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법공부 중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았다. “그럼 반대로 말하자면, 늘 다른 사람에 대해 태도가 좋지 않다. 대법제자는 선을 수련하는데, 당신은 당신의 동수가 당신보다 수련을 잘했으니 당신이 그에게 선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그를 너무 높게 본 것이 아닌가? 당신은 그에게 선으로 말하지 않거나 그가 대법제자를 박해한 무리여서 당신이 그에게 선으로 대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가? 박해에 참여한 그 한 무리, 기만당해 도둑 배를 탄 사람에게도 당신은 그에게 선으로 대해야 하는데, 당신의 동수를 왜 선으로 대하지 못하는가? 그는 사부의 제자인데, 당신은 아는가? (박수) 당신이 말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그때에 당신은 마(魔)와 똑같다는 것을 당신은 생각하지 못하는가? 마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상태이다. 만약 당신이 늘 이렇다면, 늘 마와 같은 상태라면 당신은 마도(魔道)를 닦는 것이 아닌가? 늘 당신의 맑게 갠 얼굴을 볼 수 없고 또 늘 표현하는 것이 그런 교활한 것이면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은 어떤 상태인가? 신들은 모두 당신을 보고 있다.”[1] 사부님의 설법내용이 나에게 확 와 닿았을 뿐만 아니라 나는 이 단락에서 말씀하신 ‘선(善)’자가 갑자기 매우 크고 두드러지고 특히 ‘선(善)’ 아래의 그 커우(口) 자가 더 두드러졌다. 나는 갑자기 선을 수련하려면 수구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전에 일반인도 “구덕(口德)을 많이 쌓아라!” “아무렇게나 말을 내뱉으면 해로운 점이 많다” 등의 말을 했다. 그러면 수련인은 더욱 마땅히 할 말이 있으면 좋게 말해야지 않겠는가?
저녁에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를 공부할 때 마침 ‘선을 알기 쉽게 해설(淺說善)’ 이 문장을 펼쳤다. 사부님은 “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한 것으로, 眞(쩐)·善(싼)·忍(런) 세 글자를 갈라놓아도 마찬가지로 眞(쩐)·善(싼)·忍(런)의 특성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물질은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되었으며 미시적 물질은 또 더욱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되어 줄곧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진(眞) 역시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되었고, 선(善) 역시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되었으며, 인(忍)도 마찬가지로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약간 깨달았다. 우리는 일반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가 어디에 장애가 있는지 보면서 그의 마음에 따라 말한다. 설마 다른 수련생과 말을 할 때 선(善)이 필요하지 않단 말인가? 이전에 나는 수련생을 일깨워 줄 때 ‘진(眞)’을 많이 사용하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느낌을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자비로운 마음과 평화롭고 차분한 심태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진(眞)’의 정직하고 솔직한 표현을 해 더욱 좋은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고 어떤 것은 정반대의 결과를 얻었다.
수련생과 교류를 할 때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에 들어가거나 기탄없이 말을 하거나 생각하는 바를 숨김없이 말하거나 또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하는 등이 있다. 보기에는 마치 당신을 위해 말하는 것 같지만 악당의 문화이다. 예컨대 목청이 높고 어투가 지나치거나 중복하기를 좋아하고 상대방의 조그마한 것을 잡고 놓지 않으며 도처에서 ○○는 이것이 좋지 않고 그것이 틀렸다는 등 쟁투심과 질투심이 섞인 원망과 미움, 질책, 불평이 모두 나온다. 어떤 이는 심지어 말할 때 자세가 모두 악당 문화 중의 지적이며 말하는 표정도 험악하다. 특히 수련생이 듣고 반응이 없으면 속으로 또 화가 나 내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당신은 아직도 자신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더욱 깊게 파보면 이런 표면상의 도움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초에서 선 것이며 역시 일종 사(私)이다. 진심으로 상대방이 잘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목적은 상대방이 자신의 무엇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예를 들면 시간, 법공부, 소통, 정체제고, 원만 등이다. 또한 그런 ‘내가 당신을 이렇게 대했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러하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는데 당신은 고치지 않는다’ 등의 염두는 모두 ‘나’를 앞세운다. 지금 이런 느낌이 있다. 내가 시작을 한 일부 변명과 하는 방법 모두 사(私)가 앞에 있다. 무엇 때문에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는가? 바로 사아(私我)가 좋지 않은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진정하게 선을 수련하지 않는 행위는 바로 수련생에 대해, 외부인에 대해 표현이 매우 선하지만, 가족에게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말도 함부로 하고 도리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마땅히 선한 마음을 수련해 말하는 어조가 온화하고 말투도 적당하며 소리가 부드러워야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고 상대방은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선한 마음, 선한 염두, 선한 언어로 상대방을 대하고 중생을 널리 구하자.
약간의 깨달음이며 부적절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선을 알기 쉽게 해설(淺說善)’
원문발표: 2017년 1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2/17/3579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