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어린제자, 굽었던 팔다리가 펴지다

글/ 산시(陝西) 대법제자

[밍후이왕] 내 이름은 양양(陽陽). 2003년 산시성 남부 한중분지(漢中盆地)에서 태어났다. 여긴 기온이 온화하고 사계절이 봄날 같아서 작은 강남(小江南)이라고도 불린다. 유채꽃 피는 계절이면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와 꽃바다를 노닌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정경을 감상하는 것은 내게는 오히려 욕심이었다. 그것은 내가 몸이 건강하지 않아 다른 친구들처럼 뛸 수 없어 엄마 아빠와 함께 놀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파룬궁을 수련하는 고모가 이후에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계속 내 마음에 새겨져있었는데, 고모가 나를 위로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은 정말로 왔다. 2017년 설, 고모는 내가 파룬궁 수련의 길을 걷게 해줬는데 2달도 안 되어 나는 새 삶을 얻게 됐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피부가 물고기 비늘처럼 껍질이 한 층씩 벗겨지는 것이 두피도 예외가 아니었다. 건조하고 마른 피부에 물이 닿으면 그 고통은 참기 어려웠고 목욕할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울었다. 두 손등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손가락도 곧게 펴지 못해 물건을 정상적으로 집지 못하고 도구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또래에 비해 작고 마르고 팔다리가 뻣뻣했으며 근육이 윤기가 없고 활력도 없었다.

3세 때 엄마 아빠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을 알고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시징(西京)병원에서도 별다른 결과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늘 크면 나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다. 그러나 6세 때 손등, 무릎, 발목이 모두 많이 붓기 시작했고 두 발이 변형돼 편평하지 않아서 부드럽게 걷지 못했고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어 통증을 호소했다. 엄마 아빠가 또다시 시징병원에 데려가 검사했는데 ‘다세포비대증’이라며 입원해 추이를 봐야겠다고 했다. 병원에서 수만 위안을 썼지만 호전이 없었다.

나는 겉보기에 다만 다리를 절고 행동이 불편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내가 느끼는 건 타인이 보는 것보다 나쁘고 고통을 참기 힘들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내겐 힘든 일이었다. 쉬는 시간 안에 화장실에 다녀오질 못하니 겁나서 물도 못 마시고, 쪼그리고 앉질 못하니 대변은 좌변기가 있는 집에서만 해결했다. 나는 옷 입기, 학교 가기, 발 씻기 등에 모두 오랜 시간을 들여 혼자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학교에 가는 것은 글을 알려는 정도였고 성적도 그리 좋지 못했다.

2016년 개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다리, 발, 뼈가 갈수록 심하게 변형되고 통증이 심해져 거동이 더 어려워졌다. 어떤 땐 서있기도 너무 힘들었다. 오른쪽 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빛을 보거나 바람이 불기만 하면 눈물이 흘렀으며 한줄기 빛만 볼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했다. 엄마 아빠는 나를 입원 치료시키느라 수만 위안을 썼는데도 진통 작용 밖에는 못 했다. 아빠 혼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일가족 네 명의 생활비를 댔고 남동생은 일주일에 최소 분유 1통을 먹어야 해서 지출이 아주 컸다. 내 몸 상태는 가계에 부담이 됐고 부모님에게 정신적 압력이 됐다.

올해 설에 고모가 왔었다. 고모는 내가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줬다. 엄마가 내 몸 상태에 관해 말하자 고모는 아주 괴로워했고, 내게 함께 파룬궁을 수련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하고 싶다고 했다. 바로 이렇게 해서 나는 고모 댁으로 가서 고모와 함께 법 공부를 시작했다.

3일 만에 ‘전법륜’을 한번 다 읽었고 느낌이 아주 좋았다. 공부를 시작한 첫날 사부님께서는 내 몸을 정화시켜 주셨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관리하신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꿈에서 사부님께서 고해(苦海) 중에 있던 아이를 해안으로 구해주셨다. 그 때부터 나는 19년간 시달린, 누가 나를 쫓아와 죽이려 하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았다.

나는 마치 굶주린 아이처럼 대법 중에서 영양을 섭취했다.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대법을 얻은 기쁨 속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전에 학교에서 옛 시를 배울 때 선생님은 옛날 사람들이 마음이 선량하고 의지가 강했으며 말한 것은 꼭 실행에 옮기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기에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게 옛 사람을 따라 배워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급우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수업이 끝나자 한 친구가 조심하지 않아 다른 친구의 노트를 밟았는데 그 친구가 욕하자 다른 친구도 만만찮게 맞받아쳤고 욕설이 오고갔다. 수업할 때 옛사람처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업이 끝나자 제멋대로 했다. 엄마는 내가 밥을 늦게 먹는다고 나무랐지만 나는 고모가 말한 사부님의 ‘진(眞)ㆍ선(善)ㆍ인(忍)’을 기억하고 울지 않았고 엄마에게 화내지도 않았다. 현재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면서 더 달라졌다.

사부님께서는 “해내어야 수련이로다.”[1]라고 하셨다. 속인은 말한 것을 행동에 옮기지 못할 수 있지만 대법제자는 할 수 있다. 나는 매일 또 ‘사부님의 은혜’, ‘전통문화’ 이야기, ‘삼자경’,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다’ 등을 듣는다. 나는 아기그림이 있는 달력을 좋아하고 사부님께서 ‘홍음’에 실으신 그림을 좋아해 따라 그린다. 사부님께서 한 송이 연꽃을 보여주셔서 나는 그림 그리는 데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고생하면서 연공하여 업력을 제거하려한다. 다리와 발로 제대로 서지 못했었고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었으며 통증을 참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은 쉽게 해내는 일들이 내게는 그렇게 어려웠다. 일분일초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고 눈물이 옷을 적셨지만 나는 그 아픔이 업을 없애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의연히 견지했다. 연공이 끝나면 가볍고 편안했다. 나는 오직 사부님 말씀대로 하면 대법의 신기를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데커우샤오푸(疊扣小腹) 할 때 두 손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배에는 무엇이 돌고 있는 것 같았는데 고모는 파룬이 나의 몸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오후 왼쪽 손등의 볼록 나온 부분에서 열이 나고 아프더니 좀 있다가 냉기가 나왔고 얼마 안 가 부종이 많이 작아진 것을 발견했다. 너무 신기했다! 원래 두 손을 머리까지 올리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조정해주시고 나서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삶에 희망이 넘쳤다. 여태 밖에 나가고 싶어 하지 않던 내가 강가에 나가 놀았다. 음악분수가 하늘로 오르는 다채로운 장면을 찍었고, 고모와 함께 화려한 꽃들을 기분 좋게 감상했다.

사부님께서는 내 몸을 조정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를 열어주셨다. 전에 초등학교에서 아무리 해도 기억 못하던 병음을 지금은 알게 됐고 글자도 반듯하게 쓸 수 있다. ‘홍음’과 ‘홍음3’을 베껴 적고 수련일기를 썼으며 그동안 환골탈태한 과정도 적었다.

현재 나는 매일 삶에 아주 충실하고 시간을 잘 안배해 쓰고 있으며 표준어와 언어표현능력이 모두 향상됐다. 고모는 내가 일하는 속도와 효율도 좋아졌다며 줄곧 격려해주고 있다. 매일 나의 일상생활을 돌봐주고 엄마처럼 내 발을 씻겨준다.

연공 후 얼마 안 돼 나는 얼굴이 생기 넘치고 주근깨도 확실히 옅어졌다. 살도 많이 오르고 다리근육에 탄력이 생겼다. 피부에 윤기가 돌고 몸도 가벼워 계단을 오를 때 그다지 힘들지 않았고 휘었던 팔다리도 펴졌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는 튀어 오르듯 일어나 앞으로 돌진한다. 이런 변화는 나 자신도 생각지 못했다.

사부님 정말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착실한 수련’

원문발표: 2017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정법수련마당>어린이제자마당>어린이 수련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27/3530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