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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는 것’은 정말로 보배다

글/ 산둥성 라이저우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7년 정월 초삼일 저녁 자주 접촉하지 않던 A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는, 남편이 집에 잘 들어오지 않은 지 1년이고 이혼하자는 말을 세 번이나 했으며 이번 설엔 아예 집에 오지 않았다면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밥도 먹기 싫고 법학습도 하기 싫고 연공도 하기 싫은데 우리 집에 와서 한동안 법 공부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안 된다고 했다.

A는 아주 고통스러워보였다. 안색이 누렇고 몸이 수척했으며 주의식도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 교류했다. 연공인에게 이혼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근본적으로 자신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문제가 나타나면 제때 안으로 찾고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에 빚어진 결과가 어떻다는 등이었다. 그때 교류하니 A는 겉보기엔 좀 깨달은 것 같았다.

이튿날 그녀는 또 흐리멍덩해졌고 전부 사람의 사유였다. 사나흘 연속 낮이고 밤이고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줄곧 흐리멍덩한 상태였다. 나는 좀 귀찮았다. 내가 귀찮아하자 딸은 “그 분 왜 계속 와요?”라고 하고 남편도 “또 왔어?”라고 물었다. 그때 나는 안으로 찾지 않았다. 귀찮은 마음이 두 사람의 반감을 불러일으킨 것이고, 교란이라고 여겼다. A가 또 왔을 때 나는 “내일부터는 오전에 진상 알리러 나가고 오후엔 자료를 만들고 법 공부를 해야 해서 동수님과 법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하루 건너 A는 또 와서 앉더니 말했다. “어제 이혼했어요. 그들은 내가 이혼하지 않으면 나도 지쳐 죽을 거랬어요.” 나는 “이혼했으면 마음을 내려놓고 잘 수련하세요.”라고 했다. 그녀는 “그래도 내려놓지 못하겠어요. 후회막심해요. 이혼 수속을 하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아 글씨를 쓸 수가 없어서 남편이 대신 서명했어요. 이혼 수속을 진행한 사람은 글씨체가 같은 걸 보고 누가 서명한 거냐고 물었어요. 남편은 자기가 사인했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녀는 남편에게 나가라고 하고 저더러 ‘이혼하겠습니까?’라고 묻더군요. 저는 하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이혼했어요.” 주이스가 없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를 질책했다. A는 한 강의를 다 공부하고 갔다.

이튿날 오후 1시 되기 전 A가 또 문을 두드렸다. 그때 며느리와 손녀가 우리 집에 있었다. 나는 A가 문을 들어서기 전에 말했다. “우리 집이 지금 이렇거든요.” 뜻인즉 이제 그만 오라는 거였다. A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A가 낯빛이 창백하고 풀이 죽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말랐는데 지금 보니 뼈만 남은 것 같았고 두 귀가 뒤로 붙어있었다. 누워있는데 죽은 사람 같았고 감당 능력이 극에 달했다. A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소리로 애걸하듯 “10분만 누워있을게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겁이 났다. ‘이렇게 무서운 몰골로 일부러 우리 집에 와서 10분 누워있겠다니 무슨 뜻이지?’라고 생각했다. 아무생각 없이 “누우세요”라고 했다. A는 눕더니 “살기 싫어요. 그만 살고 싶어요.”라고 했다. 나는 즉시 제지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돼요. 그것을 부정하세요.” 그런데 A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이건 자신이 아니에요.”라고 하자 A는 따라서 말했다. “이건 내가 아니다.” 나는 “이런 좋지 않은 생각을 꼭 배제해야 돼요. 이건 사악이 동수님을 이용해 대법에 먹칠하게 하는 것이란 걸 알아야죠. 속임수에 걸려들면 안돼요. 꼭 정신 차리세요.”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아들에게 전화하더니 갔다.

그녀가 간 후 나는 오후 내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조급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사악이 A의 육신을 앗아갈까 봐 조급했고 내 책임이 너무 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A가 4~5일을 찾아왔는데 나는 뭘 한 건가? 그저 A를 개변시켜 서둘러 목적에 도달하려 하고 전 과정에서 줄곧 A가 안으로 찾게 돕는다고 했지 나 자신을 찾지 않았다. 또 명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 그녀가 빨리 괜찮아지면 내가 한 것도 헛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조용히 지내고도 싶어 A가 바뀌지 않자 구실을 대서 밖으로 밀었다. 그의 일을 내 일로 여기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 법에 책임지지 않는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한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것은 단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중생을 망치는 일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부끄러웠고 책임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수련생이 나를 찾아온 것은 절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사부님이 배치하신 것일 수 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사람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이 일을 이용해 나의 심성을 닦게 한 것인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사악이 잔인한 수단으로 수련생을 끌어가려 하는데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저녁에 사부님 법상 앞에 앉는데 4글자가 떠올랐다. 젠쓰부쥬(見死不救, 죽어 가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다.) 놀랐다. 내가 바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는 게 아닌가? 4, 5일이란 시간에 사악이 수련생을 이 모양으로 박해했는데 나의 잘난 체한 마음이 어느 정도였나 말이다. 사부님께 빌 줄 모르고 줄곧 그녀를 밀어내면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았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송구스러웠다.

나는 부끄러워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사부님께 빌었다. “사부님 그녀를 빨리 구해주십시오. 제자가 사부님께 빕니다. 제자는 무능합니다. 사부님만이 그녀를 구하실 수 있습니다. 제자는 사부님께 죄송합니다. 사부님께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일의 엄중성을 인식하고 급히 두 수련생에게 전화해 우리 집에 오라고 했다. 두 수련생이 재빨리 도착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말하고 수련생이 그녀를 도와주기 바랐다. 그들도 동의했다. “그녀를 오라고 하죠.” 나는 얼른 A에게 전화해 우리 집에 오라고 했다. 그녀는 “오늘 저녁엔 안 갈래요.”라고 했다. 이 일이 다른 사람과 관계없이 바로 내 일이라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됐다.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셔서 이 일에서 나를 수련하라고 안배하신 것인데 내가 사부님을 실망시킨 것이다.

두 수련생이 간 후 나는 또 더욱 안으로 찾았다. 10여 년 수련의 길에서 나는 사람마음을 얼마나 닦아버렸는가? 일은 적지 않게 했지만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 법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입으로만 했을 뿐 문제에 부딪히거나 한 가지 일을 할 때 내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내가 손해볼까 봐 두려워했다.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은 에둘러 가고 교활한 심리로 수련의 길에서 부딪힌 일을 대했다. 어떤 땐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면서도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일을 다 하고 나면 과정에서 내가 대단했다고 여기거나 아주 만족할만한 언행이나 상황으로 허영심을 만족시켰는데, 그걸 찾아내면 어떤 때는 며칠 동안 돌이켜보거나 그것을 향수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나를 아주 잘 포장했다. 잘난 체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생과 토론 연구할 때면 내가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만 했지 나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 뿐 사실 모두 수련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다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내가 아주 강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감히 나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2008년의 일이다. 우리 시 협조인 수련생이 구치소에 갇혔는데, 개정 전날 저녁 나를 포함한 수련생 3명이 법정 부근에 가 진상 스티커를 붙었다. 길 맞은편에 한 사람이 전화거는 것이 보였다. 미행하는 사람 같아 나는 그녀들에게 말했다. “조심해야겠어요. 길 맞은편에 전화거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봤어요.” 그녀들은 모두 “아무 일 없을 거에요.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계속 공원 담벼락을 따라가며 붙였다. 갑수련생이 붙이고 있을 때 공원 입구에서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그들에게 말했는데 갑은 듣지 못했다. 그때 나는 두려운 마음이 생겨 옆에 있는 을수련생을 끌고 석가산에서 공원으로 넘어갔다. 나는 을에게 말했다. “우리 흩어져 가요. 동수님은 북쪽으로 가세요. 저는 남쪽으로 갈게요.” 을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나는 그를 놔두고 남쪽으로 걸어갔다. 걸을 때 모자를 벗고 머리를 풀고 발걸음을 늦춰 산책하는 것처럼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뒤에서 걸어왔는데 총망히 남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 두 사람이 나를 찾고 있다고 판단하고 몸을 돌려 큰길로 갔다. 큰길에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결국 진상 스티커를 붙이던 갑이 얼마 안 가 사복경찰에게 납치됐다. 다른 한 사복경찰이 말했다. “또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결국 속인 두 사람을 붙잡았는데 붙잡힌 사람들이 화를 내서야 그들을 놓아주었다.

그때 나는 갑이 납치된 줄도 몰랐다. 집에 돌아간 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갑의 집에 가봤더니 갑의 남편이 갑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갑이 붙잡혔다는 것을 알고 얼른 사람을 찾아 물건을 옮겼다. 갑은 6층에 살았는데 소모품도 많아 6명이서 소형차 두 대로 3시간 동안 바삐 움직였다. 그때 나는 아래층으로 나르는 것을 맡고, 3명은 방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포장하고 두 운전기사가 물건을 다른 곳에 운반해갔다. 옮기는 과정에 힘들고 두려웠다. 경찰이 바로 와 집을 수색할 것 같아 기를 쓰고 옮겼더니 조금 감당하기 힘들었다.

갑수련생은 구치소에 납치되어 가 협조인 수련생과 한데 수감됐다. 갑이 나와 을도 납치됐을까봐 걱정하자 협조인 수련생이 말했다. “그 두 사람은 아무 일 없을 겁니다. OO(나를 가리킴)는 아주 영리하거든요.” 협조인 수련생은 내가 정념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속인의 것인 영리함을 말했는데도 나는 나중에 듣고 내심 기뻐하며 나를 칭찬한 거라고 여겼다. 수련 중에 속인의 영리함이 있다는 것은 속인의 교활함이 아닌가? 남도 해치고 나도 해치는 일이다.

2016년 7월 우리 시 협조인 수련생은 한동안 거의 다 박해 받았다. 전체에서 개인 경제와 개인 수련에 이르기까지 모두 손실이 컸다. 나도 협조인 역할을 했는데 리드하는 협조인 수련생의 일부 일하는 방식이 바르지 않은 것을 보고 다른 협조인과 함께 리드하는 협조인을 찾아가 단독으로 토론 연구했다. 해결을 보지 못하자 우리 두 사람은 협조인 역할을 그만두고 내 안전을 지켰다. 얼마 되지 않아 납치가 시작됐는데 우리 두 사람은 다행히 난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1달 후 나는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다 촌 치안주임에게 납치됐다.

그땐 아들딸에 대한 정이 깊어 누락이 나타난 것이라고 여겼는데 지금 깨달았다. 납치된 주요 원인은 대법에 책임지지 않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사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어 깨닫게 하신 것이고 나에게 책임지게 한 것인데 내가 괜찮다고 여기고 제멋대로 한 것이다. 이 잘난 체 한 마음과 사심이 줄곧 수련의 길에서 나를 좌지우지해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했다. 일을 잘못했을 때 많은 부족한 점을 찾아 이기적인 관념을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는 반드시 빨리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이튿날 점심, A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았더니 수련생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고 모습도 변했고 정신이 많이 난 모습이었다. 내가 놀라워서 “나았어요?”라고 묻자 그녀는 “나았어요. 제가 바보죠. 하마터면 목숨을 빼앗길 뻔했어요. 사실 아무 것도 아닌데요.” 나는 감개무량해서 “사부님께서 구해주신 겁니다.”라고 했고 그녀는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의 목숨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사실 사부님께서 동수님의 일을 통해 저를 수련시키신 겁니다.”라고 하며, 전날 저녁 안으로 찾은 과정을 말해줬다. 그녀는 재차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나도 그 속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는 법리를 다시 한 번 체험했다.

이 일이 있은 뒤 나는 정말 내가 많이 승화된 것을 느꼈다. 딸과의 관계에서 나는 뼈를 깎는 듯한 고통 속에 7~8년을 수련했지만 선한 마음을 수련해내지 못했다. 늘 딸이 눈에 차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런 게 없어졌다. 사부님께서 이 선하지 않은 마음을 제거해주셨다. 심적인 압력이 전혀 없었고 진정하게 중생을 책임지는 마음이 나왔다. 진상을 알릴 때도 심혈을 기울여 매일 3퇴한 인원수도 적지 않게 늘어났고 줄곧 안정적이었다. ‘안으로 찾는 것’은 정말 보배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9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5/3518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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