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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병의 관념을 제거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틀 전에 이런 일 하나를 겪었다. 그날 점심에 객실 소파에서 잠깐 잤고 딱 20분이었다. 날씨가 더워 상의를 벗고 누워있었고 선풍기를 틀어놓았는데, 갑자기 바람에 배를 쐬이면 감기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담요를 가져와 배에 걸쳐놓았다. 잠깐 자고 일어났을 때 배가 좀 편안하지 않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옷을 입고 출근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후에 배가 갈수록 편안하지 않았고 마지막엔 아프기 시작했으며 갈수록 아파졌다. 한참 아픈 후에야 제 정신이 돌아왔다. 오늘 왜 배가 아프지? 어디에 문제 생겼을까?

안을 향해 찾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오늘 점심부터 요즘까지의 전반 과정을 돌이켜보다가 어릴적부터 알았던 생리적인 현상 혹은 의학 ‘상식’이 배를 덮고 자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고 배가 아플 것이라고 내게 알려준 것임을 발견했다. 이 ‘상식’은 하나의 관념이 아닌가? 수련인인데 어찌 ‘감기에 걸린다’란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나는 단번에 깨달았고, 곧 발정념 해 이 어릴적부터 형성된, 몇 십 년 보유한 병의 관념을 정념으로 제거하고 해체했으며, 배가 아픈 배후의 사악을 해체했다. 그러자 배가 바로 아프지 않게 됐다. 그 효과는 정말로 ‘장대를 세우면 그림자를 볼 수 있다’로 표현할 수 있다.

후에 이 일을 수련생에게 들려줬다. 수련생은 “배가 아픈 것은 바로 그 관념이 초래한 마난이에요.”라고 했다. 그날 매우 감개했다. 비록 20년 수련했지만 주의하지 않을 때 속인의 병의 관념들은 여전히 시시각각 우리에게 번거로움과 마난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 사상속에 이런 비슷한 관념들, 일생 중에서 각종 상태와 환경 중 형성된 경험과 방법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속인 중에서 얻은 각종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지식과 속인의 상식, 일반적인 이치가 바로 하나하나의 관념으로 형성됐고, 그것들은 우리의 두뇌와 사상 속에 용해되어 있는데, 우리가 상처를 받지 않고 신체가 건강하도록 보호하는 등등은 그렇게도 ‘자연’스러워 그것은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관념들은 우리의 수련을 방해하고 우리의 언행을 통제하고 우리가 정진하는 길을 막고 우리가 안을 향해 찾고 사람에게서 걸어나오는 것을 막고 있으며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마난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자신과 주변 수련생을 돌아켜봤다. 우리 모든 사람은 다소 각종 크고 작은 병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려서는 안 된다, 언제 무엇을 먹으면 안 된다, 뭘 먹으면 어디에 좋다, 어디가 아프면 무슨 병이다, 무슨 그래프 수치가 얼마면 무슨 병에 걸릴 수 있다, 혈압이 낮으면 무슨 증상이 쉽게 나타난다, 혈당이 얼마면 어떻게 될 것이다는 등등이다.

평생 장기적으로 양성된 병의 관념을 중시하지 않았고 질질 끌며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수련생들이 장기적으로 병업상태에 처해 있게 했고 병의 증상이 다르다는 것을 봤다. 어떤 수련생은 몰래 몇 번이나 입원했고 어떤 노년 수련생은 장기적으로 몰래 건강보조식품을 먹었고 집에 약도 가득 숨겨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입원하고 약을 먹었다고 해서 수련할 수 없고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절대 수련생에 대해 무슨 좋지 않은 생각이 없다. 수련은 쉽지 않고 모든 수련인에게 다 자신이 잘 넘기지 못하는 고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반적으로 어린 수련생은 전자게임에 쉽게 유혹받고 젊은 수련생은 쉽게 명리에 방해되고 색욕에 영향을 받는 등이다.

상대적으로 병의 관념의 영향 하에 일부 노년 수련생들의 표현이 좀 돌출할 뿐이다. 이 방면에서 한번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방면의 관념을 되도록 빨리 분별하고 제거하길 바라며 수련생이 병업의 마난에서 걸어나오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첫째, 우리 수련인은 지금 우리 몸에 표현되는 ‘병’의 가상을 투절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몇 년 전에 한 수련생에게서 들었는데 병업상태에 처해있는 한 노년 수련생에게 “그것을 승인하지 말아요. 그것은 가상(병통상태)이에요.”라고 말했는데 이 노년 수련생은 듣고 “가상?! 이런 아픔이 가상이라고요?!”라고 했다고 했다.

당시 나도 이 문제를 대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 증상들, 아픔의 표현이 ‘아주 확실’한데 우리가 어찌 그것이 가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틀 전 내 몸에서 발생한 일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똑똑하게 인식하게 됐다. 속인은 배에 이불을 덮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고 배가 아프거나 상응한 여러 가지 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러면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심지어 입원해야 한다. 마지막에 이 업(業) 덩어리를 갚으면 병이 낫거나 시간이 지나서야 나을 수 있기 때문에 속인은 확실하게 병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속인과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심지어 ‘원인’도 같지만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전변해야 할 관념이 있고 제거해야 할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그런 표현은 심성을 제고하는 데 쓰는 것이다. 설령 사악이 와서 방해하고 교란했을지언정 우리의 심성에 누락이 있어 그것이 교란을 성공시킨 것이 아닌가. 우리가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고 관념을 전변하고 정념으로 대하기만 하면 그런 증상과 표현은 바로 사라질 것이며 흔히 1초 사이의 일이다. 이때 누가 그것을 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현대 의학과 과학으로 이런 현상을 해석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것의 표현, 상태, 느낌, 체득이 속인 병의 증상과 똑같을 뿐이다.

밍후이왕의 수련생 교류 문장 중에 이런 실례가 대량적으로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수련생이 박해당해 소굴에서 관례대로 신체검사를 할 때 병의 가상을 만들어 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하면 혈압을 재면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로 계측기가 터질 정도로 높게 되는 것이다. 속인은 이런 상황이 있는 사람을 수시로 생명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감히 수감하겠는가? 당연히 소굴에서는 수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수련생은 전혀 고혈압이 없다. 또 어떤 수련생은 소굴에서 박해당해 불치병에 걸린 것 같고 곧 죽으려는 모습이고 호흡도 썩은 시체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소굴에서는 놀라서 바로 사람을 석방하지만 수련생은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이면 정상을 회복한다.

그러므로 이때 수련인 몸에 발생한 ‘병’의 상태가 바로 가상이 아닌가? 이 방면에 대해 청성한 인식이 있는 수련인에 대해서 그것은 바로 가상이나, 이 시각 아직 병의 관념을 전변하지 않은 수련생에 대해서는 가상이라고 말하면 그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시각 그런 괴로움, 고통의 느낌은 확실히 아주 실감이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수련인이 자신을 수련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없고(사부님께서 ‘전법륜’ 중 이 방면에서의 법을 많이 말씀하셨다), 언제나 이 문제상에서 자신을 속인이라고 생각하고 툭하면 이런 상태들이 병(사실 공이 자랄 때 몸이 괴롭고 아프거나 편안하지 않을 수도 있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때 장기적으로 형성된 병의 관념은 이런 증상, 아픔을 의학지식으로 무슨 병 무슨 병과 ‘관련’시키고 수련생의 머리에 반영하면 수련생은 그것이 무슨 병이라고 생각한다. 속인이 이런 병에 걸리면 바로 이런 증상이고 이런 고통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흔히 이럴 때 몸이 아플 뿐만 아니라 반영이 있고 짜증나고 당황한다. 보통 단지 신체에만 아픔이 있거나 괴로운 느낌이 있게 하지는 않는데, 근육만 힘들면 쉽게 지나갈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마음이 괴로움을 겪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층차를 제고하는 관건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수련생의 의학지식은 아주 풍부하다. 의사가 아니지만 수련하기 전에 병이 많고 오랜 시간동안 아팠기 때문에 오랫동안 병을 앓다보니 ‘의사’가 됐기 때문이다. 몸이 편안하지 않거나 어디가 아프면 ‘자연적으로’ 무슨 병과 연관시킨다. 이때 심성상에서 원인을 찾기 힘들고 속인의 의학지식에서 ‘병의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한다’. 병의 관념이 심해 병이라고 걱정할수록 사악이 더욱 틈을 타고 더욱 병같이 보인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수록 방해가 더욱 많은 것이다. 바로 속인 친척, 가족 혹은 직장에서 신체검사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흔히 신체검사를 하기만 하면 정말로 당신이 상상했고 걱정했던 그런 병이 있고 병원에서 검사결과, 진단서, ‘확실한’ 지표, 데이터는 더욱 수련생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또 어떤 수련생들은 어디가 아프고 괴롭고 편안하지 않으면 아주 쉽게 함부로 수련하지 않은 친척, 가족에게 알려준다. 속인이 이때 수련생보고 법공부를 잘하고 신사신법하고 안을 향해 찾고 정념으로 방해를 제거하라고 하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없다! 존중하고 관심갖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들은 그들의 각도에서 수련생보고 약을 먹거나 병원에 입원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련생은 또 그럴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 속인이 이해하지 않고 가정의 모순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터무니없이 자신에게 많은 불필요한 방해와 마난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다시 말하자면 신체 어디가 아프고 괴롭고 편안하지 않을 때, 법에서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함부로 수련 중의 상태를 속인에게 말하는 것은 수련생이 여전히 그것을 병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속인의 위로, 관심, 도움이 필요한 환자로 생각하는 마음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정말로 안을 향해 찾으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수련인의 몸에 괴로운 상태가 나타났을 때 심성을 제고하기만 하면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길게 지속되거나 갈수록 엄중해진다면 모두 이 문제에서 수련의 개념이 없고 자꾸 자신을 속인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자꾸 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연공인인 당신이 늘 그것을 병이라고 여긴다면 실제로 당신은 구한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병을 구하고 있는데 병이 어찌 오지 않겠는가?

사실 이때 만약 수련의 개념이 있고 안을 향해 찾고 정념으로 대하기만 하면 심성의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마난은 바로 제거될 수 있다. 천변만화의 방해는 바로 사악이 대법제자의 사람의 마음을 향해 온 것이다. 같은 표현이지만 속인은 병이고 수련인은 병이 아니다. 그렇지만 수련인의 병의 관념을 없애지 못하고 이 문제에서 자신을 속인으로 생각한다면 정말로 속인의 병처럼 똑같고 심지어 농담이 진담이 될 수 있다.

수련생이 잘 연마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일부 수련생들을 접촉해 봤는데, 7.20이래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오늘까지 걸어왔고 기타 방면에서 다 잘했고 뭇신들이 봐도 아주 대단했다. 하지만 병의 관념상에서 질질 끌면서 제거하지 못했고, 수련생과 교류할 때도 그것을 부정할 줄도 알지만 마음속으로부터 그 가상들을 자꾸 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매번 구체적인 병업 표현에 부딪히면 돌파하기 아주 어렵고 자꾸 속인의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고 이 방면에서 방해가 좀 크다. 아마 오랫동안 살면서 형성된 병의 관념을 전변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의 하나가 있다. 이 방면에서 방해가 큰 수련생일수록 그것을 정시하고 평소에 발정념할 때 겨냥하여 병의 관념과 그것 배후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향해 발정념해야 한다. 이 관념들은 사실상 역시 물질이다. 진정으로 그것과 뒤의 여러 가지 사악을 제거하고 해체한 후 당신은 꼭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리는 것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수련생이 장기적으로 마난속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장기적인 마난은 사람의 신심을 확실히 크게 타격한다. 사람이 이런 상태 중에 있다면 정말로 쉽지 않은 것이다. 다른 수련생도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수련생이여, 반드시 확고하고 반드시 강해져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에게 사기를 많이 북돋우고 힘을 내고 자신을 속인에게 의지하는 노인과 환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련생은 대법제자고 무량중생의 왕과 주고 수련생 주변의 인연 있는 속인은 아주 많다. 다 수련생의 중생이고 그들은 수련생이 구도하길 바라고 있다. 사실 또한 이렇다. 그들은 수련생에게 구도된 후 수련생 세계의 중생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속인인데 수련생이 그들의 위로와 관심을 받고 싶어할 때 수련생은 이미 자신을 그들보다 낮은 위치에 놓은 것이다. 수련생은 그들의 명백한 일면이 얼마나 실망하는지 아는가. 모든 중생이 다 수련생이 강하길 바라는 것이다.

큰 마난 중에서 안을 향해 찾고 신사신법하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것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일인지 모른다. 이후에 수련생의 무량 대궁의 중생이 영원히 그들의 위대한 왕 혹은 당시 인간세상에서의 이야기를 칭송할 것이다. 그들은 가장 무섭고 가장 부패하고 가장 복잡한 말겁의 인간세상에서 그 중에 미혹된 그들의 왕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어려웠다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생의 용감함, 강경함과 견지때문에 수많은 중생이 멸망될 운명을 피했고, 그들이 대법의 구도를 받아 비할바 없는 영생의 신우주에서 살게 될 기회를 줬다. 그들은 정말로 끝없이 수련생을 우러러 볼 것이고 수련생에게 감사할 것이다.

꼭 강경해야 하고 눈앞의 어려움을 크고 무겁게 봐서는 안된다. 당신의 배후에 당신과 관계되는 무량의 중생이 있으므로 당신은 외롭지 않다. 당신은 수많은 중생의 안위와 미래를 책임지고 있으므로 그들을 많이 생각하면 마난을 이길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증가시킬 수 있다. 사실 더욱 주요한 것은 사부님께서는 줄곧 당신의 곁에 계신다. 어려움에 부딪히면 제일 먼저 사부님을 생각해야 하고 대법을 생각해야 한다. 대법의 위력은 끝이 없고 해낼 수 없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부님과 대법이야말로 당신이 진정하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구세력이 강요한 그 모든 것을 승인하지 않고 정념으로 천년이래 우리 뼛속까지 형성된 내려놓을 수 없는 관념과 여러 가지 사람의 이치를 제거해야 한다. 진정으로 해내어야 만이 정념이 강해지고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할 수 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7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1/353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