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수련의 길에서 만약 자세히 체험한다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와 보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최근에 수련생을 도와 교류문장을 다운받으면서 깨달음을 얻어 집착심을 닦아 버린 체험을 교류하려 한다.
외지 수련생 한 분이 있는데 일부 원인으로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없다. 그리하여 교류문장을 텍스트 파일 형식으로 다운받아 그녀에게 보내줘야 했다. 내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 이 수련생을 통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예를 들면 한번은 내가 수련생에게 물었다. “당신 생각에 수련의 길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수련생은 말했다. “어떻게 사람의 생각으로 문제를 사고하십니까, 정념으로 문제를 생각하는 걸로 전환하세요. 정념은 곧 신념(神念)입니다.” 법을 얻은 초기에 이 말은 나에게 굽은 길을 매우 적게 걷게 했다.
이번에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에게 밍후이 문장을 보내주는 기회를 통해 마음속으로 깨달을 때까지 나의 집착을 점화해주셨다. 어떤 때는 마음이 꿈틀하고 또는 뉘우친 후 눈물과 콧물을 흘렸다. 그제야 수련생도 당일 밍후이 교류 파일을 열 수 있었다. 수련생이 대부분 연 것은 사부님께서 나의 집착을 지적해내신 문장들이었다.
어느 날 수련생에게 보낸 교류문장 파일이 또 열리지 않았다. 수련생이 말했다. “안으로 찾으세요!” 내 마음속에 줄곧 매듭이 하나 있는데 생각해보면 대법제자의 신분에 부끄럽다. 사건은 이러했다. 한 동료가 세 학생에게 수학 과외를 해주면서 나에게 이 학생들의 국어 과외를 소개해 주었다. 어느 날 과외가 끝난 후 학부모가 갑자기 나에게 어느 학교 교사냐고 물었다. 그 수학과외 선생은 어떤 때는 XX학교(명문 학교) 명의로 신분을 제시하기 때문이었다. 학부모는 우리가 동료라는 걸 안다. 나는 그가 내 학교를 밝혔는지 안 밝혔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 선생님이 얘기를 안 하시던가요? 그 선생님께 물어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학부모가 계속 물어보자 나는 그 명문 학교를 말하고 말았다. 말이 나온 후 괴로워서 울고 싶었다.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에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없었다. 그 기간에 학부모와 학생에게 진상을 알렸고 학생의 어머니는 ‘전법륜’도 보았지만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진상을 알린 것으로 그들에게 거짓말 한 것에 대한 위안으로 삼았다. 대법을 이용해 자신의 잘못을 메운 건 잘못에 잘못을 더한 일이었지만 이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이 거짓말을 폭로할 용기가 없었다.
이후에 이 학생의 학부모가 나에게 다른 학생을 소개해 주었다. 그 학생의 학부모는 나에게 어느 학교 교사냐고 물었고 나는 현재 학교로 전근되어 왔다고 함으로써 원래의 거짓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집착을 인식하지 못하니 수련생이 파일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일깨워 주었다. 뿌리를 파자, 왜 거짓말을 하지? 표면적으로는 동료의 거짓말을 수호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명리정(名利情)을 위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명리정을 그렇게 중시하는가? 명예와 이익이 있으면 더욱 존중 받고 떠받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 6년을 수련했지만 여전히 명리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眞(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1]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미끄러져 내려온 사람의 관념과 명리정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했는데 법과 위배되는 것으로서 법에 동화된다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가 없었다. 수련생은 나에게 어떻게 하겠는지 물었다. 나는 한참 생각했다. 학부모에게 사실을 밝히기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문제가 버젓이 거기에 있고 나는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학부모님께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련생은 말했다. “좋습니다.” 명리 배후의 ‘존경을 구하는’ 집착을 찾아낸 후 교류문장 파일이 열렸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인연에 따라 인생의 길과 인생 중의 득실(得失)이 결정되는데, 어찌 사람의 관념으로 인생의 매 과정을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이른바 아름다운 동경과 소원 역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고통스럽게 집착하는 추구가 되었다.”[2] 옛사람이 말했다. ‘덕을 먼저 쌓은 후 재물을 쌓으라(厚德載物)’, ‘덕이 높아야 명망이 크다(德高望眾)’. 존경을 받는 사람은 모두 도덕이 고상한 사람으로 현대인이 보는 것처럼 누가 이름이 나고 이익이 있으며 권력이 있으면 존경 받는 것이 아니다. 수련인으로서 근본적으로 이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3] 존중을 받으려는 마음, 구하는 마음을 철저히 내려놔야 한다. 내려놓을수록 수련은 착실해진다.
존중을 구하는 마음은 또 이렇게도 표현됐다. 허영심, 비평을 두려워하고, 체면을 중히 여기며, 과시심, 자신을 실증하고, 당당하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밝히지 못하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무시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신사신법에 크게 에누리가 있었다. 사당(邪黨) 부서에서 말단 관직이라든가 또는 번듯한 일자리를 얻고 싶어 했다. 어떤 때는 법공부를 하면서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한 견해를 생각하는 등 이는 모두 명에 집착하고 존중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익을 구하는 마음 배후도 역시 존중을 구하는 것이다. 수시로 큰돈을 벌고 싶어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대법제자는 복으로 보상받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큰 집을 사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앞에서는 늘 명이나 이익이나 정을 내가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척으로 그치고 아주 표면적으로만 수련하고 뿌리를 파지 않았으며 해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은 것이다.
하루는 기독교 신자 3명이 나에게 ‘복음’을 전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대법제자 입니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말했다. “파룬궁은 당을 반대하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남몰래 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은 무엇 때문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지 설명해주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연루되어 붙잡힐까 봐 두렵다고 했다.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근본적인 집착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나는 다른 사람이 나보고 당을 반대한다고 할까 봐 두려웠고 대법을 수련해 박해당할까 봐 두려웠으며 파룬궁을 수련하는 걸 다른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워 남몰래 수련했다. 내가 무엇에 집착하면 곧 무엇이 왔다. 이러한 집착을 찾아낸 후 어느 한 집착을 겨냥해 발정념을 했다. 해내는 것에 공을 들이자 이전보다 층차 돌파가 빨랐다.
‘깨닫는’ 데서 ‘해내는’ 데까지는 과정이 있다. 여러 층차마다 해내는 것은 아직도 과정 중에 있지만 내가 잠시 소재한 층차 중에서의 체험을 써내 수련생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첫 번째는 법공부를 잘 해야 한다. 처음에는 매일 ‘전법륜’ 1강을 읽어도 법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읽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매일 1강을 읽는 것은 임무를 완성하기 위한 것처럼 되어 어떤 때는 잡념이 생기고 어떤 때는 졸렸다. 수련생에게 교류문장을 보내줄 때 수련생이 클릭해서 연 문장은 법을 외우는 내용이었다. 내가 법을 안 외우기만 하면 수련생이 연 문장은 곧 ‘법을 외우는’ 문장이었다. 이번에 나는 법을 외우기로 했다. 외우고 외우다가 생명 깊은 곳에서부터 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그리하여 이전에 법공부 하던 1시간 30분으로 법을 외웠고 법이 마음속에 들어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부분적 생각이 법에 의해 대체된 것처럼 일에 부딪히면 자연히 법을 생각했다. 법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 ‘해내는’ 것이 이전보다 쉬워졌다.
두 번째, 자신을 낮추어 착실하게 수련하고 결과를 추구하지 말며 일체 구하는 마음을 잘라버려야 한다. 그리고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통해 깨달았다. 일반인은 뭘 하든지 결과를 추구한다. 때문에 일반인은 모두 사(私)속에 있다. 만약 수련인이 구하는 마음을 안고 있다면 이 사(私)에서 뛰쳐나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결과를 구하는’ 마음이 나오면 곧 집착이다.
내 생각은 나오자마자 곧 목적을 갖고 있었다.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얻어지는 결과를 생각했다. 예를 들면 법을 외울 때 외울 수 있는 결과를 구하고, 진상을 알릴 때 어떻게 제대로 알릴까 생각하지 않고 잠재의식 속에서 나는 오늘 진상을 알렸다.(마치 임무를 완성한 것 같았음), 어떤 일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좋지 않은 결과 또는 좋은 결과를 생각한다.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자비롭고 무조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잘하지도 않고 정을 제거한 상태를 구하고…… 줄곧 ‘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속에서 수련했다. 수련 과정을 중시하지 않고 결과를 구했다.
이 점을 깨달은 후 법을 외울 때 오롯이 외우기만 했다. 법의 매 한 글자마다 조용히 마음속에 들어왔다. 얼마 외울 수 있는지 구하지 않았다. 진상을 알릴 때 다만 마음으로 사실을 진술할 뿐, 이 중생이 구원될 수 있는지, 삼퇴할 수 있는지 또는 오늘 나는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하고 결과를 추구하지 않았다 …… 결과를 추구하는 마음이 나타나면 즉시 제거했다. 진정으로 이걸 해 냈을 때 자비도 나오고 사(私)에서도 뛰쳐나온 것을 느꼈다.
수련 중 사부님께서는 매 한 제자를 점화해주신다. 얼마를 느낄 수 있는가는 제자의 심태(心態)에 달렸다. 과정에서 사부님의 점화를 깨달을수록 층차가 제고됨이 빠르다. 제자는 오롯이 깨달았다. 해내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만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라는 걸.
이상의 깨달음은 층차가 제한되어 있기에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走向圓滿)’[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년 10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0/2/3546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