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중국 대륙의 파룬궁수련생이다. 1999년 전에 법을 얻었는데 지금까지 수련해왔다. 대법이 박해당하기 시작하자 사악한 중국공산당 통치하에서의 각종 박해, 구금, 노동교양, 고문 등을 봤고 겪었다.
법을 얻기 전에는 무술 애호가였다. 그래서 신조협려 같은 인생이 나의 이상이었고 죽지 않고 늙지 않으며 윤회에 빠지지 않는 생명을 추구했다. 어릴 적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에 사람이 죽으면 최소 윤회가 있고 우주 속에서 무섭게 사라지지는 않지만 윤회 중 줄곧 삼계 내에 있을 것이고 근본적으로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대학에 이르러 품성과 학습 성적이 우수했지만 중국공산당 교육계통 속에서 세뇌 밖에 없었고 전반 교육과정은 바로 전통문화의 계승을 포기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무시하라는 것이었으며 인생의 의의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깊은 곤혹을 남겼다.
각종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전법륜’을 읽고 몸의 병업이 3개월도 안 되어 완전히 없어진 후 드디어 인생의 모든 답안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대법은 내가 가지려는 답안을 줬다. 수련 초기 나는 대법 중 답안을 찾았고 대법이 사람으로서 추구하려는 나의 관념에 부합된다고 생각했다. 법을 얻은 초기 개인 원만만을 추구했고 개체 생명이 어떻게 해탈하고 자신이 가지려는 것과 바라는 모든 아름다움을 얻으려 했다. 대법을 수련하면 윤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법을 얻은 최초의 생각이었다.
사존께서는 “법에서 수련하지 않고, 박해를 감당하는 자체로는 더욱 높게 수련할 방법이 없으며, 대법제자의 표준엔 더욱 도달하지 못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악의 심한 박해 중 박해 초기 당시 추구하는 경지는 정의의 화신, 우주의 수호자였다. 반드시 고난 중 고험을 받아야 더욱 높게 닦을 수 있고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고 착각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현수막을 높이 들었을 때 사복경찰에 의해 미친 듯이 구타를 당했고 구치소에 수감되어 박해까지 당했다. 당시 여전히 사(私)를 위하는 동기와 관념의 기점에 서서 대법을 실증했다. 그렇지만 사부님께서는 완전히 타인을 위하는 경지로 닦으라고 요구하셨다.
법을 얻은 초기에 완전히 자아 해탈을 위한 이상 기점은 ‘자아’를 위한 출발점이기에 박해를 받는 고험 속에서도 이 기점으로 사고하고 대응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고비를 뚫은 것이었다. 교도소에서 매달려 고문을 당했고 대소변을 가누지 못했으며 거의 지각을 잃어버렸고 고통을 반복적으로 감당하다가 타협당해 정신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상태에 처해있었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시든 생명이 된 것 같았고 여전히 박해당하는 대법을 대면할 동력이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악랄한 환경 중에서 일반적인 수감자는 법적 책임을 추궁 받지 않게 하는 경험을 많이 교류했기에 왜곡된 인간관계 속에서 천천히 변이될 수밖에 없었다. 대법제자는 이런 환경 속에서 많이 오염될 수밖에 없다. 강제 세뇌를 당하자 어떤 사람은 견뎌내지 못해 심지어 대법의 대립 면으로 나아갔다. 구치소에서 불법 수감되어 있을 때 교도관은 화장실에서 남은 찌꺼기 밥을 건져 먹으라고도 했다. 수감된 사람은 교도관에게 구타당할 때도 ‘교도관은 좋습니다’를 외쳐야 했다. 그리고 각종 변태적인 학대 수단도 많았다. 교도소에 고발제도가 있는데 고발자는 다른 사람을 고발해 소위 공을 세우는 기회가 있을 수 있기에 교도소에서 사람지간의 관계를 극도로 긴장하고 대립되게 만들었으며 사람지간의 최후의 신임을 철저히 아귀다툼하고 왜곡되게 만들었다. 오래되면 일반 수감자도 이 분위기에 휩쓸려 교활하게 된다. 막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 표현이 아주 확고한 수련생을 독방에 가둬놓고 사악한 경찰이 그를 강박해 반복적으로 대법을 모욕하는 문장을 베껴 쓰고 외우게 했다. 이후에 이 수련생이 교도소에서 나왔는데 정신이 이상하게 됐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장시간 지속되는 육체와 정신적 박해를 하는 목적은 외롭고 격리된 환경 속에서 박해를 감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지는 끊임없이 소모된다. 만약 법에서 자신을 확고하게 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교도소에서 수련의 기연을 잃어버릴 수 있다.
당시 고문을 한 번 더 당하면 나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진상을 알리는데 참여하지 않거나 적게 참여하고 안전을 보장받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 속에서 한동안 지냈고 수련생이 교류해도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없었으며 사악을 대면할 신심이 사라졌다. 이 마음의 매듭은 하나의 옭매듭처럼 날 꽁꽁 묶어 소침의 어둠 속에 가둬놓았다. 이런 소침한 상태 중에서는 어떻게 해도 수련 초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하나의 상처다.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체제가 내게 준 지워버릴 수 없는 파멸적인 정신적 죽음이었다.
자신의 생명 본원의 층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라면 아마 태어나서부터 높게 닦을 수 없는 그런 부류의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대법에 대한 부족한 인식 중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기타 진상 항목에 협력할 필요가 있고 일손이 딸리는 것을 알면서도 소극적으로 참여했거나 한계를 긋고 참여했으며 세 가지 일을 했다. 결국 스스로 괴로울 뿐만 아니라 아주 강한 힘에 억제되고 있는 것 같았다.
박해와 고문을 당했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올 수 없었고 잠재의식으로도 이런 사악한 고문의 고비를 뚫고 나온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생명이고 비로소 수련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당시 수련경지 표준에 대한 인식이다. 이후에 수련 중 돌이켜 봐서야 이런 구생명의 관념에서 나온 인식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구세력의 행위를 묵인하게 됐고 구세력이 정법에 강요한 소위 시험이란 논리를 승인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은 내가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생긴 엄중한 장애였다.
주변 수련생 중에도 이런 소극적인 장애가 적지 않음을 봤다. 이런 장애로 인해 가져온 소극적인 움직임에 의해 어떤 수련생은 거의 대법 수련을 포기했고, 어떤 수련생은 이런 스스로 구세력이 배치한 상태를 철저히 부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각종 진상 항목에 참여하고 진상전단지를 보내며 근거리 발정념을 하고 진상전화를 하고 수련생을 구출하는 항목에 참여하고 대면 삼퇴 등 항목에도 참여했다. 나도 비록 사부님의 요구대로 세 가지 일을 했지만 피동적으로 하는 상태였으며 주동적으로 정법에 참여하는 것과 완전히 달랐다. 이런 피동적인 것을 주동적인 것으로 정법을 대하는 태도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불합격이라는 것을 알지만 도대체 방해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수련생과의 교류 중 유일하게 말해낼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그 중 한 가지 억제요소다. 사실 지금 봐서는 자신이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사명이 있기에 비로소 ‘대법제자’라 칭하는데, 개인 원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은 대량의 생명을 데리고 원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가서 해야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당초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고 개인수련을 초월하고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요성을 의식할 수 있을지는 전혀 몰랐다. 이런 인식이 생긴 후부터 생명의 본질이 비로소 미래 우주 신생명의 요구에 부합되는 표준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위대한 법이 보여준 위대한 내포는 대법제자의 사명에 대해 이해하는 중에서, 오늘날 정법의 중요성이 이전 역사의 어떤 수련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의식하게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대법의 위대함은 이 20여년 수련 중 철저히 날 개변시켰고 완전히 이타적인 경지와 가깝게 만들고 있으며 동시에 이 기초상에서 반박해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참여하게 했다. 20년의 대법 수련은 안으로부터 밖으로까지 진정으로 나의 생명의 본질을 개변했다. 이기적인 기점에서부터 모든 정체를 위하는 출발점으로 날 개변시켰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위대한 법, 위대하신 사존이시다.
2015년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대량적인 법공부를 통해 실명으로 장쩌민 고소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속인이든 정법노정의 요구에 따라 참여하는 대법제자이든 반드시 장쩌민을 고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모진 억울함을 왜 감히 호소하지 못하는가? 그럼 속인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대법 수련자로서 왜 정정당당하게 법률을 이용해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는가? 장쩌민을 실명으로 고소하는 것이 법률 측면에서 이치가 있고 법률이 허락하는 이상 왜 하지 않는가?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걸어나오지 못한 수련생과 잘하지 못한 제자와 중생에게 또 한 번 자비의 표현이 아닌가?
대량 법공부 중에서 무엇이 구세력이고 어떻게 구세력을 법리상에서 부정하는가에 대해 갈수록 똑똑해졌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바르게 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정념이 아주 충족하다는 것이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고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한다면 당신은 구세력을 부정하고 당신 자신의 길을 올바르게 걷는 것이다.”[3]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대법의 요구대로만 한다면 바로 구세력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구나. 당시 갑자기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자신감을 본 것 같았다. 자신이 서약을 완성할 수 있고 뭐든 다 타파할 수 있는 마음은 대법에서 온 자신감이다.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난 사부님의 제자다. 꼭 자신의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드디어 법공부하면서 교도소에서의 고문의 그림자로 인해 형성된 생각이 다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교도소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고 줄곧 내려놓지 못하며 줄곧 마음에 뒀던 인식과 상태 자체가 바로 구세력이 사람을 파멸시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고문으로 시험하는 것은 대법의 위대한 내포에 없고 미래 우주에서 필요하지 않으며 사부님께서 철저히 부정하신 것이다. 신우주의 생명으로서 설령 구세력의 참여가 없을지언정 사부님께서는 완전히 자비롭고 조용한 방식으로 구도하실 수 있다. 이것은 대법의 지혜고 구세력이 할 줄 모르는 것이다.
반복적인 법공부 중 대법과 사부님의 무한하고 심오한 내포는 하나의 생명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원래 구세력이 강요한 이 한 차례 마난을 대면할 때 신심이 부족했던 원인은 법리상에서 법의 위대함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역시 신사신법이 부족했던 것이다. 대법의 법리는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았던 장애를 단번에 타파했다. 사실 법 중에 이미 있었는데 난 왜 보지 못했을까? 여전히 법공부를 잘하지 못했기에 많은 굽은 길을 걸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법공부할 때 생긴 이런 정념은 천천히 나의 신심을 증가시켰고 사악과 수련 중의 어려움이 다시는 그렇게 넘을 수 없게 보이지 않았다. 법의 요구대로 하고 남은 모든 것은 사부님께 맡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충분히 내가 일하는 자원과 능력을 이용해 정체상에서 수련생과 협력해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 어느 수련생이 인식 방면에서 부족하면 주동적으로 환경을 창조해 함께 교류했고 수련생이 정체에 참여하고 대법을 더욱 잘 실증하게 했다. 나와 다른 수련생은 수련생의 특기에 따라 각종 진상항목을 계획하고 일부 특기가 있는 수련생이 참여하게 했다. 이렇게 한 방면으로 개인수련 상태에서 벗어나 법리상에서 제고해 올라올 수 있고 다른 한 방면으로 정체 협력상에서도 더욱 큰 힘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반박해에 더욱 유리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우리 현지의 서로 다른 몇 개 법공부 팀이 서로 연락됨으로써 보기에는 분산되어 보이지만 하나의 정체가 형성되고 있다. 이 정체는 수련생이 박해당했을 때 현지 전체 수련생, 심지어 이웃 도시의 수련생도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소식을 알게 해서 다른 공간에서 박해를 만들어낸 사악에 대해 제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이전에 아내가 현지 협조인 역할을 했는데 수련생을 구원할 때 공안, 검찰, 법원 계통 공무원과 늘 직접 접촉해야 했다. 안전을 고려해 구원 방식에서 늘 아내와 갈등이 생겼고 어떤 구원 방법은 지나치게 충동적이고 기술 측면에서 ‘누락’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내에게 압력을 줬다. 나의 이런 상태는 무의식적으로 구원항목 전개에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아내가 집의 승용차를 몰고 직접 파출소, 교도소에 수련생을 구원하러 가면 나는 CCTV가 있어 차량번호가 폭로되면 경찰에게 위치추적을 당한다고 했다. 이후에 주동적으로 아내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진상을 알리는 일이 있을 때 마음속으로부터 기뻤고 대법과 연결된 강렬한 신성함이 있었다. 안전 문제에 있어서 나와 아내는 정념을 강화하고 안으로 찾는 것에 공을 들였더니 상태는 달라졌다.
나의 대법 중 사명은 정법과 함께 존재하기에 무한한 내포가 있는 것이고 이런 정법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 의의로 인해 늘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마치 처음으로 수련의 마음고생의 진실한 내포를 깨달은 것 같았다. 대법이 모든 수련생에게 준 조사정법의 사명감이 마음속에서 떠오를 때 대법의 세 가지 일을 하기 위해 그 어떤 고생도 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이 힘은 생명의 가장 본원에서 온 것이고 사람 표면의 모든 부패 물질과 올바르지 못한 관념을 빠르게 바로잡아줬다.
바로 대법에 의거해 생긴 이런 정념으로 진상을 알리는 항목에 참여해 세 가지 일을 했을 때 생명의 진정한 의의는 법을 얻은 초기 개인수련 단계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대법에 대한 사명감으로 완전히 타인을 위하는 기제가 깊은 마음속에서 형성됨으로서 사부님을 바싹 따라 중생을 구하는 소원이 갈수록 강렬해졌고 사부님께 대한 경의도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으며 더욱 신성하고 순결해졌다.
완전히 사를 위하는 기점에 서서 원만을 추구하는 생명으로부터 중생을 구하기 위해 마음고생을 하고 완전히 타를 위하는 강렬한 소원을 가진 대법 수련자로 개변됐다. 오로지 이 위대한 대법이야말로 비로소 진정으로 날 개변시켰고 날 자각적으로 타를 위하는 생명으로 만들어놓았다.
이상은 약간의 개인적인 수련경과와 체득이다. 적절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3/3554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