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의 승화와 동화
글/ 동화(同化)
[밍후이왕](앞 문장에 이어) 대법은 우리에게 구세력을 철저히 부정할 것을 요구하지만 많은 수련생은 입으로만 말하고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많은 수련생은 장기간 법공부를 해도 새로운 깨달음이 없고 줄곧 감성적 인식에 머물러 있다. 법리가 흐릿하고 박해를 부정할 때 인정하는 면이 있어 구세력이 수련생을 박해하는 약점이 됐다.
앞 문장 병업 부분에서 말했듯이 박해가 오면 첫 번째 염두가 가장 중요하고 표면에서 해내야 할 뿐더러 내심에서 법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과 동화는 더욱 중요하다. 이번에는 이 부분을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오성의 제한으로 적절하지 않은 점은 여러분이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1. 법공부 해도 법리가 분명치 못하고 깨닫지 못하며 동화하지 않으면 박해를 인정한 것
내가 이해하기로 장기간 박해당한 수련생은 법리가 분명하지 않고 법에 동화하지 않아 구세력에 약점을 잡혀 조성된 것이다. 하지만 어떤 수련생은 정말로 무엇이 ‘동화(同化)’인지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1]
필자의 이해로는 자연스럽게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일언, 일행, 일념 모두 진선인에 부합되고 대법에서 승화해야 자신의 사상이 어느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고 동화한 것이다. 대법의 요구에 따라 노력하면 표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끊임없이 법에 동화된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 수차례 말씀하신 수련생의 안전에 주의하라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관념으로 하고 스스로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박해를 당했다. 이런 사례는 거의 곳곳마다 있다. 이렇게 전형적인 케이스, 법공부를 하나 법에 동화되지 않으면 구세력에게 박해 구실을 잡힐 수 있다.
2. 추쓰젠파와 병업
1999년 전에 많은 수련생은 ‘出世間法(추쓰젠파) 수련’[2]에 대해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적잖은 수련생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런 수련생은 늘 병업에서 괴로워한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제자가 질문한 적이 있다. “出世間法(추쓰젠파)의 신체에 병업의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부님께서는 답해주셨다.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수련인의 신체 내부는 아주 난잡한데, 모두 조정하고 있다. 어떤 정법수련 방법이든 삼계를 벗어난 후의 신체는 병업 이런 상태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바, 절대로 없다. 그러나 그가 그의 과위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는 여전히 속인 사회 중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心性(씬씽)상의 마찰이 나타날 것인바 줄곧 원만(圓滿)에 이르기까지 모두 있을 것이다.”[3]
많은 수련생은 표면 문자를 이해하는 데 집착한다. 자신이 20여 년 수련했는데 아직 병업이 있으니 추쓰젠파 수련을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에서 많은 수련생의 심득을 보고 아주 높게 수련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낙심하고 태만해지고 정진하지 못한다.
어떤 제자는 사부님께 질문했다. “사부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99년 ‘7.20’ 이전의 제자를 모두 제 위치로 밀어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내가 매 수련생을 모두 제 위치로 밀어주었는데, 진실한 것으로, 당시 여러분들이 모두 느꼈으며 또 일부분은 보았다.”[4]
어떤 노수련생은 더욱더 이해하지 못한다. 제 위치에 밀어주셨는데 나는 추쓰젠파도 수련해내지 못했단 말인가? 그러면서 자신의 근기가 아주 낮다며 자포자기한다.
어떤 수련생은 더 극단으로 간다. 그는 많은 노수련생이 간혹 병업이 있으니 추쓰젠파를 수련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고층 과위에 밀어주셨다는 말씀과 모순된다고 생각해 법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사부님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이런 수련생은 병업이 더 중해지는데 병업에 관한 법리를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구세력은 결국 병업의 방식으로 그를 고험한다. 무엇을 모르면 그것으로 고험한다. 병업 박해를 가중시키면 더 깨닫지 않고 악순환이 된다.
사실 대법은 원융한 것이다. 수련생이 어떤 점에 대한 이해에서 모순이 있건 모두 자신의 장애이고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부 사람은 병이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하자 나았고, 정말 나았다. 그러나 구세력은 당신의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당신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고험하려고 할 때, 그것은 여전히 당신에게 원래 병이 있던 부위에 병이 있는 아픈 감각을 있게 하거나, 혹은 병이 있는 반응에 이어 증상까지도 똑같게 해서, 당신이 대법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본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과 신의 일념(一念)이라. 당신이 정념을 움직였다면, 당신은 이 모든 것이 가상(假相)이고 구세력의 교란이라고 하며, 내가 이처럼 여러 해 수련했는데, 이 정황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내심에서 우러나온 일념이라면, 즉시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건 사람이 말로만 해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견정한 정념은 당신의 내재(內在)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형식이 아니고, 또한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5]
우리는 보게 된다. 많은 수련생에게 나타나는 소업, 병업은 구세력이 병업의 가상으로 그를 고험하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정말 고험으로 여겨 병업으로 소업한다. 앞 문장에서 언급한 수련생A처럼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구세력이 강요한 병업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 다른 상황이 있는데, 수련생이 육신을 신체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매 세포·오장육부는 모두 다른 공간 속에 있는 당신 형상정보가 존재하는 그런 형식이다. 그러므로 매우 복잡하다.”[2]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삼계 내의 신체는 모두 인신(人身)이라고 한다.”[3]
내가 이해하기로 매 층차의 세포는 모두 하나의 신체이고 이 공간에서는 하나의 세포나 한 개 입자로 표현된다. 아마 당신의 많은 공간의 신체는 모두 추쓰젠파를 수련해 냈고 육신에 대응되는 많은 세포가 수련해냈을 것이다. 그들은 병업이 없고 수련해내지 못한 세포는 병업이 있다. 육신 일부분에 병업이 있고 장래에 모든 수련된 신체는 정체로 형성되며 삼계 외 고층 공간을 포함한다. 본래 그것은 출세간 이외의 신체다.
병업 관련 법리를 알면 수련 층차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처럼 정진하면 구세력은 박해할 약점을 잃기 때문에 그들의 박해를 쉽게 부정할 수 있다.
3. 정법수련과 병업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신 수련생을 제외하고 사부는 99년 7·20 이후에 당신들에게 개인 수련을 위한 어떠한 관(關)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개인수련은 전면적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6]
이 단락의 표면 문자에서 알 수 있다. ‘7.20’ 이후, 노수련생의 경우에는 ‘개인 수련의 심성에서 관을 넘기는 것’, ‘병업에서 관을 넘기는 것’ 모두 구세력의 교란이다. 노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이미 제 위치에 밀어주셔서 개인 수련의 관은 이미 넘어갔다. 단지 대법제자가 심성, 법리 인식이 그 위치에 도달하지 못해 구세력이 강요한 추가적인 교란이다.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로 제자가 계속 제고하게 하셨다.
우리는 보았다. 많은 노수련생에게 현재 병업은 수십 년 전, 20여 년 전 마땅히 철저히 지나갔어야 했다. 신사신법을 완전히 하지 않아 병에 관한 관념을 뿌리 뽑지 못해 병업을 승인했고 걱정하고 의심하며 영양식품과 건강식품, 식이요법 등 보충하고 보양하고 휴식하는 것이다. 외부의 것에 의지하고 원망하며 은폐하고 퇴로를 남겨두는 각종 관념, 잡념이 존재해 신의 염두가 순정함에 도달하지 못해 줄곧 지금까지 지연돼 구세력이 부단히 추가적인 병업 박해를 가한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장계취계 하시는 것도 제자를 고생스럽게 하는 의도가 아니므로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속히 관을 넘는 것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밍후이왕에 많은 수련생이 병업관을 넘긴 사례가 있다. 모두 구세력의 병업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고 안으로 찾는 심태를 유지했고 병업 표면의 어떤 가상도 승인하지 않고 병업 가상이 신체에 가져다 준 상태를 상관하지 않으면 신속히 기적처럼 관을 넘긴다. 기적 자체가 법을 실증하는 것이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언제 병업에 빠져 연구하고 관념을 양성했는가?
4. 장기간 법공부하나 관념을 고수, 법에 동화하지 않고 고집 부려
교류문장 ‘법률로 반박해를 경험하다(하)’에서 몇 가지 비교 사례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악에 붙잡혀도 수련생의 첫 번째 염두는 ‘나는 괜찮고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이다. 생각하고 정정당당하게 상대방에게 진상을 알린다. 결국 겸손하게 집으로 데려다 주는 결과가 나온다. 어떤 수련생의 제 일념은 ‘끝장이다!’인데 결국 정말로 망한다. 이후에 세뇌반에 감금돼 본의에 어긋나게 보증서를 쓰고 나오게 된다. 어떤 수련생은 제 일념이 바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기껏해야 보름 정도 감금하겠지’인데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15일 감금됐다가 석방된다.
여기까지 읽고 수련생은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노부인이 차에 부딪친 것과 관련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2] 장기간 법공부를 하는데 이 한 층의 수련을 지도하는 내포를 깨닫지 못하는가?
왜 깨닫지 못할까? 장기간 법공부를 형식적으로 할 뿐이지 법이 마음에 닿게 배우지 못했고 어떤 수련생은 장기간 불교에서 경 읽듯 법공부를 해서 주의식이 장기간 새로운 깨달음이 없다. 평소 안으로 찾지 않고 법을 배워 대조하지 않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층차를 고집하며, 수련생이 지적해주어도 튕겨버리고 법공부에서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해 구세력에 박해할 약점을 남겼다.
(계속)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창춘보도원법회 설법’[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6년 뉴욕법회설법’[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6]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문장발표: 2017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18/3512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