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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닦는 것을 배우고 원망심을 제거

글/ 일본 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을 얻어 21년 수련했고 크고 작은 법회도 많이 참가했다. 그러나 여태 심득교류를 쓰려는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몇 년 동안 수련한 노정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1996년에 법을 얻어 개인수련부터 비틀거리며 사부님을 따라 지금까지 걸어왔다. 그 사이에 무수한 크고 작은 관을 많이 경험했다. 하지만 정정당당하고 부끄럽지 않게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가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이번에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것을 배우고 관을 넘긴 심득을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나의 수련 환경은 기본 속인과 수련생 사이에 큰 모순과 충돌이 없고 반대로 가족 수련생 사이의 모순을 오래 동안 넘기지 못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하며 쌍방은 모두 괴로웠다. 집에서는 수련인의 진실한 상태가 보인다. 왜냐하면 가정은 가장 느슨하고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매번 충돌은 모두 생활 중 사소한 일로 생긴다. 생활상 습관이나 일하는 방식이나 말하는 태도 등에서 마찰이 생긴다. 모순이 올 때, 자신의 마음과 부딪힐 때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지난 후에야 부족한 점을 찾는다. 그러나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찾을 때가 더욱 많다. 이렇게 쌓이다 보니 원망심, 쟁투심, 상대를 얕보는 마음, 독선적인 마음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더욱 괴로웠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 중에서 수련함은 한 층 한 층씩 사람의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마치 그 양파처럼 한 껍질 한 껍질 그것을 벗겨버리는데, 최후에 모두 벗겨서 없어졌을 때가 바로 본질이다.”[1]

나는 사부님의 이 한 단락의 법을 구실로 자신의 집착심을 깊이 찾지 않고 매번 관을 넘길 때 그럭저럭 지나갔다. 관을 넘길 때 법공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법을 꼭 기록해 놓고 상대방이 평온할 때 시간을 찾아 그녀에게 읽어주고 교류한다. 표면상 법공부를 하고 교류하고 어투도 평온하지만 사실 무의식중에 법리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상대방을 개변시키려 하며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상황은 정반대로 됐고 상대방은 더욱 거부하고 경계했다. 오래 동안 이렇게 지속되다 보니 마음속 간격이 갈수록 깊어졌고 서로 불만이며 쟁투심, 원망심이 갈수록 심해졌다. 함께 법공부를 해도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사 후 근처 수련생이 매일 우리집에 와서 함께 법공부를 해서야 비로소 이런 상황이 개변됐다. 하지만 겉으로의 개변은 단지 표면이고 진정으로 안으로 닦지 못하고 안으로 찾지 못했으며 자신을 바꾸지 못했고 근본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3,5일에 한 번씩 충돌이 생기고 냉전 상태가 온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나쁜 생각을 통제하기 어렵고 지난 일이 끊임없이 나왔다. 우리는 모두 상대의 단점을 보았고 서로 상대를 개변하려 했고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다.

나와 가족 수련생 사이에서 가족 수련생은 내가 어투가 좋지 않고 자신을 질책하고 원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최근 노력해 자신이 말하는 어투와 심태에 주의했다. 스스로 이 방면에서 제고가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했다. 그러나 최근 어느 날 아침 식사를 하며 무식의중에 가족수련생에게 잔소리를 하자 가족 수련생은 갑자기 화를 내며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일이 발생하기 전에 전조가 없이 갑자기 발생했다. 당시 형세는 통제하기 어려웠고 이전이라면 나는 끌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자신을 수련하는 법리를 깨닫고 모순 앞에서 냉정해졌다. 마치 이 모순의 원인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나는 평온한 심태로 눈앞의 모든 것을 보고 속으로 발정념을 하며 끊임없이 안으로 찾았다. 안으로 찾는 마음이 생기자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됐다. 자신이 수련에서 정진하지 않고 매일 4개 발정념도 보장하지 못하며 연공도 빠뜨리고 법공부도 마음에 닿게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표면에서 보아낼 수 없지만 자신은 스스로 형편없는지 알고 있다. 자신이 잘못한지 알고 사부님 법상 앞에서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최근 제가 정진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돌발 상황에서 상대방의 나쁜 점을 보는 생각이 없고 자신을 찾으니 상황은 변했다. 일이 지나간 후 가족 수련생에 대해 어떠한 원망과 불만이 없었다.

만약 쟁투심이 없으면 수련생이 나와 다투겠는가? 만약 원망심이 없으면 수련생이 나에게 싫어하는 행동을 하겠는가? 내가 그녀를 원망할수록 그녀는 나를 더욱 상심하게 하는 일을 했다. 나를 억울하게 만들고 그녀를 상대하지 않게 만들었다. 나의 원망심과 쟁투심이 번거로움을 불러온 것이지 상대 수련생의 잘못이 아니다. 수련생도 수련 중의 사람이고 수련 잘하지 못한 사람의 일부 표현이 있다. 그러면 구세력의 꾐에 넘어간 것이 아닌가? 우리는 한 가족이고 비록 각자 수련을 하지만 서로 견제한다. 자신의 업력을 구세력이 이용한 것이며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끌어내 폭발하게 한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발정념 이 일을 여러분은 반드시 중시해야 한다.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느끼든, 없다고 느끼든 상관없이 당신은 반드시 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의 사상 중의 것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것은 당신 자신의 신체 범위 내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동시에 당신은 외재적인 것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것은 당신이 있는 공간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당신이 그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당신을 박해하고 당신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다른 수련생, 다른 대법제자들을 박해한다.”[2]

몇 년의 수련을 거쳤는데도 우리는 왜 아직 구세력을 알지 못하고 꾐수에 넘어가는가? 상대 수련생의 표현은 우리를 도와 수련시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줄곧 상대 수련생을 붙잡고 놓지 않고 그녀를 위해 조급해 했다. 왜 자신을 보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내가 계속 깨닫지 않고 제고하지 않자 더 조급해하신다. 나는 다른 사람만 보고 이것저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며 왜 변하지 않는지 질책했다. 사실 이런 말은 자신에게 말해야 한다. 상대방이 관을 넘길 때 수련인답지 않게 표현하고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지난 후 수련생은 아주 고통스러워하는데 누구도 잘 수련하고 싶어한다. 만약 내가 이런 마음이 없으면 환경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수련인이 안으로 찾지 않고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정말로 고해에서 몸부림치며 뛰쳐나오지 못한다. 구세력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고 두 사람을 모두 끌어내리려 했다.

자신의 집착심을 찾고 잘못을 찾은 후 나는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고 정말로 상대방에 미안했다. 내가 잘못해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부님께서 대만 수련생에게 설법하실 때 말씀하셨다. “수련은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모순이 있을 때, 곤란과 불공평한 대우가 있을 때 여전히 자신을 찾아 안을 향해 볼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련으로, 비로소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으며,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3]

사실 사부님의 설법은 줄곧 우리에게 자신을 잘 수련하라고 가르치셨다. 하지만 자신은 법공부할 때 자신과 대조하지 못하고 법의 요구대로 자신을 수련하지 못했으며 법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 했다. 법은 자신과 대조해야 한다. 법으로 다른 사람을 제압하려는 것도 경사경법(敬師敬法)이 아니다. 그러므로 법의 진정한 내포가 무엇인지 보아내지 못한다. 자신을 잘 수련하면 상대방도 변한다. 이번 관을 넘길 때 꿈에서 깨어난 듯하고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할 줄 알고 관을 넘길 때 뒤돌아 자신을 봐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후회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제고하는 기회를 얼마나 많이 주셨는가? 잃은 기회는 더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러 번 하늘을 보며 사부님께 여쭈었다. “시간은 뒤돌릴 수 있을까요?” 잘못 걸어가면 자신을 바로 잡으려 해도 기연이 없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자. 매번 제고하는 기회를 파악하고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하자. 최후 수련의 길에서 유감을 적게 남기자.

‘최선을 다하자[盡力]’ 두 글자의 내포를 알게 됐다. 집의 어린 수련생이 무용대회에 참가할 때 준결승전 끝나고 결과를 몰라 컴퓨터 앞에서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때 아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결과가 어떻든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메시지를 보고 순간 나는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머리에서 더러운 명리에 대한 추구와 기대가 사라졌다. ‘최선을 다하다’가 모든 고생과 노력을 포함했다. 또 누구와 비기란 말인가? 자신을 돌파하고 최선을 다한 것, 그걸로 충분하다!

수련은 조금씩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깨닫고 해내야 진수제자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면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최후까지 갔을 때 사부님께 “사부님, 제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심경은 착실하게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잘 수련하고 자신을 더욱 잘 수련하며 사부님의 시의 가르침에 따라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4] 이다.

수련해서 지금까지 사부님을 따라 수련하며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련의 길에서 이렇게 정진하지 않고 말을 듣지 않으며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일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 심성이 제고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번에 교류문장을 쓰는 것도 쉽지 않고 여기에서 자신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사람 마음을 발견했고 자신이 잊었던 수련 초기 상태를 되찾았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련체득을 나눌 수 있어 상대 수련생에게 감사드립니다. 옅은 체득으로, 적절하지 않는 점은 자비로 시정해주시기를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뉴질랜드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2-미국플로리다 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만법회에 보내는 축사’[4]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2017년 일본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17년 9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20/3539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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