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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풍으로 12년간 마비됐는데 파룬궁을 배우고 신기하게 회복

글/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수잉(淑英)

[밍후이왕] 우리 집은 랴오닝성 동부 산간지대의 한 빈곤한 농촌에 위치하고 있고 현소재지와 20리 떨어져 있다. 1985년 3월 6일에 나는 현 병원 산부인과에서 남자아이를 출산했다. 그 아이는 내 첫 아이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기에 남편은 돈을 주고 차를 빌리지 못했고 손수레로 두 시간 밀고서 병원에서부터 집으로 데려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 나는 아무것도 덮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수레에서 내릴 수 없었다. 온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통증이 격렬해 몇 사람이 나를 들어 수레에서 구들에 내려놓았다. 그때 내 다리가 부어서 굵어졌고 누르면 쑥 들어갔으며 느낌이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나는 심한 산후풍에 걸렸던 것이었다. 그 해에 나는 겨우 29살이었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다

그 이후 나는 마비되어 구들에 앉아 있었고 스스로 생활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집안 안팎의 모든 일은 남편 혼자서 감당하는 동시에 내 시중을 들면서 아기를 부양했다.

나는 차례로 현 병원, 선양의과대학병원에 보내졌지만 모두 치료하지 못했다. 각종각양 민간처방도 듣기만 하면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비되어 구들에서 지냈으며 숨은 있어도 기력이 없었고 몹시 초췌했으며 무정한 고통의 시달림을 견뎌내고 있었다. 바람과 추위를 두려워해서 구들에서도 솜옷을 두 개나 껴입고도 추워했다. 치료를 위해 돈은 다 써버렸고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기에 빚이 한 가득이었다. 우리는 집이 없어 세 들어 살았고 또 자주 이사를 했기에 그 생활의 어려움은 생각하면 알 수 있었다.

친척과 친구들도 걱정했고 방법을 생각했다. 어떤 이는 지린(吉林) 바이산(白山) 제약공장에서 산후풍을 치료하는 약을 사왔으며 또 어떤 이는 나에게 기공을 소개해주었으며 책도 사왔다. 수년간 온갖 방법으로 치료했지만 효과가 미미했고 병마는 무정했으며 고통은 여전해 삶은 가망이 없었다.

하루가 일 년 같은 힘든 날들을 보내며 10년이 지났고 나는 더 이상 고통 받기 싫고 더 이상 가정에 연루되기 싫어서 쥐약을 먹고 죽어버리려 했다. 뜻밖에 10살 된 아들이 울면서 “엄마, 죽지마세요, 엄마가 죽으면 나는 엄마가 없게 되고 친구들이 나를 무시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눈물이 왈칵 흘렀고 속으로 아들을 위해 몇 년 더 고통스럽게 보내기로 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다

1997년에 나는 41세였다. 하루는 같은 촌의 두 할머니와 한 부부가 우리 지역에 와서 파룬궁을 배우라고 권했다. 그들이 그렇게 성심성의로 권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며 해보겠다고 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같은 촌의 이웃집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았다. 나는 영상에서 많은 작은 승려들이 가부좌를 하고 방안을 이리 저리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고 온 집안에 파룬이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첫날 법을 듣고 나는 10여 년간 막혔던 코가 뚫렸다. 단번에 아주 가볍고 아주 편안했으며 수년 간 허리를 돌로 누르는 것 같은 느낌도 사라졌다. 그날부터 나는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대법을 수련한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12년 동안 나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던 그 병들이 귀신처럼 사라졌고 체중이 35킬로밖에 안되어 뼈만 남았던 데서 거의 50킬로까지 됐다. 몸은 갈수록 좋아졌고 온몸에 힘이 생겼으며 완전히 건강을 되찾았다. 그때부터 나는 집안일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밭일도 할 수 있게 됐으며 12년 전의 나로 돌아가서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전의 각종 기공 책, 테이프와 바이산 제약공장에서 사온 그 약들을 모두 버렸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20년 동안에 다시는 어떠한 약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도 치료해주지 못했던 산후풍을 대법을 수련하고 한 달 만에 완치되고 나를 환골탈태하게 해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파룬궁은 정말 신기했다! 너무 위대했다! 파룬궁은 나에게 새 생명을 주었고 나는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은혜를 천 마디, 만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오로지 끝까지 파룬따파를 확고하게 수련하는 것으로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겠다.

‘진선인’은 온 가족을 감동시키고 남편도 대법의 길에 들어서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고 대법의 제자다. 나는 100%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노력하며 사람을 많이 구하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한다.

2014년 1월 13일에 나는 손님을 초대했다. 우리 집이 너무 작았기에 큰 고모네 집에서 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큰 고모네 집으로 갔다.

남편은 삼형제 중 둘째였다. 시아주버님과 시동생의 아내들은 모두 세상을 이미 떠났다. 시동생은 우리 아들을 보고 나에게 말했다. “우리 세 집에 손자는 얘 하난데 마땅히 50위안을 줘야 해요”라고 했고 나는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 쟤한테는 사탕을 주면 돼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시동생을 감동시켜 울게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시동생이 울자 큰 시누이는 내가 시동생에게 뭐라고 해서 울게 한줄 알고 나를 욕했고 교양이 없는 세 조카도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나를 욕했다. 이 광경을 보던 남편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은 무정하게 내 머리, 몸을 마구 때렸다. 나는 남편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고모네 집에서 나와서 우리 집으로 갔다. 남편은 바짝 쫓아왔고 집까지 쫓아와서 큰 몽둥이를 잡고 나를 때렸다. 나를 두 시간 때렸을 때 나는 되받아치지도 않았고 욕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남편을 피하다가 팔이 맞아서 부어오르자 피하지 않았고 그에게 “때려, 당신 마음대로 때려!”라고 말하자 그는 더 이상 때리지 않았고 몽둥이를 놓고 나가서 3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내가 맞아 부어서 굵어졌던 팔에서 노란 물이 흘러나왔고 부기가 전부 가라앉은 것을 발견했다.

넷째 날 남편은 돌아와서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사과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수련하는 것은 진선인이에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왔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설을 크게 보내려고 손님을 청하고 형제자매도 다 모여서 기쁨이 넘치고 얼마나 좋은 일이예요! 어떻게 아내를 냉정하게, 그렇게 심하게 때릴 수가 있어요! 양심이 어디로 갔어요!” 온 방안의 사람들은 모두 남편을 질책했다. 남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후에 큰 시누이도 자신이 잘못 했다는 것을 알고 아주 미안해했고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밭을 갈고 씨를 뿌려주었다. 내가 고용한 사람들을 그녀는 쓰지 않았다. 20무의 밭을 다 갈고 씨를 다 뿌릴 때까지 며칠 동안 계속 도와주었다. 시누이는 “사람을 쓸 필요 없어. 올케가 산미나리로 만두를 해주면 돼”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산에 가서 산미나리를 한 광주리 따다가 만두를 빚고 여러 사람들에게 대접했다. 큰 시누이는 아주 감동했다. 그 후부터 큰 시누이는 더 이상 나를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 나의 행동이 큰 시누이를 감동시켰고 큰 시누이는 마음으로부터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했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으며 이집 저집 오가면서 마셨으며 마실수록 중독되고 갈수록 더 잘 마셔서 ‘술고래’라고 해도 과분하지 않았다. 나는 술을 끊으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고 남편도 무질서하게 술을 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해서 내심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하루는 남편이 갑자기 “나에게 술 담배를 끊게 할 수 있으면 나는 바로 파룬궁을 수련하겠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나서 남편이 다시 담배를 피웠을 때 “왜 맛이 안 나지? 술을 마셔도 온몸이 괴로워”라고 말했다. 그렇게 거의 50년 가까이 습관적으로 피우고 마시던 담배와 술을 단번에 끊었다.

작년 가을에 남편은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사부님과 대법이 남편을 구해주시고 우리 가족을 구해주심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제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여기서 사부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허스!

원문발표: 2017년 7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30/3503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