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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화가 협조 작업에 가져온 해악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한 후 중국인은 거의 매일 당문화에 끊임없이 오염, 세뇌당하며 해를 입고 있다. 정법의 최후에 이를수록 당문화가 대법제자의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데 초래한 장애도 갈수록 뚜렷이 표현되고 있다. 특히 협조인이 당문화를 없애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것에 영향줄 뿐만 아니라 정체에 교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1. 투쟁철학으로 인한 쟁투심, 수련생 간에 간격 조성

나는 수련 전에 기업 간부를 오래 해서 수차례에 걸쳐 사악한 당의 소위 이론교육을 받았고 중국공산당 관료사회에서 직접 아귀다툼을 해본 경험이 있다. 특히 성격이 드셌던 나는 중국공산당의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과 싸우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하다’의 사상 영향을 받아, 싸움 뒤에 ‘승리자’로서의 희열을 아주 즐기기 좋아했다.

대법을 수련하고부터 이전에 쌓아온 이 부패 물질과 관념이 따라서 수련환경으로 왔기 때문에 시시각각 쟁투심이 표현돼 나왔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한 가지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사부님 설법의 어느 단락을 어떻게 깨달아야 한다는 등을 가지고 수련생과 얼굴을 붉히며 논쟁했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내게 전화해 “이번에는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예를 들어, 자신이 무슨 물건을 떠나서는 안되는가를 찾아보고 그것을 철저히 청리해 버리고 무슨 물건을 버리기 아깝고 내려놓지 못하면 그것을 처리해 버려요. 이렇게 되면 마음이 조용해질 수 있어요.”라고 했는데, 그녀가 좀 극단적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거기에 대고 “아, 그렇게 깨달으셨군요. 그럼 가르쳐주실래요. 제가 가장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게 공기인데 이 집안에 가득 찼으니, 어떻게 청리해야 하죠?”라고 반문했다. 수련생은 듣고 나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전화를 ‘툭’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속으로 만족스러웠다. 수련생인 아내가 자초지종을 물어보기에 그 수련생이 극단으로 가는 것 같아 몇 마디 해서 풀 죽게(대답이 없게) 만들었다고 했다. 아내 수련생은 “그건 쟁투심이 아닌가요? 그 수련생이 잘못 깨달았다 해도 한번 잘 교류했어야 하지 그렇게 상처주지 말았어야죠.”라고 했다. 아내 수련생이 일깨워주자 꿈에서 막 깬 듯 이것이 쟁투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장(江) 마귀는 중국공산당 사당을 이용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9월 9일, 두 번째로 구치소에 납치당했는데 쟁투심 때문에 구세력이 큰 빈틈을 타게 했다. 어느 날, 공안국 정보지대(政保支隊) 대장이 불법으로 날 심문할 때 날 보자마자 “지금도 (파룬궁) 연마해요 안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얼마나 좋은 대법인데 연마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라고 했다. 그는 계속해서 “여전히 연마한다? 계속 연마하면 당적을 취소하고 간부 자리도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이 당원, 진작에 하기 싫었어요. 간부가 아니라 일반 직원이 될지라도 연마할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그럼 끝인 줄 알아요? 공직에서도 제외시킬 거에요!”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해서 건강이 좋아졌어요. 인력거를 끌어도 먹고 살 수 있으니 변함없이 견지해 수련할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그러면 10년, 8년형을 선고해 교도소로 집어넣어 인력거도 못 끌게 할 겁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래도 난 겁이 안 나요. 한방에 죽이지 못하면 일단 일어나서 계속 연마할 겁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에 그는 화가 치밀어 밖으로 나가면서 “정말 구제불능이군요. 죽은 돼지는 뜨거운 물에 데이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더니.”라고 했다. 당시 자신의 ‘확고한 표현’에 대해 기뻐하기도 했고 그가 내게 겁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쟁투심의 방해로 공검법 공무원들이 진상을 알고 구도되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세력의 사악한 소위 ‘검증’의 배치를 승인했고 10여 년간의 정법 수련 중 정말로 불법 수감, 면직, 급여 정지, 판결 등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어지나오게 됐다.

몇 년 전에는 협조 중 자신이 그래도 비교적 너그럽고 일반적으로 수련생과 무엇을 따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수련생과 싸우는 현상이 나타났고 일부 수련생에게 상처를 줬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날 찾아와 사부님이 점오해주셨다며 진상 전단지 하나를 편집하고 싶다고 했다. 구상을 들어보니 아주 좋아보여 좀 지원했다. 그러나 시안을 만들어 협조인 몇 명에게 보여줬더니 모두 적합하지 않다고 했고 6, 7개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 중 가장 주요한 일부 내용은 둥타이왕(動態網), 따지웬 등 사이트에서 가져온 ‘장후(江胡) 투쟁’과 예언, 주역, 팔괘 관련 문장이었다. 수련생들은 이런 문장은 진상전단지로 배포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세인이 우리가 정치에 관여하고 대재난을 선전한다고 오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수련생을 우리 집으로 불러 교류하며 좀 수정하라고 권하면서 그러지 않으면 계속 하지 말라고 했다. 그 수련생은 뜻밖에도 듣지 않고 몹시 화를 내며 나와 논쟁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분 나쁘게 헤어졌다. 이후 그가 만든 전단지가 밍후이왕에 발표되지 않자 그는 다른 수련생을 찾아가 프린트하고 배포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또 그를 찾아왔는데도 교류가 잘 안 됐다. 마지막에 헤어질 때 그는 “걱정하지 마세요. 90%(수련생)가 당신 말을 듣더라도 최소한 10%(수련생)가 있으니 우린 할 거에요. 내가 사람을 구하는 걸 막을 수 없어요!”라고 했다. 수련생이 격동하고 분개하는 모습을 보고 당시 ‘하겠으면 하라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라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간 후 방금 발생한 일을 한번 더 곰곰히 회상해봤다. 당시 그가 만든 자료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히 내 잘못이 아니었고 이 수련생이 너무 고집 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 정말 참으려 했는데 참지 못했다.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줄 몰랐다. 내가 마음을 닦으려는 것을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법공부할 때 법리를 깨우쳐주셨다. “마음속으로 늘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싸우려고 생각한다면, 내가 말하건대 문제와 마주치기만 하면 당신은 어김없이 남과 맞서 싸울 것인데, 보증코 이러하다.”[1] 쟁투심을 수련해버리지 못해서 이 수련생에 대한 관념에 변화가 없었다는 인식이 들었다. 싸우려는 물질을 닦아 없애지 못했다면 설령 표면적인 이치를 아무리 바르게 말했을지라도 상대방이 느끼는 것은 자비롭고 평화로운 정념의 장이 아니라 투쟁이라는 물질의 장이다. 지금 보면 구세력도 이 핑계로 소위 고험을 진행한 것이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1] 마음속에 은폐된 ‘하려면 하든지’라는 이런 관망, 대립하는 생각도 질투심의 표현이다.

정법수련 과정에서 몇 년 전 우리 이웃 현에서 협조인 간에 갈등이 너무 커서 이 지역 수련생이 날 찾아와 교류했는데, 그들은 한자리에 모이지 않은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둘은 그리로 가 수련생들을 한자리에 앉히고 어떻게 안을 향해 마음을 닦고 정체를 형성할지 교류하는 동시에 협조인 간의 간격이 법을 실증하는 데 초래하는 손실 등에 관한 체득도 교류하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타인을 개변시키려는 마음을 갖고 결과를 추구했고 또 나의 장이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 정체의 장을 바로잡지 못한 것 같다. 현지 수련생과 교류하다 논쟁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한 수련생이 다른 한 수련생을 가리키며 “봐요, ΟΟΟ 지역 수련생(우리를 가리킴)의 수련상태, 어디 수련생 같아요. 앞에서는 듣기 좋은 말, 거짓말 뿐이고 뒤에서는 사람을 골탕 먹이고 한 일은 최하에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협조인은 더욱 만만치 않았다. 그 자리에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결국 화가 나 자리를 뜨더니 문앞에 가서도 “ΟΟΟ야, ΟΟΟ, 수련 잘 해요!”라고 했다. 먼저 말한 협조인도 만만치 않았다. “걱정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당신보단 나으니까!”라고 했다. 전반 장은 불협화음이 심했다.

협조인이 쟁투심을 없애지 못하면 수련생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협조하는 지역의 정체 형성에 영향을 준다. 특히 협조인 간의 싸움은 현지에서 일부분 수련생과 다른 일부분 수련생 간에 간격을 형성할 수 있게 한다. 수련생들이 정체로 정념으로 해야 할 많은 일이 간격 때문에 정념의 장을 잃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이 사악에게 빈틈타게 해 장애가 생기게 한다.

우리 주변 현 몇 개 지역이 바로 이렇다. 협조인 간에 쟁투심을 없애지 못해 함께 앉아 교류하기 어렵게 됐고 각자 사람을 데리고 각자 항목을 하는가하면 서로의 잘못을 찾았다. 함께 앉기만 하면 아주 사소한 일을 갖고도 끊임없이 싸웠다. 마지막에는 협조인의 법공부 환경도 해체시켰고 지금까지 함께 앉아 교류할 수 없게 됐다. 이유는 그들 현지 한 협조인의 말로 하자면 ‘함께 앉아 지지고 볶지 않기 위한 것’이다.

쟁투심이 아주 강한 협조인은 다만 일부분 수련생하고만 협조할 수 있다는 것을 점차 발견하게 됐다. 여기 한 패, 저기 한 패였다. 쟁투심은 서로를 상처받게 하고 자신에게 상처 준 수련생을 다른 한 부류로 여겨 선을 긋고 심지어 대립면으로 몰아세우고 왕따시킨다. 어느 지역의 한 협조인이 구세력에게 병업 형식으로 박해받고 있는데 그와 간격이 있는 협조인은 그를 도와주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수련생이 이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해주는 것도 막고, 심지어 이 수련생의 잘못을 잡고서 그는 대법제자가 아니고 마(魔)라서 지금 응보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협조인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옳고 그름을 막론하고, 당신은 모두 억지로 밀어붙이고,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암암리에 궁지에 몰아넣는데”[2]. 비록 나의 쟁투심과 당문화가 여전히 때때로 표현되지만 다행히도 사부님께서는 매번 일이 발생한 후 되도록 자신을 바로잡도록 여러 방식으로 점오해주셨다. 이 때문에 자신을 착실하게 찾는 외에 여러 번 ‘해체당문화’ 책을 봤다. 사당의 투쟁철학을 많이 닦아서 버릴수록 수련생 간의 상호 이해, 너그러움의 소중함과 수승함, 마음속의 평화와 상서로움 및 정체협조로 나타난 대법의 무한한 법력을 체득할 수 있었다. 또 수련생들이 이 인간세상에서 함께 조사정법하는 성연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2. 일을 크게 벌이고 공을 세우기 좋아하는 마음이 가져온 교훈

현재 내 층차에서의 체득으로는 소위 ‘큰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것은 무슨 일을 하건 실제에 부합되지 않고 ‘높게, 크게, 전체’를 추구하는 것이고, 겉으로 ‘기세 높은’ 형식을 벌이기 좋아하는 것이다. 소위 ‘공을 세우기 좋아한다’는 건 바로 ‘공로’와 ‘성취’가 드러나는 일을 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 방면에서 심각한 교훈이 있었다.

몇 년 전 우리 지역 한 팀이 고출력 스피커를 걸어놓고 정해진 시간에 대법 진상을 방송하는 것을 했다. 수련생이 날 찾아와 더욱 많은 수련생이 협조에 참여하길 희망했다. 수련생의 소개를 듣고 당시 나도 이 방법이 아주 좋고 영향력도 크고 사람을 구하는 힘이 크다고 생각했다. 이어 연속 몇 일 동안 주변 몇 개 지역에서 몇 번 실험했는데 수련생은 매번 흥분할 만한 소식을 갖고 왔다. 어느 시민이 파룬궁의 누명이 벗겨진 줄 알고 뛰어가며 알렸다, 어느 어느 시의 시장에 몇 십명이 모여 진상을 들었다는 등이었다. 강철로 만든 상자 안에 스피커와 정해진 시간에 방송하는 설비를 넣고, 한번 잠그면 열 수 없는 자물쇠로 전봇대나 큰 나무에 잠궈놓는다. 그걸 내리려면 완전히 파괴해야 하고 특수 공구가 없으면 일반 경찰이 와도 속수무책이다. 자동 방송은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이어져, 고출력 스피커가 반복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놔둘 수밖에 없다.

이 항목을 보급하기 위해 협조를 맡은 동수가 교류한 적도 있다. 수련생 간의 교류든 세인의 반응이든 다 좋았고, 안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자 수련생들은 마음이 갈수록 부풀어 올랐다. 칭찬받고 있다는 좋은 기분에 빠져 ‘좋은’ 성과를 감수하고 있을 때 성 공안청은 이미 소위 전문팀을 구성했는데, 이 항목을 하는 수련생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위험이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을 보신 사부님께서는 한번 또 한 번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점화해주셨다. 예를 들어 도중에 차사고가 났다거나, 진상 설비가 높은 데서 떨어져 수련생이 다칠 뻔했다거나, 수련생 지간에 큰 간격이 생긴 것 등인데, 이것이 기타 ‘좋은’ 표면현상에 덮여 다들 소홀히 하고 지나갔다. 이 항목의 몇 명이 잇달아 잠복근무하던 악인에 납치돼서야 문제의 엄중성을 의식하게 됐다. 비로소 안을 향해 자신을 찾기 시작하고 항목에 참여한 수련생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사악이 수련생의 없애지 못한 집착을 이용해 항목 팀 수련생 간에 많은 간격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됐다. 제일 엄중한 것은 두 수련생이 색욕문제에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수련생이 납치된 후 악한 경찰이 불법 심문으로 그들을 아주 심하게 박해했을 때 어떤 수련생은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수련생의 이름을 말했다. 당시 나의 이름도 말했다. 며칠 내에 20여 명이 납치당했는데 당시 전반 지역의 공간장은 사악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아주 침울했다.

수련생이 잇달아 납치되는 것을 보고 한 방면으로는 수련생과 어떻게 사악을 해체할 것인지 교류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부님께 마난을 풀어주십사 요청했다. 사부님께서도 안을 향해 찾을 것과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3]라고 점오해주셨다. 어느 날, 처음에 이 항목을 하자 했던 수련생이 우리집에 찾아왔다. 그녀의 마음이 아주 무거운 것을 보고 우리는 앉아 안을 향해 비교적 깊고 세밀하게 찾았다. 후에 협조인과의 교류 중 나도 자신이 잘못한 근원을 깊게 팠고 과시심, 환희심, ‘큰일을 벌이고 공을 세우기 좋아하는 마음’ 등을 찾아냈다. 당시 수련의 엄숙함, 사람 마음을 없애지 못해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데 초래한 교란에 대해 심심한 경험이 있었다.

정법수련이 오랜 세월을 지나왔지만 중국 각지에 큰일을 벌이고 공을 세우기 좋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협조인은 여전히 있다. 흔히 그 ‘공’을 추구하기 위해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형식상에서 ‘큰일’을 추구한다. 수련생이 다른 의견을 낼 때, 흔히 수련인이 부딪힌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마음을 안정시키고 자신을 찾지않을 뿐더러 수련생이 낸 합리적인 부분을 더욱 받아들이고 채택하지 않고 스스로 옳고 좋다는 식으로 다른 의견을 지닌 수련생을 배척하고 설득해 자기 목적에 도달한다. 특히 일부 지역의 영향력 있는 협조인 중에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어떤 협조인은 온 지역 수련생을 조직해 광범위하게 현수막을 걸었고, 어떤 협조인은 10여 명 수련생을 조직해 단체로 차를 타고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어떤 협조인은 많은 수련생을 모집해 사악한 당의 법원에 들어가 불법 심판을 방청하게 했고, 어떤 협조인은 수련생을 설득해 밖에서 단체 연공하게 했고, 어떤 협조인은 안전 부문 고려도 없이 대형 법회를 열었고, 어떤 협조인은 광범위하게 서명운동을 하는 등이다. 거의 대부분 수련생 사이에서 논쟁을 일으키거나 사악이 광범위하게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박해하는 것을 초래해 법 실증과 사람을 구하는 데 아주 큰 저애를 가져왔다. 조직해서 단체로 일하는 것이 꼭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좋다’는 것만 생각하고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수련생 개인의 실제적 수련상태를 보지 않고 오직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련생에게 호소하고 활동을 조직하면 일부분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하기 싫어하는 수련생도 분위기에 따라 움직여 일하게 되고, 그러면 쉽게 사악에게 빈틈을 타게 한다는 뜻이다.

한번 또 한 번의 비참한 교훈은 사부님께서 거듭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4]의 깊은 내포를 더욱 잘 알게 했다.

큰일을 벌이고 공을 세우기는 좋아하는 마음이 표현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하건 구체적인 일을 하건 우리는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중에 발휘하는 힘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악의 이 일에 대한 관심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힘이 크거나 사악을 두려워 떨게 할 만한 항목을 사악은 가장 두려워할 것이다. 그럼 항목에 참여하는 수련생의 수련상태에 대한 요구도 높아야 한다고 본다. 정체로 협력해 정념의 장을 지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악은 그것이 원하는 데 도달하기 위해 그 항목에 참여한 수련생이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의 마음, 관념과 부족 등을 강화하고 이용해 방해하고 파괴를 진행한다. 그러므로 한 항목을 제안할 때 특히 협조인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효과를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항목을 감당하는 수련생의 상태의 적합 여부, 이 항목에 대한 전체 수련생의 인정과 협력 정도도 고려해야 한다.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안을 향해 착실하게 닦고 제고하는 것을 단단한 기초로 삼고, 일을 한 전후에 제때 교류하고 같지 않은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한다. 자신의 ‘취향’을 위해 추구하며 일을 추진하고 있는지, 다른 의견이 있는 수련생을 설득하려는 바르지 못한 마음과 표현이 있는지 찾아봐야 하고 항목의 발전방향과 진행정도를 잘 장악해야 한다.

3. ‘일언당’ 방식이 더 많은 수련생의 지혜를 억제한다

사당의 일언당(一言堂·한 사람의 말에 모두가 동조하는 것) 방식은 중국 협조인의 교류 중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필자도 이 방면에서 잘못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직장 책임자였기 때문에 언어구사를 일정 수준 이상 하고, 수련에서 자신이 깨달은 법리와 체득을 좀 똑똑히 논술하는 것 때문에 협조인으로서 자산이 되기도 했다. 수련생과 교류하면 늘 다른 사람은 나처럼 잘 말하지 못하고 전면적이지도 못하다고 생각했다. 과장이 입에 배어서, 특히 수련 초기에는 교류 때마다 전세라도 낸 분위기였고 시간이 오래되자 일언당 모드가 조성됐다. 심지어 수련생과 교류할 때 조용한 마음으로 타인의 체득과 건의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자기 깨달음이 인정받지 못하면 배척했다. 특히 2002년에는 더 많은 수련생이 걸어나와 법을 실증하게 할 생각에 현지와 주변 지역을 다니며 곳곳에서 교류회를 열었는데, 하루에 세 차례를 열기도 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교류하는 수련형식이 “좌담회라는 이런 형식으로, 여러분이 서로 연구 토론하고, 서로 담론하며, 서로 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을 요구한다.”[1]라는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면서도, 그 한 동안은 교류회 환경에 들어가기만 하면 무슨 기제에 통제된 것처럼 발언자는 청산유수처럼 말하고,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기타 수련생이 모두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청취자들도 습관이 된 듯, 교류하고 싶은 수련생도 내 발언시간을 차지할까 봐 말하기 주저했다. 그러다 나중에 교류하면 어떤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말을 끊고 빼앗아 내 말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 마음은 끊임없이 팽창해 사악에게 빈틈을 타게 했다. 그래서 납치되고 엄중한 박해를 당하게 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박해를 부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 기간 어떤 형식의 교류에도 참가하기 싫었다. 다만 반면교훈을 받아들였을 뿐, 법리상에서 제고하고 승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처하면 또 따라서 움직였다. 나중에 또 일부 교류가 있으면 될수록 피했다.

마음에 와닿고 날 청성해지게 한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NTD사이트에서 동영상 하나를 다운했는데 사당의 ‘일언당’을 폭로하는 방송이었다. 프로그램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맞건 틀리건 말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은 다른 사람이 반대한다고 진실이 아닌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통해 진실은 진실이고 허위가 허위라는 것을 더 똑똑히 보게 된다. 그때부터 법을 잘 학습하는 바탕에서 이 방면에서 닦는 것을 중시했더니 점차 큰 변화가 생겼다.

이성 상에서 명백하게, 우린 수련생이다. 대법 중 착실하게 수련하면 다 체득이 있을 수 있고, 수련생과 함께 교류할 때 말을 잘하건 어눌하게 하건 대법 수련 중 승화한 후의 체득이면 다 말할 수 있고 모두 정념의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자기 인식을 기준 삼아 타인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청성해지면 많이는 어떤 장소에서건 특히 한 가지 일을 교류할 때 될수록 급히 자기 생각을 표현하려는 집착을 억제하고 겸손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타인의 발언을 듣게 된다. 이렇게 수련생의 교류를 들을 때면 언제나 깨달음이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일을 교류할 때 만약 다른 수련생들이 이미 충분히 전면적으로 말했으면 나는 더 말하지 않았고, 보충할 게 있을 때만 적당히 몇 마디 보충했다.

이전에 만난 협조인 중에도 일언당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함께 교류할 때마다 수련생은 사람이 많건 적건 수련생이 듣고 싶어하건 말건 끊임없이 계속 말했다. 시간이 오래되자 다른 의견을 갈수록 꺼려하고 배척하며 수련생의 다른 견해를 ‘협조 중의 불협조’로 보고 심지어 늘 다른 의견을 제출하는 수련생을 ‘별종’으로 본다. 시간이 오래되면 수련생이 다른 의견과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간격도 갈수록 커진다. 일언당의 가장 큰 문제는 사존께서 대법제자에게 남겨주신 “여러분이 서로 연구 토론하고, 서로 담론하며, 서로 말할 수 있는데”[1]라는 수련형식을 개변했다는 것이다. 일언당은 당사자 수련생의 자아와 기타 수련생의 숭배심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수련생의 지혜를 억제한다. 강연 난법도 여기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말한 것은 다만 당문화의 몇 가지 사례다. 사실 당문화의 영향은 여러 방면에서 체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당의 ‘위대·광명·정확(偉光正)’, 질투,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은 수련인이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을 어느 정도 강화하고 있고 중국 협조인이 각 방면에서 협조하는 일도 방해한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슬퍼하지 말라’[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이성(理性)’

문장발표: 2017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8/21/3528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