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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심을 버리는데 대한 재인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95년부터 지금까지 수련하면서 질투심을 버리는데 대해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원인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자신에게 질투심이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를 다닐 때 공인하는 모범생이고 품행과 학문이 우수해 칭찬을 들으며 자랐다. 일에 종사한 후 업무 성과가 현저하여 상사와 동료들의 공인을 얻은 외, 논문도 상을 받았다. 작품은 여러 번 신문, 권위 있는 정기간행물, 책에 실리고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왔으며 해마다 우수상에 선정됐다. 이런 일반인보다 뛰어난 점에 나는 자연스럽게 일종 우월감이 생겼고 다른 사람보다 위라는 마음이 있어 다른 사람만 나를 질투할 수 있고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했다. 나는 그들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수련한 후 내가 접촉한 수련생은 지식이 높지 않고 한 수련생만 유명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배운 것은 이과이며 언변이 좋지 않고 말을 매우 적게 했다. 속인 때 양성된 우월감을 버리지 못해 나는 좀 지나치게 잘난 척하고 늘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며 과시 등을 했다. 이런 것을 인식하고 안으로 찾아 노력해 이 사람 마음을 제거할 때 더욱 더 자신에게는 질투심이 없다고 인식했다. 비록 ‘전법륜(轉法輪)’을 몇 번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읽었으며 또 두 번이나 외웠지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을 대조해 질투심을 찾은 적이 없었고 그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아마 이 마음을 버릴 때가 됐는지 오늘 오전 법공부를 할 때 ‘질투심’ 이 단락을 읽을 때 마음이 특별히 조용하고 잡념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특별이 맑았으며 집중하고 매 글자마다 마음에 들어왔다. 이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나는 사존께서 이 구절에 여러 번 ‘평형을 이루지 못해’를 사용하신 것을 발견했다. 나는 ‘평형을 이루지 못해’가 질투심이 가장 주요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해 질투가 생기는 것이다. 사존은 또 세 차례 ‘불복’을 언급하셨다. 나는 ‘불복’이 어찌 질투심과 관련이 있는가 생각했고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후에 사존께서 사례를 든 신공표(申公豹)에서 계시를 받았다. 속으로 불복하고 ‘교란’하는 배후는 바로 질투심이 촉진한 것이다. 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불복하면 또한 쟁투심을 일으킨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1]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는 늘 여러 번 평형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것은 나에게 질투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불복하는 것도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쟁투심 또한 매우 강하다. 이 양자가 합해서 오랫동안 축적되면 얼마나 되는 질투심이 생기겠는가. 나는 자신이 일찍 ‘질투심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한 것에 얼굴이 붉어졌다. 많은 수련생도 나처럼 질투심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한다. 평소 말수가 적은 수련생도 “자신을 수련해야지 다른 사람을 질투해서는 무엇 하겠는가” 등등을 말한다. 당연히 고의적으로 속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질투심은 동양인은 아마 모두 있을 것이다. 단지 크고 작은 정도가 같지 않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나타나고 어떤 사람은 잘 나타나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은 비교적 은폐되어 있다.

오늘날 중국 대륙인의 질투심은 너무 강하고 보편적이며 강렬하다. 일반적이어서 사람은 느끼지 못한다. 절대 평균주의는 그것의 구실이고 ‘속으로 경쟁’하는 것이 그것의 표현형식이다. 특히 사악한 당(黨)문화 투쟁철학의 기세, 주입, 선동 하에 목적 있게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비판하는 환경 속에서 질투심은 더욱 더 생겨난다. 사람마다 가까운 적이며 수시로 어디에서나 질투심이 생긴다. 비웃는 사람이 없어도 질투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오늘날 중국인의 보편적인 심태다. 가족, 친구 사이도 흠모하는 배후에 질투심이 숨겨져 있다. 돈이 있는 사장도 하층 작업자에게 겨우 있는 그 ‘소박한 즐거움’도 질투한다.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질투심이다. 인심의 부패, 사회도덕의 타락, 미끄러짐, 많은 나쁜 일은 원래 대다수 모두 질투심이 촉성한 것이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1] 나는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질투심은 정말 너무 두렵다. 절대로 질투심을 버리지 못해 자신의 수련이 허사로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질투심을 닦아 버려야 한다.

1. 집안에서 질투심을 버리다

나는 남편이 그의 집을 세놓아(그는 내 집에 살고 있고 우리는 재혼임) 매달 집세 수 천 위안을 전부 그의 전처와 아들에게 준 것이 생각났다. 총 8만 위안이었다. 나는 한 푼도 얻지 못했고 마음이 평형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내 집에 살기에 이치대로라면 나에게 좀 주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수련인인 것이 생각나자 주지 않겠으면 그러라고 하며 그와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매번 이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언짢았고 평형되지 않았다. 이후에 손자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나 몰래 집을 팔아버리고 돈을 전부 아들에게 주어 집을 사게 했다. 이 일을 알고 마음이 평형되지 않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비록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그 후부터 그들 부자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다. ‘당신 아들은 수십만 위안을 얻고 내 아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구나. 내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당신을 쫒아버릴 것이다. 당신이 어디에서 사는지 보자.’

당시 나는 이익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연공인은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기에 순리에 따르자고 생각하고 이익을 바라는 마음만 버렸다. 또 질투심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질투심은 이익을 바라는 마음의 배후에 숨겨져 ‘나는 질투심이 없다’라는 인심의 보호산에 보호되어 있었다. 지금 나는 그것을 끄집어내 제거했다. 순간 마음의 용량이 확대되고 넓어지고 밝아졌다. 남편과 아들에 대한 원망심이 사라졌다. 우리는 화목해졌고 못하는 말이 없어졌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를 드리세요, 내 원래 성격대로라면 절대로 지금과 같지 않을 거예요.” 남편은 “알아요. 알아요”라고 말했다.

또 예를 들면 집안일을 얼마나 하고 먹고 마시고 돈을 쓰는 소비, 위생 청결을 잘하고 안하고 아이에 대한 태도와 돈을 쓰는 등 많은 방면에 모두 수시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거나 불복하는 집착심이 나타나면 즉시 제거한다. 조금도 제멋대로 하거나 끌려가거나 방종하지 않는다.

2. 동료 지간의 질투심을 제거하다

이전에 직장 동료와 왕래를 한 일을 생각해보면 이미 담담해져 거의 아무 기억도 없다. 생각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일이다. 그것은 파룬궁 수련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상사가 나에게 교육개혁 경험에 관한 원고를 쓰라고 한 일이다. 나는 다 쓴 후 지도감독 사무실에 제출했다. 이후에 이 원고는 수상했다. 하지만 수상자는 뜻밖으로 지도감독 사무실 책임자였고 내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상황을 안 동료는 모두 분노하며 나에게 상사를 찾아가고 지도감독을 찾아가 시비를 가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깜짝 놀랐고 세상에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을 믿지 못했다. 이전에 단지 표절한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않았는데 뜻밖으로 나에게 발생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어서 화가 났고 불복하고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먼저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다음 폭로하려고 생각했다. 또 한 번 생각해보니 나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기에 악으로 악을 다스려서는 안 된다. 내가 만약 이 일을 폭로하면 그는 어떻게 회사에 있을 수 있겠는가? 상사, 동료는 그를 어떻게 보겠는가, 어떻게 그를 평가하겠는가? 사존께서는 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타인을 선하게 대하라고 하셨고 먼저 타인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됐다. 추궁을 하지 않겠다. 나의 명리심(名利心)을 버리자. 동료가 뭐라고 말하든 나는 이 일로 더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 일은 이렇게 흐지부지됐다.

지금 생각하니 나는 다른 일을 모두 잊어버렸는데 이 일은 여전히 기억이 생생하다. 보다시피 질투심은 명리심 뒤에 은폐되어 있다. 당시 단지 명리심만 제거하고 질투심을 놓쳐 그것은 여러 해 동안 존재하고 있었다. 지금 그것을 꺼내어 이 일에 원만의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3. 수련생 지간의 질투심을 제거하다

내가 다니던 첫 번째 법공부 팀에는 모두 네 명의 수련생이 있다. 나 외의 세 명의 수련생은 모두 사존의 설법반에 여러 번 참가했다. 나는 그들을 매우 부러워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부러워하는 배후에는 질투심이 있었다. 이후에 법공부 팀은 사악의 박해로 중단됐다.

아마 이 집착심을 버리지 않아서인지 또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그때 나는 흠모하는 마음의 배후에 질투심이 숨겨져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번째 다닌 법공부 팀도 4명으로 구성됐고 나 외의 세 명은 사부님을 여러 차례 뵈었으며 그 중의 한 노수련생은 우리 지역의 총 책임자 중 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는 내 마음속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진상을 알리는 것도 매우 잘한다. 나는 평소 그에 대해 공경하고 탄복했다. 그러나 한 수련생이 박해당해 다른 수련생이 압력과 위험을 무릅쓰고 설비를 이전할 때 그의 이기적이고 무관심한 태도, 일처리 하는 방법을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고 한동안 그와 왕래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보기조차 싫어 구실을 찾아 법공부 팀에 가지 않았다. 마지막에 다른 단체 법공부 팀이 없어 억지로 법공부 팀에 갔다. 간 후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불복하는 마음이 더 생겼다. 그에게 불복하는 외, 다른 두 수련생에게도 불복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녀들은 원칙이 없고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한다고 생각했고 스스로에 대해 공평하지 않다고 인식해 크게 실망했다.

냉정해진 후 대량의 법공부를 해 안으로 찾았으며 나는 자신이 이 부분에서 뒤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생을 도와주는 마음이 순정하지 못했다. 과시심, 잘 보이려는 마음, 공로를 취하려는 마음, 보답하려는 마음(중간에 나와 연계가 있는 수련생이 여러 번 나를 도와준 적이 있음) 또 수련생에 대한 정과 명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섞여 있었다. 이 마음을 찾은 후 배후에 있는 이기적인 마음을 찾은 후 나와 수련생의 관계는 융합되고 간격도 없어졌다. 그러나 늘 또 사람 마음이 있는 것 같아 편안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그것이 질투심인 것을 알았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1] 나는 이것은 사존께서 매 대법제자에 대한 자비로운 일깨움이며 훈계와 요구라고 깨달았다. 우리 대법제자는 이 문제에서 절대로 약간의 모호함도 있어서는 안 되며 방심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개인의 체득이며 법에 있지 않은 것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 2017년 10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2/3553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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