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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질투심을 제거한 체득과 깨달음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오늘 ‘밍후이주간’의 집착심에 관한 문제를 보고 질투심에 대해 재차 사색을 하게 됐다.

줄곧 나는 질투심에 관해 비교적 의혹을 느꼈다. 그것에 대해 대략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비록 질투심에 관한 표현이 비교적 보편적인 것을 알지만 말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1] 또한 질투심을 버리지 못한 결과도 매우 엄중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2] 마음속으로 더욱 의혹이 생겼다. 질투심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다른 사람을 깔보는 것은 질투심이며 ‘남이 출세하거나 유명해지는 것 또는 이익을 보거나 부유해지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병적인 심리’ 역시 질투심인 것을 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악자(惡者)의 근원이 질투심이라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질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수련을 한 일체 마음은 매우 취약해진다는 것일까? 질투심은 매우 보편적인데 무엇 때문에 나는 평소 안으로 찾아도 매우 적게 찾는가?

나는 속으로 한 번 또 한 번 물음표를 그렸다. 갑자기 한 가지 의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질투심은 사실 쟁투심의 작용 하에서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일종 표현이다. 나는 단번에 개운해졌다. 그렇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은 것을 보고 ‘배가 아프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하거나 손상을 입은 것을 보면 절대로 속으로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쟁투하는 것이 악인이 아닌가? 진선인(眞善忍) 우주 특성과 상반되어 일체 마음이 취약하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매우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최근 진상을 알릴 때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자비심이 없는지 고민했다. 마치 기계적으로 사존께서 배치한 임무를 완성하는 듯 했다. 원래 자비심이 부족한 것은 이 질투심, 쟁투심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바로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나의 진상을 듣지 않으면 불만이 생겨 화가 난다. 간혹 또 ‘○○는 나의 말을 듣지 않으니 가서 죽어라!’는 극단적인 투쟁사상이 나타나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또한 이 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

질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정말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며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

원문발표: 2017년 10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9/3552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