련자가 오히려 정의로운 변호가 악을 건드릴까 봐 의심하는가? 조심조심, 빙빙 돌려가며 칼끝을 피해 가려운 곳을 가볍게 긁고, 틈이 있으면 파고 들어가는 것이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공정하게 법률을 집행하는’ 것인가? 공안·검찰·법원이 원래부터 610(파룬궁박해 전문기구)의 말을 듣고, 모든 기관이 탄압 도구로 이용당할 때 변호사가 그들 허점을 찾아낸다 하여 그들이 사람을 풀어주고 판결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정말 수련생을 구출해 낸 것은 사부님의 보호 하에 당사자와 수련생들이 정체로 협력해 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함으로서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 아닌가? 법정에서 말한 이치가 정당하고 엄숙한 말 한 마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한마디가 악인 배후의 악의 요소를 얼마나 많이 해체했는가? 어찌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만약 이러하다면 어찌 그들을 ‘정의로운 변호사’라 부를 수 있는가?
변호사 비용은 한 사람이 몇 만 위안, 한 개 안건은 10~20만 위안, 한 번 안 되면 또 한 번 하는데 그럼 또 십 몇만 위안을 추가해야 하고, 사람이 많을 때에는 몇 십만 위안이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이 돈을 쓰는 게 가치가 있는가? 아깝지 않은가?
3. 어떻게 주역을 잘 맡을지에 대해 교류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 번, 수련생의 안건을 맡은 법관, 검찰관의 성명을 알아내 진상을 알리고 싶었지만 수련생 가족은 감히 변호사에게 묻지 못했다. 변호사가 성질을 부리고 문의를 좀 하면 귀찮아하며 게다가 누군가 변호사를 지휘하지 말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만나는 과정에서 존경 때문에, 부끄럽거나 겸손한 탓에 우리는 확실히 대부분 명령에 따랐고 자신의 생각과 요구를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또 어느 한 번, 항소할 때 우리가 고소장 한 부를 더 제출하려 하자 변호사는 안 된다며 만약 정말 그렇게 하고 싶으면 변호사 수임료를 더 높여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지켰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과거 선임할 변호사가 없을 때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 자신을 위해 변호해야 했고, 당사자와 수련생들이 직접 안팎에서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제거하며 박해를 저지해야 했다. 이러면 누군가를 의지할 수 없어 억지로 법률지식을 알아보고 직접 방법을 생각했기에 더욱 긴밀하게 정체를 형성하고, 더 잘 정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호사를 선임한 후 모든 것을 변호인에게 맡겼고 우리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무튼 변호사가 대신 해주니까요.” 구치소에 자주 다녀오지 않아도 되고 정념으로 악을 대면할 기회도 많이 비켜갈 수 있었으며, 직접 법관을 대면하거나 국내안전보위대대, 검찰원에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됐다. 해야 할 일을 변호사가 나서서 모두 해주기에 그들이 전선(前線)에서 정의를 대표하면 되고 우리는 뒤로 물러서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됐다. 그럼 결국 집에 가 ‘발정념’을 하면서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없고 시간이 길어지면 이 발정념도 견지하는지, 그 효과가 어떠한지 알 수가 없다. 발정념을 해줘야 할 사람도 계속 늘어나 앞의 사람들은 아예 잊어버리기도 한다. 매번 변호사가 2~3개월에 한 번씩 올 때에야 극소수 사람에게 통지해 서로 만나 소식이나 주고받는다. 변호사가 가면 또 각자 자기 할 일을 한다. 악이 한 안건을 1년 넘게 끄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며 우리도 이렇게 수동적으로 1년을 기다린다. 가끔 대체 이게 구출하는 게 맞는지 우리도 의심이 든다.
인터넷에서 법률수단을 이용해 반(反) 박해를 하고 수련생을 구출한 문장을 순서대로 보면서 우리도 생각해보았다. 우리에게 이미 전문적인 문서 견본과 법률 경험이 있기에 만약 다들 중시하고 숙지한다면 우리가 완전히 자신, 친척, 수련생을 위해 변호할 수 있지 않겠는가? 특히 일부 변호사는 직접 사악을 고소한 안건은 맡으려 하지 않기에 우리가 직접 감금된 수련생을 도와 합법적인 권익을 수호하고 반박해를 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현지 변호사를 선임해 당사자와의 소통과 소식을 전달하는 단일 항목만 책임지게 하고 변호하는 역할은 수련생, 가족이나 본인이 담당하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이러면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구출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원문발표: 2018년 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3588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