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현지 자료점에서 대형 사무용 프린터를 도입했다. 하지만 프린터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할 수 있는 수련자가 아주 적어서 누군가 나보고 대형 프린터 수리를 배우라고 건의했다. 이렇게 나도 ‘기술 수련자’가 됐다.
하지만 최근 한 동안 일부 프린터에 끊임없이 문제가 나타났고 그것도 단계별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한 동안은 ‘프린터 헤드가 막히는’ 현상이 나타나고, 또 한 동안은 ‘용지 걸림’ 현상이 많이 나타났으며 게다가 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졌다. 최근 프린터 한 대를 수리했는데 수리는 다 됐지만 컴퓨터에 연결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는 내 주의를 일으켰다. 기술 수련자로서 기술 각도에서만 문제를 볼 것이 아니라 마땅히 법으로 프린터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가늠해야 했다.
1. 프린터에 문제가 나타난 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다
한 가지 문제를 보았는데 일부 기술 수련자(나 자신도 포함)들은 프린터에 문제가 나타났을 때 다만 기술 방면에서 원인을 찾고 수련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지 않는다. 결국 기계 수리는 정말 기계 수리로 변했다. 효과는 속인이 병 치료하는 것처럼 다만 표면 문제만 해결했다. 이러면 조금 뒤에 또 문제가 발생한다. 어떻게 이 현상을 봐야 하는가? 어느 날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내 머리에 들어왔다. “그러나 검은 기는 병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이 아니며, 더욱 깊은 한 공간 중에 그런 영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내보낸 이 장(場)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배출하거나 내보내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배출해 보라! 잠시 후면 그것이 또 생기는데, 어떤 것은 힘이 커서, 배출되자마자 당겨져 되돌아오며, 스스로 거둬들일 수 있어 아무리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다.”[1]
사부님의 이 부분 설법에서 나는 우리 프린터는 대법제자 법기(法器)로서 속인의 기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프린터에 문제가 생긴 것은 수련 문제 혹은 사악의 교란으로서 기술 문제는 다만 표면현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원인은 사악이 우리 수련에 존재하는 문제를 틈 타 조성된 것이다. 이때 기술 수련자와 당사자 수련자는 마땅히 우선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아야 하며 그 후 발정념하여 다른 공간의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
정법 노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왜 아직도 프린터에 그렇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가? 프린터를 수리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상황을 발견했다. 만약 수련자 본인의 수련상태가 아주 좋다면 그의 프린터에 문제가 적게 나타나고 심지어 기술적으로 ‘잘못 조작’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프린터에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것은 수련에 문제가 있다고 관련 수련자를 일깨워주는 것일 수 있다. 정말 마땅히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우리의 일하는 마음, 혹은 사람 마음들이 수련자가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을 가로막고 곳곳에 자료점을 꽃피우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닌가?
기술 수련자로서 만약 우리가 장기간 ‘병 치료’하는 인식으로 기계를 수리한다면 사악도 틈을 탈 것이다. 그럼 기계에 끝없이 문제가 나타날 것인데 이건 우리가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대량의 시간을 낭비해 기계를 수리하는데 이건 자신을 그르치고 수련자에게도 영향 준다. 사람의 인식이 기술 수련자와 다른 수련자의 수련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기술 수련자로서 우리는 마땅히 돌이켜 생각해야 하고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해야 한다.
2. 기술은 하나의 ‘성냥개비’에 불과하다
우리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는 이치를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많은 문제에서 이 점을 소홀히 한다. 자신이 장악한 기술을 중시하거나 혹은 완전히 기술능력에 의지하는데 이는 자신을 실증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배운 기술은 모두 사부님의 가지 하에 배워낸 것인데 다시 말해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기술 수련자들이 이 점을 느낄 것이다. 만약 단순히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어려움이 클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악도 소란을 피우고 교란할 것이다.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를 뽑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이야기에서 나는 우리가 기계를 수리할 때 진정으로 기계 문제를 철저히 해결해주신 분은 사부님이시지 우리의 기술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계 문제에서 기술 수련자와 당사자 수련자가 모두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으며 법에서 제고해 올라온다면 사부님께서는 기계 문제를 조성한 다른 공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다. 동시에 기술 수련자에게 표면적인 해결법을 점화해주실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기술 수련자가 갑자기 기계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깨닫고 쉽게 기술수단으로 기계를 수리하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 기술은 이를 뽑는 이야기의 ‘성냥개비’ 역할만 한다.
너무 초범적이면 안 되기에 우리가 배우는 기술도 속인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 여기서 기술을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럼 또 다른 극단으로 가게 되는데 우리는 기술을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잘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점화해주셨지만 관련된 기술도 모른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법에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높고 완벽한 기술력도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대법의 가르침과 우리 자신의 기술제고가 있어야만 ‘마음껏’ 속인의 기술을 활용해 기계 문제를 해결하고 비로소 조사정법과 중생구도를 해낼 수 있다.
3. 기계 수리는 기술 수련자가 사람을 구하는 전부가 아니다
나는 또 한 가지 현상을 발견했는데 일부 기술 수련자는 기계 수리로만 진상 알리기와 중생 구도를 대체하고 있다. 게다가 늘 수련자가 기술 수련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 “기술 수련자가 프린터를 잘 수리해주면 더욱 좋은 진상자료를 갖고 사람을 구할 수 있기에 당신 역시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법 노정이 오늘까지 이르렀을 때 기계 수리는 기술 수련자의 사람 구하는 부가적인 방식이다. 이걸로는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대체할 수 없고 ‘기술’을 부각해서도 안 된다. 기술은 기술수련자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부분일 뿐 전부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중국대륙의 대법제자들은 사람마다 모두 나와서 말해야 하며, 곳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닿도록 해야 한다.”[2] 기술에 종사하는 수련자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해외 상황과 다른데 해외에서 항목에 종사하는 수련자들은 거의 전직으로 하기에 대면해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다. 우리 대륙의 일부 기술 수련자들은 진상을 알릴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 여기에 제한돼 있고 인위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각도를 바꿔 생각해보자. 우리 이런 기술 전담 수련생의 존재는 법기에 문제가 나타나게 된 또 다른 원인이 아닌가? 의사가 있으면 환자가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러면 형식을 바꿔 기계에 문제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4. 기술과 수련의 관계를 바로잡다
한동안 나는 수련자에게 기계를 수리해 줄 때 완전히 기술의 길을 걸었다. 수련자의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가서 수리해주었고, 왜 내가 이러한 문제에 부딪혔는지 안으로 찾아보지 않았다. 수련자와 교류할 때도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 기계를 사용해야 하고, 어느 부분에 주의해야 하는가만 알려주었다. 완전히 기술, 이 길을 걸었다. 기술은 현대과학의 일부분으로서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우리에게 과학이 일종의 종교라고 알려주셨다. “과학은 사람을 위험한 미로로 이끈다”[3]
우리는 대법 수련자이기에 수련과 기술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기술조건을 이용해야 하고,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심성, 층차를 제고해야 하며, 더욱 넓게 중생을 구도하고, 법리가 똑똑해야 한다. 동시에 수련자에게 기술에 의지하지 말고 안으로 자신을 닦으라고 알려줘야 한다. 만약 기술 수련자가 빨리 와서 기계를 수리해주기만을 바라고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다면 이건 밖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근본적으로 기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왜 어떤 기계는 겉보기에 다 수리됐지만 며칠 뒤 또 문제가 나타나는가?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자신을 찾지 않고 법에서 제고해 올라오지 못했기에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기계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계 수리가 속인의 병 치료와 같은데 어찌 철저히 고쳐질 수 있겠는가?
기술 수련자로서 더 이상 표면기술로 기술문제를 대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수련의 길을 기계 수리로만 정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수련제고와 중생구도를 그 속에 관통해야 하고 다른 수련자처럼 세 가지 일을 다 잘 하고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이상은 일부 개인 인식으로서 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은 수련자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3-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3]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 4-하늘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원문발표: 2017년 12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8/3576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