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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은혜에 보답 세 가지 일을 잘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며칠 전 옛 동료를 만났는데 내가 22년 전보다 더 젊어졌고 살도 좀 올랐다고 했다. 그녀는 “언니, 어찌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이 공법은 정말이에요?”라고 했다. “진짜에요.”, “시력은 어때요?” “시력은 괜찮아요. 바느질도 할 수 있어요.” 또 “머리카락은요?” “염색 안 했어요. 뒤에 흰머리가 몇 가닥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여요.”, “언니, 온 얼굴의 검은 주근깨는요?” “연공 후 없어졌어요.”, 또 “파룬궁을 연마해서 그래요?” “네.”, “그때 언니와 계속 연마했다면 저도 이렇게 됐겠죠?” “그렇지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진상을 알리기만 하면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와 진상을 듣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지금 이미 습관이 됐다. 오늘 차에서 한 사람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그에게 연세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72세라고 했다. 그는 내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제가 나이가 더 많네요. 81세가 됐어요.”라고 했다. 나의 목소리는 비교적 작았지만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다 듣고 “이 어르신이 81세래요.”라고 말하며 다가왔다. 특히 젊은 사람은 “매일 뭘 드세요? 어떻게 보양한 것이에요?”라고 물었다. “듣고 싶어요?” “예. 듣고 싶어요.”, “여러분이 듣고 싶어서 저보고 말하라고 한 것이에요. 정말 듣고 싶다면 알려줄게요.” “모두 듣고 싶어해요. 곧 정거장이에요, 빨리 말해요.”

그래서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으며 반드시 진심으로 읽어야 한다고 알려줬다. “제가 곧 죽으려고 할 때 이 몇 글자만 읽어 나은 것이에요. 화장도 안 했어요. 원래 입술이 자주색이었는데 지금은 불그스레해요.” 버스 안의 사람들은 “정말이에요. 그럼 우리도 읽을게요.”라고 했다. 가져온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고 다른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인터넷 봉쇄돌파 소프트웨어를 그들에게 주면서 “가져가 이것으로 인터넷에 접촉해 봐요.”라고 했다. 그들은 모두 달라고 했고 연속 감사하다고 했다.

1. 이전의 나, 세 번 죽음 임박 1년 내내 입원

수련 전 3번 죽음에 임박했다. 첫 번째는 항일전쟁시기인데 어머니가 날 안고 기차를 타고 지난(濟南)으로 피난가는 길이었다. 당시 태어난지 20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차에서 한 사람의 팔에 쿡 찔렸는데 ‘죽었다’. 큰어머니는 내가 죽었다며 어머니보고 버리라고 했으나 아쉬워 버리지 않았다. 지난에 도착한 후 한 여성을 만났는데 자기 아기가 죽어 젖을 먹지 못하니 내게 그녀의 젖을 한 번 먹게 해보라고 했는데 결과 정말로 먹었고 다시 살아났다. 두 번째는 우리 언니가 날 안고 사방치기 놀이를 하다가 떨어뜨려 머리를 완전히 거꾸로 바닥에 박아 그 자리에서 숨이 멎었다. 어머니 집안이 대대로 한의사라 내게 침구하고 안마해 나았고 무슨 후유증도 남기지 않았다. 세 번째는 아몬드를 너무 많이 먹어 중독돼 아버지가 구덩이를 파서 묻으려는데 어머니는 날 죽게 할 수 없다며 살구나무 뿌리를 캐서 달여 먹였다. 나는 마시고 또 살아났다.

9살에 동냥했고 12살부터 출근했고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데 후에 야학을 다녀서야 글자 몇 개를 알았다. 1956년 29살에 딸을 낳고 고열이 나는 바람에 신성고혈압의 후유증이 생겨 늘 병원에 갔다. 1990년대 초, 늘 약을 먹었다. 아침저녁으로는 한약, 낮에는 양약을 먹었다. 마지막에 호르몬을 사용했는데 몰라보게 뚱뚱해졌고 물에서 건져낸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2개월 후 공장에 출근했는데 사람들이 “언니, 낳았어요? 왜 아직 그렇게 뚱뚱해요. 온몸이 다 부었어요.”라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괴로웠고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몸이 좋았다 나빴다 해 출근할 수 없었다. 후에 조금씩 아이가 크자 출근할 수 있게 됐다. 출근한 후 신체가 좀 나아졌다고 해도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야 했다. 아무튼 감기에 걸리지 않으면 신장병이 재발하지 않지만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기만 하면 신장병이 또 재발했다.

1990년대 초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좌심실비대증에 걸렸는데 의사는 장기적인 고혈압으로 인해 심근 비대가 됐다고 했다. 심근허혈이 꽤 심해 심전도할 때 그 침대에 오르는 것도 두려워했다. 의사는 입원하라고 했다. 자꾸 입원하자 직장에서는 싫어했다. 막 입원했을 때는 영수증을 제출해 결산을 받았는데 후에는 영수증 없이 한번에 5,000위안만 줬다. 그렇지만 한번 입원하면 1만 위안씩 써야 했다.

어떤 때 청성하고 어떤 때 청성하지 않았고 차에 앉아 사람을 보기만 하면 울었다. 사람과 말만 하면 먼저 울었고 울고 난 후에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자꾸 울어 어떡하나 생각한 끝에 월 정액권을 사고 첫 정거장에서부터 마지막 정거장까지 왕복으로 탔고 하루종일 차에서 멍하게 있었다. 아이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 밥을 해놓았기 때문에 아이는 내가 비정상인 것을 몰랐고 혼자서 괴로워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감당했다. 이렇게 저녁에 늘 잠이 오지 않았고 매일 2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면 두 다리에 힘에 하나도 없었다.

그때 1년 내내 수없이 입웠했고 많은 병원에 갔었다. 의사도 날 알아봤다. “집에 돌아가 쉬세요. 치료할 방법이 없어요.”라고 했다. 나중에 힘이 하나도 없고 말할 힘도 없어 또 입원했다. 직장에서 결산해주지 않아도 입원해야 했다. 20여일 입원했는데 의사는 더 입원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의사가 우리 아이에게 “어머님께 병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그런데 심장 비대를 치료하자니 신장이 안되고 어머님의 혈당도 높고 정신도 좋지 않은데 어떻게 치료해요? 치료할 수 없어요. 집으로 돌아가요.”라고 했다.

2. 대법을 연마해 다시 태어나다

체념에 빠져 퇴원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불쌍한 내 모습을 보더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나의 사정을 간단하게 그에게 말해줬다. 그는 “저에게 민간요법이 있는데 해볼래요?”라고 물었다. “민간요법이요? 얼마 드는데요?” “돈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몰라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만 읽어요.”, “이 몇 글자면 효과 있어요?” “예, 바로 이 몇 글자가 효과 있는데 진심으로 읽어야 해요.”, “전화번호 남겨줄 수 있어요?” “그럼요. 번호를 드릴게요.”

후에 읽어보니 잠이 드는 것 같았고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전화했다. “저에게 알려준 거 말인데요, 읽었더니 잠 잘 수 있게 됐어요. 신기해요.” 그는 “책도 있어요!”라고 했다. “무슨 책이요?” “전법륜입니다. 언제 갖다 드릴게요.” 그리고 그는 내게 책을 가져다줬다. 책을 읽자 사부님께서 정말 관할 해주시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내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날짜. 1995년 5월 23일!

제4강까지 봤을 때 온몸이 뜨거웠다. 마치 일하고 나서 힘들어 잠자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 후부터 잠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조금씩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 원래 침대에서 내려가지도 못했다. 자신과 아이에게 밥을 데워줄 수 있지만 힘든 일은 여전히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책을 보니 온몸이 편안했다. 그날 밤 12시까지 봤는데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책을 책가방에 넣고 책상위에 놓았는데 책이 조금 빠져나와 있었다. 갑자기 방이 아주 밝아졌는데 해가 떴나 생각했더니 자세히 보니 책에서 빛이 나오고 해가 뜨듯 책의 매 페이지에서 빛이 비쳐나왔고 등을 켜놓은 것 같았다. 며칠 안돼서 사부님을 뵈었다. 사부님께서 등받이의자에 앉아 계셨는데 사부님이 아니신가 생각했다. 방을 환히 비췄고 얼마나 밝아졌는지 말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계셨는데 더 자세히 보려고 하니까 없어졌다. 수련생에게 알려주자 수련생이 “잘 연마해요. 사부님과 연분이 꽤 크시네요.”라고 했다. 그때부터 연마하겠다고 결심했다.

책을 보고 연공했다. 이전에 책이나 신문을 아주 적게 봤다. 지식이 많지 않고 하루종일 일에 바쁘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밥을 차려주고 식구에게 스웨터도 스스로 떠줬기 때문에 책을 볼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기회도 지식도 없었다. 그러나 ‘전법륜’을 내려놓지 않고 매일 봤고 시간만 있으면 봤고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늘 기뻤다. 법을 배운 지 1년도 안 돼 모든 병이 다 나았고 약도 다 버렸다. 원래 입술이 시퍼랬는데 지금은 빨갛다. 오늘 차에서도 누가 내게 립스틱을 발랐냐고 물었다. 나는 바르지 않았다고 닦아보여 주기도 했고 원래 입술이 시퍼렀었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그런데 지금 왜 이렇게 좋아요. 빨리 우리에게 말해줘요.”라고 했다.

이후부터 책을 보고 연공하고 홍법했다. 정말로 은혜를 갚으려고 했다. 그때 보도원이었는데 법공부하고 공법을 가르쳐주는 소조를 조직했고 단체 법공부를 조직했고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 공법을 가르쳐줬다. 그땐 정말로 청년같았다. 단체 법공부할 때 큰 군용 담요를 들고 또 많은 물건을 들고 6층까지 올라갔다. 사람들이 “언니, 계단을 어떻게 올라왔어요?”라고 물으면 “지고 올라왔어요. 괜찮아요. 계단을 뛰어 올라왔어요.”라고 했다.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7월초부터 우리에 대해 녹화했고 우리집까지 녹화해갔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사는지를 알고 있었다. 후에 박해가 시작되자 경찰차가 건물 아래에서 날 기다렸고 7월 20일에는 연공하지 못하게 했다. 집에서 사부님께 향을 피우면서 사부님께 ‘연공하지 못하게 해도 연공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녹음기를 틀어놓고 연공하기 시작했다. 아래에 경찰차가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연공했다. 절대 법을 떠나서는 안된다. 기적이 또 나타났다. 집안 식구가 소리를 좀 낮추라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아무튼 그들도 내가 연공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 죽었다가 대법이 살려낸 것인데 두려울 것이 뭐냐고 했다. 집안 사람들이 창문을 다 닫아 걸었다.

음악소리가 울리자 눈을 감았는데 주변에 많은 사람이 날아온 것을 봤다. 세 개 공간의 사람이 다 연공하고 있는데 제일 안쪽에 있는 것이 우리 여기와 같은 옷차림이고 뒤에는 고대 옷을 입은 신이고 더 뒤에는 파란색 두루마기, 자주색 두루마기를 입고 고대 관직모자를 쓴 신이었다. 정말로 장관이었고 아름다웠다. ‘사부님, 꼭 견지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대엿새 동안 연공하면 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수련을 시작해서부터 구치소, 파출소에서 연공하지 못한 외에, 그리고 2013년 병업 고비를 넘는 외에 수련 23년동안 하루도 연공을 멈춘 적이 없다.

3. 사부님 은혜 갚고 팔방에서 선한 인연 맺어

2003년 이후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땐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달라고 했고 대법은 박해당한 것이고 대법은 병을 고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만 알렸다. 바깥에서 복사하고 글 쓸 줄 아는 사람은 손으로 새기고 글 쓸 줄 모르는 나는 등사판으로 인쇄하고 전단지를 만들었다. 그때 신체가 좋아 자전거를 탔고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외에 나가서 진상자료를 알렸다. 한 가방 진상자료를 들고 나가 문이 열려있는 집에는 문에 꽂아놓았다.

진상자료를 배포하는 과정에도 기적이 있다. 당시 내가 사는 부근에 공군주택단지가 있는데 마당이 아주 컸고 거기에 사는 사람은 모두 군인이다. 그들은 진상을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매번 자전거를 타고 가면 경비원은 내게 문을 열어줬다. 경비원이 내게 묻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직접 들어갔다. 현관은 전부 방범문이 닫혀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부님께 ‘사부님이시여, 오늘 이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려고 해요, 들어가지 못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요청했다. 내 열쇠로 꽂아 넣고 아무리해도 열리지 않았다.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하자 단번에 열렸다. 모두 6층인데 먼저 6층에 올라가 내려오면서 집집마다 배포했다. 한번은 다 배포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안에 갇혔다. 원래 현관문은 안에서도 열쇠로 열어야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걸 어쩌겠냐고 안에 서 있기만 했다. 복도의 불도 켜져 있지 않았고 어디에서 등불을 켜야 할 줄 몰랐다. 당황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 ‘한번 밀어봐라’라는 일념을 넣어주셨다. 그리하여 밀었더니 열렸다. 걱정돼 온몸에 식은땀이 쫙 났다.

2007년에 이르러 친척을 만나러 멀리 신장, 헤이룽장, 허베이, 산시 등 지역을 다 돌아다녔고 친척이 있는 곳이라면 가서 진상을 알렸다. 가져간 진상자료를 다 배포하면 입으로 알렸다. 이후에 마커펜을 사서 어디가나 파룬따파하오, 천멸중공을 썼다. 중국 변방과 러시아 변경까지 써놓았다. 친척의 80%가 탈퇴했다.

마지막에는 고향에 갔다. 고향에 내려간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화대혁명 때 날 괴롭혔던 사람, 우리 집의 밭과 땅을 빼앗아 간 사람을 집으로 초대했다. 밥상을 두 상 차려놓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우리 마을이 작기 때문에 80%정도를 찾아갔다. 여기 아이들은 무엇이 ‘9평’이고 무엇이 삼퇴인지를 몰랐고 어떤 사람은 파룬궁도 몰랐다. 한 사람은 “어찌 그렇게 말을 잘할 수 있죠.”라고 했다. “이 몇 년에 배운 것이에요. 여러분도 빨리 당단대에서 탈퇴하고 평안을 보장해요.”라고 했다. 집집마다 탈퇴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는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가 법을 얻은 이상 이전에 날 잘 대하지 못하고 날 쫓아냈어도 여기는 내 고향이다. 그들은 내가 아주 젊어보인다고 했다. 파룬궁을 연마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줬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은 기본상 다 세상을 떠났다.

‘9평’이 발표된 후 이 몇 년간 모두 대면해서 진상을 알렸고 진상자료도 직접 줬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고 사람을 빼앗아와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두려운 마음도 없다. 수련 이래 많은 혜택을 받았지만 사부님의 홍은(洪恩)에 보답하기 어렵다. 신체가 이 정도로 크게 변했지만 사부님께 보답할 길이 없다. 가정도 이렇게 좋게 변했다. 정말로 천지개벽이다.

지금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린다. 한번은 정거장에서 진상을 알리는데 그는 몸에 많은 금목걸이, 금반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 듣지 않았다. 그는 “몇 호선 기다려요?”라고 했다. 나는 “8호선을 기다려요.”라고 했다. 그도 8호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8호선이 먼저 오지 말고 내가 그에게 진상을 거의 말해준 후에야 오라고 발정념했다. 가지해달라고 사부님께 요청했다. 그랬더니 8호선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분신자살’의 사기극, 4.25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돌이 말할 줄 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을 다 말하고 자신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대법이 혜택을 받은 정황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됐어요?”라고 했다. 나는 “80이에요.”라고 했다. 그는 “80이요? 믿기지 않아요. 승차권을 보여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노령카드를 꺼내 그에게 보여줬다.

당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갑자기 날 잡아당겨 일으켰다. 이 사람이 왜 이러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다른 곳에 가서 말해봅시다.”라고 했다. 나는 “왜 다른 곳으로요? 정말로 당신을 구하기 위한 것이에요.”라고 했다. “TV에서 말한 것과 다르잖아요……” “신문과 TV에서 선전하는 것은 모두 가짜에요. 저는 진짜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가자고 했다. 그에게 악의가 없는 것을 보고 어디 가냐고 물었다. “방송국이요. 거짓말하는 사람보고 천명 80세 되는 사람을 찾아와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비교해 보라고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람을 속인다고 욕했다.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몰려와 날 봤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다 알리자 8번 버스도 왔다. 나는 “형님, 좀 있다 버스에 오르면 목소리를 낮춰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말해준 것이에요. 버스에 무슨 사람이 있는지 몰라요.”라고 했다. 그는 “두렵지 않아요. 따라와요.”라고 했다. 한참 기다린 버스라 사람이 아주 많아 우리는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뒤에 창문 쪽에 앉아있는 몇 명을 보며 “모두들 봐요. 이 사람이 80세가 됐어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얼마나 젊으신가 봐요.”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이어 내가 대법 중 받은 혜택을 말해줬다. “50대 이후 남편이 죽고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됐는데 지금은 하얀 머리카락이 까맣게 됐고 원래 얼굴에 있던 검은 반점, 몸에 있던 검버섯이 지금 다 없어졌어요.”라고 했다.

나는 팔을 내밀어 그들보고 보라고 했다. 그들은 “아, 손이 정말 젊으시네요.”라고 했다. 한 여자는 병보러 가던 길이었는데 날 덥석 잡고 “아이구, 드디어 산신을 봤네요.”라고 했다. 나는 살아있는 신이 아니다고 했다. 그녀는 울면서 “파룬궁이 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해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찾아다녔는데 찾지 못했어요. 드디어 만났네요.”라고 했다. 그녀는 진료 기록을 꺼내며 “암에 걸렸어요. 살려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저는 살릴 수 없어요. 사람을 구하시는 것은 오로지 저희 사부님뿐이십니다.”라고 했다. 진상자료는 다 배포했고 호신부 한 장만 남았다. 호신부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가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돌아가 잘 읽어보라고 했다. 그녀는 받고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버스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읽었다. 이 버스에 병보러 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날 차를 타는데 한 노간부를 만났는데 비서도 데리고 있었고 재미있게 말하는 것을 봐서 보통 관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뭘 먹고 자랐어요?”라고 물었다. 내가 “어릴적에 워터우와 장아찌를 먹고 컸어요.” 라고 했더니 그는 “아니죠. 푸강(富强) 밀가루를 먹고 자란 것이죠.”라고 했다. 내 손이 흰 것을 보고 푸강 밀가루를 먹고 자랐다고 한 것이었다. 나는 기회를 빌어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알아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고 장 두꺼비가 당신들을 박해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장쩌민이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했는가, 어떻게 장기를 생체적출하고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를 간단하게 말해줬다. 그는 “제가 한 마디만 묻겠어요. 80됐어요. 정말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정말입니다. 제가 왜 없는 말을 지어내겠어요.”라고 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묻자 차에 있는 절반 사람이 다 날 쳐다봤다. 젊은 사람 몇 명이 가까이 와서 어떻게 보양한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만 읽었어요.”라고 했다. 몇 명 젊은 여자가 핸드폰으로 들고와 “기억 못할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가져온 호신부를 다 배포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중 한 여자가 “아주머니, 의논할 일이 좀 있는데 괜찮은지요? 어떻게 연마했는가를 간단히 말씀하시면 저희가 녹음하고 집으로 돌아가 듣게요’라고 했다. 나는 “돼요. 어떻게 녹음해도 다 괜찮아요. 기억할 수 있으면 돼요.”라고 했다. 여러명이 녹화했다. 그 노간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정말 좋네요. 정말로 좋은 사람이네요. 장 두꺼비가 어떤지 여러분 다 기억해요. 파룬궁은 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해요.”라고 했다.

길에서 진상을 알리다보면 어떤 때 내가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날 찾아오는 것이었다. 어떤 때 나가면 바로 누군가 내게 길을 물어보거나 다른 방식으로 나와 말을 거는 사람이 많다. 거의 매일 나갔다. 사부님께서 하라는 세 가지 일은 절대 대충하지 않는다.

4. 바른 길을 걷고 주불의 구도를 저버리지 말자

책을 베껴쓰는 것을 말하자면, 한 수련생이 “책을 베껴써요.”라고 날 격려했다. 내가 “글자를 쓸 줄 몰라 필을 들기 힘들어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설령 하루에 한 글자를 쓴다고 해도 써야 해요.”라고 했다. 그녀는 “이전에 그렇게 많은 어려움도 겪고 지나왔는데 이 글쓰는 것이 어렵겠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필을 사주고 책을 사줬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야학을 며칠만 다녔기에 2,3학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직접 쓰면 차마 볼 수 없어 글자 하나를 여러 번 연습한 후에야 책에 썼다. 지금 책을 2번 베껴 썼다. 처음 베껴쓸 때 1년 반 걸렸다. 매일 일어나 정리가 끝나면 앉아서 책을 베껴쓰기 시작했다. 매일 한 시간씩 베껴쓰고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돌아와 또 반 강 책을 보면 발정념할 시간이 된다. 아이도 내가 책을 베껴쓰는 것을 지지했다. 그녀는 “책을 베껴쓸 때면 얼굴이 아주 보기좋아요.”라고 했다.

평소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길에서 장애물을 보면 그것을 옮겼고 속으로 이것이 바로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채소를 살 때 고르지 않는다. 이 일로 몇 명이 대법에 들어섰다. 1999년 전에 옥수수를 사는데 1원에 몇 개를 팔았다. 나는 파는 사람보고 몇 개 넣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할머니처럼 고르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고르지 않으면 하나 더 줄게요.”라고 했다. 나는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왜 받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장사하는 사람도 쉽지 않고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므로 다른 사람의 이익을 차지하기 싫다고 했다. 그녀는 어디에서 연공하냐고 물었다. 뒤에 공원에서 연공하는데 연공하고 싶으면 거기로 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야채 장사꾼 몇 명이 거기에 가서 연공했다.

아들은 원래 직위가 낮은 경찰이었는데 차츰 승진해 지금 처장이 됐다. 아들은 공부하기 좋아했고 머리가 총명했다. 지금은 한 중점 대학교의 교수도 겸직하고 있다.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라는 것을 우리 아들도 인정한다. 그는 직장에서 파룬궁을 박해하는 일을 관할하지 않지만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되도록 도와줬다. 평소 아들은 다른 사람이 버린 진상자료를 주우면 내게 갖다줬다.

아들이 2003년 오토바이에 그의 딸을 태우고 가다가 큰 트럭과 부딪혔는데 오토바이가 다 찌그러졌고 부딪혀 사람이 수십 미터 날아갔다. 몰려든 사람이 “큰일이다. 이 두 사람은 죽었을 것이다. 움직이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자 아들이 일어났고 좀 지나 그의 딸도 일어났다. 당시 어린이집에 가져갔던 작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후 먼저 자기의 장난감을 찾았다. 트럭 기사는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약간의 외상을 입었을 뿐이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이다. 돌아온 후 온가족은 사부님께 향을 피웠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집안 식구가 혜택을 받는다.

대법을 수련한지 22년이 됐는데 오늘 연공하다가 울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오로지 세 가지 일을 잘할 수밖에 없다. 나는 파룬따파의 제자다. 어디에 가든 대법제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시시각각 자신을 요구했고 느슨하지 않았다!

문장발표: 2017년8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28/3530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