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정이(正懿)
[밍후이왕] 수련하기 전에 나는 많은 병이 있었다. 엄중한 심장병, 고혈압에 매년 병원에 3~5차례 입원을 해야 했고, 약을 항상 달고 살아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 세 식구는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시부모는 아무런 일도 상관하지 않고 아들은 말을 듣지 않으며 남편은 도박을 좋아하고 약간의 책임감마저도 없다. 모든 집안일은 나 한 사람이 감당해야 했다. 집의 분위기는 늘 긴장하고 온종일 생기라고는 전혀 없고 약간의 웃음소리도 없다. 정말 그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억울한 마음을 풀기 위해 늘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마음의 평온과 기쁨을 찾기 위해 남편에게서 마작을 배웠고 또 춤추러 다녔다. 비록 이러했지만 여전히 사는 것이 재미없고 온종일 의기소침하고 무료했다.
‘전법륜’은 자살하려는 내 생각을 없앴다.
나는 견디며 살다가 1998년에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5층인데 어느 날 나는 층집에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생명을 결속하려 했다. 이 생각이 있고 난 뒤 밤 11시에 베란다에 기대어 어떻게 뛰어내릴까 생각했다. 베란다에 새벽 2시까지 있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정말 죽으려고 갔는데 셋째 언니가 생각났다. 셋째 언니는 나에게 어머니보다 더 잘해 주었다. 언니와 나는 한 도시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유일하게 빚진 사람은 셋째 언니만 있다. 내가 죽으면 언니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대략 일주일 좌우 망설였다.
그때는 휴대폰도 없었고 집 전화도 없었다. 중국 사람들은 텔레파시(telepathy)가 통한다는 말을 한다. 바로 내가 직장에 있을 때 셋째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내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고 특히 소침하고 세상을 비관하는 것 같아 급히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또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지니고 왔다. 언니는 “너는 이 책을 봐라. 다 본 후 사람과 사람은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너의 마음속의 근심과 고뇌를 풀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보지 않겠어요. 이전에 많은 기공을 배웠어요. 그때 얇은 책자도 다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두꺼운 책은 못 봐요.”라고 말했다.
언니는 계속 나에게 보라고 권했다. 평소에 나를 너무 잘 대해 주었기에 체면 때문에 보겠다고 응했다. 이렇게 보자마자 매료될 줄은 몰랐다. ‘전법륜(轉法輪)’ 중의 매 말씀마다 나의 심령의 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 책은 너무 좋다. 내가 만약 이 책을 일찍 봤다면 마작을 하고 춤을 추러 다녔겠는가?’
그때부터 나는 마작을 하고 춤을 추는 무료한 일을 완전히 끊고 대법 수련을 했다. 당연히 더는 사람을 욕하지 않았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한 후 나는 활기찼을 뿐만 아니라 몸도 더는 괴롭지 않았고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약도 더는 먹지 않았다. 나의 변화에 가정 분위기도 변했고 화목해졌다. 수련 전에 비록 시부모와 가족을 돌보았지만 나는 그들을 욕했다. 내가 사람을 욕하면 시어머니는 종래로 아무 소리도 못 했다. 수련을 한 후 나는 시어머니에게 효도했다. 나는 그때 목욕탕에서 표를 팔고 있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을 했고 또 휴식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밥을 해서 도시락을 싸서 가고 퇴근을 해서 저녁밥을 했다. 매우 힘들었다. 어느 날 저녁, 시어머니는 만두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네, 오늘은 집에 고기가 없으니 내일 사서 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이튿날 출근해서 짬을 내어 고기를 샀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서 만두소를 만들어 놓고 이튿날 일찍 일어나 만두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식사하라고 불렀다. 이때 시어머니는 뜻밖에 소고기 소를 넣은 찐빵이 먹고 싶다면서 만두는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남편과 아들은 화를 냈다. “이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 되어서야 휴식을 하는데 만두를 먹고 싶다 해서 만들었더니 또 찐빵을 먹겠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요?” 나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온화하게 말했다. “어머니, 내일 아침에 다시 찐빵을 만들어 드릴게요.” 나는 그들 부자에게 말했다. “사람은 늙으면 이렇게 될 수 있어요. 어머니한테 뭐라 하지 마세요. 다시 말하자면 저는 지금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고 있어요.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며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시시각각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했어요.” 남편은 감동했다. 수련을 하고부터는 남편에게 더는 욕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의 변화가 너무 큰 것을 보고 남편은 내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것을 인정하고 지지했다.
남편이 ‘전법륜(轉法輪)’을 보았다
남편은 신체가 약하고 병이 많다. 신장 증후군에 20여 년의 신경성 두통이 있다. 신체가 좋지 않고 본신이 게을러 일하기 싫어한다. 직장에서 일할 때 빈둥거리고 업무시간에 늘 마작하러 간다. 상급도 그를 관여하지 못한다. 내가 수련을 한 후 그는 직장에서 업무를 볼 때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으며 주동적으로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일도 한다. 사람들은 “당신이 어찌 이렇게 좋게 변했어요?”라고 하면 그는 “내 아내는 전법륜(轉法輪)을 수련합니다. ‘전법륜(轉法輪)’을 저도 보았는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책입니다. 파룬궁(法輪功) 영향으로 나도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1999년 장쩌민 무리가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비록 남편은 수련을 하지 않지만, 직장에서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가족이 있는 직장인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지 않는다는 소위 보증을 쓰라고 했다. 직장의 상급이 그에게 보증을 쓰라고 하자 그는 말했다. “무엇을 보증해요? 내 아내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 후 마작도 하지 않고 춤추러 다니지 않고 저와 더는 싸우지도 않으며 시부모에게 효도합니다. 당신이 말해보세요. 내가 무엇을 보증해야 합니까?” 상급은 그의 말을 듣고 말했다. “파룬궁(法輪功)이 좋으면 집에서 잘 수련하세요. 위에서 당신을 찾으면 제가 당신과 이야기했다고 할게요.”
그때는 많은 직장에서 대법을 모함하는 전시판을 걸었다. 남편이 상급과 이런 말을 했기에 그의 직장에는 여러 해 동안 전시판을 건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남편이 마작관(麻将馆)에서 마작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파룬궁(法輪功)을 모함했다. 한창 마작을 하던 그는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나더니 그 사람에게 말했다. “상황을 요해하지 못하면 당신은 허튼소리 말아요! 나의 아내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해요. 나는 잘 알고 있어요. 파룬궁(法輪功)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요!” 그의 말에 방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2001년 어느 날 오전, 우리 부부는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진상 CD를 주다가 고발당했다. 경찰은 우리 두 사람을 파출소에 데려갔다. 그들은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고 심문을 했다. 경찰은 남편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가 물었다. 남편은 수련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부님의 이름을 가리키며 욕하라고 했다. 그는 “욕하지 않겠어요. 제가 무엇 때문에 욕해야 하죠? 나는 그를 알지 못하고 그는 나를 해친 적이 없으며 또한 나의 아내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어요. 제가 왜 욕해야 하죠?” 그때 현장에 세 명의 경찰이 있었다. 남편은 계속 말했다. “당신 세 명을 놓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당신들을 욕하라고 하면 나는 당신들을 알지도 못하고 당신들도 나를 해친 적이 없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욕해야 하죠? 나는 당신들도 욕하지 않을 겁니다.”
경찰은 말이 없었다. 그는 경찰에게 파룬궁(法輪功)이 어떻게 좋다고 말했다. 경찰은 “제가 보기에는 당신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사람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파룬궁(法輪功)은 때려도 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아요. 먹고 마시고 오입질, 도박하지 않고 남을 함정에 빠뜨리고, 눈을 속이고, 몰래 빼앗고, 기만하는 것을 하지 않아요. 나는 마작을 하는 것도 내려놓지 못하는데 어떻게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겠어요? 우리 아내는 물건을 살 때 거스름돈을 더 줘도 가지지 않아요. 당신 경찰들도 이렇게 꼭 좋은 소질이 있다고 할 수 없죠?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을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요, 당신들은 나를 치켜세우지 말아요.”
그날 나도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경찰과 줄곧 대법이 어떻게 좋으며 수련을 한 후 내가 받은 이로움을 말했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우리 두 사람을 풀어주었다.
어디든지 막론하고 누가 대법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면 남편은 공개적으로 대법의 좋은 점을 말했다.
그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한다. 한 지하통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며 아주 큰 언덕을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그날 비탈길을 내려갈 때 자전거가 단번에 멈춰 섰다. 그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되어 멈췄을까?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 검사해 보았다. 보니 앞바퀴가 거의 빠질 뻔 했다. 그는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만약 멈추지 않고 차가 떨어지면 사람도 끝나는 것이다. 그는 ‘전법륜(轉法輪)’을 본 적이 있기에 대법 사부님이 그를 보호해 주신 것을 알았다.
한 번은 그가 밤에 당직을 섰다. 그는 당직실에서 나가려고 일어서다가 단번에 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 문은 큰 구멍이 났다. 그 문 왼쪽에는 증기 난방장치가 있고 오른쪽 역시 증기 난방장치가 있었다. 어느 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울려도 증기 난방설비에 충돌해 크게 다칠 수 있다. 이번의 충돌로 20여 년의 두통이 나았고 더는 재발하지 않았다. 그는 대법 사부님이 재차 자신을 보호해 주신 것을 알았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은 신장 증후군도 다 나았다. 여러 해 동안 힘든 일을 못 해 직장에서 경비만 서던 그는 후에 작업장에서 힘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전법륜(轉法輪)’ 중의 진선인(眞善忍)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연속 여러 해 동안 직장의 모범 근로자가 되었다. 평소 친척, 친구가 우리 집에 오면 그는 “당신들은 ‘전법륜(轉法輪)’을 보세요. 당신들은 수련하지 않더라도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알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당신을 보호하러 왔어요!”
사악의 박해가 갓 시작된 그 몇 년 동안 경찰은 늘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워 남편은 문에 큰 쇠 빗장을 설치했다. 그는 “내가 집에 없으면 누가 와서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말아요!” 남편이 집에 없을 때 나는 여러 번 누가 키로 우리 집 문을 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큰 쇠 빗장 때문에 모두 들어오지 못했다.
2002년 9월 22일 나는 외지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납치되었다. 불법 구류기간에 경찰은 우리 집에 와서 수색하려 했다. 남편은 마침 당직을 서고 있었다. 경찰은 업무증을 꺼내고 말했다. “우리는 공안입니다. 우리를 데리고 당신 집에 가 봅시다.” 그는 “그 증을 꺼내 나를 겁주지 마세요. 그것은 단지 신분의 증명서일 뿐이죠. 나도 증이 있어요. 단지 나는 노동자일 뿐이요.”라고 말했다.
경찰: “당신은 우리에게 협조하여 당신 집에 가보면 됩니다.”
남편: “당신들은 우리 집의 좋은 사람을 붙잡아 갔어요. 우리 집에는 나쁜 사람이 없어요. 협조를 못해요!”
경찰: “당신은 공무집행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 “진정으로 공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은 당신들이요. 당신은 내가 업무를 보고 있는 것을 못 보았어요? 이렇게 큰 직장을 나에게 맡겼어요. 나는 한창 공무를 집행하고 있어요.”
그들의 다투는 소리를 듣고 직장에서 당직을 서던 상사가 와서 말했다. “가 보세요.”
남편: “안 가겠습니다! 내 아내는 법을 위반한 적도 없고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 붙잡혔습니다. 제가 어찌 그들에게 협조를 할 수 있습니까?”
대략 한 시간 동안 다투다가 경찰은 강경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부드럽게 남편에게 가서 보기만 한다고 말했다. 집에 도착한 후 남편은 “당신들은 저의 모친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되며 물건을 뒤져서도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우리 집의 키를 잠근 철제 궤를 보고 “키가 있어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경찰은 “열어주세요! 우리가 볼게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열어드릴 수 없어요! 우리 집의 물건을 어찌 함부로 다른 사람이 보게 하나요? 재간이 있으면 당신들은 부수고 열어 보세요. 열다가 고장이 나면 당신들은 배상하세요.”라고 말했다. 이때 10여 명의 경찰이 에워싸 이 궤를 주시했다. 남편이 열어주지 않을수록 그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 시간을 대치했다. 마지막에 그는 말했다. “당신들은 다 본 후에 또 실랑이 할 거예요?” 경찰은 “아니, 하지 않을게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다 본 후 당신들은 가세요!”라고 말했다. 경찰에게 다짐을 받고 그는 궤를 열어주었다. 그들은 가져갈 물건이 없는 것을 보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경찰이 또 왔다. 그들은 직접 남편 직장에 와서 돈을 요구했다. 남편은 “돈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어찌되었든지 간에 밥값 500위안(약 86,000원)은 내놓으셔야죠.”라고 말했다. 남편은 “한 푼도 줄 수 없어요. 집에 잘 있는 사람을 당신들은 막무가내로 붙잡아 놓고 또 밥값까지 달라는데 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사납게 “그럼 그녀를 굶겨 죽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재간이 있으면 당신들이 굶겨 죽여 봐요. 나는 당신들을 고발할거예요. 책임을 추궁할 때 당신들은 누구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악경은 방법이 없어 갔다.
2002년 11월 나는 불법 노동교양을 3년 받았다. 그 사악의 노동교양소는 면회하러 온 가족에게 반드시 대법 사부님을 욕해야 하며 대법 사부님을 욕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들과 강력히 논쟁했다. “학교 다닐 때 사람을 욕하는 말을 배우지 않았어요. 당신들의 어느 법률규정이 면회할 때 반드시 욕하라고 했어요? 나는 절대로 욕하지 않을 거예요. 노동교양소는 사람을 교육하는 곳이 아닌가요? 어찌 사람을 욕하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은 누가 규정한 거예요? 나는 당신들 상급을 찾아 물어볼게요.” 노동 교양소 접견실의 사람이 말했다. “면회 온 가족은 모두 우리말을 듣고 굽실거리는데 유독 당신만 이렇게 말하는군요.” 그는 “저의 아내는 좋은 사람이며 억울함을 당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 그가 정말 법을 위반했다고 쳐도 저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들에게 머리를 수그리고 굽신거려야 하죠?” 그들은 자신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 면회를 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3년 동안 그는 종래로 나를 욕한 적이 없었다. 규정에 따르면 매달 한 번만 볼 수 있는데 남편은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왔다. 접대실에서는 남편에게는 가로막거나 난처하게 굴지 않았다.
내가 집에 온 후 경찰은 서명하러 파출소에 오라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가지 말아요! 내가 있는 한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그 후 악경이 와서 소란을 피워도 우리는 종래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한 여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그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여자가 자신은 지역사회의 주임이라고 소개를 하고 집에 발을 들어놓자 남편은 그녀를 밀어버리고 문을 잠갔다. 이때 위층 계단에서 사람이 달려오더니 “쾅, 쾅”하고 문을 두드리면서 “나는 경찰이에요. 빨리 문을 여세요!”라고 했다.
남편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경찰: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단지 보려고요.”
남편: “뭘 봐요, 경찰은 나쁜 사람을 붙잡죠? 우리 집에는 나쁜 사람이 없어요. 당신들은 가세요!”
경찰은 문을 더욱 크게 두드렸다.
남편: “당신들 임대료를 빚졌어요?”
경찰: “빚지지 않았습니다.”
남편: “수도세를 빚졌어요?”
경찰: “빚지지 않았습니다.”
남편: “전기세를 빚졌어요?”
경찰: “빚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말했다.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왔어요? 나는 당신들한테 문을 열어주지 않겠어요. 나는 휴식을 해야겠어요. 여기는 우리 집이니 당신들은 빨리 가세요!” 거의 한 시간 동안 문을 두드렸다. 나는 좀 버틸 수 없었다. 그는 경찰과 대치하면서 나를 위로했다. “여보, 내가 있는 한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요!” 경찰이 물었다. “내일 우리가 오면 당신은 문을 열겠어요?” 남편은 “여기는 우리 집이에요. 문을 열고 안 열고는 내 기분을 봐야죠.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권리니까요.” 경찰은 문을 안 열어주자 가버렸다.
이튿날 새벽 4시에 남편은 나를 배웅했다. 아침 7시에 경찰 세 명이 와서 “쾅, 쾅”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경찰이 물었다. “어제 저녁에는 왜 문을 안 열어주었어요?” 남편은 말했다. “그것은 내 권리에요. 열고 싶으면 열고, 열고 싶지 않으면 안 열죠. 당신들은 무슨 일이 있나요?” 경찰은 “아무 일도 없어요. 당신 부인 보러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좋아요. 방에 들어와 보세요. 저의 마누라를 보려는 거잖아요! 당신들은 다 본 후에 나도 당신들을 따라가서 당신들 부인을 볼게요.”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쳐다만 보고 누구도 한 발짝 내딛지 못했다. 한 경찰이 물었다. “당신 부인 사진 있나요?” 남편은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경찰은 “사진 한 장을 우리에게 주세요.”라고 말했다. 남편이 “싫어요! 나의 마누라 사진은 우리 집 돈으로 찍은 거예요. 뭐 때문에 당신들에게 줘야죠?”라고 말하자 경찰은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
한동안 시간이 좀 지난 후, 아들이 홍콩으로 가게 되어 여권을 만들어야 해서 남편이 파출소에 갔다. 경찰이 보니 남편인지라 난처하게 굴었다. “당신 집에 가니 당신이 협조를 하지 않았는데 해주지 않겠어요!” 남편은 말했다. “당신들을 협조해서 내 부인을 붙잡으라고요? 당신들이 나에게 밥해 줄 건가요?” 경찰들은 동시에 떠들썩하게 웃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처리해 주었다.
하루는 남편과 한담을 할 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가요?” 남편은 말했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보고 한 권의 보서(宝书)며 수련을 지도하는 고덕대법(德大法)인 것을 알고 마음이 든든해요. 당신은 법률을 위반하지도 않았고 단지 개인의 신앙이에요. 그들이 당신을 박해하기에 나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나는 또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왜 수련을 하지 않나요?” 남편은 “나는 당신을 보호하러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큰 난에 죽지 않다
2012년 4월, 나의 오토바이 브레이크가 통제력을 잃었다. 내가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자 오토바이는 튀어 오르더니 단번에 앞으로 나갔다. 그 순간 나는 큰소리로 “사부님, 구해주세요!”라고 외쳤다. 순간 나는 매우 높게 튀어 오르더니 땅에 심하게 넘어졌다. 오토바이는 맞은쪽에 있는 택시 트렁크에 부딪혀 즉시 튕겨오더니 삼륜차에 부딪혔다. 이때 나는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허리는 참기 어렵게 아팠지만, 의식은 똑똑했다. 오토바이가 택시에 부딪혔으니 이치대로라면 내가 마땅히 배상해야 하지만 택시기사는 내가 위로 튕겨 올랐다가 또 바닥에 쓰러져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고 죽은 줄로 알고 책임을 질까 두려워 도망을 갔다.
그 길에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당시 많은 사람이 나를 에워쌌다. 어떤 사람은 120에 전화해서 빨리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내 휴대폰은 넘어지면서 고장이 났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 전화기를 꺼내더니 120에 전화하려 했다. 나는 전화를 하지 말라고 하고 우리 집 전화번호와 한 수련생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당시 아들은 외지에 있었고 며느리는 곧 해산하려 했다. 대략 반 시간 후 남편과 며느리, 또 두 수련생이 왔다. 며느리는 나를 병원에 보내려 했다. 나는 단호히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이해하고 나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며느리는 “병원에 가지 않아 문제가 생기면 저는 어머니를 상관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문제 생기지 않아, 나의 사부님께서 나를 관리하시네.”라고 말했다.
침대에 누워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허리가 아파 잠도 들 수 없었고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나는 이것은 아니다. 나는 대법제자다. 어찌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나는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이 일체를 인정하지 않겠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끊임없이 법을 외웠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1]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2] 이튿날, 남편은 나를 부축했다. 나는 남편의 도움으로 이를 악물고 심하게 아픈 고통을 참으며 화장실에 갔다. 너무 아파 땀과 눈물이 함께 흘러내렸다. 며느리는 “이후 어머니 이름을 고쳐야겠어요. 모모모라 부르지 않고 모젠챵(堅强)이라 불러야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와 보호아래 보름 만에 나는 스스로 벽을 짚고 걸을 수 있었고 한 달 15일 만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대법은 또 나의 몸에 한차례 신기를 펼쳤다. 가족도 대법의 초상을 견증했다. 사부님은 재차 나를 구해주셨다.
아들의 악성종양이 양성으로 변하다
올해 2월 하순 수련을 하지 않는 아들의 입천장에서 종양 2개를 발견했다. 종양은 브로콜리처럼 꽃이 피고 갈라졌다. 병원의 의사는 자신은 보지 못하겠으니 주임을 찾겠다고 말했다. 주임은 본 후 나와 아들 앞에서 말했다. “이 종양은 우리 경험으로 비추어 보면 양성이 아니고 악성종양입니다. 왜냐하면 양성종양은 반들반들한데 이 두 개의 종양은 모두 꽃이 피고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의사를 불러 모아 합동 진찰을 하고 모두 악성이라고 말했다.
입원하여 종양의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나는 아들한테 정말 의사가 말한 것처럼 그렇다면 오직 대법 사부님만 너를 구할 수 있다. 빨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자.”라고 말했다.
아들은 속으로 한 번 또 한 번 묵념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유일한 아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을 보고 나는 밤에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했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생각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한창 수난을 당하고 장쩌민 집단의 박해는 이미 18년이 되었는데 얼마나 많은 나의 아들보다 젊은 생명이 ‘천안문 분신’ 거짓 사건 때문에 속아 파룬불법(法輪佛法)을 적대시했는가!. 비방하고 적대시하면 그들에게 재난을 가져다준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심혈을 기울여 절박하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구했는가? 자기 아들이 마난을 당하니 왜 마음을 움직이는가? 이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나는 사부님의 말을 듣고 대자비심으로 누구나 다 잘 대해주어야 하는데!
수련생은 소식을 듣고 아들을 보러 왔다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관장하고 계시니 괜찮아요. 일체를 모두 사부님께 맡겨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준 것은 모두 제일 좋은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는 비할 바 없는 견정한 마음에 기적이 나타났다. 화학 분석결과는 양성으로 나왔다. 검사한 주임 의사는 매우 놀라며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4살의 손녀는 신동이다
나의 어린 손녀는 올해 만 4살이며 태어나자마자 내가 키웠다. 아이는 태어나면서 다리가 안으로 휘었다. 마치 고무공처럼 둥그런 것이 특별했다. 아들은 걱정이 되어 “어머니, 이 아이의 다리가 이 정도니 이후 크면 어떻게 될까요?” 나는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사부님을 믿는다. 사부님은 하지 못 하는 일이 없다. 반드시 제일 좋은 배치를 할 것이다.” 과연 아이는 칼슘 정제 한 알도 먹지 않고 지금은 두 다리가 매우 곧다.
남편은 나에게 “나의 제일 큰 소원은 당신이 아이를 대법제자로 키우는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자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사람을 만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말을 한다.
아이가 2돌이 되자 장쩌민을 고소하는 조류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지금 모두 장쩌민 이 대마두를 고소하고 있다. 그는 대법을 박해하고 할머니에게 연공을 못하게 하고 또 박해까지 했다. 할머니는 이 장 마두를 고소해야겠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진지하게 “할머니, 나도 이 대 마두를 고소하겠어요. 그는 우리 할머니를 해쳤어요. 그러나 할머니 저는 글을 쓸 줄 몰라요.”라고 말했다.
내 셋째 언니가 나를 보러 우리 집에 왔다. 언니는 다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손녀는 “이모할머니, 다리가 아프세요, 빨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세요. 빨리요. 사부님께서 할머니를 구해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다음 또 “사부님께 삼가 부탁드립니다. 나의 이모할머니를 구해주세요. 할머니는 다리가 아픕니다. 저의 이모할머니를 구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간혹 할아버지가 몸이 불편하면 손녀는 “빨리 사부님께 구해달라고 하세요! 빨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사부님이 할아버지를 책임져요.”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듣게 한 번 염한다. 손녀는 듣더니 “안돼요!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염해야 합니다. 큰소리로 염하세요, 더 큰소리로 염하세요!”라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염했다.
할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손녀는
“술은 장(腸)을 뚫는 약
인이 박이면 끊기 어렵다네
한 잔(一杯)에 마음걱정 풀어보려 하지만
열 잔(十觴)을 마시면 귀신이 좋아 웃는다네” [3]
라고 외운다. 할아버지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녀는 ‘홍음’ 중의 많은 시사를 외울 줄 안다. ‘제자규칙’ 전 문장을 유창하게 외우고 작가가 누군지, 어느 조대인지 모두 알고 있다. 간혹 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상응되는 제자규칙을 말한다. 내가 한 구절을 외우면 손녀는 다음 구절을 외우고 즉시 규칙에 따른다. 손녀는 또 ‘삼자경’, ‘천자문’ 등을 외울 줄 안다.
한 번은 손녀가 함께 놀자고 말했다. 나는 “혼자 놀아, 할머니는 좀 불편해, 너와 놀아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손녀는 마치 어른처럼 엄숙하게 나에게 “할머니가 법공부를 적게 해서 그래요. 또 나와 할아버지가 법을 외우게 가르치지 않았잖아요. 나와 할아버지에게 법을 외워주면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손녀는 나에게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2, 30페이지를 읽은 후 지쳐서 읽고 싶지 않았다. 손녀는 “할머니, 이 대법은 왜 이렇게 좋나요! 저는 정말 듣기 좋아요. 할머니! 저에게 더 읽어주세요. 저는 너무 듣기 좋아요.”라고 말했다.
한 번은 내가 거실에서 사부님의 ‘논어’를 외우자 손녀는 내 옆에서 놀았다. 나는 ‘논어’를 두 번 외웠다. 나는 외우기 힘든 것을 느꼈다. 며칠 지나 내가 ‘논어’를 외우자 손녀는 앳된 목소리로 ‘논어’의 첫 번째 단락을 유창하게 외웠다. 나는 이상하게 여겨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손녀를 보세요. 내가 ‘논어’를 외우는 것을 두 번 듣고 첫 번째 단락을 외울 줄 알아요. 이 아이는 너무 총명해요.” 남편은 유쾌하게 말했다. “이 아이는 어린이 대법제자며 매일 당신이 읽는 ‘전법륜(轉法輪)’을 들었어요. 사부님께서 이 아이에게 지혜를 열어주셨어요.”
지금 나는 매일 손녀에게 법을 읽어준다. 우리 온 가족은 파룬따파(法輪大法) 불광의 혜택에 푹 빠져 매우 행복하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법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홈음-마음 고생’[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홈음3-장(腸)을 뚫다’
문장발표: 2017년 7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24/3515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