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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을 지키니 더욱 큰 시련도 사라져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여년 수련에서 나는 갈수록 사부님의 위대함과 불은호탕(佛恩浩蕩)을 느꼈다. 대법은 초범적이고 신기하며 박대하고 정심하다. 나를 감동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했다. 사부님의 은혜는 호탕하다. 나는 법공부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고 대법의 엄숙성을 깨달았다.

아래는 자신이 시련에 대면할 때의 체험과 인식을 이야기하고 수련생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법에 있지 않는 점은 수련생이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10년 전 나는 어머니 집에서 몇 명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기타 수련생은 가고 단지 수련생 한 명만 남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옷과 머리가 다 젖었다. 서서 토하려 하고 극히 힘든 모습이었다. 마치 속인의 심장병 같았다. 나와 수련생은 앉아서 발정념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갈수록 심해졌다. 수련생이 간 후 어머니는 누우려 했다. 나는 ‘누우면 안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런 생각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후 어머니를 부축해 눕혀드렸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증상을 보고 우셨다.

모든 것이 갑자기 발생했기에 나는 다른 공간에 많은 생명이 나를 보고 있는 듯 했다. 내 마음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이 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갑자기 의식했다. 사악은 어머니 몸에 나타난 정확하지 않는 상태로 나를 고험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들의 어떤 고험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1997년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하셨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신체를 정화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습니다.” 어머니는 머리를 끄덕이셨지만 신체에 나타난 증상과 자신이 이전에 앓았던 심장병과 연결해 놓고 고민하셨다. 그러므로 어머니에게 수련과 속인 신체의 관계를 말하며 정념을 불러일으켜 드렸다. 당시 또 무엇을 말했는지 똑똑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어머니와 5분간 말한 후 어머니가 갑자기 앉아 일어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옷을 갈아입혀드렸는데 옷이 물에 빤 것처럼 젖었다. 머리카락도 젖어 뭉게뭉게 해졌고 증세는 사라졌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와! 와!”라고 하셨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셨다. 우리 셋은 모두 대법의 신기함과 초범성을 목격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어머니에게 이런 증상이 더는 나타난 적이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진정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당신이 병이 있다고 여길 때면 아마 병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것을 병으로 여기기만 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은 속인과 같은 높이로 되기 때문이다. 연공(煉功)과 진정한 수련, 특히 이런 상태에서는 그것이 병을 불러올 수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진정으로 병을 얻는 것은 정신이 7할이고 병이 3할이다. 흔히 사람의 정신이 먼저 무너져서, 먼저 안 되고, 부담이 아주 중하여 병세를 급격히 변화하게 하는데, 흔히 모두 이러하다.”[1]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이 내 마음을 확 트이게 했다. 어떤 기점에 서서 대법제자의 수련에서 부딪힌 일을 보는 지가 관건이다. 신체에 정확하지 않는 상태가 나타나면 심태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신체에서 ‘속인’의 병태가 나타날 때 마음속으로 평온하고 이지적으로 법에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관념을 바꾸어 보기에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보면 시련은 좋은 방향으로 간다. 우선 그것을 아주 큰 부담으로 생각하고 그 속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 시련은 더욱 심해지고 심지어 더욱 큰 시련이 된다. 내가 이해한 ‘부담’은 바로 걱정이다. 걱정은 바로 두려움이 아닌가? 상유심생(相由心生), 수심이화(隨心而化)이며 문제는 더 심각하게 변한다.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특히 정법 수련에서 구세력은 이런 것으로 대법제자에 대해 사악한 ‘고험’을 진행한다. 모든 시련은 대법제자가 신사신법에 대한 고험이며 사람에서 걸어나올 수 있는지를 진실하게 검증한다. 그것이 이렇게 표현하고 저렇게 표현하든 반영되어 나오는 현상은 모두 진실하지 않고 모두 당시 사람 마음을 겨냥한 것이다.

대법을 수련하면 ‘생로병사’는 이미 우리를 멀리 떠난다.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를 지옥에서 제명해 주셨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의 이치로 자신의 수련을 가늠하는가? 당신이 표면 현상을 보면 속인이 문제를 인식하는 것처럼 복잡하게 된다. 사람이 세간에서 양성된 습관은 문제에 부딪힐 때 늘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이것저것 고려한다. 대법제자는 복잡한 각종 문제에 대면해 자아가 절망하고 전혀 희망이 없다고 느껴져도 당신은 느낌에 끌려가면 안 되고 정념을 지켜야 한다. 그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 시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고 얻은 것은 심성의 제고와 층차의 제고이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신의 길에서 가는 것이다.

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나의 신체에는 세 번의 시련이 있었다. 하지만 걸어온 방식이 다르다.

2006년 쯤 허리가 갑자기 아파 참기 어려웠고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수련생은 알고 나에게 발정념을 해주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나는 침대에 누워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에 나는 누워서 몸을 뒤집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 몸도 뒤집지 못하고 더 심해졌다. 남편과 아들이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모두 나를 환자로 취급하고 있다. 나는 누워있으면 안 된다. 수련인이 어찌 환자와 같은가?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하면 허리가 더 아플까? 빨래를 하자. 이때 집안에 사람이 없어 나는 빨래를 하려고 결정했다. 그때 허리가 아무리 아파도 상관하지 않고 어느 정도로 아플 수 있는지 보았다. 나는 허리힘을 사용하며 빨래를 했다. 결과 얼마 후 내 허리는 나아졌다. 사악이 나에 대한 박해는 사라졌다. 지금까지 10여 년이 지났는데도 허리에 아무 문제가 없다.

두 번째는 2012년 말 나는 감옥에서 박해당한 후 석방돼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뇌경색에 걸리고 당뇨 합병증에 걸려 사람은 마르고 까맣게 됐다. 온몸에 힘이 없고 매일 약을 먹고 집안 곳곳이 더럽고 바닥과 침대도 모두 더러웠다. 남편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부체까지 불러왔고 집안 옷장에 모두 여우, 족제비, 고슴도치, 뱀 등을 모셔놓았다. 그와 아들이 4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아버지도 사망한지 20일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해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보고 나는 사람 마음에 끌려 정말로 눈물을 흘리려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2개월 후 나는 갑자기 요혈 현상이 나타났다. 이전 병원에서 검사할 때 적혈구 정상수치는 0~30.7인데 나는 14339.20으로 높았다. 백혈구 정상수치는 1~39인데 나는 883.6이었다. 의사도 놀라 말했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요. 저는 치료할 수 없으니 다른 데로 옮기세요.” 이것은 교도관이 내 반찬에 정체불명의 약물을 넣은 것과 관계된다. 이번에 요혈은 아주 고통스럽고 1분에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가야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병이 아니다. 수련인은 병이 없다. 나는 대법을 믿고 사부님을 믿는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하지만 이때 자문했다. “정말로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긴다’는 것을 믿는가?” 안으로 찾으니 마음속으로 진정으로 사부님을 믿지 않았다. 마음에 고려심이 많고 이것저것 생각하고 두려움이 있으며 즉시 변화가 있기를 바랐다. 당시 또 이런 생각이 있었다. 며칠간 집안을 청소하고 찬 바닥에 앉아 그런 것이 아닐까? 남편과 아이는 나에게 병원에 가서 한번 보라고 했다. 나는 결연히 병원에 가지 않았다. 사악의 목적은 내 생활의 어려움의 틈을 타고 육친정으로 나를 교란하려 하며 신체에 틈을 타려 한 것이다. 이런 것으로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려 하고 내 수련을 망가뜨리려 했다.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간호해 주신다. 나는 정념을 더욱 확고히 하고 신사신법했으며 이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해야 할 일만 했다. 2시간 후 요혈 증상은 사라졌다. 가족은 대법의 신기함과 초범성을 목격했다.

세 번째는 2016년 하반기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전신이 탈진한 것 같고 어지러우며 열이 나고 토하고 싶으며 온몸이 괴롭고 일어서지 못했다. 여태 이렇게 괴로운 적이 없었다. 마음도 무력한 느낌이었다. 당시 남편은 사망한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아들은 막 일자리를 찾았고 아침에 4시에 출근했다. 집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이것은 사악이 나에 대한 박해와 교란이 아닌가? 어떻게 하지?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생각났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 그러므로 정각에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우며 시시각각 법을 외웠다. 끊임없이 법을 외우고 마음속으로 법만 생각하고 기타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정적 생각이 나올 때 나는 법을 외웠고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3일 후 나는 정상 상태로 회복됐다. 당시 매분매초 모두 견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확고한 일념이 있었다. 법을 외우고 심태를 조정하고 그것을 일로 보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느낌에 끌려가지 않았다. 끊임없이 법만 외웠다. 나는 그것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의지가 확고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시련을 지나가게 하신다. 사상이 흔들리면 사악의 부정적인 생각이 교란하고 심지어 시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후에 인식했는데 이런 시련은 모두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한 집착심이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해 박해를 받은 것이다. 수련 중 일에 바쁘고 법공부도 적게 하며 다른 수련생을 얕보고 자신을 실증하고 문제에 부딪히면 피해갔다. 제고하는 기회를 잃었다. 육친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일에 부딪히면 극단적으로 갔다. 가정과 사회 환경도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수련 환경이다. 아들 정에 집착했다. 아들이 억울함을 당할 때 속으로 아들의 정서에 따라 갔다. 아들이 좋은 생활을 하게 하려 하고 아들이 상처를 입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타인에 원망심이 생기고 속인 사이에 모순을 조성했으며 가족이 수련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진정으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다.

법공부에서 인식하고 시련에서 잘 넘기지 못했는데 흔히 이 방면의 원인이다. 확고한 의지와 고생을 하는 견정한 마음이 부족하고, 정념을 지키지 못해 부담이 크고 두려워하며 시련을 크게 보고 고생을 두려워한다. 늘 신체의 변화를 보려 하고 생각도 그에 따라 간다. 그것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심성이 제고되지 못하고 사악도 꼬투리를 잡고 박해한다. 그러면 시련은 장기간 제거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속인을 위해 단순히 병업을 제거해 주시지 않는다. 사람은 생로병사가 있고 사람은 사람이 생존하는 길이 있으며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자신이 갚아야 한다. 이것은 천리이고 수련을 해야만 사부님께서 비로소 관여하실 수 있다.

한 달 전 나는 병원에서 보름 간 수혈하고 온 수련생을 보러 갔다. 그녀는 나에게 신체가 좋지 않고 배도 불렀다고 알려줬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암이라고 했다. 입원 전 그녀는 장기간 이런 상태였다. 배가 좀 불룩하고 소변을 가리지 못했으며 전신이 아프고 추워했다. 그래서 이불로 배를 가렸다. 나는 그녀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병원에 갔어요?” 그녀는 “저는 혼미해졌어요. 이런 모양으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병원에 가서 나아지면 다시 잘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여기까지 말하자 나는 무엇이 한손으로 사람을 붙잡고 한손으로 신을 붙잡고 있는지 알게 됐다. 사상속의 미묘한 변화는 신의 생각인지 사람의 생각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사실 쉽게 분간할 수 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혼미해질 때 사부님께 직접 구원을 청하면 좋지 않아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막막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나에게 답할지 몰랐다. 그녀도 자신이 오성이 좋지 않고 깨닫지 못했다고 말했다. 느낌에 그녀는 법공부를 적게 하고 신과 사람의 생각을 분간하지 못하며 사람의 방법으로 수련 중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자신 몸에 발생한 일을 수련인으로 해결하지 않고 신체에 정확하지 않는 상태를 ‘병’으로 보고 치료한 것이다. 결국 병원에 가니 집에 있을 때보다 엄중하고 걷지도 못하고 몸을 뒤집지도 못했다. 대소변은 모두 병상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저는 계획이 있어요. 며칠 후 매일 저녁마다 아들 며느리에게 나를 부축하게 해 일어나면 하루하루 서서히 나아질 겁니다. 또 내가 나아지면 그들의 부담도 줄어들겠지요.” 그녀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을 보고 막막했다. 법공부와 착실한 수련의 중요성을 느꼈다. 매 관과 시련은 모두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를 체현한다. 이후에 한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주변 수련생을 이끌고 그녀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했다. 서서히 그녀는 일어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련생들은 많이 지불했다. 이것도 중요하다. 잘 아는 수련생을 어떻게 파악하는 지도 중요하다.

사악이 경찰을 조종해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인성이 없는 경찰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만 두려운 마음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악이 다른 공간의 난잡하고 변이되며 부패한 생명을 이용해 대법제자의 수련과 신체, 일사일념에 대해 교란과 박해를 하는데도 표현된다. 이때 천목이 열리지 않은 우리는 다른 공간이 보이지 않고 사악한 생명이 나쁜 일을 하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대법의 기점에 서서, 정법 수련의 각도에서 정념을 확고히 하고 신사신법하며 사악을 똑바로 보고 사악을 청리하며 사악의 모든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개인적인 깨달음이고 법에 있지 않는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다’

원문발표: 2017년 10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해체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7/3551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