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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지심을 닦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2년 12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한 신 수련생이다. 아래에서 나는 업무 중에 자격지심을 닦은 경험을 써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직장에서 경찰이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나는 사직했고 수련생이 소개해준 마트에 가서 일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격지심이 있었기에 자신에게 보수와 업무시간이 맞는 일자리를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대졸 학력이지만 월급이 높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청소하는 일자리를 찾겠다고 생각했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고 열정적인 수련생이 즉시 나에게 호텔 객실을 청소하는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일이 미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하는 강도가 높았고 게다가 평소 사무실에서 편하게 일했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또한 월급도 많지 않아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업무시간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이 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직하려고 결정했다. 그러나 상사가 나를 잘 대해 주었기에 그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때문에 월급을 결산할 때 인사과와 재무과에 가서 끊임없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는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요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나는 지금 사람을 만날 엄두조차 나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이것이 자격지심이며 불안 장애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이것은 아마 매우 평범한 현상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이것 때문에 우울증을 얻는다. 이런 성격의 사람은 잘 참지만 때로는 지나치면 극단으로 간다. 매년 자살하는 많은 사람은 대개가 이런 자격지심이 심하며 극한에 이르면 이런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곤 한다. 나는 지금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마저 위기에 처했다. 나는 반드시 자신을 개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고 이 마음을 제거하려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1]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모든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 자격지심은 강렬한 집착심인데 내려놓지 말아야 하는가? 당연히 제거해야 한다! 내가 결심을 하고 이 마음을 제거하려 할 때 지난 일이 한 장면씩 떠올라 괴로웠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생각하기 싫은 것,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한 번은 면접시험을 볼 때 책임자는 우리에게 가상으로 수입 금액을 계산하라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계산한 후 면접관을 대면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언뜻 보더니 “떨지 마세요.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말해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쑥스러웠다. 결과는 가히 짐작을 할 수 있다. 또 한 번은 나는 채용에 지원해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다. 결과는 내가 잘하려고 준비할 때 인사과로부터 내일 출근하지 말라는 전화 통지를 받았다. 또 한 번은 면접에서 통과됐고 상사도 나를 매우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또 수습기간이 있어서 나는 늘 해고될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 한 번은 사장이 나를 불러 이야기하려 했다. 나는 사장이 나를 해고하는 줄 알고 긴장해 떨었다.

이것을 생각하면 고통스럽고 불편했다. 마치 자신이 사회에서 상처를 받은 것 같고 버려진 것 같아 스스로 상처를 치료했다. 몸에 간신히 딱지가 앉고 상처자국이 남았다. 그러나 항상 나타났다.(살다가 내키지 않은 일을 만나거나 업무에 대한 실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애인의 배반, 가족과 소원해진 것 등등이 있다. 투철히 그것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늘 고통스러웠다.) 지금 철저히 그것을 치료하려면 반드시 이 상처를 열고 약을 발라야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용기가 얼마나 있겠는가? 마치 관우가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한 것처럼 그 고통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이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활과정 중에 사람에게 가져다 준 감수를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이 표현은 비교적 정확하다. 무슨 뜻인가? 사람은 자신이 자신을 주재하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려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즐기는 중에서 후천적으로 양성된 습관과 집착으로서, 느낌을 추구할 뿐이다. 진정하게 작용을 일으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배후의 요소는, 사람의 습관, 집착, 관념, 욕망 이러한 것을 이용해서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진정한 인체는 바로 이러하며, 단지 생활과정 중에서 가져온 느낌을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 단 것을 주면 당신은 단 것을 알고,”[2]

무엇 때문에 어떤 대법제자가 안으로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가? 사실은 자신의 내심의 상처를 직면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착심을 잃는 것은 두렵지 않고 도리어 좋은 일이다. 두려운 것은 진정으로 그것을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며, 재차 상처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실 모두 행복을 좋아하고 추구하며 고통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의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한 번 또 한 번 고통스럽고 불편한 장면을 회상했다. 당시에 맞닥뜨린 난감함과 조소, 심지어 절망과 불안을 재차 남김없이 체험해 보았다. 마치 상처가 다시 찢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참아야 했다. 여러 번 나는 이 기억을 중단하려고 했지만 참았다.

이 고통이 지나간 후, 마음이 평온해진 후 나는 이 ‘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적합한 일자리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두려워해서인가?’ 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것은 거절당할까 두려워서이다.’ 무엇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가? 아래로 더 찾아보니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타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렸을 때 가정의 영향으로 매우 적게 칭찬을 받았고, 늘 엄격한 아버지의 책망만 있었다. 때문에 일마다 반드시 완벽한 것을 추구하고 잘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꾸지람을 들을까 두렵고 사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비록 매우 노력해 일정한 성적을 얻기도 했지만 인정과 승인을 얻지 못하면 근심걱정하고 불안하며 자신감이 없었다. 일찍이 한 대형 호텔에서 재무 경리를 맡았지만 거짓 조작을 하기 싫었고(회사에서 투자를 하기 위해 늘 일부 거짓 보고서로 대출을 받는다. 비록 은행 직원도 잘 알고 있지만 기업을 도와 가짜 자료를 만든다. 그러나 나는 늘 이 관을 넘지 못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불안 증세’를 얻었다. 타인의 인정과 승인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한다. 요컨대 자신의 고만한 사사로운 마음을 위한 것이며 이익이나 따뜻한 정을 위해서였다.

나는 이전에 사람들 속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 자신에게 물었다. 꼭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가? 만약 한 것이 모두 틀렸는데 여러 사람들이 나를 인정한다면 나의 양심이 편안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좋은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해서 당신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마저 모두 비뚤어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1] 예를 들면 진선인(眞善忍) 중의 진(眞)을 말하면 지금 사회에서 사람들은 도처에서 거짓말을 하고 가짜를 만든다. 사람들은 일찍이 습관되어 생활화됐다. 이 ‘진(眞)’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거짓말과 가짜를 만드는 것은 정말 틀린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은 무엇 때문에 나를 거절하면 안 되는가? 네가 아주 위대한가? 네가 다른 사람이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다른 사람은 널 거절하지 않는가? 마치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듯이 당신이 죽고 싶지 않아도 수명이 다하면 죽지 않아도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1] 일체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 사람의 운명은 일찍이 배치된 것이다. 당신이 걱정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신이 살면서 양성된 관념, 또 자신의 소위 ‘경험’은 반드시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사부님의 법은 더욱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사람의 사상관념을 형성한다. 사람은 문제에 부딪힐 때, 내가 이렇게 처리하기만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느낀다. 오래고 오래되면 고정 관념이 이렇게 형성된다. 아주 많은 일을 당신이 잘 처리했다고 느끼지만, 당신 자신은 오히려 없어졌고 당신 자신은 이미 가서 잠을 자버렸다. 속인사회에서 생활하는 당신, 당신의 육신은 이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에 주재(主宰) 당한다. 이 일을 하고 저 일을 하는데, 하루 종일 흐리멍덩하게 바로 이렇게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관념들은 모두 당신이 상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3] 나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설법을 읽었다. 정말 오직 사부님만이 사람이 사는 본질을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위대하시다.

고통의 절정이 지나간 후 나는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법리에서 나는 내가 만난 이 고난은 모두 자신이 이전에 만든 업력이며 그것을 제거해야만 심성이 제고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찾지 않고 제거하지 않으면 승화하지 못하며, 이 짐을 들고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하면 더욱더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한다. 대법의 법리가 차츰차츰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충만되었고 원래의 좋지 않은 관념을 대체했다. 나는 자신의 마음이 평온해지자 더는 근심과 걱정이 없는 것을 느꼈다.

평온해진 나는 내심 깊은 곳에서 요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의 특기가 있는데, 거짓 업무조작을 하지 않고 또한 너무 힘들지 않으면서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고 월급이 너무 많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월급이 너무 많은 것은 더욱 많은 책임과 압력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더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자리를 찾지 않겠다. 그것을 마음을 닦은 과정이라고 간주하자. 더는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지 않고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아무런 목적이 없는 일자리를 찾지 않겠다. 만약 채용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내 능력을 대표하지 않으며, 모든 일자리가 나에게 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배우자를 찾는 것처럼 연분이 정하는 것이며 오직 한 사람만이 당신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정말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마음을 내려놓은 후 나는 인터넷으로 적합한 일자리를 찾았다. 채용되지 않아도 더는 생각하지 않았고 채용되면 더욱 좋고 채용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는 세 가지 일을 더욱 많이 하겠다. 어차피 나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나의 것이 아니라면 억지로 추구해도 얻지 못한다. 이 마음을 제거한 이튿날, 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라고 통지가 왔다. 다음 셋째 날 출근했다. 어찌 이렇게 빠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믿기지 않았다. 속으로 ‘회사가 나를 속이나?’라고 생각했다. 출근한 후 이것이 정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정말 일자리를 찾았다! 이 회사는 휴대폰 판매점이었다. 나는 창고를 관리하고 돈을 받았다. 이전의 나의 전공과 연관이 있으며 마음이 매우 홀가분했다. 나는 이전의 그런 결말이 있을까 우려했다. 조용히 하는 것이 좋기에 다른 수련생에게 말하지 않았다. 수련생은 내가 걱정되어 일자리를 찾아주려 했다. 내가 수련생에게 일자리를 찾았다고 알려주자 그녀들은 기뻐했다. 사실 나는 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었는지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은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 집착심을 버린 후 나는 더는 다른 사람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고민하지 않았다. 심지어 면전에서 진상을 알렸다. 나는 더는 상태가 좋았다가 때로는 나쁜 상태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탈당을 받아도 너무 기뻐하지 않았고 탈당을 받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름이 지났다. 또 한 차례 고험이 왔다. 저녁에 퇴근한 후 사장은 나에게 휴대폰의 위챗 친구들에게 우리 가게 홍보활동을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위챗을 잘 사용하지 않기에 휴대폰에 이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 밤새도록 휴대폰을 조작하다가 보내지 못했다. 내 마음은 괴롭기 시작했다. 이전에 해고를 당한 경험이 또 생각이 났다. ‘사장님이 이것 때문에 나를 사직하라고 하지는 않겠지?’ ‘나는 아직 수습기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각종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마음도 갈수록 무거워졌다. 나는 즉시 이것은 진정한 나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다. 사람 중에서 양성된 관념이다. 진정한 나는 절대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괴로움을 참으며 발정념을 했다. 저녁에 법공부를 다하고 발정념을 한 후 내 마음은 평온해졌다. 마치 비바람이 지난 후의 하늘처럼 당시 폭풍우가 내릴 때의 사람을 놀라게 하고 넋을 뒤흔드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이 고험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평온해진 후 나는 저녁에 위챗으로 점장에게 솔직히 말했다. “제 휴대폰에 이 기능이 없어 홍보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공제하려면 하십시오.” 점장은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줬다. 이튿날 그녀는 직접 내 휴대폰에 위챗을 설치를 해주어 나는 이 정보를 보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심성수련 과정은 매우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으며 모두 쉽지 않다. 속인은 누가 이렇게 자신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모두 자신이 꽃과 같다고 생각되어 자신에게 잘해주면 자신도 잘해준다. 나는 또 버리기 힘든 마음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자아관념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을 찾았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전문적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나는 당시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뭐가 어렵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가? 이 자격지심을 버리는 과정에서 나는 알았다. 모든 이 마음은 속인 중에서 양성된 좋지 않은 관념이며, 자격지심은 어렸을 때 받은 타격이 너무 많아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은 어렸을 적에 칭찬을 하는 말을 너무 듣고 자란 후 약간의 억울함을 당하면 다른 사람이 말하지 못하게 하면서 생성된 것이다. 따져보면 같은 성질이며 모두 속인 중에서 양성된 관념이다. 보아하니 이 속인의 관념을 개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말 오직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곳곳에서 법으로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을 대조해야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고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8/3556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