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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늘 제자 곁에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 중국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당신이 하늘 끝 땅 끝에 있더라도 신은 모두 당신을 주목하고 사부의 법신도 당신을 주목한다.”[1] 라고 말씀하셨다.

수련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간상으로 보면 자신도 노수련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둔하고 오성이 차하여 아직도 항상 ‘사부님께서 바로 곁에서 제자를 보살피고 계신다.’를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신사신법에서 아직도 부족하다는 뜻이고, 늘 자신을 채찍질하여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을 해내지 못함을 초래했다. 수련생이 선의로 도와주고 일깨워주어서야 이 방면에서 좀 깨달음이 있었다. 수련에서 항상 한 층차에서 배회하며 제고하지 못하고도 자신이 알지 못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집착에 의해 마음의 지혜가 감추어진 것으로 ‘집착’이 있고 ‘미혹’ 되어 잘못을 고집하는데, 대법제자가 내재적인 심태에서부터 외재적인 풍모까지 속인과 무슨 차이가 없다면 이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의 제고와 법을 실증하는 효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행복감(幸福感). 오직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늘 충실, 행복을 느낄 것인데, 사존님의 가없이 넓고 크신 홍은(洪恩)에 푹 빠져 마음에는 희망, 명확한 방향이 있게 되고, 고생을 낙으로 삼고 양광이 비추며 낙관적이 되고,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적막과 고독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속인의 막막함, 말로 표현 못할 번뇌가 있을 리 없고 삶이 모호하지 않을 것이다.

사명감(使命感). 늘 사부님께서 신변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관심 하에 대법제자가 조사정법 하는 신성한 사명을 이행할 수 있을 것이고, 감히 해이하지 못할 경외심, 긴박감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많이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곧 지나갈 만고기연 이 순간을 붙잡아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많이 구하며 사명을 실행할 것이다.

자율성(自律性). 자신의 조건이 제한되어 사부님의 법신께서 정말 신변에 계시는 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않아서는 안 된다. 이 역시 오성 문제다! 주존께서 만약 여기에 계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해 보라. 엄정하게 자신을 단속(自律)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속인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 늘 자신의 일념일행을 감시하는 것을 습관화하고 법에서 수련해낸 정념이 주인 노릇을 하도록 하고, 언제나 형성된 관념이 앞 다투어 ‘앞지르려는 것’을 억제해야 한다. ‘관념이 멸하면 정념이 생기고, 정념이 생기면 관념이 멸하는’ 양성순환의 자동적인 기제를 형성해야 한다. “사람은 세속 중에 있지만, 생각은 그 밖에 있는 사람으로서”[2]의 명실상부한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

안을 향해 수련(向內修). 사부님께서 떠나시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시며 신변에서 제자를 보살피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며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제자의 본분이다. 일상생활 중에서 만나는 사람과 일이 모두 당시의 수련상태와 관련이 있는 사부님의 점화일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으면 이성적으로 자신의 수련상태를 조정하고 수련의 길에서 그릇되지 않을 것이다. 법을 통해 수련인의 인생은 새롭게 개변된 것임을 명백히 알고 있는 바, 우연한 일은 없다.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의 수련 제고를 위해 안배하신 것이다. 정말로 시시각각 안을 향해 찾고 일이 생겼을 때 안을 향해 찾을 수 있다면, 쟁투, 질투, 원한, 색욕, 명리정, 수구하지 않는 등등 집착심이 여전히 존재할 공간이 있겠는가? 무조건 안을 향해 찾는 것은 바로 사부님(법신)의 고심한 배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인 바, 제자로 하여금 숨겨진 집착심을 찾고 또 집착심은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분명히 가릴 수 있게 하시고, 바로 진아(眞我)와 떼어 버리고 폭로 되게 하시는 것인데, 그러면 법의 기제가 곧 작용을 일으키고, ‘쩐· 싼· 런(眞· 善· 忍)’ 불법의 빛이 비추어 그것은 곧 점점 없어진다.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집착심을 자신으로 여기고 덮어 두고 놓지 않으면 사부님께서도 도와주실 수 없다.

정념을 보탬(添正念).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제자의 신변에서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 반드시 습관적인 잡념 교란을 버리고 정념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제자의 정념 상태 유지는 마땅히 업무, 생활, 대인관계 곳곳에 관통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간에서도 마땅히 전천후여야 한다. 잘한 수련생은 꿈에서도 자신이 사부님의 제자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정념을 지키지 않던가? 법공부를 할 때, 경사경법하고 경건함에 무게가 있으면 글자마다 마음에 들어오고 졸음기를 깨끗이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법이 펼쳐 보이는 내포를 깨달을 수 있다. 발정념 할 때는 염력을 집중함이 강대해지고 신체는 에너지에 둘러싸이며 공능을 내보내어 사악을 제거하는 미묘함을 느끼며, 곧 손자세가 변형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사악멸(邪惡滅). 사부님께서 주재하시며 제자를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때 더욱 중요하다. 정념을 증강시키고 용기, 지혜, 구세력의 교란을 부정하는 능력이 생겨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커진다. 예를 들면, 위험에 부딪칠 때, 구세력, 흑수, 난귀, 공산사령이 진상을 잘 모르는 세인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려고 꾀할 수 있는데, 대법제자로서 내심으로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정념으로 부정하며 사악의 사유에 따라 생각하지 않고 건곤을 주관하시는 사존께서 제자에게 씌우개를 주셨다는 것을 알면, 사악은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고 박해는 곧 이뤄질 수 없다. 사악이 사람을 조종하여 흉악한 짓을 할 때, 원망하는 마음 등 사람 마음이 생기지 않고 사부님께서 신변에서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견정하게 믿고, 변함없이 자비롭게 사람(흉악한 짓을 한 사람을 포함)을 구하는 정념을 유지하면, 사악도 사악한 짓을 할 수 없다.

사람 구하기의 순조로움(救人順). 이상의 인식을 구비하면, 역시 상응한 법의 역량 즉, 사부님의 가지를 구비할 텐데, 실제적으로 중생을 구도할 때 효과가 뚜렷하게 좋고, 수련생이 박해당하는 일도 뚜렷이 적어진다. 이러한 예는 일일이 다 들 수 없는데, 이곳에도 있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안전하고 확실하다고 여기는 정황 하에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표어를 붙이고 족자를 걸다가 오히려 불법적으로 납치를 당했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업무시간에 정정당당하게 공문을 들고 당정 기관, 공검법 주요 부서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관련 자료를 보내는데, 자유자재로 들락날락 한다. 행동거지가 소탈하고 신분에 걸 맞는, 그 장소에 손색이 없는 업무 인원이다. 물론,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예를 들어 수련생을 긴급구조 하는 등)을 겨냥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혜롭게 합당한 형식(예, 제소서, 상소서, 청구권회복 등)을 사용했고, 진상을 알기 어려운 현지 주류사회의 봉쇄된 문을 밀어 열었다. 심태가 다르면, 결과도 판이하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신변에서 제자를 보살펴주신다는 것을 견정하게 믿으면, 정말로 착실히 수련하고 제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교란을 깨끗이 제거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며, 더욱 더 조사정법하고 서약을 실현하고 사명을 완성하자. 사존께 머리 숙여 절을 올리고, 수련생들께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각지설법5-2005년 맨해튼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 2017년 9월 6일
문장분류 :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6/3534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