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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풍류인물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

글/ 화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8년 정월, 중병에 걸려 막다른 골목에 이른 나는 다행히도 파룬따파를 만나 하루도 안 걸려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19년 동안 사부님을 따라 수련했고, 사존께서는 나에게 ‘정법시기 대법제자’란 칭호를 주셨다. 나는 비할 바 없는 영광과 비할 바 없는 자부심을 느끼며 어깨에 짊어진 책임의 중대함을 깊이 느낀다. 아래에 나는 몇 년 동안 체득한 ‘오늘날의 풍류인물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는 제목으로 나의 수련 경험을 위대한 사존께 보고하고 전 세계 대법제자 및 인연 있는 사람과 나누려 한다.

경시로부터 존중으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기억하라. 당신의 정념은 속인을 개변할 수 있는 것으로 속인이 당신을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속인이 무엇을 말하든지 혹은 당신을 교란했더라도 당신은 마음속에 두지 말고, 당신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 사람의 사상 내원(來源)은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은 관념이 말하고 있는 것이지 자신의 진념(眞念), 자신의 진정한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입에서 나오는 말은 종종 옳은 것 같지만 옳지 않으며,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어서 그는 자신이 했던 말도 금방 잊어버린다. 그도 자신이 한 말을 중시하지 않는데, 당신이 무엇 때문에 중시하겠는가? 그가 무엇을 말하든 상관하지 마라, 당신이 한 매 한마디 말은 그에게는 모두 탕탕 울리는 우레이다.”[1]

3년 전 나는 병원 임상과에서 관리과로 옮겼다. 이곳 사람 대부분은 권세가 있었고 다수는 여성이어서 옷차림에 신경을 썼는데, 심지어는 이를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여겼다. 저마다 건방지기가 말이 아니어서 새로 온 사람에게 몹시 쌀쌀맞았다. 50살이 다 된 나는 중도에 직업을 바꾸다 보니 업무가 낯설고 책임자가 일을 분배해주면서 잘 가르쳐주지 않아 나는 압력을 느꼈으며 심지어 그들을 미워했다. 수련인은 참아야 함을 알고 있었으나 마음속은 불편했다. 나는 이곳이 내가 사람을 구하는 새로운 환경이며, 그녀들은 나와 인연이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머리 안에 사당 문화로 꽉 찬 이런 사람을 구도하는 어려움을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

그때는 대법이 박해당한지 15년이 되는 해였다. 병원에는 10여 명의 대법제자가 있었는데, 3명이 불법으로 형을 선고 받아 해임되고, 한 사람은 핍박으로 전임됐으며, 남은 수련생은 차별대우를 받았다. 병원에서 대법제자를 직접 박해한 사람은 보응을 받아 어떤 이는 암에 걸리고, 네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암 말기인 사람이 한 명이었다. 나는 중생을 위해 책임져야 하고 그녀들을 구해야 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그들의 집착에 따라 구도하려 했다. 예전에는 사람에게 순종하면서 중생의 부정적인 일면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즉 사람의 집착에 따랐다. 15년이 됐다. 중국공산당 거짓말 매체의 유혹 하에, 장쩌민 집단의 광적인 탄압 하에서, 대법제자가 수련을 견지하고 진상을 알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 두려운 마음이 수시로 나왔고 많은 대법제자가 좋은 사람이 되는 잘못된 인식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고, 치욕을 참아가며 무거운 중임을 맡았다. 자신도 모르게 가정에서, 사회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위치로 전락됐고 좋은 사람이 되는 존엄을 얻지 못했으며 중생이 업을 짓게 해 그들을 망쳤다.

수련 전 내가 아팠을 때 머리카락이 단시일 내에 모두 백발이 됐는데 내가 이런 백발을 하고 옷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어찌 그녀들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나에게 좋은 직업을 갖게 해주시고 많은 돈을 벌게 한 것은 사람을 구하는데 쓰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잘 이용할 것이다. 속인은 명예, 이익, 정에 집착해 돈이 있고 권세가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래서 나는 하지 않던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해서 멋있는 머리 모양을 했다. 옷과 가방도 모두 몹시 신경을 쓰며 자신을 치장했고 사람을 대범하게 대해주면서 기품 있게 행동했다.

나에게는 풍부한 임상 경험이 있었다. 나는 자료 파일을 독학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자료 검색을 했으며, 직업에 대해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해 업무수준의 제고가 아주 빨랐다. 주임이 나에게 맡긴 업무를 아주 출중하게 완수했다.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서서히 나는 그녀들 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한가해지면 다른 과 사람과 접촉했다. 그녀들이 많이 담론하는 것은 미용, 건강, 옷을 사는 것이었다. 어느 집에 권력이 있고 돈이 있으면 나는 따라서 그녀들이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해주고 그녀들이 추천하는 화장품을 사기도 하면서 점차 거리를 좁혔다. 그들의 마음은 천천히 약해졌으며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지혜롭게 “대법은 무엇이며,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하며, 대법을 지지하면 복을 받고, 대법을 훼손하고 대법을 파괴하면 천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는 진상을 알려줬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데로부터 눈이 휘둥그레 놀라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녀들의 마음의 매듭은 하나하나 터져서 열렸다.

몇 달 간의 노력으로 나는 20여 명이 진상을 알게 했고, 5명 이상의 동료가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나는 임상과에서 검사하는 유리한 조건을 이용해 사람 구하는 일을 바짝 틀어잡았다. 나의 대범하면서도 선량하며 엄격하면서도 신중한 업무 태도, 출중한 업무능력은 상사의 찬사를 받았다.

나는 늘 상사를 모시고 검사하는 일에 배치됐다. 나의 지혜로움은 지도부와 전문가의 칭찬을 받았다. 나는 일체 기회를 이용해 전문가들로 하여금 대법 진상을 알도록 했다. 현재 나는 많은 전문가와 친구가 됐다. 그녀들은 나에게 남들과 다른 곳을 발견했다고 했다.

업무 중에 자신도 모르게 주임과 쟁론이 붙을 때가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옳다고 여겼다.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나의 자비심이 부족함을 의식했다. 표면적인 위엄은 쟁투심, 질투심, 증오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을 폭로했다. 나는 시간을 다잡아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며 그것을 배척했다. 과장은 나에게서 여러 번 대법 진상을 들었지만 대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일심으로 벼슬을 하려고 사당 조직을 단단히 끌어안고 진상을 듣지 않는 가련한 생명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어느 지역이든 기본적으로 당신들이 바로 그 지역 중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며, 아울러 유일한 희망이다.”[2] 우리가 같이 근무하는 것은 연분이며 그녀가 구원될 수 있는 기회이므로 나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서서히 그녀에 대한 나의 질투심이 없어지고 증오도 사라졌다.

전국의 의료 분쟁이 잇따름에 따라 병원장으로부터 과장에 이르기까지 잇따라 연루되어 낙마되자 병원의 관리업무에 종사하는 직원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했고 업무에 대한 압력이 매우 높았다.

나는 과장의 업무에 더욱 협력하게 됐다.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많이 개변됐고 업무적으로도 점점 더 나에게 의뢰했다. 그녀는 중요한 업무가 있으면 주동적으로 나를 찾아 의논했고 처음에 얕보던 데로부터 존중으로 변했다. 진상을 알게 된 관리층 동료와 상사는 모두 나를 존중했고 심지어 탄복하기까지 했다.

나는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지적으로 했다. 17년 동안 신의 길에서 안정되고 착실하게 걸었으므로 기본상 엄중한 박해를 받지 않았다.

신수련생의 큰 변화

새 업무과에 온지 3년 남짓 되어 여러 동료가 진상을 안 후 수련에 들어섰다. 그녀들은 늘 내 사무실에 와서 자신이 수련 후의 어떤 신기한 일을 이야기 하곤 했고, 그녀들이 수련 후 어떻게 심성을 제고했는지 말하면서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겼다. 누가 가부좌를 오래하는지, 누가 연공 동작이 표준적인가를 보았다. 그녀들의 교류를 들으면서 나는 늘 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갑은 수련 후 치매에 걸린 자신의 시어머니를 알뜰히 돌보아 주었고, 원망도 후회도 없이 형제자매와 따지지 않았더니 오래 앓던 위장병이 나았고, 갑상선 기능항진증이 사라졌다. 이전의 그런 교활하고 이기적이며 마님 대우를 받으려던 습관이 고쳐졌다. 그녀는 말했다. “수련을 거쳐 사당에 중독되어 어떻게 사람이 돼야 하는지 모르던 것을 알게 됐으며, 권세가 있어도 기쁘지 않았으나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라고 했다.

을은 산부인과 의사다. 2년 전에 의료 분쟁이 있어 건강이 나빠졌다. 온종일 고뇌에 시달렸고 우울증에 걸려 몇 번이나 자살하려 했다. 의사인 남편도 쉬는 날엔 집에서 그녀를 보살폈고 가족들은 근심이 태산 같았다. 그녀는 더는 임상 업무를 감당할 수 없어 관리과로 전출됐다. 그러던 그녀가 수련을 시작한지 며칠 만에 병이 모두 없어지고 정신 상태가 완전히 좋아졌다. 줄곧 높은 자리에 있어 말이 없던 그녀의 남편이 나를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수련하면서 을은 임상과의 우월한 대우, 더욱이 부정한 수입을 내려놓았다. 산부인과 의사는 매일 환자에게 유산을 시켜 살생을 한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하여 많은 업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수련의 길로 걷게 된 것을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사람이 사는 의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수련 전, 을은 시아버지와의 모순을 내려놓지 못했었다. 근래에 시아버지는 병이 중해 시어머니에게 쫓겨났다. 평소에 제멋대로였기에 자식들도 모두 그를 싫어했다 그래서 시아버지는 수 천리 밖에 있는 막내에게 전화를 걸었고 막내는 몹시 난처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미안한 일을 했고 더욱이 병까지 심하니 아내가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이 아내의 의중을 떠보자 아내는 두말없이 허락했다. 남편은 아내의 뜻밖의 허락에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아내는 그에게 말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제가 당신 집에 시집온 날부터 당신 아버지는 집안일에 아무 상관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즐거움만 누리셨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시아버님을 걱정하겠어요?” 시아버지가 온 후 을과 남편은 노인을 알뜰하게 돌보아 주었다. 1개월이 지나자 노인의 안색이 좋아졌고, 며느리에게 쫓겨날 걱정도 하지 않았다. 대법이 그녀를 개변시켰고 그때부터 온 가족은 그녀의 수련을 지지했다.

신수련생들은 “말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서 “오직 수련을 잘하는 것으로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득> 수련경험>진상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26/3522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