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63세다. 부모님 세대는 공산당의 폭력과 거짓말에 세뇌당해 크고 작은 각종 풍파를 겪었다. 어머니는 사악한 당에 반평생 목숨 바치며 무신론에 깊이 중독돼 업을 많이 빚은 결과, 위궤양을 10여 년 앓으면서 가난한 집이 더 힘들어졌다. 다행히 나는 결혼 후 화목한 가정에 두 아이도 있어 행복을 누렸다.
‘하늘에는 예측 불허한 풍운이 있고, 사람에게는 언제 화와 복지 올지 알 수 없다.’ 라는 속담이 있다.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큰아들이 8세 때 장난치다 낮은 담장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입원한 지 3일이 지나면서 말을 못 하고 입과 눈이 비뚤어져 반신불수가 됐다. 2년간 입원치료 후 4년은 집에서 치료하며 중의, 양의가 모두 왔지만 아들의 증세는 갈수록 심해져 반신불수가 전신불구로 되고 나중에는 간질까지 왔다. 우리 집은 이미 찢어질 듯 가난했다. 장기간 시달리면서 우리 부부도 각종 병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시간만 끌었다. 심신의 압박감으로 우리 부부는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렸고 목숨을 끊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생각까지 했었다.
대법을 수련하니 매우 유익하다
1997년 봄, 대법이 우리 마을에까지 전해졌고 우리 집에도 다시금 행복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먼저 법을 얻으시고 우리도 법을 얻게끔 이끌어주셨다. 이로부터 우리 가족들은 수련인이 되어 스스로를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요구했고, 이익 앞에서 타인과 다투지 않고 모순이 생기면 자신의 심성을 수련했다.
대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왜 사람에게 각종 불행과 재난이 있는지, 어떻게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지, 사람이 사는 의의가 무엇인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마지막에 돌아갈 곳은 어디인지 등등 심오한 이치를 알게 됐다. 얼마 안 가 어머니의 병이 나았고 아들도 병석에서 일어나 걷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우리 부부도 병을 치료하지 않고 완쾌됐다. 우리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소식은 삽시간에 주변에 퍼져 고향 사람 중에서도 법을 얻고 수련하게 된 사람이 많이 생겼다. 우리 친인척 중에 36명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우리 집이 수차례 박해당한 상황에서도 대법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 대법을 지지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으신다. 게다가, 제자가 생생세세 빚진 업을 감당해주시고 이렇게 좋은 대법을 전해주셨다. 온전히 다른 사람이 잘 되게끔 하시는 것이다. 도덕이 무너진 지금 중국에서 이런 사람은 없다.
우리는 대법을 배우고 많은 것을 명백히 알았다. 타인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큰아들은 동네에 있는 벽돌공장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데 불평 없이 열심히 하며 이익 앞에서 다투지 않는다. 나도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더욱 더 좋은 사람이 되자고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물질이익 면에서 어떠한 것도 탐내지 않았다. 나는 농업거래시장에서 일하면서 대형 도매상 세 곳에서 8년을 일했지만 착오를 일으킨 적이 없다. 한 번은 두 곳에서 일시에 물건을 들여왔는데 당시 내가 바빠서 들여다볼 틈이 없어 사장님께 우선 다른 사람을 채용해 주십사 부탁드렸다. 이후에 사장은 닭고기, 다시다, MSG 수백 위안(한화 140,000원)어치를 분실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우리 집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이제까지 물건을 분실한 적이 없었다.” 라고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하면 주인에게 돌려준다. 한 번은 밤에 비가 내렸다. 우리는 짐을 내리고 차를 후진하다가 호박 두 꾸러미를 발견했는데 수백 위안(한화 140,000원) 상당이었다. 이틀 후 내가 주인을 찾아 물건을 갖다 주자 주인은 감동받아서 담배와 술을 사주고 식사에 초대하려 했다. 나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시고 TV에 나오는 거짓말을 믿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수련의 길에 시험이 있다
수련의 길에 많은 사람마음과 관념의 교란으로 늘 마찰이 생긴다. 아들은 결혼 전에 새집을 지으려고 준비했다. 집터 좌우에는 각각 두개의 찜통 난로가 있고 한창 불을 때고 있었다. 뒤에는 웅덩이와 묘지가 있었다. 낡은 관념에 따르면 좋지 않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후에 대법으로 가늠하니 좋고 나쁨은 사람마음의 문제며 마음만 바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목수에게 의뢰해 경계를 찾아 먹줄을 튕겼는데, 갓 마무리를 하자 오른쪽 부지 주민이 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줄을 잡아당겨놓고 갔다. 그러자 작업자들은 가만있지 않으려 했다. “너무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까! 그 여자와 싸워봅시다! 그 집 땅에 집짓는 것도 아닌데요.” 라며 내 편에 섰다. 나는 그들을 말리며 “저는 수련인이라 그 주민처럼 하면 안 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집에 찾아가 평온한 말투로 그들 부부와 상의했다. 그 남편은 사리에 밝았는지 듣더니 두말없이 작업자들에게 사과하고 선을 이어놓았다. 이 일을 통해 주변 사람들은 대법 수련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목격했다.
아들이 결혼한 뒤 우리 동네의 길이 좁아서 인구와 차량 수를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아스팔트를 깔아 도로를 확장할 계획을 내놨다. 우리 앞집은 도로를 점거하고 지은 집이었는데, 로드롤러가 도착하자 이웃들은 삽을 들고 막아서서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작업자가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나중에 책임자가 나를 찾아와 상의했다. “이쪽 커브길 절반만 밀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나는 “그러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쉽게 대답해줄 줄은 생각도 못했고, 여러 사람은 “대법을 배운 사람은 다르다.”고 했다.
나는 후에 성 정부 소재지 고급아파트 단지에 채용됐는데, 관리소 책임자는 “보안, 청소 중에 골라보세요. 출근시간과 급여가 다르거든요.” 라고 말했다. 법공부를 하기 위해 나는 청소를 선택했다. 관리소 책임자와 사장은 내 업무에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2개월가량 후 관리소 요리사가 사직해 내가 취사를 맡게 됐는데, 내가 조리한 음식은 맛있고 식대 장부정리도 확실했다. 나는 혼자서 두 사람의 몫을 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월말 급여일에 회계는 내게 급여를 더 주는 것을 잊었다며 웃었다. 나는 괜찮다고 웃어넘겼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책임자는 내가 청소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보안을 하라고 했다. 출근시간은 12시, 취사도 겸했다. 급여 지급 때 책임자는 신고서에 보안 쪽에 내 이름을 올리는 것을 잊어버렸다며 다음 달에 추가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이 단지에서 5년을 일했는데, 5년 동안 보안 책임자는 두 번 바뀌었고 담당자는 늘 바뀌었다. 나는 계속 다녔는데, 책임자는 내게 보안 책임을 맡기려 했다. 나는 책임자를 거절하면서 평소처럼 책임지고 잘 하겠다고 했다. 상사, 사장, 동료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나는 그들과 사이가 아주 좋고 그들 모두 진상을 확실히 안다. 어떤 보안 직원은 나와 함께 연공도 한다.
보안을 맡을 때 단지를 순찰하다 늘 지폐나 물건을 줍게 되는데 간혹 고가의 물품도 있다. 나는 방법을 모색해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인테리어 하는 청년이 잘못하다 수천 위안(한화 일백만원)짜리 핸드폰을 화단 옆에서 잃어버렸는데, 찾을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핸드폰을 주운 나는 주인을 기다리다 나중에 통화가 돼서 주인에게 돌려줬다. 또 한 번은 야간 당번을 서다가 헬스기구 옆에서 노트북 가방을 발견했는데 안에 노트북과 핸드폰이 있어서 사무실에 갖다 놨다. 이튿날 주인이 찾으러 왔는데, 그는 친구와 술을 많이 마셔서 친구가 그를 문 앞까지 데려다주러 왔다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이런 사례는 아주 많다. 상대방이 감사를 표하면 나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합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기억하세요.”라고 말한다.
이익 앞에서는 시험을 잘 넘겼는데, 색욕 면에서는 시험이 더욱 혹독했다. 아파트 단지에 여자 청소부가 왔는데, 책임자의 친척이었고 그녀는 관리소 직원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다고 했다. 며칠 뒤 단수에 정전이 돼서 식당에서 식사할 수밖에 없었는데, 식사할 때 그녀가 달걀 하나를 내 접시에 놓으며 자신은 달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하고 답답했지만 그것을 다시 그녀의 접시에 놓는 것도 멋쩍었다. 이튿날 출근하여 지하실에 가서 차고를 점검했는데, 그녀는 CCTV를 피해 따라오더니 나를 부르며 “제가 전생에 그쪽과 정분이 있었나, 첫눈에 반해버렸어요.” 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무슨 뜻으로 그러는지 알고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대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런 더러운 일을 말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경제면에서나 물질적으로 또 말과 행위로 나를 유혹하고 압력을 가했다. 내가 배척하고 피하고 권고도 했지만 그녀는 자제하지 않고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나는 대법을 견정히 믿고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내를 불러왔는데, 그녀는 염치가 없고 뻔뻔스럽게 내 아내가 자기보다 못생겼다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일할 마음도 없고 식사도 못 하면서 목숨을 내걸고 강요했다. 나는 결국에는 일자리를 포기할지언정 잘못된 길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해 사직하고 집에 돌아왔다. 나는 내가 어디서 생각이 틀렸는지 생각해봤다. 아,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내 며느리보다도 더 예쁘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바로 이 바르지 않은 생각이 이런 시련을 불러왔던 것이다. 수련은 정말로 매우 엄숙하다.
대법에 따라 의사의 예언을 타파하다
2015년 이전에 아내는 두 차례 납치되고 수차례 가택수색과 소란을 당해 대법 서적, 현금, 컴퓨터, 법학습 관련 용품 등을 강탈당했다. 어떤 때는 대낮에, 어떤 때는 심야에 일이 발생했다. 80여 세의 부모님과 어린 손자는 경찰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밭에 숨는 등 온 가족은 늘 그렇게 흩어졌다. 2015년 5월 우리는 우리가 10여 년간 박해받은 내용을 문서로 작성해 장쩌민을 형사고소 했다.
그러나 사악한 중국공산당은 파룬궁 박해와 관련해서 줄곧 법률에 의거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낸 고소장은 베이징에서 현지 정치법률위원회와 공안국으로 반송됐다. 아내는 집에서 가을걷이를 하고 밀을 심었는데, 일이 끝나자마자 현의 ‘610’과 향 파출소 경찰 20여 명이 경찰차 3대를 몰고 한밤중에 집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총과 수갑을 들고는 큰소리로 “이것이 무엇인지 보시오.” 라고 협박했다. 아내가 진상을 알려도 그들은 듣지 않고 8년형을 판결 받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내는 이렇게 또 납치되어 시 구치소에 갇힌 채 2개월간 소식이 없었다. 80여 세 노모는 놀라서 다음날 돌아가셨다.
2개월 뒤 구치소에서 전화가 왔다. 그들은 아내가 급성 뇌경색으로 입원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해보니 원래 건강했던 아내가 몸 아래위에 호스가 꽂힌 채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아내는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혼수상태였다. 구치소 사람이 지키고 시시각각 감시하고 있었다. 사람이 그 모양인데도 현 ‘610’은 석방하지 않았고 또 보름이 지났다. 우리는 사부님의 가지 하에 정념으로 병원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법공부, 연공을 견지하고 안으로 찾고 사람마음과 집착을 내려놓자 기적이 나타났다. 한 달 후 아내는 머리가 맑아지고 법을 들을 수 있었고 연공을 했다. 2개월 후 부축하면 걸을 수 있었고 책을 보면서 법공부를 하고 정공 1시간을 할 수 있었고 머리는 완전히 맑아졌다. 예전에 의사가 아내는 이번 생에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대법에 대한 믿음으로 병원치료로도 도달할 수 없는 효과에 도달했다.
사부님의 은덕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17년 1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4/3563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