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쐉청(雙城)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에 대한 생각

글/ 하얼빈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7년 10월 9일, 헤이룽장성 공안청과 하얼빈시 쐉청구 공안국에서는 같은 시간에 쐉청시 대법제자 50여명을 납치했다. 전에 소위 ‘노크 행동’ 중 소란당한 대법제자도 150여 명이나 된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쐉청 지역에서 이렇게 수십 명이 납치되는 사건은 이미 세 차례나 나타났고 납치된 인원이 전국에서 이미 가장 많다.

올해 납치 박해 중 비록 대부분 수련생이 이미 집으로 돌아왔지만 사악은 쐉청에서 세뇌반을 설치해 계속 대법제자를 박해하겠다는 소문을 냈다. 정법노정이 마지막 단계에 이른 오늘 날, 사악이 아주 적은 상황 하에서도 뜻밖에 이렇게 심한 박해가 발생했다. 대법제자가 박해당하는 동시에 많은 공검법 공무원도 사악에게 통제당해 대법에 죄를 지었고 일부분 진상을 안 사람도 박해로 인해 대법제자의 친척을 포함해 또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이 생겼다. 중생을 구도하는데 엄중한 영향을 미쳤으므로 마땅히 우리의 중시와 반성을 일으켜야 한다.

몇 가지 방면의 문제를 정리했다. 법공부를 잘한 기초에서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고 전반적으로 구세력의 방해와 박해를 부정하고 정체로 제고하고 이후의 길을 잘 걸어야 한다.

협조인 사이의 갈등

쐉청 협조인들은 다 능력이 있고 항목을 하면 아주 대단하나 서로 지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협조인 사이에 의견이 같지 않으면 서로 협조하지 않고 각자 사람을 끌고 가고 서로 상대방의 잘못도 말하고 모두 자신이 옳다는 것을 실증한다. 장기적으로 착실하게 수련하고 안으로 찾지 않아 많은 협조인이 납치됐다. 한 협조인에게 법에 있지 않은 행동이 나타날 때 기타 협조인은 직접 이 협조인이 책임지는 지역을 넘겨받는 방식을 취한다. 당(黨)문화의 일처리 방식으로 하는데 지도자식, 호소식으로 일한다. 그리고 원래 협조인 수련생이 알게 되면 아귀다툼을 하는데, 질투심과 당문화의 사상으로 편을 가르고 서로 양보하지 않으며 서로 배척하고 장기적인 대치상태에 처해한다. 심지어 서로 공격해 내부 손실이 크게 되게 만든다. 어떤 수련생은 이런 상황을 봐도 어찌할 수 없어 회피한다.

사부님께서 “왜 어떤 때 각 지역에서 늘 논쟁이 발생하고, 어떤 때는 논쟁이 끝이 없는가? 왜 법을 실증하는 중 늘 의견이 통일되지 않는가? 이러한 일이 최근 한 시기 중국대륙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실은 무슨 문제인가? 아주 간단하다. 바로 당신이 법을 실증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실증하는가이다. 만약 당신이 법을 실증한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의견에 충격(衝擊)을 주고 당신의 목소리를 눌러 당신이 기분 나쁘다고 느끼거나,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어떤 문제를 견주어 당신에게 반대 의견을 제출하거나, 혹은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당신이 불편을 느낄 때면, 당신은 일어나서 반대하고 변명한다. 그리하여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마저도 꺼리지 않는데, 가장 선의적인 변명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모두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박수) 왜냐하면, 당신이 대법을 제1위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이 제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수련은 일하는 것이 아니고 일하는 중에서 마음을 닦는 것이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는 이미 자신을 법 위에 놓은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어찌 감히 하늘의 공을 탐내는가?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은 입으로만 말해서는 안 된다.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서 진정으로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수련하고 사람의 마음과 자아를 내려놓고 수련인에게 있어야 할 흉금과 너그러움으로 수련생을 잘 대해야 하고 엄숙하게 수련을 대해야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일하는 것과 마음을 닦는 것을 갈라놓으면 번거로움이 끊이지 않는다.

항목과 항목 사이의 간격

장기적으로 대면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은 집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들을 깔본다. 자신이야말로 정진하고 법에서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납치된 수련생도 관심하지 않는다. 이유는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영향주어서는 안 되고 또 납치된 수련생은 정진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직접 전화하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하는데 참여하는 수련생은 자신이 하는 이 항목이 사람을 구하는 힘이 크다고 생각하고 역시 기타 항목을 하는 수련생을 깔보며, 진상자료를 만드는 수련생도 자신이 하는 것이 아주 관건적인 항목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수련생은 누가 납치와 소란을 당했는가로 잘 수련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가늠하고 법에서 깨닫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사람마다 수련의 길이 같지 않고, 법을 실증하는 방식이 같지 않으며, 사회계층이 같지 않고, 직업이 같지 않으며, 환경이 같지 않아도 모두 수련할 수 있는바, 이것이 바로 대법이 수련자에게 펼쳐준 길이다. 대법제자는 정체이며 정법 중에서 한 일체를 나는 모두 긍정하는 것으로 모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지 않은 방법은 바로 법이 운행(運轉)하는 중에서 유기적으로 분담하여 원용(圓容)하는 방식이지만 법력(法力)은 정체(整體)의 체현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차별심으로 수련생을 가늠할 때 이미 사람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 중에서 원융하라고 하셨다.

법을 스승으로 삼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며 맹목적으로 따라하거나 의지해서는 안 된다

기타 일부분 수련생은 협조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좀처럼 법으로 가늠하거나 법 중에서 바르게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다른 일부분은 협조인의 일처리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소극적이거나 저지하기만 한다.

예를 들어 일 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한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혼자 떠안은 항목도 아주 많고 접촉하는 수련생도 아주 많으며 그녀가 협조하는 많은 항목의 성공률도 특히 높아 일부분 수련생이 그녀에 대해 숭배하거나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으나 그녀는 시시각각 이유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법을 아주 적게 배웠는데도 일이 뜬금없이 순조롭고 아주 많은 일이 머리에 갑자기 떠오른 것인데 따라서 했더니 성공하기까지 했기에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꽤 많은 수련생도 혼란스러워했다. 그녀가 한 방면으로 아주 많은 기적을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 방면으로는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행위들이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수련생이 마난에 부딪혔는데 그녀가 수련생을 도울 때 함부로 화를 내고 심지어 욕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수련생들의 강렬한 반감을 일으켰으나 그녀도 아주 많은 기적을 보여줬기에 어찌 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그때 그녀가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갔는데 함께 간 수련생은 불법 수감됐으나 그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또 예를 들어 이번 몇 차례 쐉청 납치사건 중 그녀와 접촉하는 많은 수련생들이 납치됐지만 그녀는 무사했다. 심지어 경찰이 그녀 집에 가서 다른 수련생을 잡아가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그녀 자신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어떤 수련생은 그녀는 구세력의 배치를 받고 법을 파괴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따돌림 시키는 바람에 간격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구세력의 속임수에 빠진 것이다. 사부님께서 “자고로 인간세상 한 편의 연극이라”[3]라고 말씀하셨다. 구세력은 역사상에서 각종 역할과 원한을 배치했다. 정법하는 오늘에 이르러 구세력은 여전히 우리가 역사상에서 연출하는 역할로 각종 원한을 만들고 우리를 박해한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부정하려면 반드시 구세력의 이런 사상에서 벗어나 연출했던 역할로 형성된 생명을 부정하고 진정한 자아를 똑똑히 분별해야 한다. ‘진(眞)·선(善)·인(忍)’에 따라 대법에 동화하고 다시는 배역에 몰입해서는 안 된다.

사실 수련생이 법에 있지 않은 표현도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고 그의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수련생들이 모두 이것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다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구세력이 그것의 일련의 물건을 배치한 만큼 또 상생상극의 이치를 절대화시킨 것이다. 그것이 한 수련생이 이렇게 표현하게 배치했다면 또 대응하는 다른 수련생의 표현도 배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똑똑히 알아보지 못하고 수련생을 거울로 삼고 안으로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며, 법으로 가늠하지 못해 자비로 수련생을 대하지 못하거나 구세력의 이런 배치를 부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 수련생의 부족함만 본다면 구세력은 수련생의 부족함을 더욱 두드러지게 할 것이다. 심지어 수련생이 난법하게 할 수도 있다. 구세력은 아주 많은 사람에게 이런 마음이 있고 모두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밖으로 보고 있으며 아주 많은 질투심이 있고 서로 실패하게 훼방하고 전혀 대법제자의 행위가 아니라는 핑계로 손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들이 손을 좀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련생을 고르거나 수련생을 미혹시킬 수 있는 수련생을 찾아 이 사람들을 먼저 잡아놓고 아직도 깨달을 수 있는지 본다. 한번 해서 수련생들이 바뀌지 않으면 그것은 두 번, 세 번 할 것이고 심지어 대법제자의 정체 환경에 혼란한 표면현상을 만들어 놓고 수련생들이 복잡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 우리는 마땅히 어떻게 부정해야 하는가? 먼저 우리는 한 대법제자에게 있어야 할 수련하는 마음가짐으로 사상에서 구세력을 부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련생이 납치됐다는 것을 들었을 때 어떤 수련생은 바로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해서는 안 됩니다. 발정념해서 박해를 부정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잇따라 “왜 잡혔을까요?!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겠죠. 발정념하지 않았겠죠. 나가서 사람을 구하지 않았겠죠. 혹은 기타 고비를 잘 넘기지 못했겠죠. 그의 두려움이 아주 심했어요. 이런 인식인데 사악이 어찌 박해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혼자서 이렇게 말할 뿐만 아니라 밖으로도 말을 전한다. 들은 수련생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이것이 구세력을 부정하는 것인가?

사악이 감히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도 이런 인식이기에 수련생을 박해한 것인데 당신이 구세력과 같은 생각이면 구세력과 한 패가 된 것이 아닌가? 만약 여러분이 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생각은 구세력을 부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구세력에게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핑계를 증가해 준 것이다. 그럼 우리는 가장 먼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먼저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수련생이 어떻든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고 계시고 모두 다 대법 중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세력이 그 어떤 핑계로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수련생은 좋은 것이고 모든 좋지 않은 표면현상을 보지 않아야 한다. 병업이 나타난 수련생 및 모든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난 수련생을 포함해 전반으로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수련생 전체가 정념으로 움직이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가 다 무사무아하고 완전히 법에 부합되면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하며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한 것이다. 전반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은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고 사상상 일사일념에서 구세력의 배치를 제거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결정해주실 것이고 비로소 중생이 진정으로 구도될 수 있다.

박해가 발생한 후 우리 몇몇 수련생은 함께 교류했다. 당시 표면 환경과 분위기는 아주 긴장해보였으나 모두들 이런 상태가 정확하지 않고 마땅히 부정해야 하고 대법제자야말로 주역이고 사악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 납치된 수련생의 한 가족 수련생이 있는데 당시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경찰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얼굴 표정이 굳어졌고 무서웠다. 이 수련생의 표정을 본 한 수련생은 그에게 이런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줬고 기타 몇 명 수련생도 개변해야 된다고 권했다. 이때 다른 한 수련생이 “우리는 납치된 그 어떤 수련생의 결점을 봐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마음으로 수련생을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수련 중 누구에게나 집착이 있으므로 이것이 박해하는 핑계가 될 수 없어요.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박해당한 수련생의 가족에게 너무 높게 요구해서는 안 되고 수련생을 이해하고 관심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수련생의 선한 마음에 크게 감동을 받은 이 가족 수련생은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자신의 정서를 통제하기 힘들고 머릿속에 계속 아내를 잡아간 경찰을 찾아가 복수하려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필경 법을 배웠기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아주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금방 말한 그 수련생이 또 “사실 개인적으로 역사상 아마 이런 역할을 하도록 배치했을 겁니다. 수련생에게 바르지 못한 장이 있기 때문에 사악의 박해를 초래했을지도 몰라요. 수련생 사이에 장이 서로 영향 주는 것이니까요.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하고 수련생보고 이 역할을 부정하고 다시는 구세력의 배치를 따라 가지 말며 그런 생각들을 포기하고 대법에 부합되지 않은 생각을 제거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고 바른 길을 걷고 대법을 실증하라고 하는 것일 겁니다”라고 했다. 당시 수련생들은 자비로운 마음과 안으로 찾는 상서로운 마음이었고 한 차례 정체 승화를 체득했다. 며칠 후 다시 그 가족 수련생을 만났는데 딴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열정적으로 수련생과 인사했고 좋지 않은 물질이 없어졌다. 여기까지 쓰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직접 전화하고 삼퇴를 잘 권하며 아주 정진하는 수련생도 만나봤다. 그녀 및 많은 수련생도 수련생이 걸어 나오지 못했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으며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았기에 납치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바로 스스로 자신 및 이 팀에서 정진한다고 생각하는 수련생들이 어떻게 다른 수련생의 박해를 봐야 하는가 였다. 어떤 사람은 “박해 당일 우리는 거리에서 진상을 알렸지만 아무런 교란도 받지 않았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진짜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대로 세 가지 일을 잘한다면 효과적으로 박해를 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정체로서 다른 박해당한 수련생을 보고 가만있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우리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철저히 박해를 해체하는 정념이 있어야 하며 박해당한 수련생을 도와줘야 한다.

지역지간의 간격을 타파하고 정체를 형성하다

박해해서부터 지금까지 헤이룽장성은 줄곧 박해가 심한 지역이다. 쐉청 대법제자가 받은 박해는 더욱 참혹하다. 이건 쐉청 수련생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법제자가 하나의 정체로서 쐉청의 문제는 단지 쐉청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고 기타 지역 수련생도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을 찾아보고 주변 지역에 있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전에 사람 마음으로 쐉청 수련생의 정진함을 보고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라 배우고 쐉청 수련생을 모범으로 모방하고 의지한 적이 있지 않은가, 법에 서서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4]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표면의 거창함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이런 법에 있지 않은 표현은 사악에게 박해할 틈을 줬고 사악의 박해를 더욱 조장시켰다.

맺음말

정법은 이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상당히 긴급하다. 쐉청의 정황으로 볼 때 박해는 여전히 큰 범위 내에서 계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사악하다. 물론 어떤 지역에서 잘해서 환경이 이미 상당히 느슨해졌을지도 모른다. 대법 수련의 요구는 무사무아(無私無我)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므로 어느 법입자가 해내지 못하면 거기에 누락이 있는 것이고 바로 우리가 원융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련의 개체 혹은 하나의 수련 팀이 어떻게 잘 수련했든 막론하고 대법제자의 정체에 하나의 정념이 있어야 하고 전반적으로 구세력을 부정해야 하며 철저히 이 한 차례 박해를 끝내고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 구세력의 속임수에 빠져 사당문화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수련의 개체로서 우리는 시시각각 법으로 대조하고 안으로 찾아야 하며 철저히 박해를 끝내야 한다. 대법제자는 모두 법 중에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으므로 우리 함께 순정한 일념을 내보내자. 사부님께서 가지시려는 것을 원융하고 중생을 구도하자.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의 자비로 지적해주시고 문장 중 언급된 수련생에게 양해를 바란다. 일에 대해 논하지 사람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아니고 정체 제고를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수련생 문장에 대한 평어(評語)’[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3-일깨움’[4]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원문발표: 2017년 11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27/3571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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