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55세이고 대법 수련을 한지 21년이 됐다.
청소년 시절은 고난만이 있었을 뿐
나는 가난한 집에서 출생해 어려서부터 배고픔에 시달렸는데 마침 중국공산당이 벌인 ‘문화대혁명’ 시기였다. 집에 계란이 있어도 학교에 가져간다면서 홍위병 반란 패에게 빼앗겼다. 사실은 학생에게 선생님을 비판하고 좋은 학생을 욕하며 대자보를 쓰고 온종일 비판 문장을 썼으며 시위행진을 하고 구호를 외치며 비판 투쟁대회를 열고는 이것을 타도하고 저것을 타도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쌀이 없어 밥을 지을 수 없어 굶은 배를 안고 또 학교로 갔다.
겨울에는 솜 신이 없어 어머니는 옥수수 껍데기로 신을 만들어 주셨다. 누구 집에 돈이 있고 생활이 괜찮으면 그를 상대로 투쟁했다. 공산당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가난할수록 좋다고 했다. 그렇듯 사악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또 힘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13살부터 멜대로 물을 퍼오고 흙과 똥을 메 날랐다.
세월이 흘러 피로가 쌓여 나에게는 많은 질병이 생겼다. 질병이 있어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했다. 19살부터 35살까지 나는 위장병을 앓았고, 류머티스 관절염, 담낭염, 늑연골 염증 등 갖가지 질병의 고통에 시달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밥조차도 지을 수 없었다. 장작개비처럼 여위어 체중은 겨우 38kg이었다. 하지만 무릇 돈만 생기면 전부 병원비로 썼고 집안은 빚에 시달려 온종일 얼굴에는 수심이 떠나지 않았으며 생활은 너무나 어려웠다.
이런 나날이 언제면 끝이 날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었다.
기쁘게 대법을 얻어 인생이 크게 변화하다
바로 이러한 때, 즉 1996년 12월, 나는 기쁘게도 사람을 구하는 대법을 얻었다.
내가 ‘전법륜’을 얻었을 때 마음은 비할 바 없는 기쁨에 잠겼다. 생생세세 찾아 헤매던 것을 나는 대번에 찾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얻을 수 없었던 문제에 답안을 찾게 되어 가슴이 확 트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사람은 어떻게 생기게 됐는가?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인생은 왜 생로병사가 있는가? 병은 어떻게 얻은 것인가? 어떻게 해야만 병이 없는가? 사람은 왜 수련해야 하는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정법이 전해지는데 왜 박해를 받는가? 아미타불은 어찌된 일인가? 예수는 어찌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는가 등등이다. 사부님께서는 역사의 과거를 말씀하셨고 또 역사의 오늘날을 이야기하셨으며, 인류의 미래도 말씀하셨고 많고 많은 인생의 수수께끼를 말씀하셨는데 그야말로 천서이고, 보서이며, 길을 가르쳐 주는 등댓불이어서 백 번을 보아도 싫지 않아 나는 20년을 보았다.
법을 얻은 그 해 나는 35살이었는데 이는 내 인생이 대전환하는 해였다. 그때부터 나는 주변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신체가 허약했으므로 처음에는 가슴이 뛰고 숨이 차며 사지가 무력했다. 며칠을 연마하고 나니 이런 증상이 사라졌고 4일 만에 천목이 열렸다. 천목이 열릴 때 좀 괴롭긴 했지만 몸은 갈수록 힘이 났고 정신은 아주 좋았다. 원래는 위장병 때문에 죽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연공을 한지 20일도 안 되어 모든 병이 사라졌고 무엇이나 먹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어 채소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날마다 더 살기 좋아져 새 집도 지었다.
아들도 대법을 믿었다. 파룬궁이 박해 당하는 기간 대법을 수호했으므로 그도 복을 받았다. 자란 후에는 좋은 일자리가 생겼고 월급도 안정됐으며 자기 집과 승용차도 마련했다. 결혼한 후 딸을 낳아 키우고 있으며 온 집은 모두 대법을 믿는다. 지금의 가정 형편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대법은 그야말로 매우 초범적이고 신기하다.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며 고덕(高德) 대법이다. ‘진선인(眞善忍)’으로 사람의 수련을 지도하기에 수련인의 변화와 제고가 아주 빠르다. 연공하는 동시에 심성도 수련해 나의 변화도 매우 컸다. 더는 사람과 싸우지 않고 더는 남을 해쳐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 않았으며 더는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았고 더는 공짜를 바라지 않았다. 대법은 나의 심령을 정화해주고 신체를 정화했으며 개과천선하여 더욱 고상한 사람이 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성취하게 한다.
사람을 구하는 대법은 못해내는 일이 없다
수련 가운데서 사람마다 만난 신기한 일이 아주 많다. 나는 자신의 한 차례 직접 겪은 경험을 말해 대법의 신기함과 초범성을 말해보려 한다.
2003년 9월 수확의 계절이었다. 나는 동생 집 옥수수를 따다가 옥수수 잎이 등을 때려서 가렵고도 아파 손으로 긁다가 깜짝 놀랐다. 등에 살구씨만한 부스럼이 나 있었는데 아주 뾰족하고 딴딴했다. 이건 뭐지? 알 수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하던 일을 했다. 이튿날 집에 돌아와서 우리 집 옥수수를 바르는데 등이 또 아프고 가려워서 참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참으면서 일했다.
3일째부터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남편은 보더니 불쾌해했다. 당시는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가장 잔혹하게 박해할 때였다. 2001년 나는 15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는데 파출소는 도처에서 나를 잡으려 했고 돈을 약탈했는데 아이가 학교에 갈 학비마저 약탈해 갔다. 원래 그는 걱정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는데 내가 일도 못하는 걸 보고는 사당을 더욱 미워하고 또 자신이 가난한 것을 보고 홧김에 집을 떠나 돈벌이를 하러 갔다.
나의 친정아버지도 파룬따파를 수련하시는데 80여 살이시지만 건강이 아주 좋으시다. 이전에는 동맥경화가 있어 10여 년을 치료해도 낫지 않았는데 연공 후 얼마 안 되어 전부 나았다. 남편이 집을 떠난 후 아버지가 오셔서 나에게 죽을 써 주고 물을 길어오며 돼지를 먹이는 등 집안일은 무엇이든 다 하셨다.
다시 내 등의 부스럼을 말해보자. 그것은 날마다 자라서 찐빵만큼 커졌고 검은 홍색이었다. 부어서 온 등이 다 검었다. 누울 수도 앉을 수도 기댈 수도 없었고 죽 한 사발을 마시는데 세 번은 먹어야 했다. 동공은 할 수 없었지만 가부좌를 하고 앉을 수는 있었다. 초저녁에 한 시간 가부좌를 하면 누워서 한 시간 잘 수 있었고, 밤중에 다시 한 번 가부좌 한 시간을 하면 또 한 시간 더 잘 수 있었다. 그 때 집에는 사당의 박해로 겨우 40위안(한화 약 7천원)이 남았지만 남편이 갖고 가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쌀 파는 사람에게 먼저 나에게 쌀 한 포대를 빌려주면 앞으로 돈이 있을 때 다시 갚아주겠다고 했더니 그가 흔쾌히 대답했다. 이리하여 날마다 세 때 죽을 마실 수 있었는데 한 때 한 사발씩이었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때 고열이 나서 구들에 누우면 구들이 뜨거운 것 같았고, 땅바닥에 누우면 땅도 뜨거운 것 같았다. 열 며칠이 지났다. 등의 부스럼은 겉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은 벌집처럼 썩어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소문이 나자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의 어머니가 바로 이렇게 사망했다며 이 병을 ‘서우거우즈(手够子)’ 혹은 ‘다베이(搭背)’라고 하는데 고치지 못한다고 했다.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와서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고 친정 집 형제도 모두 와서 병원에 가보라고 강요했다. 나는 말했다. “인생이란 바로 재난이 많기 마련인데 저는 대법 수련을 하니 죽지 않아요. 사부님께서 책임지고 계시니 두렵지 않아요. 고생했으니 곧 나을 거예요. 이는 전생에 지은 빚이니 갚아야 해요. 괜찮아요. 여러분은 시름 놓으세요!” 그들은 내가 고집을 쓰는 것을 보고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남동생이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매형도 집에 안 계시고 아버지도 80이 넘으신 데다 물을 길어 밥을 짓고 돼지를 키워야 하니 차라리 저하고 함께 우리 집에 갑시다. 최소한 밥을 해 줄 사람이 있고 등의 오물을 닦아 줄 수 있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자 나도 마음이 열려 그를 따라갔다.
집에 이르니 모두들 바빠졌다. 나를 부축하는 사람, 칼날로 썩은 살을 잘라내는 사람, 물을 떠다 소금물로 씻어내는 사람. 흐르는 고름을 씻어내는 사람으로 반나절 북적거렸다. 천천히 자리에 누운 나는 아주 깨끗하고 아주 편안함을 느꼈다.
그 때 나는 또 열 몇 개 비닐하우스 기술지도 책임과 오이묘 접목 책임을 맡고 있었다. 오빠가 말했다. “네가 이렇게 됐으니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두 남을 배려해야 하고 ‘무사무아, 선타후아’하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안 돼요. 그들은 사람을 찾지 못해요. 그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해는 접목이 갓 시행되는 때라서 접목할 줄 아는 사람이 아주 적었으므로 나는 남을 시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등의 뼈까지 다 노출돼 나와서 심장 보호막이 풀떡풀떡 뛰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연공인의 표준에 따라 차례로 비닐하우스를 따라가면서 접목을 했다. 하우스 주인은 모두 몹시 탄복했고 매우 기뻐했다.
큰 오빠는 가슴 아파서 말했다. “너 정말 죽고 싶니?”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얼마 후 등의 큰 부스럼이 터지면서 구멍이 생겼고 하얀 뼈가 드러나 누가 봐도 무서워했다. 누구도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일단 심장 보호막이 뚫리면 끝장이라고 했다. 혈육들은 이런 정경을 보고 무섭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갔다. 나는 약도 붙이지 않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는데 치료될 수 있을까? 어쨌든 나는 그저 대법만을 굳게 믿고 사부님을 굳게 믿었다. 나는 가족에게 나는 죽지 않을 것이며 어느 때든 꼭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달이 계속되던 어느 날, 오빠가 나를 씻어줄 때 또 한 곳의 살이 검어졌을 뿐만 아니라 왼쪽 어깨 아래에 세 개의 부스럼이 또 나오고 오른쪽 어깨 밑에 또 세 개, 왼쪽 옆구리 쪽에 세 개, 목에 하나, 모두 합치니 열 개나 난 것을 보았다. 가렵고도 아팠다. 사람들이 말했다. “어서 병원에 가세요. 그건 ‘칸터우(砍頭)’라고 하는데 이런 부스럼이 나면 한 사람도 산 사람이 없어요.”
나는 들었지만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날마다 법공부, 발정념, 정공 연마를 견지했다.
어느 날 오빠가 또 말했다. “또 한 곳의 살이 검어졌다!” 내가 말했다. “오늘부터 즉각 썩는 것을 중지하라, 이 살은 내일이면 나아진다!” 과연 이튿날 오빠가 나를 씻어줄 때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야! 여기 살이 붉어졌어!” 그날부터 등의 살은 날마다 자랐는데 살이 밖으로 자라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내 등은 신기하게 나았다! 그 어떤 영양제도 먹지 않았는데 몸은 빠르게 회복됐고 20여일 사이에 체중이 20kg 넘게 쪘으며 온 얼굴이 불긋했다. 사람들은 이게 정말인지 감히 믿지 못했다. 가족들은 저마다 기쁨이 넘쳤고 두려움이 없어지고 걱정이 없어졌다. 모두 “대법이 좋다!” “대법이 신기하다”고 칭찬했다. 조카들은 모두 진심으로 대법을 믿었다.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대법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사당의 박해가 두려워 병이 있어 연마하고 싶으나 감히 연마하지 못했다!
그렇다. 중국공산당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지도 오늘까지 18년이 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박해 때문에 감히 대법을 연마하지 못하는가. 원래 연공은 사람의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데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도리어 사당에게 위협을 당하고 모두 거짓말에 속고 있다. 새빨간 거짓말로 중생을 속였는데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죄이다. 그래서 하늘은 사당을 멸망시키려 하고 대법을 파괴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한 악한들도 모두 보응을 당하기 시작했다. 세인도 모두 각성하는 중에 있으며 잇달아 당, 단, 대에서 탈퇴해 더는 사악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대법을 지지하고 정의를 지지한다. 대 심판의 날은 멀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하고 싶지만 감히 연마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유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어서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라!
사람을 구하는 대법은 민족을 가리지 않고 빈부를 가리지 않는바, 세계 1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전파됐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대법을 인정하지 않고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지 않은 사람은 사당이 해체될 때 그것의 순장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상을 듣고 진상을 알며 ‘삼퇴’를 해야만 인생은 비로소 희망이 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17년 11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수련경험>정념으로 박해를 해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4/3508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