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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小道)를 버리고 대법을 수련하여 정법 중에서 승화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노제자이다. 법을 얻은 지 21년이 되었으며 사부님의 넓으신 은혜에 감동받았고 수련의 길에서 평온하게 걸어 나가고 있다. 아래에 나의 약간의 수련체험을 사부님께 회보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여 함께 정진하려 한다.

1. 소도(小道)를 버리고 대법을 수련하다

나는 어려서 농촌에서 자랐으며 6,70년대의 아껴먹고 아껴 입던 생활을 겪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 집으로 오면 점심이든 저녁이든 모두 산에 가서 돼지 먹이나 끼니로 할 풀을 캐야 했다. 산에 도착하면 나는 장시간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자신에게 말했다. ‘나의 진정한 집은 저기야!’ 그래서 늘 빈 바구니로 집에 돌아왔다.

90년대 초에 바로 기공바람이 불 때 나는 기공의 행렬에 들어섰다. 나는 매일 가부좌를 했고 앉아 있을수록 미묘했으며 매번 가부좌를 하기만 하면 나의 정수리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내가 날아 나와서 내 옆에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늘 나의 남편에게 “가부좌는 아주 미묘해요, 정수리에서 하나의 진정한 내가 나와서 하늘로 날아갈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원이 아주 강렬했다. 그 당시 나의 아이는 4살이 갓 지났는데 나는 남편에게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먹을 것, 입을 것, 치장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오로지 기공만 즐겨 했는데 나는 기공이 다만 신체를 단련하는 것만이 아니고 더 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으니 똑똑히 알아보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남편은 사리가 밝은 사람이라 동의했다. 나는 사직하고 남편과 아이를 떠나 혼자 밖에서 떠돌았다.

2년간의 탐색을 통해 나는 공으로 운반하고, 기공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요시, 숙명통 등 공능이 모두 있었지만 이런 것들은 내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1996년 봄에 집으로 돌아왔다. 우연히 사부님의 지난(濟南)설법 CD를 얻게 되어 가져와서 보면서 반해버렸다. 사부님의 말씀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남편은 퇴근하고 와서 “위층 언니 테이프인데 우리 집 기계를 빌려서 보았는데 내가 갔던 김에 가져온 거예요” 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 파룬궁을 배웁시다.”라고 말했고 남편은 박수를 치면서 “내 뜻하고 맞으니 잘 됐어요!”라고 말했다.

우리 둘은 ‘전법륜’ 한권을 서로 앞 다투어 보았기에 불편해서 날이 아직 밝기도 전에 나는 위층 언니네 집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고 “‘전법륜’외에 다른 책이 있나요?” 라고 물었다. 언니는 “‘전법륜2’도 있어.” 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전법륜2’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펼친 첫 페이지가 ‘진수(真修)’였다. 사부님께서는 “진수(眞修)제자여, 내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은 수불수도(修佛修道)하는 법(法)이건만, 당신들은 속인 중의 이익이 손실됨으로 인해 오히려 나에게 괴롭다고 하소연할 뿐, 자신이 속인 중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함에 대해서는 괴로워하지 않는데, 이것이 수련인가?”[1]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한줄기 강렬한 난류를 느꼈고 눈물은 줄 끊어진 진주처럼 하염없이 흘러 내렸으며 속으로 묵묵히 외쳤다. “사부님, 저는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는 꼭 잘 수련하여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법을 얻고 수련을 시작했다. 파룬따파를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끊임없이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됨에 따라 나의 몸 상태는 아주 빨리 좋아졌고 심장병, 산후병, 요통 등 모든 병은 치료받지도 않았는데 좋아졌다. 가정과 주변의 환경도 갈수록 좋아졌다. 법을 얻은 지 반년이 되었을 때 사부님께서 나의 심장을 정화시켜 주셨다. 그 당시 낮이나 밤이나 집에 오기만 하면 두 콧구멍에서는 피가 났고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몸을 정화시켜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번 나는 세숫대야로 받았는데 흘린 피의 양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일을 하고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자거나 밖에 나갈 때는 피가 나지 않았다. 나는 얼굴에 혈색이 돌고 몸이 가벼워졌다. 거의 보름동안 지속되었고 심장이 완전히 좋아졌으며 정말 편안해졌다.

어느 때는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실 때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 한번은 내가 10일 학습반에 참가한 첫날 저녁, 나는 법공부를 했는데 나의 두 손이 점점 검게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손바닥, 손가락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모두 검게 변해서 정말 신기했으며 씻었지만 씻어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런 상태는 10일 동안 지속되다가 지나갔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의 몸에서 업력을 밖으로 밀어내 주셨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기공 열풍이 부는 그 몇 년 동안 나는 손으로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일부 근기(根基)가 좋은 사람은 자신의 근기로 다른 사람의 업과 바꾼다.” “시간이 길어져서 업력으로 전환되어 오는 것이 많으며, 당신은 남에게 德(더)를 주고 업력으로 바꾸는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지 않는가. 당신이 가지려는 것이 병이라고만 보지 말라. 업 역시 德(더)로써 교환해야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대법의 신기함과 초범함은 많고도 많지만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대법을 전해주시고 몸을 정화시켜 주셨으며 수련을 가르쳐주시고 반본귀진(返本歸真)으로 이끌어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

2. 심성이 대법 중에서 승화

1999년 7월 20일부터 사악한 공산당은 미친 듯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했다. 나는 많은 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파룬궁의 공정함을 밝히기 위해 두 번이나 톈안먼(天安門)에 갔다가 모두 불법적으로 송환되고 감금되었다. 청원하는 길이 막히자 나는 밖에 나가서 공개적으로 연공을 했다.

2000년 5월의 어느 날 아침, 내가 공원에서 연공했다는 이유로 현지 경찰에게 납치되어 4.5일 감금당한 후에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당시 내가 협조하지 않았기에 그들 몇 명은 큰길에서 나를 잡아끌어 당겼는데 바로 오후 출근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 있었다. 나의 신발이 떨어지고 머리핀도 떨어졌다. 그 때 나는 박해를 폭로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큰 소리로 둘러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입니다. 저는 병이 없고 정신병은 더더욱 없습니다. 저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병원 3층 정신병동에 끌려갔고 손발이 각각 침대의 네 모퉁이에 묶여졌다. 배와 어깨가 포승줄로 꽁꽁 묶여져 있어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그 때 나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 곳곳마다 마(魔)로다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 세상 고생 겪을 대로 겪나니 세간 벗어나면 부처로다.”[3] 나는 옆의 의사에게 멈추지 않고 말했다. “당신들은 나쁜 사람을 도와 나쁜 일을 하지 마세요. 저는 병이 없고 정신병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러다 한바탕 얻어맞았다. 다음 날 점심에 사부님의 가지 하에, 수련생과 남편의 구원으로 나는 조건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나의 회사와 남편의 가족, 시아버지, 시어머니, 큰형과 여동생이 함께 협의한 후에 큰 아주버님이 정신병원에 가서 서명하고서야 나를 풀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마음은 단번에 긴장되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악인과 같은 편에 서서 가족을 박해하다니!’ 나는 지난 일이 생각났다. 나와 남편은 자유연애를 했는데 남편의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았기에 결혼할 때 아무것도 없었고 예식도 올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늘 이 문제로 다퉜다. 대법을 공부한 후에 나는 점차 진정한 수련인이 되려면 반드시 진∙선∙인(眞∙善∙忍)의 우주 특성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동적으로 노인을 공경했고 부모님께 옷을 사드리고 손수 니트를 뜨개질 해 드리면서 사이가 그래도 괜찮았다.

이번에 납치되어 박해를 당하고 풀려난 후에 남편 가족들에 대한 원망과 미워하는 마음은 나의 수련의 길에 하나의 산이 되었다. 그들의 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불편해지고 화가 났다. 속으로 수련인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고 늘 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사부님, 왜 저는 아무리 해도 그들(남편의 가족)을 사랑할 수 없는 겁니까?” 라고 말했다. 나는 고민하고 방황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은 속인 사회 속에서 창립한 것으로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이런 수련형식에 부합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모두 우리 수련의 너그러움과 편리함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정진하는 그런 수련생들은 이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이는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한 매 한 가지 일은, 가령 당신이 속인 중에서 가정 관계를 잘 평형 시키고 사회적인 관계를 잘 평형 시키려고 하면, 당신의 직장에서의 표현, 사회에서의 표현은 간단하고 간단하게 적당히 얼버무려서 될 일이 아니다. 이 일체는 바로 당신의 수련형식이며 이는 엄숙한 것이다.”[4] 라고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있을 때에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모두 당신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로써, 반드시 대면해야 하고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하는 것으로, 어느 한 가지도 적당히 얼버무릴 수 없다.”[4]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법은 나에게 경종을 울렸고 나는 반드시 그 관을 넘어야 했다. 매일 진상을 알리는 외에 나는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법을 베끼는 동시에 긴 시간을 발정념 하여 자신의 바르지 못한 요소와 외래 교란들을 제거 했다. 나의 마음은 점차 느슨해졌고 선념(善念)과 관용(寬容)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대체했다. 그리하여 나는 남편의 큰 형님에게 DVD 플레이어를 사서 대법진상 CD와 함께 선물했다.

그 동안에 나는 매사에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시부모님을 부양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장례를 치러 드렸으며 모두 관대하게 처리했다. 그들과 따지지 않았으며 많은 돈과 힘을 보탰다. 남편은 6남매 중 다섯째이고 그의 둘째 형님은 기독교인이었다. 시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사지가 마비되신 80여세의 시어머니만 남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둘째 형은 돈을 내지 않았고 나는 남편하고 상의하여 둘째 형이 내지 않은 돈을 우리가 내기로 했다.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일을 처리하고 나서 네, 다섯 쌍의 조문객들에게 밥을 지어 대접해야 했는데 그 때 모두 한쪽에 서서 아무도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제가 할게요.” 라고 말했다. 내가 하는 것이 편했다. 그것은 나의 마음에 법이 있기 때문에 나는 실제 행동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실증하려 했다.

몇 년 동안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모두 내가 했다. 시어머니를 부양할 때 한 가족이 모두 모이면 나와 남편을 제외하고 기타 형제자매들은 모두 이유를 대면서 노인을 떠밀었다. 나는 옆에서 보면서 눈과 마음이 저려왔고 노인을 대신해서 괴로워했다. 그중 둘째 형이 “나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어머니를 모실 수 없어요, 다른 사람처럼 20만 위안(한화 3,292만원)이 없어요, 만약 나에게 20만 위안이 있다면 나는 바로 어머니를 모시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남편을 겨냥하여 한 말이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20만 위안(한화 3,292만원)이 넘는 차를 남편에게 사주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구세력이 교란한다는 것을 알고 냉정하게 모두들에게 말했다. “돈이 있으나 없으나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자식의 의무예요, 그렇다면 밥을 빌어먹으면 부모를 부양할 수 없단 말인가요? 부모님은 우리를 키우느라 쉽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 은혜를 알아야 해요, 부유해지려면 선량한 일을 많이 해야 하고 덕을 쌓아야 하며 마음을 다해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해요.”

점차적으로 남편의 가족과 마을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은 정말로 괜찮아요, 모모(나의 이름)는 정말 대단해요, 도량이 넓어요.” 라고 말했다. 마을의 부서기는 배후에서 의논하면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 이예요, 모모(나의 이름)는 정말 사람을 탄복시키네요.”라고 말했다. 남편의 큰 형수는 나와 남편에게 “우리 집 문은 항상 당신들에게 활짝 열려 있어요”라고 말했다. 후에 남편의 큰형과 형수,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모두 연달아 대법을 얻었고 이웃의 여러 사람들을 동원하여 대법을 얻어 수련하게 했다.

3. 파출소에서 진상을 알리다

2014년 3월 21일 오전에 나는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대략 10시경에 길옆의 한 가게 앞에서 내가 진상자료와 “9평”을 배포했는데 승용차 안에서 잠복하는 사복경찰에게 발견되어 110 차로 나를 강제로 납치했다.

처음에 나는 좀 당황했지만 파출소에 도착해서 나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이왕 왔으니 오늘은 그들을 구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청했다. 그 다음 나는 안으로 찾아 그동안의 누락, 법에 맞지 않는 요소들을 찾았으며 즉시 법으로 바로 잡았다. 이어서 나는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어 나의 공간장의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들을 제거했고 파출소와 경찰 배후의 사악을 제거했다. 동시에 끊임없이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처음에 아주 흉악했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나더러 똑바로 앉으라고 하고 사진을 찍으려 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진을 찍을 필요 없어요, 우리 일이 있으면 일에 대해 이야기 합시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는 옆의 경찰에게 “물 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물 두 컵을 마신 후에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평온하게 말했다. “당신들은 흥분하지 마세요, 이것들(진상자료를 가리킴)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모두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천재와 인재 앞에서 어떻게 하면 위험에서 벗어나고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가 권력을 잃게 된 진상도 있어요. 당신들은 돌려서 보세요. 누가 바르고 누가 사악한지를 알 수 있어요.”

그 때 온 방안의 경찰들이 모두 와서 진상자료를 보았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아주 사악했던 경찰이 높은 관리들이 낙마한 진상 소책자를 손에 들고 다른 방으로 갔다. 좀 지나서 손에 진상책자를 들고 돌아와서 나의 앞에 앉으면서 전과는 전혀 다른 마치 어린아이처럼 상냥하게 물었다. “우리 이 사람들도 당신이 구해야 해요. 톈안먼 분실자살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다, 중국의 박해환경에서 나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어 그 동안 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가 너무 적었다. 나도 모르게 연민이 생겼고 자비의 마음이 생겼다. “좋아요, 나는 오늘 당신들에게 모두 이야기 해 줄게요”

그 때, 다른 사람들도 모여 들었다. 나는 먼저 분신자살의 몇 가지 의문점에 대해 분석한 다음 그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렸다. 사악한 공산당은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지와 관료들이 낙마한 진상에 대해 알려주었다.

마지막에 나는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에 백성들에게 파룬궁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 그들이 사악한 공산당과 함께 악보를 받는 것을 면하게 하려는 거예요. 박해가 엄혹한 중국 환경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어요? 모두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서예요.”

여기까지 듣고 그들은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한 경찰이 존경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먼저 고통과 역경을 견디고 나면 뒤에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처음의 긴장했던 분위기가 없어지고 상화해졌다. 나는 그들에게 “이 안은 너무 숨 막혀요, 우리 정원에 나가서 이야기 합시다. 내친김에 내가 당신들에게 연공하는 것을 보여줄게요.” 라고 말했고 그들은 응해주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치는지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도덕, 정의,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중의 한 아가씨는 아주 선량했는데 조용히 나에게 “기다리세요, 우리 소장님이 왔어요, 만약 당신이 저 소장님을 설득시킨다면 당신은 아무 일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대략 2시간이 지난 후 소장이 왔다. 기타 사람들은 모두 방에서 나가고 나와 소장만 남았다. 소장은 “말해보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집중하여 강대한 정념으로 소장 배후의 불량한 것들을 제거했고 그를 선량해지게 했다. 나는 먼저 그에게 내가 왜 진상자료를 배포하는가에 대해 말했다. 나는 “저는 1996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어요, 파룬궁은 저에게 건강한 몸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주었어요. 사람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쳐요. 바로 이런 공법이 99년 7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사악한 공산당에 의해 박해받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도 그동안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믿어요, 우리는 모두 중국 사람입니다. 중국인은 모두 머리 석자위에 신령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누가 무엇을 하든 모두 그 자신에게 한 것이고, 때가 되면 그에 상응한 보응이 따라요. 현재 낙마한 그 관료들을 보세요, 겉으로는 부패해서라지만 실질은 파룬궁을 박해해서 보응을 받은 거예요. 국민들도 알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선하게 하고, 바른 것과 사악한 것을 구분하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오직 사악한 공산당을 멀리해야만 중국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어요.” 라고 말했다.

소장은 계속 머리를 끄덕였다. 이어서 나는 그에게 장쩌민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과 부패정치로 나라를 다스린 것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현재의 정치형세와 현 정부가 공포한 ‘공무원법’ 그리고 중대한 정책 종신책임제에 대해 말했다. 나는 그에게 “오늘 당신은 이 백성들의 평안을 위한 관료이고, 또한 제가 진상을 알리는 것도 백성들의 평안과 건강을 위한 것이기에 우리의 뜻은 같아요. 당신은 파룬궁이 중국에서 더욱더 발전하는 그날을 보게 될 것이고 나도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해요, 당신은 당신의 자손들에게 ‘나는 그 당시에 파룬궁수련생에게 내가 응당해야 할 일을 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소장은 머리를 끄덕이고 웃으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제가 찐빵을 갖다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지만 사양 하겠어요” 라고 말했다. 그는 두 젊은 경찰을 불러 “저녁이 되면 너희들은 보고도 못 본체 하고 아주머니를 석방시켜” 라고 말했다.

저녁 무렵에 한 경찰이 전화를 받으면서 “인터넷으로 보고하지 마세요.” 라고 말했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경찰은 나더러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그중의 한 명이 “아무튼 간을 떼어내고 폐를 떼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나는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면서 안으로 찾았는데 공간이 투명해지고 나의 정념도 아주 강해져서 어찌된 일인가 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념으로 일체를 마주했다. 길에서 나는 그들과 한담하면서 사회주의의 부패현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마지막에 나를 병원 진료실로 끌고 가서 마치 신체검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차가 아직 멈춰 서지 않았을 때 나는 차안의 경찰에게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을 다 말했는데 당신들은 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미혹되어 있나요? 이렇게 하면 정말로 당신들에게 좋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차에서 내리자 나는 큰 소리로 진상을 알렸다. 안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병을 보러 왔는데 나는 큰소리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몸을 건강하게 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무슨 잘못이 있나요?” 라고 말했다. 경찰들은 무서워서 나를 잡아당겨 차에 오르게 했다. 부소장은 차에서 내려 한참 전화를 하더니 차에 오르면서 “당신을 집에 모셔다 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지! 고마워요.” 라고 말했다.

전반 과정을 돌이켜보면 모두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셨기에 내가 두려워하지 않았고 정념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한지 21년이 되었다. 대량으로 법공부 함에 따라 특히 조사정법을 한 18년 이래 심성이 법 중에서 제고되었고 생명은 법 중에서 승화되었다. 성실하게 수련하여 수련의 미묘함과 행복을 체험했다.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구하는 시간을 배로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위대한 사존의 은혜는 말로 표현할 방법이 더더욱 없다. 우리는 정진하여 자신을 수련하고 많은 사람을 구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시 : “홍음” <마음 고생>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7” <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0/3576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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