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1992년 나는 심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5일간 받아서야 살아났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인한 심한 뇌 외상 후유증으로 머리가 극심하게 아팠고 거기에 고관절 괴사, 간염, 경추 질환 등 통증으로 매일 혼미했고 걸음걸이도 어려워 약을 한 줌씩 먹었으며 출근도 하지 못했다. 1996년 1월 나는 운 좋게 파룬따파를 만났다. 수련 후 병이 없어져 몸이 가뿐했고 우주에서 가장 행운을 가진 생명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됐다.
사당(邪黨)이 대법을 박해한 후 중생은 거짓말에 중독됐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삼퇴하는 것은 중생이 구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됐고, 진상 알리기는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이 됐다. 사부님께서는 “대법도(大法徒)는 중생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이네”[1]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장기간 사람을 대면해 직접 진상을 알리면서 사람 구하는 것을 내 생명에 융합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지금까지 7, 8만명 정도의 소중한 중국인을 사당 및 그 부속 조직에서 탈퇴시켰다. 중국 공산당조직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중생이 구도될 수 있는 것은 대법의 힘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나 마져도 살아있을지 모르는데 어찌 사람을 구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오늘 나는 내가 어떻게 법의 지도로 사람의 정을 내려놓고 법도의 자비로움을 수련해내어 사람 구하는 힘이 생겼는지 말하려 한다.
법도의 자비로움을 수련해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것은 중생을 구원하는 동시에 당신들 수련 중의 개인 제고와 집착을 제거하는 등의 요소가 있고, 또 대법제자들이 수련 중에서 법을 위해 책임지는 요소가 있으며, 동시에 또한 당신이 최후 원만 속에서 어떻게 당신 자신의 그 세계를 풍만(豐滿)하게 하는가 하는 등등의 이러한 문제가 있다.”[2]
진상을 잘 알리려면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속인 때 나는 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남편과 딸에 대한 정이 가장 깊었다. 나와 남편은 죽마고우였다.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시동생, 시누이는 우리와 함께 생활했고 우리에게 딸 둘이 있어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말 돈 한 푼도 쪼개 쓰고 쌀 한줌도 함께 먹으면서 나에게는 아끼면서도 아이들과 남편에게는 잘해주려 했다. 우리 두 사람은 농촌의 교사였는데 이후에 남편은 이직시험을 보아 파출소 소장이 됐다.
처음에 수련할 때는 나에게 어떤 집착이 있는지 닦을 줄 몰랐다. 생활이 좋아지자 남편은 외도를 했다. 나는 수련인이기에 심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투지 않았지만 마음은 아주 부글거렸고 여러 차례 눈물로 지새웠다.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가려 할 때 딸은 열이 났고, 바닥에는 밀가루 한 대야를 발효하고 있었다. 나는 몸은 나왔지만 마음은 집 걱정을 하면서 집에 자주 전화했다. 붙잡혀 돌아온 후 그들은 먼저 남편을 불러왔다. 남편은 발끈 화를 내며 나에게 대법과 남편을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다 가지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바른 깨달음에서가 아니라 정 때문이었다. 남편은 안 된다면서 반드시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이후에 또 정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압력을 받은 남편과 진짜로 ‘가짜 이혼’ 수속을 했다.
나는 중국 공산당의 불법 노동교양을 세번 받았다. 처음에 몰랐는데 이후에야 겉보기엔 진상 알리기 때문인 것 같지만 실질은 내 수련에 누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남편에 대한 집착이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혀 고초를 당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정(情)으로 산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곧 정 속에 잠기어 아주 헤어나기 어려운데, 정을 떠나지 못하면 곧 수련할 수 없고, 제고할 수 없다.”[3]
인간 세상에서 내가 가장 내려좋지 못한 것으로 나의 희로애락을 좌우지하는 것은 남편과 아이였다. 어느 정도인가? 남편이 혼인을 배반했는데도 나는 남편이 너무 좋았다.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 갑자기 남편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일념이 떠올라 나는 갑자기 멍해졌고 아무것도 생각하지않고 곤두박질치듯 남편 근무지에 갔다. 남편은 다른 사람과 웃고 말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꾸짖었다. “여긴 왜 왔어? 가!” 아이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마음은 딸을 입에 물고 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집착하는데 구세력이 틈을 타 박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노동교양소에 불법 수감됐을 때 한번은 내가 가장 귀여워하는 작은 딸이 울면서 나에게 전화했다. “엄마, 아빠가 그 여자와 결혼했어요. 나를 돌볼 사람이 없어요. 엄마가 있어야 해요, 엄마 돌아와요!” 딸은 전화를 끊고 도망갔다. 오장육부는 찢어지는 것 같았고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악인의 전향 공격을 받고 있었다. 온몸에 옴이 났고 피고름이 흘렸으며 1미터 너비에 2미터 길이 밖에 되지 않는 샤오하오(小號)에 수감됐으며 날마다 벌을 섰다. 근심, 원망, 억울함, 그 사람 마음은 정말 아팠다. 거기에 육체적인 고통까지 더해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4] 였다. 나는 그런 마난(魔難) 속에서 어렵고도 단호하게 사람 생각을 배척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전향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수련해낼 겁니다. 사부님께서 계시는데 아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관여하고 계시는데 어떤 대가도 아이들이 얻은 것과는 정비례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저는 제삼자와 남편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제자가 사람 마음을 배척할 때 사부님께서 나에게 조금씩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주어 내 생명은 정화되고 승화됐다. 전 남편이 노동교양소에 나를 보러 왔을 때 새 부인도 왔는데 나를 만나기 미안해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사람이 멀리에서 왔는데 만나야지요.” 라고 말했다. 나는 대법 수련인답게 평온하게 새 부인에게 ‘애들 고모’ 라고 부르면서 내 아이들을 돌봐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그녀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본인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받은 진상자료를 동료들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들 두 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삼퇴를 시켰으며 그의 동료들도 모두 삼퇴했다.
이후에 전 남편은 후회가 되었는지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두 차례 나를 만나 이혼할 테니 나와 재결합하자고 했다. 나는 새 부인과 그녀의 많은 가족이 다 대법을 인정하고 삼퇴해 모두 구도 받은 중생임을 염두에 두고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해야지 그들을 대립 면에 밀어내어 이 만고에 다시 없는 기연을 잃어서는 안 되기에 대법제자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전 남편에게 그녀를 잘 대하라고 권하고 거절했다.
사람은 다 명백한 일면이 있다. 우리가 정말 자신을 사부님의 사자로 여기고 중생을 사부님의 육친으로 여겼을 때 그들은 모두 자비로운 힘을 느끼고 대법에 구도된 은혜에 감사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말했고 다른 수련생을 만났을 때에도 내가 좋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이 나의 임금 지급을 중단시켰을 때 그녀가 날 찾아와 도와주었다.
이혼한 후 나는 예전처럼 전 남편의 가족을 대했고 그들도 나를 가족처럼 대했다. 시아버지는 92세다. 나는 진상을 알리러 노인이 살고 있는 곳에 가기만 하면 물건을 사들고 시아버지를 보러갔다. 내가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노인은 내 손을 잡고 내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는 네가 그립구나.” 라고 말했다. 나는 매번 시아버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알려주었다. 넷째 동서는 말했다. “둘째 형님, 제가 매일 아버님을 돌보러 와도 걸핏 하면 넌 누구냐고 물으면서 알아보지 못하는데 둘째 형님만은 알아보네요.”
대법제자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정법정각(正法正覺)의 생명을 닦아내는 것이다. 정을 단번에 깨끗하게 없앨 수 없기에 사람 마음은 언제라도 튀어나올 수 있다. 나오면 나는 배척했는데 당시 좋지 않은 물질이 해체되는 것을 의식했으나 여러 번 곤두박질을 하고 큰 혹이 생겨서야 정신을 차리고 배척했다. 정말 잘못도 적지 않게 범했다.
딸은 은행에서 일하는데 여러모로 다 우수하고 어른들에게 효도를 한다. 사위는 늘 실직 당한데다 성격도 좋지 않았다. 사위가 딸을 욕할 때면 내 마음은 불편했다. 그러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그도 좋아졌고 최근에는 나와 같이 나가 사람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보아하니 역시 우리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연공하고 있는데 전후 사정이 생각나 연공하지 않고 전 남편을 찾아가 따지고 싶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다른 사람의 수평기를 넘어뜨려 그 사람은 나를 잡고 배상하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수평기가 망가진 것은 평형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나의 평형 되지 못한 마음이 번거로움을 불러온 것이다. 주머니에 700위안(한화 117,000원)이 있어 전부 그 사람에게 주었다.
수련은 본인이 대법제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고 사부님 말씀대로 수련해야 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5] 본질적으로 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가르치고 이끌어주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이다. 사부님에 대한 감격을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잘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정으로 심혈을 기울여 사람을 구하다
2005년 노동교양소에서 집에 돌아온 후 ‘9평 공산당’을 전하고 삼퇴를 권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빠 일가는 깊은 산에 들어가 땅을 도급 맡아 농사를 지었다. 내가 처음 외출해 삼퇴를 권한 곳이 바로 산이었다. 나는 버스를 몇 시간 타고 산기슭에 이르러 길을 물었는데 아직도 4킬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나는 걷고 걸어 멀리 흰 집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방향으로 갔는데 잘못 갔던 것이다. 가까이에 가서야 흰색 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에 농사짓는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은 나에게 열정적으로 그들 집으로 가자면서 내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곳에 또 집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곳에 투숙하기로 결정했다. 큰 길이 없어 나는 고랑을 넘어 갔는데 모두 잡초를 쌓아올린 덤불이었다. 그 집 마당에 이르렀을 때 신발도 잃어버렸다. 그들은 손전등을 켜고 지름길로 나를 오빠 집에 데려다주었다. 문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저녁 8시 반이었다. 질녀와 올케 언니는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다. “아이고, 어떻게 왔니?” 라고 물었다. 그날 저녁 오빠 올케 언니, 질녀 온 가족, 조카도 삼퇴에 동의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웠다.
이튿날 조카사위는 밭을 갈러 갔다가 돌아와 말했다. “삼퇴하면 정말 평안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믿습니다.” 밭을 갈 때 쟁기 손잡이가 갑자기 아주 심하게 조카사위 가슴을 쳐 옷에 3cm 깊이의 구멍이 났지만 피부는 다치지 않았던 것이다. 가을에 나는 또 오빠 집에 갔는데 질녀의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이모할머니, 삼퇴하면 정말 무사평안해요. 저에게 일어난 일이였는데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아빠가 사륜차에 탈곡기를 실었고 전 차에 서서 잡고 섰는데 길이 나빠 난 차 밑으로 딸려 들어갔어요. 당시 차가 저절로 갑자기 멈췄고 아빠는 무슨 일인지 몰라 차에서 내렸는데 제가 차바퀴 앞에 있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셨어요.”
당시 삼퇴 경험에서 나는 사부님이 자비롭고 불법(佛法)은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퇴하면 평안을 보존한다. 대법이 말한 것은 전부 정말이다.
나는 오성이 나쁘긴 하지만 정말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부의 법신이든, 바른 신이든, 대법이 세간에 배치한 거대한 마당이든, 인연 있는 사람과 구도할 수 있는 사람을 각종 환경을 이용하여 당신 앞에 오도록 할 것이며, 그에게 진상을 알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해야 하며, 당신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6]
나는 노력했다. 수련생이 시골에 자료를 배포하러 가거나 재래시장에 진상을 알리러 갈 때 나도 따라갔다. 차츰 나 혼자 말할 때가 많았다. 친척, 아는 사람부터 시작해 태어났던 마을, 결혼했던 마을부터 시작해 향, 진, 현까지 우리 현에서 인근 현까지 작은 딸이 결혼한 도시에서도 말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나는 대법제자라고 생각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의 힘이 가장 크다고 알려주셨다. 자비로움은 사람이 정을 닦아버린 후의 선량한 상태라는 것을 수련인은 다 안다. 나는 조금씩 정을 닦아버리는 과정 중에서 절실하게 자비의 힘을 체험했다. 진상 알리는 효과가 점점 좋아 지금은 하루 두 번 나가는데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다. 중국 공산당조직에 가입한 사람에게 말하기만 하면 탈퇴하는데 일반적으로 하루에 몇 십 명을 탈퇴시킬 수 있다.
올 7월 고속철도가 우리 현까지 놓여졌다. 나는 차에서 내려 시공 공사장을 다니며 진상을 알렸다. 2미터 높이 노반 위에 사람이 있기만 하면 나는 기어 올라갔고 아래에 사람이 있으면 내려갔다. 곳곳에 각진 돌들이 있어서 걷기가 아주 나빴다. 어느 한 곳은 도저히 내려갈 수 없었지만 아래 세 사람이 있었고 마지막에 아는 사람이 철사다리를 놓아주어 기어 내려갔다. 노동자 중에는 현지 사람이 있었고 또 산둥, 허난, 랴오닝 등 다른 성(省) 사람도 있었다. 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만날 기회가 또 있겠는가? 3.5킬로미터 길에서 근 30명을 만났는데 인정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멀리 간 후 되돌아보니 구도 받은 사람들이 보는 눈길은 정말 아주 감격됐다. 그날은 밝은 태양이 높이 떠 있어 시멘트와 돌이 아주 뜨거웠다. 나는 기어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걷다보니 마지막에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꺼워 아주 괴로웠지만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시느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실까? 우리가 중생을 위해 겪은 고생이 다 무엇이겠는지 생각했다.
진상을 알릴 때 나는 사람을 고르지 않았다. 나는 누구를 보든 다 좋아보였다. 사부님께서 “전 세계, 모든 세상 사람은 다 나의 친인(親人)이었다.”[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람이 소중하지 않은가? 그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중생을 육친으로 여기면 그들도 우리를 육친으로 여긴다.
나는 늘 시장 문 앞에 서서 일을 찾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 사람은 매번 멀리에서 나를 보면 외쳤다. “누님, 파룬따파하오!” 그날은 8월 15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동생, 월병을 드셨나요?”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걸 살 돈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기다리세요, 내가 사줄 테니” 나는 몸을 돌려 슈퍼에 들어갔다. 아침 시장을 볼 때 나는 이곳을 지나갔는데 귤, 과일을 무더기로 놓고 파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사가지고 와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물건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그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반년 후 내가 또 그곳을 지날 때 단번에 한 무리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육친을 만난듯 했다. 그들은 앞 다투어 말했다. “누님, 이렇게 오랫동안 오시지 않았는데 어디에 가셨습니까? 우리는 누님을 걱정했습니다!”
길을 가다 사람이 많으면 나는 말했다. “사부님, 이렇게 많은 중생들이 구도를 받으러 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차역에는 사람이 많다. 여름에 나는 그곳에 가 진상을 알린다. 한 동안 기차역에 계엄이 선포 되었는데 검은색 경찰차가 그곳에 머물러 있었고 총을 멘 특수경찰이 왔다 갔다 했다. 나는 나와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만에 몇 십 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다.
진상을 알릴 때 나는 무슨 높고 깊은 도리를 말할 줄 모른다.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을 시작할 때는 탈당을 말하지 않고 그의 일을 묻고 말을 건넨 후 공산당은 무엇이고 파룬궁은 무엇이며 삼퇴의 중요한 의의를 말했다. 실속 있는 몇 마디 말에 사람들은 탈퇴한다. 반대하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나를 고발하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동생, 그런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정말 동생이 잘 되길 바라는겁니다.” 그 사람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이때 머리에 더 말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나와 나는 즉시 배척했다. ‘이는 구세력의 교란이다. 이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사심이다. 나는 너의 말을 듣지 않겠다. 나는 우리 사부님의 말씀만 들을 것이다. 나는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두려운 물질이 아주 빨리 제거되어 나는 이어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설 명절이 되면 속인은 모이려 한다. 설이 되면 아이들이 방학을 해 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와 계모에게 가라고 권하고 나는 혼자 집을 지킨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나가 진상을 알렸는데 7일동안에 수 백 명을 탈퇴시켰다. 그들도 기뻐했고 나도 기뻤다.
나의 셋째 큰아버지 집의 사촌 여동생 세 식구는 모두 대법을 인정하고 삼퇴를 했다. 봄에 밭을 가꿀 때 좀 다 심지 못했는데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면서 비가 내리려 했다. 부부는 사부님께 간절히 부탁했다. “대법 사부님 다 심은 뒤 비가 오게 해주세요.” 머리 위에서 번개 치고 우레가 울었지만 두 사람은 계속 심었다. 다 심고 집에 돌아오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 오는 날 진흙 길에 바퀴가 헛돌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두 사람이 사부님께 빌면 차는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 아들이 외지에서 일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아래에는 야채를 보관하는 굴이 있었다. 그는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그는 너울거리며 내려온 것 같았다면서 바로 굴 옆에 떨어졌는데 어디도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제자와 중생을 위해 모든 심혈을 다 기울이신다. 사촌 여동생 가족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언니, 대법 사부님은 정말 우리를 상관하십니다.” 사촌 여동생 마을에는 대법제자가 없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진상을 알리게 하고 사람을 구하게 했다. 진상을 안 중생은 모두 자기 위치를 바로 놓았다.
나는 주로 직접 사람을 만나서 진상을 알린다. 1년 365일 중 360일 이상 나는 진상을 알리러 문을 나선다. 1년에 하루 이틀 빼고 봄에 바람이 불고, 여름에 햇빛이 강하며, 겨울 찬바람에 뼈가 시려도 나는 중생 구도를 지체하지 않았다. 나는 어디에 가든 다 진상을 알린다. 차를 타면 차에서 말하고 길을 걸으면 행인에게 말하며 야채를 사면 야채 파는 사람에게 말하며, 밥을 먹지 않아도 음식점 사람에게 말했다. 동북의 한겨울은 영하 30몇 도여서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나는 나간다. 어쨌든 하루에 10명, 8명은 탈퇴시킬 수 있다. 가장 많을 때는 설 기간 동안 나와 수련생이 산간 마을에 ‘복’자와 주련을 가져다주면서 진상을 알렸는데 집집마다 다니면서 날이 어두워서야 집에 돌아왔다. 기록한 삼퇴 명단에는 107명이 있었다. 그 외에 아무 것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과 ‘파룬따파하오’를 인정하고 구도를 받은 생명도 있었다. 나는 나에게 하루에 최저 30명을 탈퇴시켜야 한다고 정했는데 매일초과했다. 일부러 얼마인지 세지는 않았다. 수련생이 나에게 물었는데 1년에 삼퇴한 사람만 해도 1만 명은 될 것이다. 이 몇 해 삼퇴시킨 사람을 더하면 7, 8만은 될 것이다.
대법을 수련한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다
대법제자의 돈은 대법 자원이다. 수련생이 ‘9평 공산당’을 만드는데 돈이 없어 금귀걸이, 금목걸이를 다 팔았다. 나는 이혼한 후 가진 것은 집뿐이었다. 내가 집을 팔려고 했는데 마침 전남편이 빚을 져 자신을 도와주길 바랐고 큰 딸도 집을 사려고 했다. 마지막에 전 남편의 채권자가 내 집을 사면서 1만5천 위안(한화 2,500,000원)의 빚을 제하고 나에게 5만 위안(한화 8,360,000원)을 주었다. 나는 큰 딸에게 1만5천 위안(한화 2,500,000원)을 주고 자질구레한 빚을 갚고도 3만 위안(한화 5,010,000원)이 남은 것을 모두 ‘9평 공산당’을 만드는데 썼다.
평소 퇴직금 대부분은 대법 자료를 만드는데 썼다. 나는 사부님이 상관하시기 때문에 생활 근심이 없다. 두 사위는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했다. 두 딸은 내 돈을 쓰지 않았고 작은 딸은 나에게 돈을 주기도 했다. 내 생활은 아주 간단하다. 국수에 간장을 넣어 먹으면 한 끼를 때운다. 수련생이 라면을 사는데 나는 마른 국수를 사면 몇 끼를 먹을 수 있는데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한 번은 한 수련생이 나와 기차역에 진상 알리러 갔다가 40여 명을 탈퇴시킨 후 그녀는 KFC에 가서 음료수 두 잔을 샀다. 한 컵에 8위안(한화 1,337원)이라는 말에 나는 너무 가슴 아팠다. 나는 이런 것을 마셔보지 않았다. 한 번은 158위안(한화 26,400원)의 샌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두 번이나 갔지만 돈이 아까워 사지 않았다. 자료점에 돈이 필요하면 나는 얼마든지 아끼지 않고 내놓았다.
수련생이 나에게 외모에 주의해야 한다고 귀띔해 나는 파마도 했고 입는데 좀 신경을 썼다. 진상을 알릴 때 내 경험은 외모가 정결하면 되지 얼마나 고급스럽고 유행을 따르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건은 사람을 구하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에 달렸다. 중생 구도는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나 다 알려주셨고 우리에게 자비로운 힘을 주셨고 우리를 보호해주신다.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사부님에게 죄송하지 않도록 하고 우리에게 기대를 품은 중생에게 미안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집이 없고 저금해 둔 것도 없다. 두 딸은 모두 내가 그들 집에 와 있으라고 하지만 나는 중생구도를 위주로 가방 하나를 메고 간단한 옷, 세면도구와 진상 자료를 담고 어디에 진상이 필요하면 나는 어디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수련생의 빈집, 친척 집, 작은 여관, 지하실에도 있어봤다.
노동교양소에서 교도소 대장이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해 무엇을 얻었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웃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금생에 대법제자로 되고 신의 사자가 된 나에게는 가장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고 보서 ‘전법륜’이 있으며 구도된 중생이 있고 사부님께서 무한한 영예와 미래의 아름다운 것을 나에게 다 주셨는데 뭐가 더 필요할 것이 있겠는가?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3-유일한 희망’[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도항(導航)-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4] 리훙즈 사부님의 시: ‘홍음-마음고생’[5] 리훙즈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7-미국수도법회 설법’[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제14회 밍후이법회(2017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0/3562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