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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수련 중 아버지와 함께 병업관을 돌파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대학교 교사다. 아래에 두 가지 방면에서의 수련체험을 말하려 한다. (1) 대법의 지도로 아버지와 함께 병업관을 돌파하다. (2) 학생을 자신의 거울로 삼아 착실하게 수련하다.

(1) 대법의 지도로 아버지와 함께 병업관을 돌파하다

나의 아버지는 금년에 86세이며 법을 얻은 지 몇 년이 된 신수련생이다. 2014년 6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뇌졸중 상태가 나타나셨다. 당일 오전 아버지와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했는데 오후가 되자 아버지께서는 마음이 불안해서 병원에 가려고 하셨다. 당시 나는 아버지께서 신수련생이기에 병원에 가고 싶으면 가셔도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실 것을 주장했다.

당시 나는 이것이 나의 수련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얼른 생각하지 못했다. 지나간 후에야 수련의 길에는 우연이 없다는 걸 생각해냈다. 이 일은 반드시 나의 수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땅히 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당시 나의 수련상태의 표현이었다.

아버지는 2주간 입원하고 퇴원하셨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보름동안 드시고 지금까지 약 한 알, 주사 한 대 더 추가하지 않았다. 퇴원하고 1개월 안에 우리는 매일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발정념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매우 빨리 회복되셨다. 다만 몸 왼쪽이 민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식이 뚜렷하고 스스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발정념하실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 8월 초 어느 날 아침, 거실에서 연공을 하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방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얼른 건너가 보니 아버지의 오른쪽 몸이 이미 뻣뻣해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신발도 신지 못하셨다. 스스로 벽을 짚고 화장실까지 움직이긴 했으나 바지가 젖어 있었고 심각한 뇌졸중 상태가 나타났다.

아버지께서는 승부욕이 강하셔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셨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고, 그리고 넘어지지도 않으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지켜 주신 걸 안다.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침대로 모시고 아침 식사 때 깨워 드렸다. 하지만 이미 앉지도 못하셨다.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부축해 땅에 내렸지만 바로 서지도 못하셨다. 걷는 건 더욱 말할 나위가 없었다. 식사 때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의자를 놓고 몸을 기대드렸다. 식사는 그래도 혼자 하실 수 있었다. 식사 후 소파로 모셨는데 앉아있지 못하고 바로 오른쪽으로 넘어 가셨다. 부득이 소파 등받이에 기대게 해드렸더니 바로 잠이 드셨다.

이번 상황은 보기에 기세가 매우 맹렬했다. 뇌졸중 증세에 노인성 치매 증세까지 겹쳐 뭘 물어봐도 모르고 내 이름마저 잊어버리셨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병원에 가시겠냐고 물으면 안 간다고 하셨다. 무엇 때문이냐고 물으니 소용없다고 하셨다. 나는 얼른 격려하며 말씀드렸다. “맞아요, 이게 바로 정념이에요. 아버지는 사부님과 법을 믿으셔야 해요. 이는 병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분명 이 고비를 돌파하실 수 있어요.”

말하자면 이상했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에 아버지의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남편은 의외로 병원으로 모시자고 하지 않았다. 병원에 가봐야 소용도 없고 노인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제때에 남편을 격려했다. 정념이 있고 맞는 말이라고 했다. 동시에 집안 친척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리하여 내 마음은 더욱 든든해졌다. 두 사람의 협력이 있으니 반드시 더욱 잘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지켜주시기에 별일 없을 것이다. 하물며 수련의 길에 우연한 일은 없다. 사부님께서는 또 수련 중에 나타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는 법리를 말씀하셨다. 나는 이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식했다. 이 일이 비록 아버지에게서 발생해 아버지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수련할 요소도 분명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한 수련자로서 닦는 것은 자신을 닦는 것이다.”[1]

나는 인식했다. 특히 아버지의 주의식이 똑똑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욱더 아버지를 이끌고 함께 고비를 돌파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선 아버지에 대한 정을 내려놔야 했다. 속인 중에서는 나의 아버지이기에 일상생활에서 잘 보살펴 드려야 한다. 하지만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우리는 동수(同修)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로 놓고 심태를 순수하게 하며 대법으로 이 고비를 잘 넘기도록 지도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 내부에서 오는 모순과 압력도 마찬가지로 고험이자 정진의 기회이다.”[1] 나는 이 사건의 출현 역시 내가 수련한 층차의 체현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는 부동한 층차 중의 법이 있다. 법은 부동한 층차 중에서 부동한 지도 작용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저층차 중의 이치를 가지고는 당신이 고층차로 수련하는 것을 지도할 수 없다.”[2]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을 수 있으며 정진할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이다. 아버지의 상황이 어떨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말고 이래야만 서로 다른 층차 중의 나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고 승화하고 제고할 수 있다.

아버지의 방면에서 본다면 사부님께서는 한 명의 대법제자도 놓치려 하지 않으신다는 걸 안다. 사부님께서 소중히 하시는 것은 매 한 명의 대법제자의 전반 생명 과정이다. 사부님께서 해주신 일체의 일체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오직 정진, 더욱 정진하고 동시에 아버지를 도와 고비를 돌파해야 구세력의 교란과 파괴를 철저히 부정하고 아버지께서도 낙오하지 않으실 수 있다.

동시에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을 더욱 잘 깨달을 수 있었다. “사부로서, 나는 단지 대법제자의 주왠선(主元神)만 승인하며, 게다가 역사상 건립한 위대한 공덕(功德)은 모두 대법제자의 주체 표면이 성취한 것으로, 이 한 점은 어떤 것도 개변할 수 없다. 우주정법(宇宙正法)이 직면한 복잡한 정황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구세력의 배치와 교란은 아주 엄중한 것으로, 사부는 단지 당신들이 구체적인 혼란 속에 빠져 수련에 영향 주게 하고 싶지 않아, 당신들에게 최대의 흉금과 자비로 중생을 대하라고 했다. 어떠한 교란 하에서도 모두 구체적인 사건 속에 파고들어 자신을 교란하지 말아야만,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고, 게다가 위덕도 더욱 크다.”[3]

비록 당시 아버지의 주의식이 똑똑하지 않고 기억력도 감퇴하며 똑바로 서 계시지도 못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낙심하지 않고 사부님 말씀만 따랐고 사부님의 법으로 고비를 돌파하도록 지도했다. 당시 나의 깨달음은 사부님께서는 오직 대법제자의 주체 표면만 인정하시기에, 그럼 나는 아버지의 주체 표면, 즉 인체가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발정념하게 했다. 우리는 매일 오전에 법공부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앞뒤가 맞지 않게 읽으셨고 다른 줄을 읽으셨으며 읽다가 소리가 없어졌다. 하지만 서서히 지금은 법을 정상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됐으며 소리도 매우 우렁차다.

연공을 대함에 심태를 바로 놓아야 한다. 연공은 치료를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께서도 병에 걸린 것이 아니기에 무슨 결과를 구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반드시 연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연공을 가르치고(아버지는 이미 연공동작을 모두 잊어버리셨음). 아버지는 처음에는 설 수 없어서 정공만 연습하셨다.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서 물건을 가져다가 기대야 했다. 서서히 동공도 조금씩 연마하셨다. 처음의 1장, 2장에서 지금은 1시간 동공을 모두 다 하실 수 있었다.

이 기간에 나도 발정념의 힘을 강화했다. 아버지 배후의 사령(邪靈), 난귀(爛鬼) 및 공산사령을 깨끗이 제거했다. 전 세계적으로 하는 4개 정시 발정념도 빠뜨리지 않았고 시간을 증가했다. 자정 12시 발정념도 아버지를 깨워서 함께 했다. 현재 아버지는 발정념 구결을 외울 수 있고 매번 발정념할 때 나는 아버지께 외우게 했다.

이 기간에 자그마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이런 상황이 나타난 1주일쯤에 외삼촌, 외숙모도 소식을 듣고 오셨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나무랐다. “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안 가니?” 그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려 했다. 평소에 나는 외삼촌, 외숙모를 매우 존중했다. 두 분은 나에게 매우 잘 대해주셨다. 하지만 지금은 구세력이 또 갖가지 계략을 동원해 아버지를 박해하려 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병원에 안가도 됩니다. 아버지는 지금 점점 좋아지고 있고 식사와 수면이 정상입니다. 어디 아픈데도 없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병원에 가서 뭐 합니까? 아버지가 처음 아팠을 때 모습을 못 보셔서 그래요.”

나는 이어서 말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병원에 가야만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치료하는 방법은 아주 많아요. 한의학, 한약, 점혈, 안마, 그리고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는 등등,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는 등 서양 의학 한 가지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는데 아버지께서 지금은 좋지 않아요?” 외숙모는 우리를 설득하지 못하자 씩씩거리며 가버렸다.

그들이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우리는 아버지를 모시고 외삼촌 네 집으로 갔다. 그들은 아버지가 집에 놀러 올 수 있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매우 기뻐했다. 왜냐하면 외삼촌 네 집에 들어가려면 일곱 층을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5층이고 외삼촌 네는 2층이기에 모두 7층을 오르내려야 했다!

작년 말에 남동생이 일본에서 아버지를 뵈러 와서 각종 고급 건강식품을 사 드렸다. 남동생이 집에 있는 며칠 간 늘 아버지에게 드시게 했는데 나도 차마 저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남동생은 자신의 방식으로 아버지께 효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뭐라고 더 말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남동생은 집에 며칠 못 있는 상황이라 내버려뒀다. 속으로 ‘남동생이 가고 나면 아버지께 드리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번 따르자 어느 날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아버지께 그 건강식품을 드시게 했어?” 아직 안드렸다고 하자 남동생은 말했다. “얼른 아버지께 드려, 하루 세 번, 시간을 지켜야 해.” 당시 차마 면전에서 남동생을 거절하지 못하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버지의 아들이 비싼 건강식품을 사왔는데 얼른 드세요.” 말을 마치고 머리를 돌리자마자 컵의 물을 쏟았다. 나는 바로 잘못했다는 걸 알았다. 이 일념이 법에 있지 않았다. 남동생이 간 후 아버지께 여쭈었다. “건강식품을 드실 거예요?” 아버지는 안 먹는다고 소용없다고 하셨다. 나는 즉시 격려를 드렸다. “맞아요. 수련은 초범적인 것이고 연공인은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데 건강식품을 먹어서 뭐 해요?” 그 후 건강식품을 모두 남에게 줬다.

아버지는 아직도 좀 흐리멍덩하고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대화는 필수적이었다. “아버지는 잠들기 전에 뭘 생각하세요?” 아버지의 대답은 언제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였다. 나는 즉시 틀렸다고 하고 아버지는 무엇이냐고 묻다가 즉시 대답하셨다. “대법제자지.” 나는 대법제자는 무엇을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즉시 대답하셨다. “대법이 좋고 사부님은 좋아.” 또는 9자 길언을 외우게 하고 나서야 주무시게 했다.

수련생들이 자주 아버지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하면서 아버지를 격려하고 정념을 굳게 했다.

지금 아버지는 얼굴이 불그스레하고 몸 어디도 아픈 데가 없다. 매일 싱글벙글 웃으시고 머리카락도 검게 변했으며 수염도 검어졌다. 젊음을 되찾으셨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는 약 한 알 안 먹고 주사 한 대도 안 맞으셨다. 속인이 말하는 건강 회복 수단과 의료 방법을 한 가지도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연세에 이렇게 빨리 회복된 것은 병원에서도 도달하지 못하는 효과이다. 집안 친척도 이 기적을 증명했다.

(2) 학생은 거울이다

나는 대학교 강사다.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학교에서 요구한 그런 규정에 한해서일 뿐이다. 교권 관념의 영향으로 수업 중에 줄곧 위에 높이 있었다. 잘 가르치고 수업 중에 학생만 잘 단속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은 사회풍기가 매일 타락하고 일부 학생도 사회풍기의 영향으로 행위와 습관 역시 눈에 거슬렸다. 그리하여 한 번도 학생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춰보지 않았고 이 방면에서 착실한 수련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학생이 지각하는 걸 또 보게 되자 나는 생각했다. 원래 나도 지각하는 현상이 매우 많았다. 예를 들면 법공부 하러 갈 때 지각하고 수련생과 진상을 알리러 가기로 약속하고 지각하는 등등이었다. 수업중 학생이 음식을 먹는걸 보고 나에게 식탐이 있기 때문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때서야 깨달았다. 원래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수련환경을 배치해주셨는데 수많은 해에 모두 지나쳐 버린 것이다. 정말 아쉽다!

또 한 번은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가르치는 2개 반의 학생 두 명이 수업시간 몇 분 전에 숙제를 베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을 엄격하게 꾸짖었다. 당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하교 후 갑자기 깨달았다. 요 며칠 법을 베끼는 걸 견지하지 않았구나. 사부님께서는 이 방법으로 나를 일깨워 주신 것이다. 원래 학생은 진짜로 나의 거울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깨닫자 마음속에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감격이 솟아났다. 내가 수련한 매 한 발자국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를 떠날 수 없고 오늘날까지 왔다는 걸 느꼈다. 게다가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에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수련이라, 당신이 오로지 수련인이라면 당신이 한 모든 일은 모두 수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데, 실은 역시 바로 당신 수련의 길이다. 당신이 한 모든 일은 모두 당신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에 녹아 있다. 당신이 사회의 일 중에 있든 아니면 대법의 항목 중에 있든 또는 평상시의 생활 중이든 모두 당신의 수련에 관통되어 있는데, 반드시 이러하다.”[4]

또 한 가지 최근에 발생한 일이 있다. 어려서부터 나는 줄곧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매우 담담하게 보았다. 다른 사람과 명예와 이익을 다툰 일도 없다. 나는 자신에게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부님께서는 학생이라는 거울로 쉽사리 발각되지 않는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비춰내셨다. 사건은 이러했다.

나는 학교에서 공공기초 수학과를 가르친다. 전문적인 수학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여러 해 동안 나도 수학 전문서를 별로 보지 않았다. 많은 지식이 생소해졌다. 마침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이 삼림학을 전공했고 늘 나에게 인터넷에서 본 일부 수학 전문 문제를 물어 보곤 했다.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다. 나는 그에게 관련 서적을 보라고 건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학생의 말투도 좀 덜 존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씁쓸했고 체면이 구겨졌다. 그 이틀간 줄곧 이 일을 생각했다. 법공부를 하러 갈 때도 마음이 조용하지 않고 이 일을 생각하고 심지어 원망하는 마음도 생겨났다.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도 아니면서 수학 전문 문제를 그렇게 많이 물어서 뭘 하지.’ 다음 수업시간에 그 학생이 또 물어보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느라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았다. 마음을 움직였으니 곧 집착심의 표현임을 안다. 사부님의 설법을 대조해 이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은 이런 방식으로 그것을 폭로해 나에게 그것을 제거하고 승화해 올라오게 하셨다. 때문에 반드시 이 기회를 붙잡고 그것을 닦아 버리고 승화해 올라올 것이다. 인식이 제고되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또 수업할 때 나는 이 학생을 단독으로 불러 내가 준비한 책 한 권을 그에게 빌려주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다음에 전문적인 문제가 있으면 내가 전문 교사를 찾아 해답을 해줄게.” 그는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 속에서 일말의 감동을 보아낼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또 한참 얘기했다. 나는 그에게 한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물었고 그는 가정환경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나는 한 사람으로서 인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말하자면 품행이 가장 중요하지.” 그는 사색에 잠겼다. 이때 수업종이 울렸고 나는 이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나는 이 고비를 넘었다는 걸 안다. 게다가 그날 나에게 안부를 묻던 학생이 매우 많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지난 학기에 수학성적이 일등인 학생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강의가 정말 좋아요. 매우 체계가 잡혀 있어요.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면 다 이해할 수 있어요. 하교 후 책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이건 사부님께서 학생의 입을 빌어 나를 격려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명예를 구하지 않으니 유유자득이요”[5]의 수승한 경지도 체험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2]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체득했다.

이상은 자신의 최근 약간의 심득 체험이다.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유럽법회에 보내는 축사’[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3] 리훙쯔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 설법‘[5]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사람 되기’

문장발표: 2017년 10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해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24/3519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