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시(陝西)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 수련은 마지막에 이르렀다. 마땅히 더욱 정진하고 정념이 더욱 있어야 하지만 한동안 힘이 모자라고 뜻대로 되지 않으며 심신이 피로한 것을 느꼈다. 이전의 그런 앞으로 나아가고 용맹정진을 하는 열정이 없는 것을 느꼈다. 이런 소극적인 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자신도 이런 상태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개변하려 하지만 힘이 나지 않고 방법이 없는 것을 느꼈다.
여러 해 동안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일에 줄곧 바쁘고 긴장하게 보내느라 식사와 잠을 매우 적게 잤다. 나는 아마 이런 장기적인 과부하 상태에서 긴장을 풀기 어려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의 수련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사고하지 못해 소극적이고 나태해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현재 눈앞의 몇 가지 일을 잘 처리한 후 자신의 문제를 찾아 조정하고 전면적으로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잇달아 발생한 몇 가지 일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남편은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딸은 도시에서 일하고 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두 아이는 이미 나이가 많고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았는데 자녀가 결혼하지 않은 사례는 내 친척, 친구와 동창 중에 유일하다. 결혼을 일찍 한 다른 사람의 자녀들은 손자까지 이미 결혼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적지 않은 논의가 있었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데 영향이 좀 있었다. 이에 대해 나는 방법이 없었고 사부님께 빌어도 보았다. 그러나 줄곧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몇 달 전 아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 줄곧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집에서 놀고 있었고 우리 두 사람은 나의 약간의 퇴직 급여로 살았다.
본래 딸은 괜찮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사가 갑자기 사직해 새로 온 상사는 자신의 사람을 배정했고 결국 딸의 일자리에도 위기가 나타났다.
아이들 문제에 다른 일부 일까지 더해져 나는 교란이 확실히 큰 것을 느꼈다. 특히 아들과 한 번 대화를 해보고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알고 보니 아들은 나에 대해 마음속에 매우 깊은 응어리와 오해가 있었다. 그는 수련을 하고 싶지 않고 결혼도 하고 싶지 않으며 이후에 세상을 두루 방랑하면서 일생을 끝내고 싶다고 했다. 비록 그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나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우리 사이에는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내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했다. 나는 줄곧 그가 대법에 대해 바른 인식이 있다고 인식했다. 때문에 아들이 한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고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녀들은 모두 대법에 대해 정념이 있었고 내가 수련하는 것을 지지해왔다. 내가 바빠서 늘 밥을 하지 못해도 아들은 퇴근한 후 내가 바삐 보내는 것을 보면 어떤 원망도 하지 않고 밖에서 음식을 사갖고 와 우리 두 사람은 한 끼 식사를 했다. 간혹 집에 돌아와 식사를 못하고 출근해도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다. 아들은 줄곧 나를 매우 이해해줬다. 그러나 그가 이런 생각이 있는 줄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대법제자 아이도 마땅히 정상적인 혼인, 가정과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력과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여러모로 괜찮은 자녀가 적합한 배우자를 찾지 못해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가? 또한 갑자기 왜 일자리를 잃고 생활력을 상실했는가?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것은 박해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나에게 발생하는가?
나는 진지하게 사고하기 시작했고 수련 중 누락을 찾았다.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는가? 찾아보니 정말 적지 않은 문제를 찾아냈다. 많은 문제를 나는 줄곧 틀린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고 대법에 따라 했다고 인식했다. 지금 새롭게 법에서 가늠해보고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아래 몇 가지 방면에서 표현된다.
1.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2]란 대법의 요구, 이 신 우주 생명의 사상경지 표준에 대한 이해에서 먼저 주입당한 사당문화의 요소를 대법 중에서 바로잡지 못했다. 초기에 수련을 시작하면서 나는 줄곧 자신에게 이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사상 중에는 이런 일념이 있었다. 이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굽은 길을 걸었고 많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이 일념은 시종 없어지지 않고 더더욱 확고해졌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우리에게 주입한 중국공산당 사당의 당문화, 마치 심오해 보이는 거짓 이치, 무슨 ‘개인의 이기주의와 투쟁하고 수정주의 사상을 비판한다’, ‘뇌리를 스치는 개인 이익을 혹평하자’ 등등을 당시 초등학생의 철없는 상태에서 자연히 받아들였고 의식 중 사당이 선전한 영화, TV와 문예작품 중에 수립한 높고 크고 완벽한 영웅인물이 바로 모범이라고 여겼다.
비록 여러 해 동안 법공부를 하고 이론적으로 당문화가 어찌된 일인지 알지만 어려서부터 받아들인 당문화는 잠재의식 중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자신도 모르게 행위상 이런 것이 존재했다. 법공부에서 표현되는 것은 표면적인 이치를 비교적 중히 보며 자신도 모르게 사당 문화에서 공부한 이론저작 방식으로 법을 배우고 법을 이해했다. 대법을 깊이 이해하는 배후의 내포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법공부는 겉보기에만 그쳤다. 대법의 구체적인 일을 법공부, 연공, 발정념보다 중히 여겼다. 내가 맡은 일 혹은 수련생이 요구한 일은 모두 앞자리에 놓고 침식을 잊고 집안의 어떤 일이든 모두 뒤로 미루어 놓았다. 자신의 일체 일은 모두 사사로운 일이며 마땅히 뒤로 미루어 놓아야 한다고 극단적으로 인식했다.(법공부, 연공, 발정념 등을 포함). 타인의 일은 모두 우선 배치하고 오직 대법 일이라면 기꺼이 발 벗고 나섰다. 다른 사람이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을 하고 대법의 일은 바로 나의 일이라 생각했다.
잠재의식 속의 이런 당문화의 극단적인 인식으로 요 몇 해 동안 줄곧 이 관계를 바로 잡지 못했으며 또 줄곧 구세력이 사상 중의 틈을 타 법공부, 연공, 발정념이 늘 교란을 받았다. 특히 발정념을 늘 제시간에 못하거나 혹은 마음이 조용하지 못했다. 연공 역시 보증하지 못하고 법공부를 하면 졸았다. 비록 자신도 매우 조급하지만 일이 있으면 또 구체적인 일로 바빠 늘 이 일을 다 하면 다시 보충하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늘 이 일을 다 하지 못해도 다른 할 일이 생겨 시간이 없어 보충하지 못했다. 인식의 극한으로 요 몇 해동안 일은 적지 않게 했고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으며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크고 작은 일이 정말 끝이 없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후에 갈수록 지탱하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신이 피로하기 그지없고 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많은 방법을 생각해 이 상태를 개변하려 노력했지만 단지 좋아졌다가 또 그대로였다. 근본적으로 제고하지 못해 매우 고민이 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이 있으면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지탱하고 있었다.
2. 법을 이해하는데도 매우 심한 당문화 성향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법공부 중 정체제고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한 명의 제자도 빠뜨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해 법공부, 수련에서 정체제고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수련생이 법 인식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면 직설적으로 지적하며 자신의 법 중의 인식을 불변의 표준으로 간주하고 타인에게 요구했다. 간혹 어떤 수련생은 받아들이고 감사를 표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이해하지 못해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타인을 위해서이며 정체 제고를 위한 것이라 인식해 말하는 어조, 태도가 강경하고 우격다짐으로 강요해 다른 수련생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워 일부 간격이 생겼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여러 수련생들은 배후에서 논의하고 어떤 수련생은 면전에서 나에게 여러 수련생들이 나를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 수련생은 왜 이렇게 나약하지? 말을 좀 심하게 하면 견디지 못하고 편하고 기쁘게 수련을 하려 하는데 이것이 수련인가?’라고 생각했다. 매 개인의 접수능력이 다르며 법에 대한 인식, 이해도 다르다. 고정된 방법과 잣대로 처리하면 안 되며 모두 똑같을 수 없고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런 인위적으로 어떤 한 가지 목적에 도달하려는 행위야말로 당문화의 사유 패턴인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3. 나는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높게 말해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도 매우 고민이 됐고 계속 이렇게 하다간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자칫하면 역효과를 내게 될 것 같았다. 차라리 구체적인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해 컴퓨터를 배우고 자료를 만들었다. 이 점에서 완전히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았고 그것을 돌파하지 못했다.
평소 접촉이 많은 수련생과도 말하는 방식이 너무 직설적이고 타인의 접수능력을 배려하지 않아 늘 일부 모순이 생겼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나를 점화하고 일깨워 주셨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틀린 것이다. 나는 노력을 해 고치려고 했다. 비록 개변이 있었지만 그런 고자세의 질책식 어조에 사람들은 늘 불편함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의도는 좋지만 좋은 효과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점에 대해서도 나는 매우 고민이 됐고 차츰차츰 진상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말함에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이 있었다. 말을 하기만 하면 자신이 아는 것, 이해하는 것을 전부 상대방에게 말해 설득시키려 하고 상대방에게 나의 저의를 이해시키려고 했다. 아니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입을 열지 못하는 것처럼 무엇에 의해 억제된 것 같았다. 이것은 대법의 업무와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확실히 자신이 이 방면에서 심혈을 기우려 돌파해야 한다.
4. 법공부를 하는데 이후에 형식적으로 해 대법의 내포를 잘 보지 못했다. 밍후이왕에서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고 자신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생각되어 많이 보고 수련생에게 추천을 했다. 이로 인해 한 극단으로 빠져 천천히 수련생이 교류 중 지적한 문제를 자신의 수련 중의 문제와 대조해 법의 지도를 벗어났다. 이 문제를 발견한 후 놀라서 온 몸에 땀이 났다. 이것은 지름길로 가려는 것이 아닌가? 법공부를 하면서 법으로 자신을 지도하지 않는 것은 법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두려운가!
5. 자식들의 혼인 등 문제를 처리하는데 줄곧 순리에 따르자는 생각을 품었다. 혼인은 하늘이 정한 것이며 인연이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의 혼사도 모두 간섭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수련하지 않으니 자신들에게 달렸다. 나의 임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원칙상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일에서는 구체적인 방법에서 주도면밀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아들이 처음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아들은 내가 여자 친구에게 션윈 CD를 준 것을 원망했다. 두 번째 여자 친구는 1년간 사귀었고 아들은 나를 전혀 만나지 못하게 했지만 결국 헤어졌다.
세 번째 여자 친구는 처음부터 우리집에 오기를 원했고 첫인사 때 선물도 주었다. 그러나 우리집에서 식사한 후 TV를 켜고 ‘9평 공산당’을 보게 됐다. 여자 친구는 당시 아무런 말도 없었고 이후에 어머니가 동의하지 않기에 설득해야 한다면서 1년을 끌었다. 그녀가 당원이라 고의적으로 우리집에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생각 외로 그녀 직장에서 편지를 뜯어보았다. 직장 책임자는 그녀를 협박해 일자리를 바꾸라고 했고 연이어 3일간 면담했으며 두 사람의 연애관계를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마지막에 가족과 직장의 압력으로 그들은 헤어졌다.
이 일로 아들은 매우 큰 상처를 받았다. 물론 아들은 내가 여자 친구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그녀를 구하려 한 것임을 알고 있다. 아들은 줄곧 나에게 이 일을 알려주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상처가 매우 깊었다. 구세력은 이어 아들에게 병업 가상을 연화했다. 직장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성기능 방면에 질환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들은 부담이 매우 컸다. 그러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이것이 정말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럴 리 없고 모두 구세력이 연화한 가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구세력에게 이런 짓을 하지 말라,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은 상심했고 대가 끊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단지 그에게 법공부를 하라고 하고 대법이 좋다고 염하라고 했으며 그가 수술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아들은 더욱 상심했고 아버지가 있었다면 나처럼 자신을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욕을 잃었다. 직업 때문에 조성된 병인데다 업무도 순리롭지 못해 사직했다. 그는 다른 직업을 찾으려 생각했다. 아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 우리 두 사람은 대화하기 어려웠다. 나도 아들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일보까지 발전했다.
또 다른 일부 문제는 대부분 당문화의 교란과 영향으로 나타났다.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겠다.
이상의 이 방면의 문제를 찾고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자신의 수련상 나타난 누락으로 구세력이 틈을 탔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동안 나는 진지하게 안으로 찾았고 반성했다. 법공부와 진지한 사고를 거쳐 나는 인식했다. 수련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가장 표면에 이르렀다. 장기적으로 세뇌되고 주입된 당문화 독소는 내 사상 중에 변이된 관념, 사유패턴,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과 사유를 형성했고 일을 하는 방식과 언어표현 등은 내가 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동화하는데 엄중한 장애를 주었다. 우리 이 세대 사람으로 놓고 말하면 태어나자마자 사당에 의해 소위의 ‘홍색 후계자’가 됐고 대량의 당문화를 받아들였다. 사당의 여러 차례 운동, 특히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나이가 어리고 분별능력이 없어 사상 중에 찍힌 낙인이 매우 깊었다. 연세가 좀 많은 사람은 일부 전통문화의 것이 있지만 우리 이 세대는 불행히 당문화에서 성장했다. 구세력은 정법을 좌우지하려고 의도하고 있다. 어떻게 좌우지하는가? 나의 이해는 바로 역사상 법을 전하기 위해 기초를 다진 신전(神傳)문화를 파괴하고 사악한 당문화로 대체했다. 이 사악의 당문화는 바로 구세력이 정법을 좌우지하기 위해,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만든 맞춤형이다. 가장 사악한 것은 바로 사당이 일관적으로 강요한 민중에 대한 소위 ‘사상개조’다.
정법이 시작됐을 때 많은 수련생이 사오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당문화 중에서 형성된 관념, 사유방식으로 인해 문제를 사고하고 법을 이해할 때 늘 법리를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다른 공간의 공산사령의 존재형식을 제거했다. 그러나 사람의 사상에 형성된 사유패턴과 관념 등 심층의 것은 여전히 사람의 사상을 통제했다. 특히 사당 문화가 채택한 ‘낡은 형식에 새 내용을 담다’는 대들보를 훔쳐 내 기둥으로 바꾸어 넣는 방식으로 다른 개념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다. 당문화 중에서는 같은 단어의 내포에도 모두 새로운 함의를 부여해 이미 신전문화의 내포와 완전히 다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사유패턴의 개변, 무신론, 진화론의 영향으로 현대인은 법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난이도가 존재한다. 특히 중국인은 더욱 깊은 피해를 입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이미 명확히 이 방면의 문제를 지적하셨다. 어떤 심층 원인은 만약 공을 들이지 않으면 느끼지도 못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가 법을 계속 깊이 이해하는데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 ‘사(私)’자와 ‘공(公)’자는 당문화에서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개인의 일은 ‘사’적인 일이고 업무상의 일은 ‘공’적인 일이라 이해한다. 사당은 일체 영역을 통제하고 ‘일체를 지도한다.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그것은 모두 상관하며 선전, 제창하는 것이 ‘작은 집을 버리고 큰 집을 돌보다’는 소위의 ‘공평무사(大公無私)’였다. 선전한 영웅인물은 모두 당을 위해 일체를 바치고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포함한 소위 모범인물이다. 이것은 사교의 본성이 결정한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사람들을 속여 자발적으로 악마를 위해 몸을 바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전문화에서 이 문제의 내포는 완전히 다르다. 사람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중의 하나다. 개인마다 모두 하나의 작은 우주이며 대우주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중국은 역사상 줄곧 ‘민귀군경(君輕民貴)’을 제창하고 사람의 도덕으로 한 사람을 가늠하며 재산으로 귀천을 논하지 않았다. 대법 중에서 말한 ‘부이유덕(富而有德)’[4]은 ‘XX당을 위해 헌신한다’와 근본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공(公)’은 대중의 일이고 대중의 이익이며 그 중 자연스럽게 매 개인의 이익을 포함하며, 개인 위에 군림하는 ‘당의 이익은 일체보다 높다’는 이치는 맞지 않다.
수련 중에 나타난 문제에 관련해 나는 ‘해체 당문화’를 읽었다. 책을 보기 전에 녹음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은 진지하게 자신을 대조하고 법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자신의 사상 중에 당문화의 독소가 매우 깊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문제는 이미 습관이 되어 틀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 배우고 대조해보니 확실히 옛사람이 말한 ‘노산(廬山)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단지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네’란 말의 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일부 법리에 대해 표면으로 이해했지만 지금 책을 재차 보면 완전히 이해가 다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말하면, 병 하나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 넣고 그것의 마개를 꽉 틀어막아 물에 던지면 그것은 역시 물밑까지 가라앉는다. 당신이 그 속의 더러운 것을 쏟아버리되 많이 쏟아버리면 버릴수록 그것은 더욱 높이 떠오를 것이며, 완전히 쏟아버리면 그것은 곧 완전히 떠오른다. 우리는 수련과정 중에서 바로 사람 몸에 존재하는 각종 좋지 않은 것들을 버려야만 비로소 당신이 승화해 올라오게 할 수 있는데, 이 우주의 특성이 바로 이런 작용을 한다.”[5] 이 단락 법에 대해 이전에 이해가 매우 얕았다. 지금 읽으면 더욱 깊은 이해가 있다. 우리는 구세력에 이용당해 사당은 우리의 머리에 많은 사악의 당문화 사설을 주입해 우리는 법공부를 해도 정확히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그 더러운 사설(邪說)을 머릿속에서 제거하고 자신의 사상과 신체 이 용기를 깨끗이 씻어야만 대법은 우리 신체에 진입하고 법에 동화할 수 있다. 사상에 사악의 당문화의 더러운 것이 어찌 대법과 함께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대법에 동화하려면 반드시 당문화를 철저히 제거하고 근본부터 뜯어 고쳐 순정한 사상으로 완전히 대법에 동화해야 한다.
과거에 나는 밍후이왕에서 보도한 많은 외국 대법제자가 대법에 대한 이해가 순정하고 순진하게 이해하고 인식한 것을 보았다. 서양 관중이 션윈을 관람한 소감을 말한 것은 중국 관중과 명확히 다르다. 지금 알았다. 그들은 사당문화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현대의식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들은 신전문화와 상통한다. 하지만 중국인의 사상은 이 수십년간 사당문화에 개조되어 수천년 신전문화는 뿌리마저 뽑혔다. 무신론, 진화론 이 한 세트의 사설은 국가폭력을 배경으로 강제로 중국인에게 주입해 중국인은 피할 수 없었고 자각적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이 한 세트의 사설을 받아들였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미 철저히 세뇌됐다. 이 세대 사람은 너무 깊게 중독됐다. 이것이 바로 대륙에서 진상을 알리는 난이도 중 하나다.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면 비록 매일 법공부를 하지만 법에 대한 이해에서 여러 정도의 장애가 존재한다. ‘전법륜(轉法輪)’을 이미 여러 번 보았지만 매 개인이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많은 상황에서 여전히 당문화 중에서 형성된 관념으로 인식하고 대하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자신의 수련과정과 안으로 찾은 것을 돌이켜보면서 특히 이 문제를 느꼈다. 때문에 우리 현지 수련생에게 ‘해체 당문화’ 이 책을 보라고 제의했다. 어떤 수련생은 보고 정말 이러하며 이번에 보고 원래 많은 문제가 모두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해체 당문화’를 본 후 사상 중에서 반영된 당문화를 분별할 수 있으며 머릿속에 나오기만 하면 그것을 부정하고 제거하며 행위를 바로잡으니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에 매우 큰 제고와 돌파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수련생 여러분은 바쁘면 녹음을 듣고 시간이 있으면 가장 좋기로는 책을 보면 제고하지 못하는 일부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문제를 찾았기에 중시하고 자신을 개변하기로 결심했다. 법으로 바로 잡아 자신에게도 차츰 일부 명확한 변화가 있었다. 우선 세 가지 일에 부동한 정도의 개변이 있었고 자신을 엄격히 요구할 수 있으며 법공부를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마음에 들어가게 할 수 있었다. 발정념도 제시간에 하며 마음이 조용해졌다. 더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하고 이 방면에서 진정으로 제거하자 말이 평화롭고 어조가 온화한 것을 느꼈다. 그런 자기 생각이나 요구를 남에게 억지로 주입하고 높이 앉아 군림하는 기세가 없으니 아들과의 관계도 변화가 일어났다.
선의의 소통을 통해 지금 아들은 나와 대법을 이해했다. 내가 아들에게 보라고 주면 그는 다 보았다. ‘9평’을 보고 심태에 변화가 발생해 더는 절망하지 않았다. 딸의 직장도 일부 변화가 생겼다. 일체가 모두 좋은 방면으로 변했다. 나도 더는 그렇게 피로하지 않았다. 활기를 찾고 매일 연공을 견지할 수 있었고 초기 상태로 되돌아 간 것 같아 수련에 대해 더욱 확신이 생겼다.
딱딱한 얼음이 이미 녹았고 추운 겨울이 이미 지나갔다. 봄날은 멀지 않았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부이유덕(富而有德)’[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7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21/3569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