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 과정을 되돌아보면, 1999년 7월 전에 행복하고 즐거운 개인수련 단계를 거친 후 피바람 몰아치는 혹독한 박해를 겪었으며, 그 후 해외로 이주해 수련의 한 항목에 분주하게 매달려 오늘에 이르렀다. 수련과정 중에서 오성이 모자라 매 단계마다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모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점화해주시어 법 중에서 깨닫고 수련 중에서 제고할 수 있었음을 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수련 중에서 제고 되는 것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수련 항목을 해나가는 데도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아 나에게 소극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사부님을 한 번도 만나 뵌 적이 없었는데도 시시각각 사부님의 점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경우를 만난다고 해도 법 중에서 깨닫고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매년 법회에서 사존을 뵐 수 있고 사존의 설법을 듣는데도 왜 이렇게 소극적인 요소의 저애를 받고 있을까? 어찌된 일일까? 이런 막막한 문제를 가끔씩 생각해본다.
최근 몇 년간 나에게 닥쳤던 문제들을 돌이켜보면서 ‘아직도 나에게 위사위아(爲我爲私)의 요소가 있어서 정진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수련 항목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안으로 찾아보았다. 그동안 어떤 명리도 바라지 않고 오직 무조건 헌신하는 자세를 취해 왔으므로 어떤 이익 문제로 다툼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일정한 모순은 있었다. 그 모순이라는 것은 모두 항목의 일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 무사(無私)의 마음으로 대했는가? 확실히 그렇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런 무기력과 원망심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원인은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내가 가장 곤혹스러움을 당하고 있을 때 수련생을 통해 깨닫도록 꼭 집어서 점화해주셨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본인 스스로가 수련을 괜찮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주 선했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나는 요즘에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망설이고 있어요. 분명히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찾을 수가 없어요.” 그녀가 바로 나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그녀의 말은 전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대단히 놀랐다. 바로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통해 나에게 말씀해주시는 점화였던 것이다.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수련해왔기에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그런 마음은 일찌감치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부족한 점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강한 자아와 공산당문화를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자비를 발휘하지 못하고, 함께 정념을 발휘하지 못해 정체를 이루지 못했으므로 상대방을 감화시키지 못했고 중생구도를 더 많이 해내지 못한 것이다. 이 중에서 깨달은 몇 가지만 예를 들겠다.
1. 당(黨)문화는 진정한 선과 자비를 수련생들에게 베풀지 못하게 했다
내가 수련자로서 수련생을 선하게 대하지 못한 곳이 많은 것을 발견했다. 속인들에 대해서는 높은 기대를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이해하고 관용할 수 있었지만, 수련생들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갖고 있었기에 수련에 잘못한 곳이 있기만 하면 마음속으로 원망했고 어떤 때는 무시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 수련생에 대해서도 늘 수련을 잘하지 못한 부분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와 교류하고 다시 보니 장점이 아주 많은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전에는 나의 그런 선량하지 못한 그런 마음 때문에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어느 날 당신이 저에게 ‘당신과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저를 무시하는 눈빛을 보고 당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참으로 난감했다. 나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나의 선량하지 못한 일면과 단순하고 귀여운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송나라 범중엄(範仲淹)의 아들 범순인(範純仁)은 늘 그의 아들에게 “한 사람이 만약 다른 사람을 나무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나무랄 수 있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면, 성현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라고 타일렀다.
2. 당문화의 투쟁요소는 내가 모든 걸 무조건 완전히 안으로 찾는 것을 방해했다
방금 언급한 그 수련생이 또 말했다. “항목의 일을 잘하지 못해 오늘의 현상이 이렇게 좋지 않다는 것이 당신 때문이라는 걸 생각해봐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고 내 위로는 관리자가 있고 다른 수련생들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당신은 더 이상 변명하지 마세요, 바로 당신이 잘하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 수련생의 표정을 보니 말은 확고했지만 표정은 선했다.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서 나를 각성하게 했다. 그의 말은 역시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통해 나에게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명만 늘어놓았던 것이다. 다른 항목의 한 수련생은 항목에 문제가 생기자, 다른 수련생들은 있는 힘을 다해 성심껏 했지만 자신이 좀 부족했기 때문이며 자신이 그 점을 보충하기만 하면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수련생의 그런 경지와 비교하니 나는 정말로 창피했다. 안으로 찾는 것에 늘 조건을 따졌으며 찾은 후에도 늘 다른 사람을 겨냥해서 찾았는데 어려운 문제는 모두 다른 사람들의 집착심 때문에 조성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나는 바로 대충해버리는 당문화의 태도를 아직까지 완전히 버리지 못한 면이 있다. 항목의 일을 세부적으로 하지 못해 품질을 높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늘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것이 항목을 완수할 수 없게 하는 큰 원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으로 찾을 때 ‘작은 일’을 중시하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을 때가 많은 데도 깨닫지 못해 안으로 찾지 못했다. 그것은 또 일사일념 중에서 주의해서 장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많은 집착과 관념을 오래도록 제거하지 못하게 했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수련을 교란했다.
3. 시간이 의지력을 소모시켜 안일한 마음이 생긴다
그 수련생은 또 나에게 또 “당신은 매일 항목의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요? 마음속에 사람들을 구하려는 강렬한 소원이 있어요, 없어요?”라고 물었다. 그렇다, 나는 매일 아침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며 낮에는 틀에 박은 듯이 항목의 일을 하면서 ‘내가 세 가지 일을 다 하니 정진한다’고 생각하면서 일언일행, 일거일동 중에서 심성제고를 느슨히 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일한 마음이 커졌는데도 의식하지도 못했다. 지난 2년 동안을 돌이켜 볼 때 정말 사람을 구하는 절박한 마음이 부족했다. 현 상태의 그런 항목의 일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뿐 ‘어떻게 해야 돌파할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매번 청소하는 동료 수련생을 볼 때마다 부끄러웠다. 그녀는 가끔 두툼하게 서명 받은 묶음을 가져왔다. 내가 그녀에게 “영어로 말하지 못하고 또 매일 여기서 청소 일을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서명을 받았어요?”라고 물으면, 그녀는 “출근 전과 퇴근 후의 시간, 그리고 휴일에 했는데, 어떤 때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서명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와 같은 사람들은 소극적인 마음을 가질 여유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시간이 없으며, 오직 사람을 많이 구하려는 일념으로 시간을 다투어 구세력에게서 사람들을 뺏어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사심이 없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강대한 자비와 정념으로 일을 해낸 것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늘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항목의 성과는 법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소극적이고 안일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우리 시간은 사부님께서 큰 감당과 헌신으로 연장해주신 시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우리의 수련과 더 많은 중생을 구하는데 그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분일초가 그렇게 모두 소중한데 어떻게 틀에 박은 듯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이 일당십, 일당백으로 전력을 다해 충분히 했는지 물으셨다.
4. 속인의 관념에 막혀 산을 허물 수 있는 정념이 부족하다
속인 사회에서 여러 해 동안 일을 했기에 바로 ‘한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조직능력과 전문적인 기술이 결정한다’는 관념 속에 있었다. 이것은 속인 중에서는 아마 일리가 있겠지만 수련 중에서는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념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아주 많은 법 실증의 일을 자발적으로 맡지 않았다. 고생이 두려워서가 아니고, 나는 그 분야의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잘 하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그 항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항목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전문적인 인재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없다면 사부님과 대법이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실 수 있다. 사실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잘할 때는 근본적인 원인이 속인사회의 공간처럼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이 얼마나 고명해서가 아니고 참여한 수련생들이 얼마나 잘해서가 아니라, 법의 요구에 도달했기 때문이고 정체가 표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며 법의 위력이 인간 세상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협조인 또는 직접 일에 참여하는 수련생들은 기술과 능력이 첫 번째가 아니라 심성이 첫 번째다. 마치 한 속인이 성공하려면 그가 재주가 많아서가 아니라 덕이 많아서인 것과 같다. 또 환득환실(患得患失-무엇을 얻으려고 걱정하고, 얻은 후에는 잃을까봐 걱정함), 이해득실을 따지는 등 많은 다른 사람들의 관념이 나의 정념을 교란하고 있었다. 정념이 부족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법 중에서 우리를 위해 일체를 준비하셨다. 오직 우리가 수련인의 상태이기만 하고 일사일념이 법 중에 있으며 정념이 족하면 바로 법 중에서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체는 모두 저절로 풀리고, 일체는 모두 질서 있게 배치될 것이며 우리는 그 기제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진정하게 수련한다면 반드시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고 무조건 사부님 말씀을 들을 것이며, 구하지 말고 내면으로 자신을 제고하고 개변해야만 우주의 ‘무사무아(無私無我)’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들이 순정(純淨)한 심태에서 한 일이야말로 가장 좋고 신성한 일이다.”[1]로 될 수 있다.
우리 함께 이 만고의 기회를 소중히 하여 마지막 길에서 용맹정진하자.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이니 적절치 못한 점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
원문발표: 2017년 9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21/3539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