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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小道)를 버리고 진경(眞經)을 얻다

한 독일 여성의 이야기

[밍후이왕](밍후이 기자 쉐리 인터뷰 보도) 에바 마리(Eva Marie)는 이틀 사이에 ‘전법륜’을 다 읽었다. “몇 군데는 읽으면서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습니다. 너무 감동적입니다. 이 책은 천기를 다 누설했습니다. 진정한 ‘계시록’입니다.” 이전에 그녀는 본인이 모든 심혈을 기울여 배웠던 각종 영성 수련 방법이 하룻밤 사이에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에바 마리
(Eva Marie)

그녀는 이미 유럽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일본식 수행 방법을 아주 오래 연마했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르쳐주었다. 그날 저녁 가부좌를 할 때 아주 또렷한 생각이 머리에 반영됐다. “당신 뭘 하고 있는 거야? 신과의 연결은 다른 방식이 있어.” 그녀는 아주 놀랐다. 이 정보가 정말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녀는 벌떡 일어나 이 방법을 즉시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각성한 이후 포기하다

1997년 어느 날, 대학 졸업을 앞둔 그녀는 자신에게 배우는 모든 학생을 다 초청한 후 정중하게 “이것은 정법정도(正法正道)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는 ○○ 방법을 연마하지 않을 것이며 수업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녀의 당시 유일한 수입원은 이렇게 끊겼다.

20년 전의 일을 돌이켜보면서 그녀 자신도 본인이 어디에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정도(正道)가 어디에 있고 다음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몰랐지만 모든 영성 수련 활동과 그것과 관련된 생계 관련 일을 전부 중단했습니다. 저는 제가 빈 육신이 천지에 존재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고 어디로 갈지 몰랐습니다.”

신앙은 ‘빵’과 같다

정신적 추구가 없다는 것은 에바 마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독일 쾰른 서남부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주 전통적인 천주교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일요일이면 성당에 가서 예배하고 오후에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깊이 사색하며 토요일이면 참회를 했기 때문에 신앙은 빵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종교생활은 성인에게는 일종 습관일 수 있겠지만 어린이에게는 괴로운 일일 수도 있다.

에바 마리는 말했다. “저에게 종교는 계율, 징벌, 죽을죄이고 두려움이었습니다. 물론 조금의 사랑도 있었지만 고통을 감당한다는 생각과 강제성이 더 많았습니다. 진정하게 사람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었기에 자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당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도할 때는 이렇게 말했지만 실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마음에 종교의 계율과 형식에 대한 반항, 저촉과 거리감을 가지긴 했지만 신의 존재를 믿었다. “어머니는 성모마리아를 믿으셨습니다. 사람의 방법을 다 썼는데도 출로를 찾지 못하면 어머니는 초 한 대를 태우면서 고차원 생명에게 도움을 바라고 길을 가리켜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떻게 됐던 마지막에 신이 우리에게 방향을 가리키고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신에 대한 믿음은 모든 일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저에게 준 영향이 아주 컸습니다.”

신으로 향하는 길을 찾다

32세에 그녀는 심리학을 배우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무엇이 사람의 행위를 지배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하면 본인과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포함한 사람의 행위와 생활상태 사이 관계를 분명하게 알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심리학은 그녀의 직업이 됐을 뿐이었다. 각종 심리 상담을 하고 심리학 요법, 영성 수련 방식을 전수하는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일 뿐이었다. “과학은 모든 사물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은 젊은 과학이어서 다른 학과와 마찬가지로 어떤 한 측면에서 우리 문제를 해결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한편으론 서양과학에서 일부 문제에 대해 답안을 찾았다. 그러나 한 문, 또 한 문의 각종 영성 수련 방식에서는 현대 과학적 추구로는 고차원적인 지혜를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주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육신만이 아니라 실제로 영체가 존재합니다. 제가 그들을 연계하는 방식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37세에 그녀는 아직 대학 학과를 다 마치지 못했는데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도를 찾는 길에서는 조금도 아끼지 않고 다년간 책을 사고 여러 요법의 학습반에 참가하면서 고차원 생명과의 접촉 방법을 찾았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생계유지의 길에 대한 계획을 포함한 희망을 찾는데 돈을 전부 투입했다.

그날 저녁 가부좌할 때 전해준 정보는 그렇게 강렬했고 진실해서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

얼마 되지 않아 에바 마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으로 소통 훈련센터를 시작했다. 98년 가을 그녀와 다른 한 심리학자와 같이 쾰른에 가서 연수 과목에 참가했다. 점심 쉬는 시간에 그녀는 교실 문이 안으로 잠긴 것을 발견했다. 물어보니 과목 주최 측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안에서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파룬궁이 뭐죠?” 그녀가 캐묻자 과목이 끝난 후 주최자는 모든 공법을 그녀에게 시연해주었다. 그녀는 즉석에서 ‘전법륜’과 ‘파룬궁’을 집으로 갖고 갔다.

3살 되는 아들을 돌보고 침대에 눕혀 재운 후 그녀는 책을 펼쳤는데 그 뒤로 놓을 수 없었다. “몇 군데는 읽으면서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습니다. 너무 감동입니다. 이 책은 천기를 다 누설했습니다. 진정한 ‘계시록’입니다.” 그녀는 이틀 사이에 ‘전법륜’을 전부 읽었다. 책 속의 몇 개 장절에서 그녀는 각별히 감동했다. 예를 들면 ‘부체’였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많은 소위 에너지는 다른 공간이 불러온 좋지 않은 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전에 배웠던 모든 것들은 제가 정과 사,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지를 시험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과거 몇 생의 영성 수련 방식을 이번 생에 축소해 다시 경험하게 하면서 정법을 수련하려는 제 본심이 아직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임을 의식했습니다. 이 점을 의식했을 때 저는 끊임없이 울었습니다.”

“저는 이미 제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인생에 대한 꿈, 계획 및 금전 투입을 포기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정법을 찾지 못했지만 모든 용기를 모아 이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심신이 극도로 쓸쓸했습니다. (흐느낌) 뜻밖에 얼마 되지 않아 저는 파룬따파를 얻었습니다. 정말 대법 대도를 찾았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사실 사부님께서 줄곧 인생의 길에서 저를 인도하시고 동반해주시고(흐느낌) 저를 돌봐주시고 모든 길을 안배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번 경험하고 포기하고 다시 경험하면서도 빠져 들어가지 않은 것도 모두 사부님께서 다 배치해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 책에서) 우리를 대신해 좋지 않은 것을 제거해주셨습니다.(흐느낌) 저는 속으로 끊임없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도(正道)를 걷게 됐다! 과거 모든 경험은 모두 이번 시험을 위한 것이고 오늘 날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가산을 포기하고 가정을 잘 평형 맞추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중국공산당이 뻔뻔스럽게 모함하고 탄압한데 대해 분노했다. 그녀는 독일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신속하게 각종 활동을 조직해 사회각계, 인권기구, 정부, 매체에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사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확실하게 했다. 이렇게 한 것이 18년이 됐다.

작년에 그녀의 아버지는 85세였다. 아버지는 두 작은 딸과 멀리 떨어져 살아 에바 마리는 훈련센터 일을 잘 배치한 후 매달 시간을 내어 아버지를 한 번 보러가 아버지에게 밥을 지어주고 빨래해주고 아버지의 일상생활을 돌봐주었다. 간 김에 여동생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파룬궁수련생의 반박해는 지금까지 18년이 됐다. 그녀는 줄곧 많은 시간, 정력을 내어 파룬궁이 박해 받은 진상을 말했다. 아버지는 그녀가 교회를 떠난 것 때문에 그녀를 아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녀가 더 정직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두 여동생은 장기간 아버지를 많이 돌봐주었다고 생각하고 손해를 본 것 같아 마음으로 불평했다. 그녀는 이 점을 안 후 마음을 정했다.

2016년 어느 날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보러 갔다. 거실에서 온 식구가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분위기가 평소와 같았다. 중간에 조용한 시각에 그녀는 목청을 다듬고 조용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우리집에서 저축한 일부 재산을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세 딸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실 생각을 했는데 저와 아들은 이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가족들은 파룬따파가 저에게 준 변화를 보았습니다. 제 생활 습관, 생환 태도, 진선인이 저와 아이에게 가져다 준 바른 영향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은연중에 감화됐습니다. 일에 부딪히면 진선인에 따라 합니다. 그들도 제가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것을 지지합니다. 여동생들이 가산을 세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는데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아버지에 대한 관심이 적고 자신들이 더 많이 부담했다고 생각하면 저는 제 몫을 포기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동생들이 좀 더 가질 수 있고 불평하지도 않겠지요. 저와 아들은 상의했는데 아들도 동의했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돌려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대학 뒷바라지를 해주시고 집에 와 아버지를 보러 오도록 저에게 차를 사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가난한 학생이었습니다. 저의 성장을 지켜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진심으로 자매들이 화목하길 바랍니다. 저는 가족에게 한 마디 꼭 알려주어야겠습니다. ‘대법이 아니었다면 저는 화가 나고 속이 끓어 죽었을 겁니다.’”

“제가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은 어릴 때 매번 성당에 가기 시작해서부터입니다. 두 여동생은 한 번 또 한 번 정신과 의사를 찾았습니다. 동생들이 우울증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파룬따파를 찾지 못했다면 저도 결국 분노로 질식해 죽었을 겁니다.”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 말했다. “저는 대법 수련의 기연을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저는 제 이번 생의 모든 것을 다 해서 박해가 종식되기 전까지 대법 박해를 폭로할 겁니다. 어떤 힘도 저를 막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를 돌볼 것이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예전처럼 아버지 보러 올 겁니다. 저는 직업이 있는 독립 여성입니다. 제 아이를 돌볼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을 잘 평형하기에 노력할 겁니다. 저는 계속 파룬궁을 널리 알리고 박해를 저지하는데 여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동생들은 아버지를 많이 돌봐주었기에 저보다 많이 얻어야 합니다. 저는 저의 몫 재산을 포기하겠습니다.”

큰 여동생이 그녀 말을 끊었다. “그만 말해요. 우리 세 자매가 골고루 나눠요.” 그리고 아무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 후부터 다시는 그녀가 파룬궁 활동에 참가하는데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평생의 추구했던 길을 돌이켜보면서 그녀는 본인이 시간과 금전을 투입했던 소도(小道)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대법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알려주신 “천 년에 정법을 얻지 못할지언정 하루라도 야호선(野狐禪)은 닦지 않는다.”는 말씀은 정말 너무 옳은 말씀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원문발표: 2017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23/3539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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