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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련생,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반년 전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직장에 출근하고 있다.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2017년 막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지만 대법이나를 구해주었으므로 나는 두 번째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내가 그동안 겪었던 일을 수련생과함께 나누고,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글이 대법수련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갑자기 닥친 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다

나에게 처음 병마가 닥친 것은 2007년이었다. 아래턱에 달걀노른자 크기만 한 종양이 생겼는데 아프지도 않고 가렵지도 않았으며 또 더 이상 크게 자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는데 의사 말로는 “림프선 칼슘화현상이니 신경 쓸 것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대로 지냈는데, 4년 후인 2011년 뒤통수가 살살 아프기 시작해서 병원에 가 진찰을 받았다. 의사는 “신경이 쓰이면 수술하자”고 해서, 나도 작은 종양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을 받으면 될 것 같아 부담 없이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마취에서 깨어난 후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말을 돌려서하는어머니의 말과 눈빛이 이상했고, 30분이면 끝날 것이라던 수술도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는것도 그랬다.

수술경과는 심상치가 않았다. 머리는 돼지 머리처럼 부어올랐고, 물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었다. 물을 삼키려고 하면 극심한 기침을 하게 되어 수술 받은 상처부위와 목구멍이 모두 아팠다. 7일 후 퇴원하려고 할 때 외숙모가 조직검사결과 악성종양(암)으로 판정됐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순간 정신이 몽롱했다. ‘암? 난 이제 끝장이로구나!’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생인 딸과 늙어가는 부모를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지만 나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럴수록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고작 방사선치료가 아닌가? 별게 아닐 것이다.’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기로 했다.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병마(病魔) 쯤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치료가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것인지를당시는 몰랐다. 37차례 방사선치료를 받은 후 의사가 나에게 세수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떤 환자가 이런 치료를 받으면서 세수를 하다가 피부가 모두 떨어져 나갔다.”는 경고의 말을 했다. 입안이 헐어 무척 고통스러워 한 끼 식사를 하는데 1시간이상 걸렸다.

그래도 가족들은 내가 조금이라도 식사를 해서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식사를 하면서 겪는 고통은 나만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의사가 호르몬을 투여했고마지막에는 화학약물요법 치료를 했다. 그날 아침 거울 안의 내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얼굴이 온통 퉁퉁 부었고 희게 변색됐는데 그건 사람모습이 아니었다. 더는 그런 치료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또 계속 하기도 싫었다. 마지막 남은 한 번의 치료도 포기하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이정도의 치료면 충분하고 또 재발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며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2012년 정기검진에서 채혈과 CT촬영을 했는데, 사진 판독 결과 종전과 다소 달랐고, 소견서에 ‘폐에 다발적 결절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전이가 의심 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나는 전신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병원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 남편도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나를 이끌고 함께 의사를 찾아갔다. 당시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데 전혀 들리지 않았고,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진찰실을 나와 경비 의자에 앉아 대성통곡을 한 것만 기억난다. 남편은 나와 조금 떨어져 있는 기둥 뒤에 혼자 오래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이 말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우리는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을 거예요.”

이때부터 우리 부부는 이곳저곳 모든 병원의 단골손님이 됐다. 톈진, 베이징 등 유명하다는 크고 작은 병원을 모두 다녔고, 무슨 치료방법이 있다고 하면 모두 시도해봤다. 화학약물요법 치료로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그 독성 때문에 식욕을 잃어 밥 먹는 것이 죽기 보다 더 힘들었다. 구토 부작용 약 때문에 위는 고무공처럼 부었고, 심한 변비로 화장실에서 여러 번 통곡하기도 했다. 한 번에 32알의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는데 오히려 혈색은 좋아 보이고 살이 쪘다.

2014년 수술부위애서 암이 재발했다. 단 1회 재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턱은 물론 전체 목 부위의 최대의 범위까지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2014년부터 2015년 간 여러 차례 담낭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 일부 폐 기능을 상실했고, 방사선 조사 위치가 심장과 너무 가까워 심장에 장애를 일으켜서 심장박동이 빨라져 1분에 130~150회의 박동 수를 보이기도 했다. 이러다가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지 못할 것만 같은 절망감이 들었다.

고통이 너무 심해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차츰 검사를 거부하게 되었고, 치료도 거부하게 되었다. 부모님들은 너무나 가슴이 아파 그런 나를 바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항상 환하게 웃던 딸이 이런 모습이니 부모님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도 집안에서 병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어느 날 정신마저 무너질 것 같아 남편에게 말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참으로 힘든 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는 거예요.” 내가 죽는다면, 이 가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도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한방(中醫) 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매번 약탕기의 독한 약물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토별충(土鱉蟲)이 약탕기 안에서 떠다니는 것을 보면 남들은 뒷걸음질 치는데도, 이것이 나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라고 여기며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식으로 그것에 의지해야만 했다.그런데도 나의 운명은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가만두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절망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2016년 12월, 심한 기침을 하면서 폐가 뜨거워지는 감을 느꼈고, 다시 기침을 하자 많은 피를 토했다. 그 후부터 1주일 내내 심한 각혈을 하면서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남편은즉시 나를 베이징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진찰을 받게 했는데, 진찰실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각혈을 했으며, 화장지를 2매씩 두껍게 댔어도 넘쳐나 옆에 있던 한 젊은이는 놀라 피했다. 내 병에 대해 훤히 알게 된 나는 다시 촬영한 CT에서 종양이 가득 찬 것을 보았고,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복강에 물이 차서 간으로 전이되었고, 죽을 때가 곧 닥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치료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이쯤에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대법 사부님이 두 번째 생명을 주시다

내가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이젠 더 이상 치료받지 말거라. 사는 게 사는 멋이 있어야지.” 그날 저녁 아버지는 고모와 전화하면서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바로 그때 남편은 또 파룬궁(法輪功)을 생각했다. 남편은 비록 대법제자는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파룬궁 대법을 수련해보라고 계속 권했었다. 그건 남편이 대법의 신기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2013년 친구 어머니도 나에게 대법 책과 CD를 주면서 수련해보라고 권했어도, 수십 년간 ‘무신론교육’을 받은 나는 대법책의 내용이 마음에 닿지 않았다. ‘전법륜(轉法輪)’을 집에 3개월 놓아두고 겨우 ‘논어’만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잃어버려 헛되이 낭비한 시간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친구 부모가 대법수련을 오랫동안 했다는 것을 생각했고, 그에게 ‘전법륜(轉法輪)’과 그 외 사부님 설법을 구입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다음 날 즉시 사부님 설법이 녹음된 mp3와 CD를 가져다주었고, 초면인 한 여자가 자신이 법을 얻은 후건강이 좋아졌다는 신기한 경험을 말해주었다. 그녀가 겪었다는 체험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며, 나도 법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보서인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맞아들였고, 그 여자는 날마다 나를 찾아와 함께 법 공부를 했다. 심한 각혈로 움직이지도 못했던 내가 그녀와 함께 앉아서 법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법을 읽으면서 차츰 각혈도 줄어들다가 한 달 뒤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차도를 보이자 수련생 몇 명은 내가 법 공부를 더 잘 하도록 배려했는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매일 저녁 나를 찾아와 함께 사부님 설법을 읽고 보고 또 한 장씩 연공도 했다. 그때부터 단체 법 공부를 하는 중에 단 한 번도 기침을 하지 않았으며, 순정하고 아름다운에너지장의 환경에서 대법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면서 매일 시댁에 가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끔씩 회사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동료들이 모두 안색이 좋아졌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수련하라고 다시 목숨을 주신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해서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법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인가’를 알게 됐다. 오직 진선인(眞善忍)으로가늠해야 하고, 이 특성에 부합돼야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인 것이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는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대하고, 일도 성심껏 했는데 왜 이렇게 운이 나쁘냐?’며 늘 자신의 불운을 원망했다. 사부님께서는 사람들은 모두 업에서 업이 굴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야, 열심히 일했다고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명리심과 남보다 더 잘하고 싶은 쟁투심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또한 학생을 가르칠 때는 가끔 말을 격하게 하거나 매몰차게 해서 듣기 거북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정에 문제가 발생했다. 남편은, 내가 50 위안(약 8,500원)을 사용하면서 미리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나를 책망했다. 나는 남편의 그런 책망이 용납되지 않았다. ‘나도 돈을 버는데 왜, 그렇게 나를 책망하는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화가 나서 하루 내내 집에서 울었다. 울고 나서 ‘나는 수련자가 아닌가, 무슨 일에 부딪쳤을 때 안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히 사부님께서 제고하라고 배치해 주신 것이다. 얼른 눈물을 닦고 법 공부를 했는데, 책에 모두 씌어 있었다. 저녁에 남편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내 마음은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사과했다. 남편은 기뻐하면서 “당신은 지금 수련자이니 그렇게 울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 사부님께서 남편 입을 빌려 나에게 점화해주신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지병이 도진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고 괴로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조용히 일어나 앉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하고 외웠다. 어느새 불편했던 증상이 모두 사라졌고, 눕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정말 사부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자비로운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이처럼 자비롭게 제자를 돌봐주신다.

3개월 전, 갑자기 법 공부 하기가 싫어져 침대 머리맡에 놓았던 대법 책을 거실로 옮겨 놓았다. 그렇게 며칠간 법 공부를 하지 않았으며, 그런 행동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을 읽기가 싫어 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나의 그런 행동이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수련생이 와서 함께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하면서 ‘主意識(주이스)가 강해야 한다.’는 단락을 읽었으며, 반복해서 읽는 동안 그런 생각들은 내가 아니라 사상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나쁜 생각을 강하게 배척했다. 그 후 다시 법 공부를잘 할 수 있게 됐다.

얼마 전, ‘이미 병도 없고 건강도 좋아졌으니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그렇지만 출근하게 되면 법 공부와 연공할 시간이 없을 것만 같은 걱정이 들어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났고, 그가 사람이 많이 부족한데 수업을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개학이 되어교장은 나에게 하루 4시간의 수업을 배정해주었는데, 시간배정은 꼭 정상 출근으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므로 수업을 맡으면서 동시에 법 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또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도 생겼다. 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신 사부님께서 가장 좋게 안배해 배치해 주신 것이다.

수련 기간이 짧기에 관을 넘을 때 자신의 심성을 잘 파악하지 못해 이런저런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고, 가끔 예전 병이 재발한 것 같은 가상이 나타나서 수련을 교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대법은 끝없는(大法無邊) 것으로서, 전적으로 당신의 이 마음에 의거해 수련해야 한다고 한다. 사부가 문으로 이끌어 들이나 수행은 개인에게 달렸으며,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가를 본다.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당신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가 없는가, 대가를 치를 수 있는가 없는가, 고생을 겪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만약 이 한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1]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할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신사신법(信師信法)만 하면 틀림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말법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진상을 모르고 있을 때, 대법을 얻어 수련의 길로 들어와 반본귀진(返本歸真)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어떤 말로도 사존님의 홍대한 은혜의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7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9/3556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