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성 우한시 대법제자
[밍후이왕] 줄곧 나는 사고했다.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수련한 후 나는 늘 자신에게 물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두려움은 또 어디에서 오는가?
이미 얻은 재산, 명성, 타인의 인정, 찬양 등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이것은 표면적인 것이다. 실제로는 바로 자신의 이익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각 방면의 이익이 손실될까 두려워한다. 나는 알았다. 사람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기에 두려워한다. 때문에 잃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종종 모두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나는 수련을 늦게 시작했기에 늘 자신은 오성이 나쁘고 근기가 낮은 그런 부류이며 그렇지 않으면 일찍 대법 수련을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마음은 매번 한동안 지나면 나타났다. 나는 일종 슬프고 소침한 상태에 빠져 번민하고 후회하는 정서가 며칠 지속됐다. 그러나 나는 이 상태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문제의 근원을 추궁했다. 나는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1]를 생각했다. 기왕 법을 얻었는데 아직도 법을 언제 얻은 것을 고민하는가? 아직도 대법을 얻지 못한 생명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나는 자신이 법을 늦게 얻었다고 고민에 빠진 것도 사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입문한 선후는 가리지 않는바 모두 제자다.”[2] 나는 자신이 법을 늦게 얻음으로 인해 고민에 빠지고 슬픈 것은 대법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며 자아에 집착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임을 알았다. 도를 구하는 마음 중에 또 사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점을 알고 나는 더는 자신이 법을 늦게 얻은 것으로 우울해하지 않았다.
자아에 집착하지 않고 진상 알리는 것을 돌파
사람은 두려워하는 물질이 너무 많아 흔히 어떤 일을 하고 안하는 이유가 되며 습관이 되어버린다. 수련한 후에는 이런 관념을 고쳐야 한다.
나는 현실 사회 환경 중에서 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이미 어처구니없는 정도에 이르렀기에 평소 다른 사람과 접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았고 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진상을 알리는데 부딪힌 하나의 큰 난관이 됐다.
나는 담이 작거나 말이 서투른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진상을 알리려고 하면 입을 열지 못한다. 매번 진상을 알리러 나가면 마치 전쟁에 나가는 것처럼 걱정돼 바늘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 못해 말도 잘하지 못하고 심지어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자신을 찾았다. 마지막에 나는 여전히 사심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죽는 것이 두렵니? 붙잡혀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는 것이 두렵니?’ 진지하게 입장을 바꿔 사고한 후 나는 사부님께서 법 중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하고 있을 것이다”[3] 나는 이미 법을 얻었다. 금생에 법을 얻은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여러 번 윤회와 환생 중에서 이날을 위해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속인에게 흔쾌히 진상을 알리지 못하는가? 나는 이것은 허영심과 체면이 나를 저애한 것이다. 타인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고 나 같은 젊은 사람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우며 마치 세속을 멀리하고 추구가 없으며 진취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속인의 입장에서 수련의 일을 대하는 것이고 여전히 사람 중의 명성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여전히 사심이 교란하는 것이다. 관념을 개변한 후 진상을 알리는 것도 변화가 발생했다.
한 번은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당시 아무런 생각 없이 문을 나섰는데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었지만 입을 열기 어려웠다. 나는 한편으로 발정념을 하고 휴식하면서 법을 외웠지만 여전히 오가는 사람을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조급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바로 이때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채소를 다 산 할머니가 상점에서 나왔다.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면서 이 사람이 사부님이 배치한 인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할머니는 정말 내 앞에 있는 벤치에 앉더니 나에게 인사를 했다. 보기에는 마치 여기에서 만나자고 나와 약속한 것 같았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녀와 한담을 했다. 화제는 말하고 싶은 대로 매우 자연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아주 빨리 파룬궁을 말하게 됐다. 할머니는 자신은 자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집에 숨기고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집에서도 볼 엄두를 내지 못하나요? 책 몇 권이 아닌가요? 그것은 소중한 자료예요. 책에는 모두 대륙에서 봉쇄된 진실한 소식이며 모두 우리 신변에서 발생한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듣고 기뻐했다. “그러게. 자기 집에서도 볼 엄두를 내지 못하다니, 돌아가서 봐야겠네.”
내가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정치 부패와 치국, 역대 운동 중 8천만의 무고한 동포를 살해했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흠칫 놀랐다. 아마 그녀의 상상을 초과했을 것이다. 이후에 할머니는 나와 자신의 번거로운 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진심으로 말해주었고 기회를 이용해 탈퇴를 권하려는 마음이 없이 그녀와 한담을 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삼퇴(중국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 탈퇴)’에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와 딸도 탈퇴시켜달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 일은 상의 없이 혼자 처리하지 못하며 반드시 본인이 무엇 때문에 탈퇴하는지 알고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또 할머니가 받은 자료에 ‘삼퇴’하는 방법이 있으며 만약 본인이 동의하면 자료에서 열거한 방법대로 탈퇴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마지막에 그녀에게 집에 돌아가면 가족과 그 자료를 잘 보여주고 그들 자신을 위해 이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하라고 당부했다. 한담하는 과정에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고 내가 말할 때가 되면 말이 줄줄 나왔고 사고할 필요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구구절절마다 할머니의 마음을 말했고 그녀가 평소에 말하기 어려운 말도 하기 원하기 까지 이르렀다. 할머니는 마지막에 나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고 표정은 엄숙하고 경건했다. 나는 그것은 구원을 받은 생명의 배후의 무량한 중생이 감사를 드린다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나의 사람을 구하려는 진심과 염원을 보시고 끊임없이 나에게 지혜를 주시어 이러한 결과가 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이번 경험을 총결했다. 막힘없이 진상을 알린 것은 당시 나에게 자아에 대한 아무런 집착이 없고 반드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이 오직 마음으로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에게 자비심이 나오지 않는 것은 자아에 너무 집착하고 사심이 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일부 사심을 제거하자 용량이 커져 자비심이 자연히 승화했다. 내가 중생을 대면했을 때 나는 정말 그들이 고해에 빠져 미래가 없고 생명에 대한 연민, 그것을 위해 고심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꼈고 또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는 의의를 알았다.
‘당(黨)문화’의 근본은 사심(私心)
이전에 나는 ‘결벽증’이 있었다. 수련한 후 과분하게 따지는 것은 집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제거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밖에서는 그래도 괜찮지만 집에서는 난리가 난다. 남편이 만약 무슨 일을 하려면 나의 ‘위생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안 된다. 그를 나무라거나 일하는 것이 철저하지 못하다고 원망하며 이것 때문에 적지 않게 화를 냈다.
이후에 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것은 ‘당문화’가 내 몸에 나타난 것이며 이 방면을 청리해야겠다고 인식했다. 이어서 자신을 청리하고 찾아보니 나는 여전히 사심이 작용을 일으킨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자신의 표준으로 다른 사람 위에서 압도하고 자신의 표준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고 요구했다. 용량이 작은 표현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어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일 수 있겠는가?
처음에 내가 남편을 말할 때 남편은 나와 팽팽하게 맞섰다. 내가 자신의 마음을 개변하자 그는 침묵을 유지했다. 마지막에 어쩌다가 내가 자신을 통제 못하고 몇 마디 했지만 즉시 알고 멈추자 그는 나에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또 관을 넘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진정으로 무엇이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4]인지 약간 체득했다. 바깥의 물건을 추구하지 않고 타인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조건 자신을 닦으면 밖의 일체는 모두 개변된다. 간혹 길을 걸으면서 사람을 보면 나는 일종 ‘정상에 올라 굽어보면 뭇 산이 다 작게 보이리’란 감정이 생긴다. 인간 세상의 분쟁과 득실은 정말 하찮아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이기적인 관념을 제거하니 용량이 확대되다
끊임없이 낡은 것, 이기적인 사람마음을 내려놓자 나의 사상 경지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이전에 좋아하지 않던 사람 혹은 일을 평온하게 직면하고 함께 지냈다.
한 번은 지팡이를 짚고 걸음걸이가 느린 할아버지가 먼 곳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길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할아버지를 보면서 ‘이 할아버지는 나에게서 진상을 들으러 오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정말 나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할아버지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몸을 돌려 나와 약간 떨어진 쓰레기 상자를 뒤적이며 물건을 찾고 있었다. 이전 같으면 나는 할아버지와 말할 생각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연로하시고 행동이 불편한데 쓰레기 상자를 뒤적이며 물건을 찾느라 옷이 다 더러워졌구나. 자식들은 할아버지를 상관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가득 고였고 할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그는 한평생 헛되게 기다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곁에는 평소 늘 할아버지와 만난 적이 있는 몇몇 사람이 멀리 서서 농담하고 조소해도 할아버지는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다가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멀리 서있던 몇몇 사람은 의아해하며 나에게 “그 할아버지와 말하지 마세요. 말해도 못 알아들어요”라고 알려줬다.
과연 할아버지와 몇 마디 했는데 할아버지는 자신은 듣지 못하며 90여세인데 자식들은 모두 1동에서 살며 자신을 가장 높은 곳에 살게 하고 그들은 아래층에서 산다고 말했다. 또 사람이 너무 오래 살면 좋지 않고 일찍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나는 온화하게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오늘까지 사는 것은 의의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다음 할아버지에게 성심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복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자신은 귀가 어두워 못 듣는다고 말했다. 나는 큰 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염하는지 알려주었다. 내가 한 번씩 읽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한 마디 했다. “정말 듣기 좋아요, 정말 듣기 좋아요!” “이 말은 정말 듣기 좋아요!” 이렇게 반복적으로 여러 번 읽었다. 좀 지나 남편도 다가와 큰 소리로 할아버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들려주었다. 마지막에 곁에서 할아버지를 놀리던 사람들이 모두 갔다. 우리는 또 할아버지와 말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제외하고 듣지 못했다. 나는 한 생명이 구원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감탄했다.
이후 나는 자신이 수련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마음, 특히 이기적인 사람마음을 제거하자 이전의 관념이 없어지고 비로소 생명은 평등하다는 의의를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맺음말
수련을 몇 년 하는 동안 나는 초기에 사람 중의 번뇌를 해결하기 위해 수련을 시작했고 지금은 갈수록 수련의 사명감을 체득했다. 초기에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진상을 알렸고 이후에 생명의 비애를 보고 진심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그들에게 또 한 갈래 희망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을까 봐 멀리 하던 데서 더는 자신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태연히 사람들의 언행을 직면했으며 타인의 어려운 점을 알아주고 관심과 도움을 주었다. 이 과정은 정말 조금씩, 조금씩 모아진 것이다. 간혹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격려하셨다.
나는 수련 과정에서 각종 사람 마음의 표현은 모두 ‘사(私)’ 때문이며 이 구 우주 체계 중에서 관통된 물질인 것을 알았다. 매 층차에서 끊임없이 각종 사람마음을 제거할 때 최종적으로 본 것은 모두 사심이며 모든 좋지 않은 마음이 종속되는 근본이며 모두 사심이다. 매 층차에서 약간의 사심을 제거할 때 나는 자신의 용량이 확대되고 경지의 승화를 체득했으며 재차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하신 말씀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2]를 실증했다. 용량을 확대한 나는 세상 사람과 일을 대하는 심태가 완전히 이전과 달라졌다. 나는 줄곧 대법 수련의 이 길에서 확고하게 나아갈 것을 알고 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
원문발표: 2017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3/3562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