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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존의 보호로 죽을 고비 넘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일흔이고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다. 1994년에 큰 며느리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녀를 데리고 큰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수술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게다가 자칫하면 더 나빠질 수 있었다. 이때 고모는 우리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건의했다.

1. 마을에 연공장이 생기다

고모와 고모부는 모두 사부님 설법반에 참가했다. 1996년 그들은 우리집에 왔고, 마을에서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우러 왔는데 나와 큰 아들도 와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훗날에는 며느리도 와서 배웠다. 얼마 뒤 머지않아 며느리의 뇌는 정상이 됐고 지금까지 여전히 대법 수련을 견지하고 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부터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신체가 건강해지고 사람들 역시 도덕성을 중시하게 됐다. 예전에는 우리 마을에서 늘 물 때문에 다퉜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며 동향사람들이 다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고상하다고 칭찬했다. 연공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자 사람들은 큰아들을 보도원으로 선출했다. 이때부터 그는 늘 수련생들과 함께 카세트를 들고 자전거로 소형발전기를 끌고 다니면서 여러 마을에 가서 파룬궁을 알렸다. 주위 마을에는 모두 우리의 발자취가 남았다.

가끔 혼자 나가서 파룬궁을 알리고 밤에 아주 늦게 되어서야 돌아오기도 했는데 혼자서 산길을 오르고 묘지를 지날 때 비록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법을 알리기 위해, 또한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도 사라졌다. 또한 수련생들과 함께 현에 가서 공법시연도 했기에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었고 연공장도 스물 몇 개가 생겼다. 또한 수련생들은 아들을 보도소장으로 추천했다. 때마침 마을에서도 그를 촌장으로 선출했지만 대법 수련에 전념하려고 동의하지 않았다.

2. 백발노인이 아들을 잃다

1999년 사악한 장쩌민 집단은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보도소장이어서 중점 박해 대상이 됐고 여러 차례 붙잡혔다. 매번 박해 받아 사경에 이르러서야 사악은 우리에게 담보 비용을 지출한 후 데려가라고 했다. 집에 와서 법공부와 연공을 해 아들 건강이 금방 회복됐다.

대법을 수련했기에 사부님께서 지켜주셔서 우리집에서 재배한 포도는 특히 잘 자랐다. 현과 향리 간부들은 카메라를 들고 기자들과 함께 찾아와 아들에게 대법수련을 포기하고 열심히 포도를 재배했기에 포도가 이렇게 잘 자랐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면 아들을 모범으로 내세우겠다고 했다. 아들은 단호하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포도가 이렇게 잘 자란 겁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풀이 죽어 돌아갔다.

그들은 아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자 줄곧 앙심을 품었다. 2002년 8월 28일, 향(鄉) 610두목, 향 파출소 부소장은 경찰 두 명을 거느리고 우리집으로 들어와 강제로 아들을 향 파출소로 납치했다. 아들을 반죽음이 되도록 때린 후 계속해 국가보안대대 6층으로 끌고 가 장쩌민의 ‘때려죽이면 자살로 친다’는 악독한 정책에 따라 향(鄉) 경찰 세 명과 현(縣) 경찰 세 명은 번갈아 아들을 잔인하게 때렸다. 이렇게 같은 날 오후 멀쩡한 아들을 때려 죽였다.

그들은 아들을 6층 창문에서 던진 후 투신자살했다고 거짓말을 날조했다. 당시 누군가 땅바닥에 핏자국이 몇 방울밖에 없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아들 시신에 옷을 입힌 후 빈소로 보냈는데 당시 아들은 고작 32살이었다. 그날 그들은 온 향의 전화를 차단했고 촌장에게만 아들이 투신자살했다고 알렸다.

이튿날 우리가 현으로 가려 할 때 현으로 가는 버스는 경비가 아주 삼엄했다. 정거장에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고 관계없는 사람들은 차에 타지 못했다. 내 친척마저 아들 시신을 보러 현에 가지 못했다. 우리가 현 국가보안대대에 찾아갔을 때 그들은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하면서 아들이 투신자살했다고 했다. 법의학자가 이미 검시했으며, 5만 위안(약850만원)의 장례비를 보상해주고 예전에 냈던 1만 위안(약 170만원) 보증금도 우리에게 돌려줄 테니 위 항목에 동의해야 시신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지식한 농민이었고 핍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아들 시신을 보니 배가 푹 오그라들어 있었고 내장은 전부 적출당했다.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 앞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울어서 눈이 멀고 귀도 들리지 않아 이때부터 혼자 생활하지 못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했는데 멀쩡한 집안이 박해 받아 산산조각이 됐다. 다들 내 아들이 박해 받아 죽은 것을 알기에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 감히 연공하지 못했고 남편은 두려움으로 인해 나에게 연공하지 못하게 했다.

3. 사부님의 보호 하에 연달아 죽을 고비를 넘다

나중에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고향에 돌아가 일했다. 2014년 친척의 도움으로 나는 다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고 수련한 지 두 달도 안 돼 400도 돋보기안경을 벗어버렸다. 아주 작은 글씨도 다 볼 수 있었고 청력도 정상이 되어 정말 아무런 병도 없이 온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수련하고 싶었지만 사악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면 그것은 가만있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고, 당신이 가려 하는가. 당신이 공이 자라면 나는 당신에게 가 닿지도 못하고, 나는 당신을 건드릴 수도 없다. 그것은 가만있지 않는다. 그것은 천방백계(千方百計)로 당신을 방해하여 당신이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각종 방법을 대어 당신을 교란하며, 심지어 정말로 와서 당신을 죽일 수 있다.”(전법륜)

2015년 어느 날, 나는 층계를 내려갈 때 발을 헛디뎌 2층에서 넘어졌다. 급한 김에 쇠갈고리를 잡아 손에서 살점 한 덩어리가 떨어져나갔는데 뼈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고 몸도 다치지 않았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작은 아들이 병원으로 데리고 가려해서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믿기에 그에게 말했다. “나는 연공인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리고는 즉시 휴지로 피를 깨끗이 닦고 상처를 감았다. 이튿날 상처에 흉터가 지더니 금방 나았다.

같은 해 어느 날, 나와 한 무리 사람들이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얘기하고 있었고 나는 사람 무리 중간에 서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나를 힘껏 밀어서 나는 한 쪽으로 밀려나갔다. 아직 똑바로 서기도 전에 자동차 한 대가 사람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사람들은 허둥대면서 난장판이 됐고 곳곳에서 울음소리, 외침소리가 울렸다. 어떤 사람은 다리가 부러지고, 어떤 사람은 늑골이 부러졌으며, 어떤 사람은 허리가 부상당해 그야말로 너무 끔찍했다. 오직 나만 무사했는데 정말 사부님의 “사부는 법신(法身)이 있어 조용히 보호해 주니”(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라는 말씀과 같았다.

올해 나는 또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어느 날, 버스를 타다가 문 앞에서 하차할 때 갑자기 차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바람에 나는 차문에 밀려 먼 곳에 떨어졌다. 머리가 마침 큰 바위에 부딪히고 걸려 넘어져서 당시 인사불성이 됐다.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다가 깨어났고 그 후 구토가 멈추지 않았고 뒤통수에 큰 혹도 생겼다. 사람들은 모두 이제는 내가 잘못됐다고 하면서 완치되더라도 멍청하게 될 것이라 했다. 하지만 검사결과 머리를 다치지 않았다. 의사는 나보고 며칠 입원해 관찰해야 한다면서 약을 주었고 나는 의사 앞에서 먹는 척 하다가 그가 떠난 후 모두 뱉어냈다. 시간이 있으면 법공부와 연공을 했는데 평소에 가부좌를 40여 분밖에 못했지만 그 며칠은 한 시간 넘게 가부좌했다. 넷째 날, 의사는 나보고 신체검사를 하자고 했지만 나는 의사가 없는 틈을 타 집에 돌아왔고 버스회사에 배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지금 두 달이 넘었는데 머리가 맑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또 한번 나를 구해주셨다. 내가 몸소 겪은 일들은 대법의 신기함을 증명하는데 연공하지 않는 아들딸마저 대법이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다.

올해 손자가 대학 졸업한 후 친구들과 함께 면접시험을 보러 갔는데 오직 그만 합격했다. 예전에 손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수련생들은 모두 우리에게 돈을 보내 도와주었고 이름 모를 수련생도 초기에 돈을 부쳐주었다. 여기에서 수련생들의 관심과 도움에 감사드린다. 지금 우리 온 가족은 대법의 은덕을 받고 있으며 남편도 건강이 아주 좋다.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이야기를 써낸 것은 나처럼 떨어진 수련생에게 빨리 대법으로 돌아오라고 알려주기 위해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고 정법도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이 만고의 기회와 인연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해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17/3555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