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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생기면 온 가족이 고생이고, 수련하면 온 가족에 복이 온다

글/ 후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1년 중병에서 걸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접촉하기 시작했고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가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와 가족에 대한 보호와 대법이 병을 제거한 탁월한 효과를 글로 적어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나는 대가족에서 태어났고 형제자매가 많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나는 카드를 즐겨 놀았고 TV를 즐겨 보았다. 말하고 일 처리 하는 것이 강하고 특히 놀기 좋아했다. 하지만 나의 본분과 선을 지켰다.

의사는 나를 실험으로 삼아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

2007년 입원 검사결과 두 신장에 결석이 생겼다. 의사는 내가 신체 요소가 좋다며 두 신장을 함께 수술하자고 했다. 나와 가족은 이렇게 하면 괜찮은 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동의했다. 사실 두 신장을 함께 수술하면 병원 관례에 적합하지 않은 것인데 의사는 나를 실험으로 삼았다.

수술은 5~6시간 동안 했으며 남편은 걱정이 되어 울었다. 수술실을 나온 후 나는 고통스러워 5일 동안 신음을 냈다. 이어 나는 더욱 두려웠다. 열이 40도가 넘었고 허리와 배가 아프고 먹기만 하면 토하고 물을 마시거나 링거만 맞아야 했다. 의사는 어떤 설명도 없고 소변 검사와 피 검사만 해주었다. 사실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었고 근본적으로 소용이 없었다. 천자(가는 주삿바늘로 체액을 뽑아내는 일) 등 각종 검사도 했다. 그런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두 아이는 기숙사에 있어 매주 금요일에 집에 돌아온다. 그러므로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병원에 있고 금요일에 집에 간다. 그때 늘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통곡하고 싶었다. 계속 입원해 있는데 곧 명절이 다가왔다. 밖에는 눈이 날리고 아이들은 겨울 방학하려 하는데 추운 날씨에 외할머니 집에 보내야 할지 걱정이 됐다. 명절이 되었는데 의사는 내가 집에서 명절을 지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단호히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집의 노인과 어린아이는 눈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올해 지나고 내년에도 살아있을지 희망이 없었다.

나를 단호히 지키기 위해서 의사는 나에게 수술을 해주려 했다. 어떤 수술을 하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어떤 수술을 하는지 말을 하지 못하고 “수술을 하면서 보자.”고 말했다. 후에 보니 단지 관만 넣었다. 이렇게 하고서 병원에서는 가까스로 집에 가는 것을 동의하였다.

명절에 한 친척 언니가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파룬궁(法輪功) 진상을 알지 못해 웃기만 하고 지난 후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관을 넣었다 뽑았다 반복하는 동안 시달렸다. 때로 단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4번 만에 성공한 적도 있다. 후에 2번은 마취약도 맞지 못해 고통스러워 눈물과 땀이 줄줄 흘렀다. 나는 고통스럽지만, 남편이 밖에서 들으면 걱정할까 봐서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후부터 의사를 보면 나는 벌벌 떨었다.

남편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했다. 다른 병원 가서 각종 검사를 하고 또 수술했다. 수술을 얼마 동안 했는지 모르지만, 혼미상태에서 간호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더 깨어나지 않으면 병실로 가지 못해요.” 후에 알고 보니 수술이 끝나고 나는 몇 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깨어난 후 나는 진통제를 놔 주지 않아 고통스러웠지만,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80여 세 엄마가 자주 나와 엄마 집을 오갔다. 아들은 매주 집에 돌아와 문이 열렸는지 보았고 엄마가 있는지 보았다. 딸은 다른 사람이 엄마를 물으면 가장 고통스럽다고 했다. 남편은 자기 전에 나의 발을 만져보고 확인하고 잠을 잔다. 남편은 내가 완치되지 않아도 두 눈이 자신을 보고만 있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일류 병원이고 일류 교수도 수술에 실패했다. 만 분의 일의 실패가 나에게서 일어났다. 방법이 없어 천자 수술을 했다. 허리에 구멍을 내고 소변 줄과 관을 지니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는 침대에 누워 몸도 뒤척이지도 스스로 처리하지도 못했다. 2개월 동안 누워서 지냈다. 언니와 남편이 바꿔가며 나를 돌봐주었다. 남편은 나를 위해 몇 년 동안 직장을 다니지 못했다.

나의 병은 많은 사람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왕래가 없는 친척, 친구도 나를 보러 왔다. 평소 왕래가 없던 사촌 형, 사촌 형님도 나를 지원해 주었다. 80세 아버지는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평소에 자주 말했다. “사는 것이 얼마나 좋으니!” 하지만 내가 수술을 할 때 아버지는 병이 나서 쓰러졌다. 오빠와 형님이 어떻게 권해도 아버지는 치료하지 않고 자신이 죽으면 내가 좋아진다고 말했다. 일주일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딸들을 모두 집에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수술을 해야 했기에 가지 못했다. 내가 갔을 때 아버지는 수의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를 매장하는 그날 눈이 내렸다. 나는 형님의 권고도 듣지 않고 아버지를 보내주겠다고 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니와 딸이 나를 부축하고 갔지만 절반 가서 나는 쓰러졌다. 하는 수 없이 딸이 나를 부축해서 되돌아왔다. 날은 어두웠고 딸은 어려서 길에서 엄마만 불렀다. 하지만 숨을 참고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놓으면 쓰러져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엄마 집은 이웃 마을이라 집에 돌아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기절했다. 밤이 되어서야 나는 깨어났다. 왜냐하면, 평소 먹지 못 했기 때문이다.

‘전법륜’을 절반 읽었는데 기운이 나다

다른 집은 명절을 지내는데 우리 집은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또 돈을 모아 입원했다. 교수는 회진 후 방법이 없어 고비를 넘기면서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기간에 나는 많은 종교와 절에 갔다. 하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언니도 엄마에게 말했다. “여동생은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동생은 앉지도 못해요.” 하지만 나는 어렴풋하게 나에 속하는 어떤 곳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환경을 바꿔보기로 했다. 작은 오빠의 차고에 가서 살았는데 우연하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친척 언니와 이웃이 되었다.

언니는 일이 있거나 없거나 나에게 와서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알려 주었다. 나는 언니가 귀찮았고 늘 언니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화를 내지 않고 늘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전법륜’을 빌려주며 보라고 했다. 어차피 나는 일도 없고 한가하니 한번 보자고 했다. 뜻밖에 책을 보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이것은 나에게 속하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깨닫지 못해서 2년을 놓쳐버렸다.

또 명절이 다가왔다. 나는 병원에 입원해 CT를 찍었는데 교수가 말했다. “투석하세요!” 나는 평온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집에 돌아갑시다.” 링거를 몇 개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2011년 명절을 지낼 때 나는 ‘전법륜’을 청했다. 집의 모든 종교 책을 버리고 매일 ‘전법륜’ 몇 페이지를 보았다. 20일이 지난 후 나는 남편의 권고도 듣지 않고 모든 호스를 뽑아버렸고, 교수 처방도 몰래 버렸다. 남편에게 약을 처방해 주지 않았다고 거짓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기운이 났다. 남편은 늘 나의 이름을 불렀다. “절대로 열나지 마세요!” 왜냐하면, 전에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열이 났기 때문이다. 4년간 나는 크고 작은 수술을 열 몇 번 했다. 대부분 시간은 모두 고열과 구토에서 견뎌야 했다. 매년 명절을 지낼 때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런 고통은 몇 장의 종이로 쓸 수 없을 정도다. 나의 병은 어떠한 방법도 없기 때문에 병원의 교수도 나를 보면 머리가 아파했다.

하지만 내가 ‘전법륜’을 청하고 절반을 보았는데 기적처럼 열이 나지 않고 기운이 났다.

언니는 우리 집에 와서 물었다. “정말로 나았니? 어떻게 나았어?”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다고 했다. “그럼 한번 해봐” 나는 언니에게 사부님 설법 동영상과 연공 동작 DVD를 보여주었다. 언니는 본 후 빌려 갔다. 뜻밖에 언니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글자도 몰라 수련 ‘원만’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하지만 사부님의 법에 대해 아주 견정하고 경건하다. 수련 후 흔들린 적이 없다. 몇 년 사이에 언니는 사부님의 ‘전법륜’과 각지 설법을 통독할 수 있고 ‘밍후이 주간’도 볼 수 있었고, 평온하게 세 가지 일을 했다. 시골에서 언니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언니는 홀로 자료와 ‘9평 공산당’을 배포하고 때로는 촌 서기에게도 배포한다. 언니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자료를 가져간다고 말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다. 나는 병이 완쾌됐을 뿐만 아니라 가족도 혜택을 보았다. 남편은 전에 무슨 일을 하든지 순조롭지 않았는데 지금은 큰 부자는 아니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순조롭다. 2012년 시에서 집을 구매했고 2년 후 우리는 새집에 들어갔다. 나도 정식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소업

그동안 병업 가상이 나타난 적이 있다. 내가 참지 못하자남편이 밤에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 검사 후 의사는 말하기를 신장은 무슨 기능도 없고 신우(腎盂)에 돌이 있다는 것이다. 관을 넣고 나는 퇴원했다. 언니는 나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신장을 하나 떼어줄게.”라고 말했다. 형님은 “네 오빠가 평생 가정을 책임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이 집을 책임지겠다며 너에게 신장을 바꿔주겠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나는 감동해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필요 없어요. 각자 운명이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본래 ‘전법륜’에서 이런 상태는 나를 겨냥한 것이다. 나는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이렇게 나는 몇 년간의 각종 검사 자료를 호스를 뽑아버리는 듯 병원의 쓰레기통에 모두 버렸다. 길게 숨을 쉬고 견정하게 자신에게 말했다. ‘더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내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병업 가상은 왔다. 새로 만난 수련생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는 소업을 하는 중이야. 사부님께서 너에게 신체를 정화해 주신 것이야. 너는 사부님을 믿어야 하고 대법을 믿어야 해!” 나는 더욱 자신이 생겼다. 왜냐하면, 나는 몇 차례 버티지 못했기 때문에 관이 커졌다. 그것은 정말로 생사관이다. 오장육부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고 대소변이 통하지 않아 배가 아주 아팠다. 나는 명확히 알고 있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생명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을 견지하기에 남편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낫는다면 이 법은 정말 좋은 것이야.”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바삐 서두르는 것을 보고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걱정하지 마세요. 저에게는 사부님이 계십니다.”

이틀이 지났다. 남편은 특수상황이라서 반드시 공사장에 가야 하는데 나를 걱정했다. 사실 나는 고통스러워 기절할 지경이었지만 “당신은 가세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저녁에 많은 사람이 전화로 나에게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수련생 아주머니도 전화를 걸어 말했다. “우리 남편에게 욕먹었어요.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어요. 돌아와 다시 수련하면 돼요.” 나는 견정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되돌아갈 수 없어요. 제가 수련하려면 반드시 걸어가야 해요. 저는 꼭 걸어서 지나갈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를 원망하지 않아요.” 나는 생각하며 ‘두려울 게 뭐 있어? 사부님도 계시는데. 더 아프면 고향으로 가서 남편에게 법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고 내가 잘 수련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알려주면 되지. 남편이 대법을 원망하게 하면 안 된다.

침대에 누워 사부의 설법을 들으며 혼미 상태에서 아랫배가 두 번 반응이 왔다. 나는 즉시 화장실에 갔다. 노란 콩 같은 돌이 떨어져 나왔다. 병원에서 말한 신우에 있는 돌이다. 수술을 해도 꺼낼 수 없다는 그 돌이다.

대소변이 통했지만, 온몸은 닭이 쪼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또 온 종일 아팠다. 저녁에 사부님 설법을 듣는데 갑자기 한줄기 열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어떤 물건이 아래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가벼웠다. 이렇게 몇 년의 악몽 같은 고통은 이렇게 끝났다. 그때부터 병원에 가서 어떤 검사를 받은 적이 없다.

고향에 돌아와 사부님의 법상을 청하여 남편의 도움으로 정정당당하게 거실 중앙에 모셨다. 우리 사부님은 이렇게 모셔야 한다.

중생은 법광에 젖어 있다

주위 모든 친척, 친구, 이웃, 아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물었다. “나았어요? 어떻게 나았어요?” 나는 늘 웃으며 말한다. “나았어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워 나았어요!” 이어 나는 그들에게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우리 사부님의 결백을 알리고 대법은 억울함을 당한 것이고 대법제자는 박해를 당한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들은 말한다. “무엇을 배우든 상관없어요. 당신 몸만 좋으면 돼요.”

내가 대법을 배워 기사회생한 기적은 주변의 많은 사람이 대법에 대한 생각을 개변하게 했다. 대법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며 많은 사람이 ‘삼퇴’를 했다. 어떤 친구는 말했다. “너는 병도 나아지고 피부도 좋아지고 남편 사업도 순조롭게 변했어, 이것은 네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서 그래.” 나는 친구에게 ‘전법륜’을 빌려주어 친구도 대법수련을 시작했다.

이웃 아는 여동생이 말했다. “전에 TV에서 파룬궁(法輪功)이 어떠어떠하고 누구(나를 가리킴)는 수련해서 병이 들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지금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해 어떻게 되었어요? 모두 직접 보았지요. 인간성도 변하고 가정환경도 큰 변화가 생겼어요. 책을 저에게도 보여주면 안 될까요?” 그녀도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 시어머니도 자발적으로 믿던 종교에서 탈퇴하고 그녀도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지지했다.

나와 언니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을 몸소 실천하고 착실히 수련하고 정진했다. 우리 이 큰 가족에게도 대법 수련에 입문한 사람이 있고 대법에서 혜택을 보았다. 나는 몸과 마음이 가벼움을 느꼈다. 병이 없는 가벼운 몸이다. 나는 병을 앓기 전보다 지금 몸이 더 가볍다. 대법에 진정으로 용해된 행복을 느꼈다.

남편도 나에게 병원에 가지도 않고 병이 나은 것을 보고 남편은 집에 돌아오면 합장하고 끊임없이 말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이 법은 너무 좋습니다!”

이튿날 남편은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남편은 담에 엄지손가락만 한 돌이 있었다. 이전에도 자주 아팠다. 하지만 이번에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며칠간 밥을 먹거나 잠을 자도 아프다고 했다. 나는 병원에 가서 검사하라고 했다. 남편은 가지 않았다. 저녁에 샤워하고 말했다. “소변이 붉고 노란색인데 무엇인지 모르겠네.” 하지만 밤에 아프지 않고 잠도 잘 잤다. 아침에 또 그런 소변을 보았다고 했다. 몸에서 무엇을 잡아당겨 내는 것처럼 불편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모두 정상이다. 그 후 더는 아프지 않았다. 1년 후 검사하니 돌이 사라졌다.

그 후 온 가족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었다. 남편은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사부님 안녕하십니까!”를 백번 염한다. 남편은 꿈에서도 자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사부님 안녕하십니까!’를 염한다고 했다. 그들은 비록 수련은 하지 않지만 장쩌민 고소 때, 서명을 하고 손도장도 찍었다.

최근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추석날 밤에 남편은 12시에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말하기를 포클레인에 허리를 부딪쳐 땅에 쓰러졌다고 했다. 바지도 다 찢어졌고 다리에도 피가 흘렀다. 당시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큰 물건에 부딪혔으니 내장에 손상이 있지 않을까?” 남편의 허리를 보니 붉지도 않고 붓지도 않았다. 남편은 느낌에 등허리가 좀 댕긴다고 했다. 이튿날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의사가 말했다. 허리뼈가 골절돼 수술을 하지 않으면 반신불수가 된다고 했다. 이때 나는 갑자기 정념이 생겼다.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수술을 하지 않아요. 남편은 좋아질 겁니다.” 의사는 말했다. “선천성인 장애 말고는……” 그 의미는 그렇지 않으면 요양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허리를 펴보세요. 진짜 다친 것처럼 행동하지 말아요. 그것은 모두 가상이에요. 그것을 부정하고 승인하지 말아요.” 그날 밤에 공사장 사장이 남편을 보러 오면서 1만 위안(약 165만 원)을 가져왔다. 우리는 거절하고 사장에게 말했다. “마음 놓으세요. 우리는 수술을 하지 않아요. 의사가 말한 것을 문제 삼지 않아요.” 간단히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남편은 말했다. “아내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해서 모두 나았어요. 그러므로 저는 아내를 지지해요.” 사장도 미소를 지었다.

사장을 보내고 나는 말했다. “ 한번 수련해 보세요.” 남편에게 연공을 가르쳤다. 남편은 연공을 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했다. 딸도 웃으면서 “아빠도 연공을 잘 합니다. 아빠가 수련하면 엄마보다 더 잘 하실 거예요.”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은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친구는 남편에게 아는 사람에게 검사 좀 받아보라고 했다. CT를 찍고 50분 후에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자세히 보고 말했다. “당신 허리는 골절돼지 않았어요. 이것은 선천적인 장애입니다. 그 큰 물건이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 수술을 해서 고정하든지 안 하든지 할 수 있어요.” 친구는 말했다. “수술해요. 산재인데.” 우리는 친구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친구를 ‘삼퇴’ 시켰다. 친구는 남편에게 웃으면 말했다. “당신 말소리도 커지고 허리도 펴진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네, 본래 괜찮아요.” 사장은 전화를 걸어 전액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상의하고 사장의 비용을 거절했다. 이번 일에서 나는 마음이 평온하고 전혀 조바심과 걱정이 없었다.

우리 집의 분위기는 평온하고 화목하다. 아들은 말했다. “대법의 연공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아주 평온해요.” 딸은 매번 사부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신다고 말했다. 예비 며느리도 말한다. “어머님이 하시던 일(진상 알리는 일)을 하세요. 이 일은 제가 할게요.” 또 자신의 가족들도 ‘삼퇴’ 시켰다.

명절에 아들이 컵을 들고 말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딸도 이어서 말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원문발표: 2017년 11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26/3571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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