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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복수(腹水)가 사라졌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차이샤(彩霞,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수련에 대해 말하면 나는 몹시 후회만 한다.

나는 천혜의 대법 수련환경 속에서 살았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모두 ‘7.20’이전에 법을 얻은 노 대법제자다. 수련 후 그녀들이 선하게 변했고 신체의 미세한 변화를 모두 똑똑하게 봤다. 물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어머니와 여동생도 여러 번 내게 법을 전했고 대법제자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나도 ‘전법륜’을 몇 페이지 본 적이 있으나 한 수련인의 기본 표준에 놀라서 물러섰다. 예를 들어 담배, 술, 도박을 끊는 것. 이런 것들은 내가 버릴 수 없는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 친구와 술친구야말로 나와 마음이 가장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좋고 나쁨을 모르고 계속 취생몽사의 ‘행복한 생활’을 했다.

점차 어머니와 여동생 같은 사람들의 사람과 사람지간의 그런 성실하고 친절하며 평화로운 관계를 부러워하게 됐고 날마다 지향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왕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온갖 방법을 다해 이익을 차지하려 하고 손해를 보려 하지 않으며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욕이 하늘보다 컸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나는 성격이 털털하고 누구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대했다. 다른 사람도 내게 똑같게 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절친’의 아이가 결혼하기에 안팎으로 도와서 며칠 동안 고생했고 정말로 아주 힘들었다. 겨우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고 모레 있을 결혼식을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친구는 먼저 두 상을 차려 그녀를 위해 힘써준 사람들을 초대하고 감사하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른 사람만 초대하고 날 초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책문했다. 그녀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 그래서 부르지 않았지!”라고 했다. 나는 그녀 집의 바닥을 비비적거리며 허리가 아프도록 일했다며 그녀를 난처하게 하는 말들을 잔뜩 했고 정을 끓어버리는 태도로 쓰레기를 버리듯 그녀를 멀리 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갑자기 간절히 대법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가 마침 법공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 손에서 ‘전법륜’을 빼앗았다. 경이원지(敬而遠之) 10여년 했던 대법 책을 가슴에 품었다. 어머니는 보고 아주 기뻐했고 내 마음에 따라 처음부터 배우라고 했다. 어머니는 일이 있어 갔지만 나는 계속 배웠다. 이틀 동안 ‘전법륜’을 한번 봤다.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또 연속으로 몇 번 ‘전법륜’을 읽은 후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사회의 도덕이 내려가고 추악한 일들이 발생하는 근원을 찾아냈다! 나는 그 ‘절친’을 미워하지 않고 자신만 미워했다. 이미 법을 얻었어야 하는데 10년이 늦어졌다! 정말로 몹시 후회했다! 그해는 2007년 봄이었다. 법을 얻은 후 시시각각 대법의 아름다움을 체득했기 때문에 자각적으로 정진했고 노수련생들도 아주 열정적으로 도와줬기에 2개월 후 거리에 나가서 삼퇴를 권할 수 있었다. 나는 첫 번째 삼퇴 명단을 들고 마음속으로 더욱 사존께 감사드렸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고 있는 것이고 제자는 심부름만하고 입을 움직였을 뿐이다. 말재주가 없어 진짜로 잘 말하지 못했는데 아마 내가 그를 위하는 자비심이 그를 감동시켰을 것이다. 이런 정신감응의 삼퇴방식에 사부님의 도움이 없다면 스스로는 아무리해도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음이 충실하고 행복한 생활은 정말로 좋았다.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아주 규칙적인 수련 생활을 7년 한 후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선 큰 산이 나의 앞길을 막았다. 이 산의 이름은 간암말기, 간경화 복수였다. 배가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갈수록 크게 부어올라왔는데 한 달 내에 불뚝 나온 배의 뱃가죽이 터질 것 같았다. 몸무게는 75kg에서 110kg으로 불어났다. 몸무게가 증가되고 병이 날마다 심해지는 어려운 나날은 ‘아픔’에 대한 인식도 점차 변하고 승화되는 과정이고 이 과정 또한 법에 융해되고 대법의 은택을 받는 과정이었다.

막 배가 부어오를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몸무게가 90kg까지 늘고 손과 팔, 다리가 선명하게 굵어졌을 때 마음속에 한 층의 얇은 그림자가 생겼고 머릿속에 ‘중병’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바로 그것을 해체하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데 뭘 두려워하는가! 세 가지 일은 바로 내 생활의 전부였다. 법공부하고 사람을 구하며 발정념을 했으며 모든 것을 아주 착실하게 잘했고 정법 수련의 이 길에서 뭘 해야 하면 그것을 했다.

배가 갈수록 부어오르고 사지도 따라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증상은 발전하고 있고 ‘병세’는 악화되고 있었다. 법공부를 표면적으로 했고 마음에 닿게 하지 못했으며 뿌리에서부터 자신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수련생에게 부탁해 찾아달라고 했고 심지어 수련생 집에 살면서 착실하게 안을 향해 찾았고 좋지 않고 법에 있지 않은 마음과 행동을 책에 적어놓고 시시각각 대조했다. 매일 법공부를 한 후 견지해 나가서 삼퇴를 권하고 중생을 구했다. 강톈(港田)이라는 작은 전동차로 택시 운영을 했는데 누가 내 차에 오르기만 하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이후에 다리가 부어 굽힐 수도 없어 수련생보고 다리를 브레이크에 올려달라고도 했다. 수련생들은 나보고 나가지 말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공부를 잘하고 병이 날마다 심해지는 내적 원인을 한번 잘 찾아보며 발정념을 많이 해 자신을 청리하고 구세력의 박해요소를 해체하라고 했다.

자비롭고 진심이 담긴 수련생들의 말은 날 감동시켰기에 수련생들이 말한 대로 했다. 매일 적어도 설법 2강을 봤다. 몸이 아무리 괴로워도 매일 아침에 3시 50분부터 5장 공법을 한꺼번에 했고 다리가 굵어 결가부좌를 할 수 없으면 단가부좌하거나 편안한 가부좌를 하더라도 반드시 견지해냈다. 네 번 발정념하는 시간이 되면 어디에 있든 바로 입장하고 발정념을 했다. 어떤 때 점심에 바깥에서 택시 운영할 때 마침 손님이 와서 차를 타려고 하면 “지금 쉽니다!”라고 손님을 보냈고 어떤 때 “돈을 더 많이 줄게요!”라고 따지는 손님도 있었는데 내가 “죄송한데 15분 이후에요!”라고 하면 “정신 나갔군”이라고 날 욕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들렸다.

드디어 어느 날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할 수 있는 것은 법공부와 발정념뿐이었다. 남편은 나보고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는 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약을 사왔지만 난 건드리지도 않았다.

이 착한 남편은 조급했다! 그는 하루 사이에 내 친척과 친구 집을 찾아가 그녀들에게 어이없이 나를 ‘고발’했다.

순식간에 우리 가정에서 스스로 나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왔다. 어머니, 형제와 자매, 절친도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가족들의 ‘간곡하게 충고’에 대해 웃어 넘겼고 그들이 추천한 유명한 병원과 의사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이런 담담히 대처하는 태도는 남동생을 격노시켰고 그는 나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그는 “누나, 오늘 병원에 가지 않는다면 누나 집 창문으로 뛰어내릴 거야!”라고 했다. 물론 남동생은 정말로 투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기타 힘 있는 젊은이를 지휘해 다짜고짜 억지로 날 휠체어에 앉히고 네 명이 들고 계단으로 내려갔고 하얼빈 의학대학 제2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 데려가자 종합 검사를 했다. 의사는 내 심장, 간, 폐가 다 바다에 빠진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는 “왜 이런 지경이 돼서야 왔나요?”라고 했다. 의사는 나와 남편 몰래 남동생에게 가장 많아야 3개월 밖에 살 수 없으니 돌아가 후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의사는 진단한 결론을 말하면서 모든 관례 검사는 멈추지 않았다. 3일 입원하고 각종 검사를 다했다. 계산해 보니 1만 위안이 들었다. 의사는 동시에 남편에게 “우리는 치료할 수 없으니 돌아가요!”라고 했다. 우리의 돈을 다 써 남동생, 여동생에게 돈을 빌렸더니 누구도 빌려주려 하지 않았고 날 설득해 입원시키려는 그들의 열정이 전부 사라졌다. 나는 입원하는 것을 전혀 동의하지 않고 ‘의사’에게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즉시 집으로 보내줘요!” 이때 나보고 병원에 입원하라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친형제, 친자매, 친한 친구들도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날 집으로 보내는 길에서 남동생과 남편이 대화를 했다. 화제는 대출을 받아 구매한 새집과 대출을 갚는 정황이었다. 이 말이 나오자 정말로 돌 하나가 수많은 물결을 일으켰고 신의 망치로 어리석은 사람을 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가 범했던 원칙적인 잘못이 생각났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낫지 않은 원인이고 찾지 못한 ‘병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즉 내가 주택 대출로 사기를 쳤던 것이다!

그건 2013년이었다. 남편은 쑹베이(松北)구 한 상용주택이 마음에 들었는데 우리 부부는 대출 받을 자격이 없었다. 만약 대출을 받지 않으면 집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포기하려 했지만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졸랐고 한가득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결국 남편의 끊임없는 간곡한 부탁으로 나는 남동생과 올케에게 입을 열었고 우리 대신 대출을 해달라고 했다. 아주 복잡한 절차를 거쳐 드디어 대출을 받아냈고 새집에서 살았다. 나와 남편의 대출금을 갚는 능력은 꽤 강했고 남동생도 거의 이 일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난 틀림없이 사기를 쳤고 암암리에 기만행위를 하는 사기극이었으며 대법제자로서 하지 말았어야 했고 ‘진(眞)’의 법리에 부합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사부님께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승인하고 바로 고치겠다고 했다. 이튿날 법공부 팀에 가서 10여명 수련생 앞에서 자신의 ‘흉터’를 보여줬다. 수련생들은 날 도와 뿌리를 파고 잘못을 저지른 근원인 이기심을 찾아냈다.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이기적인 마음이고 향락을 누리려는 사리사욕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었다. 내가 잘못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 실상이고 ‘병’은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다. 앞당겨 대출금을 갚을 타당한 계획을 짰다. 남편도 이렇게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승인하고 많이 일하고 돈을 많이 벌어 대출금을 빨리 갚겠다고 했다.

이 일의 실마리를 깨끗이 정리한 후 마음속의 그런 어렴풋한 압력이 사라졌다. 사상의 압력이 없어졌으나 신체의 병세는 변화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심해진 것 같고 온몸의 아픔은 멈추지도 감소되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침대 모서리를 바꿔가며 뒤척거렸다. 잠이 오지 않았고 전혀 졸리지 않았으며 아팠다! 괴로웠다! 무슨 자세도 편안하지 않았다!

내 몸에서 발생한 고통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쁜 것에서부터 좋은 것으로 변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아플 때 ‘홍음’을 외우고 경문을 외웠다. 법을 외우기만 하면 고통이 작아지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고 날도 짧아지고 밤도 길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주 빈번하게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큰 풍선 같은 배가 하루하루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에 나쁜 소식이 연달아 전해왔다. 내가 잘 아는 두 수련생이 나와 같은 병에 걸렸는데 한 달 사이에 차례차례 사망했다. 이 둘의 병세는 나보다 가벼웠고 내가 ‘중병’에 걸린 기간에 보러 오기도 했다. 수련생들은 그녀들의 장례식에 참가한 후 모두 날 보러왔다. 진심으로 날 격려했고 도와서 발정념하고 구세력의 박해를 해체했다. 수련생들은 내가 그녀 둘을 따라가고 대법의 명예를 다시 한 번 모욕하는 것을 진심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수련생은 내게 무슨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들이 어느 방면에서 잘 하지 못했고 아주 강한 집착과 관념을 개변하지 않았을 것이고 명리정을 내려놓을 수 없는데 관건은 신사신법에서 격차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자신을 사부님께 맡겼다. 무슨 결과든 다 받아들이고 흥분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겠다고. 대법제자의 몸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건 당신 자신의 수련상태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내 몸무게가 90kg까지 감량되자 편안해졌다. 그리하여 전동차를 몰고 남편의 심한 반대 속에서 삼퇴를 권하고 사람을 구하는 홍류에 합류했다. 그날부터 매일 10명, 8명씩 탈퇴시켰고 몸무게도 평온하게 감량됐고 자기의 체득을 예로 들어 남에게 설명하니 삼퇴의 효과도 아주 좋아졌다. 어떤 속인은 아주 통쾌하게 삼퇴했을 뿐만 아니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치기도 했다. 한 속인이 내 앞에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쳤을 때 그 격동된 마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아침 시장에 가서 삼퇴를 시키는데 조심하지 못해 한 어르신을 스쳐 넘어뜨렸다. 차에서 내려 그에게 사과하는데 그가 주먹을 휘둘러 날 넘어뜨렸고 얼마나 때렸는지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도 차마 볼 수 없어 어르신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매를 맞아 며칠이나 아팠고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다. 그렇지만 날 때린 어르신을 전혀 원망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을 했다. 특히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에 조금도 영향 받지 않았다. 그날 삼퇴시킨 인원은 상승세를 보였다.

하얼빈에서 가장 이름 있는 병원에 의해 간경화 복수,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나는 지금 이미 3년을 넘겼다. 대법제자로서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조금도 지장주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며칠 전에 한번 자세히 통계해 봤는데 3년간 삼퇴시킨 인원이 다섯 자릿수에 이르렀다. 집도 아주 정연하게 배치했고 집안일을 다 감당했다.

며칠 전에 은사님께서 ‘프랑스법회에 보냄’ 중 “정법의 최후 시각에, 착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하여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잘 완성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내포가 큰 법지(法旨)는 모든 대법제자에게 정진하는 방향을 가르쳐주셨다. 반드시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생명으로 전부의 정력, 체력을 다 세 가지 일을 하는데 몰두하고 자신의 사전 소원을 실행하며 사부님의 노고가 적게 해드리겠다.

원문발표: 2017년 9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정념으로 박해를 선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8/3534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