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에 나는 장염 증상으로 고열, 구토, 설사를 며칠 간 하는 바람에 식욕부진으로 몸이 많이 허약해졌다. 당시 나는 음식만 생각해도 구역질이 났고 심할 경우 구토, 설사까지 했다. 하루에 화장실을 스무 번이나 들락거렸고 사흘간 체중이 3kg이나 줄었다. 특히 평소에 즐겨 먹던 망고를 보면 정말로 구역질이 났는데 진짜 마음속에서부터 먹고 싶지 않았다.
이 시기 사부님의 법을 공부했다. “어느 날 또는 오늘 내가 강의를 마친 후에 어떤 사람은 바로 이 상태로 진입한다: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되는데, 냄새를 맡으면 아주 비린내가 나고 먹으면 곧 토하려 한다. 인위적으로 당신을 통제해 당신에게 먹지 못하게 하거나 또는 당신 스스로 통제해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 층차에 이르면 공(功) 중에서 반영되어 나와 먹을 수 없는데, 심지어 당신이 정말로 삼키면 정말로 토하게 된다.” “먹을 수 없음은 진정 내심에서 우러나와 먹지 못하는 것이다. 목적은 무엇인가? 절에서 수련하면서 당신을 강제로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우리처럼 반영되어 나와서 먹지 못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의 고기에 대한 이런 욕망과 집착심을 제거하려는 데 있다.”[2]
그중에 ‘내심에서 우러나와[發自內心]’라는 글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면서 마음에 와 닿았다. 마치 일부러 내게 보여주는 것 같았는데 정작 자신은 원래 이 글자를 전혀 의식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내심에서 우러나와 먹고 싶지 않을 때가 바로 내가 식욕이 조금도 없어 자발적으로, 자각적으로, 자원적으로 아예 먹고 싶지 않는 때이다. 그때는 인위적으로 억제하거나 강제로 통제해 참는 것이 아니고 또 더욱 억지로 고민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아니다.
‘내심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자각적, 자원적, 자연적인 것이지 외부의 강제거나 스스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고 현재 알고 있다. 한 학생이 오직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공부하고 향상하려는 소망이 있어야 분발할 원동력이 있게 되고 자각적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참고 견디고 시간을 소중히 아껴 부지런히 공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은 스스로 공부하기 싫어한다. 선생님이 차근차근 잘 가르치고 부모가 노파심에서 거듭 타일러도 소귀에 경 읽기여서 공연히 헛수고하고 효과가 별로 없다. 한 아이가 오직 마음속으로부터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성심성의로 노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노인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즐겁게 돌볼 수 있다. 또 노쇠하고 생기가 없고 잔소리하고 화를 잘 내는 부모님도 잘 보살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만약 아이가 마음속으로부터 부모를 미워하면 매일 부모를 문안해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적당히 얼버무린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은 안전함과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 글자를 보여주신 것은 나에게 무슨 깨달음을 주신 것일까? 아, 나는 알았다. 나에게 마음속으로 우러나와 수련하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평범한 속세의 사람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수련하면 무슨 모습일까? 현장(玄奘) 법사가 서쪽으로 간것은 동토 중생을 위해 법을 구하는 원대한 뜻을 마음속에 품었기에 험악한 사막을 걸어가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나라의 고승 감진(鑒眞) 대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동쪽으로 불법을 전하려는 숙원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눈이 실명되고 제자가 죽은 후에도 의연하게 여섯 번째 항해를 시작했다. 법문사의 양경(良卿) 법사는 마음속에서부터 불법을 수호하려는 마음을 품었기에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으로 지하궁의 부처님 사리를 지켜냈다. 한 평범한 속인의 몸을 갖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수련하면 하늘땅을 감동시키고 원만성공할 수 있다.
한 수련자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수련하면 진심으로 사부님을 존경하고 불법을 흠모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수련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는 기쁘게 고생을 낙으로 삼고 온갖 방법을 다해 끝까지 해낸다.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수련하려는 생각은 수련자에 대해 말하면 아주 중요한 일념이다. 즉 불성이기 때문에 시방세계를 진동해 각자(覺者)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 일념을 지키면 불성과 정념을 지킬 수 있어 모든 마환(魔幻)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고 또 모든 곤란과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 또 더욱 수련을 끝까지 견지하게 할 수 있어 목적지를 멀리 바라보고 오직 몸으로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수련은 불성과 정념을 지키면서 오직 거기에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법공부를 할 때 진심으로 자신을 수련해야 불법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법은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발정념을 할 때 오직 한마음으로 사악을 철저히 제거해야 신통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마음속에 중생이 있고, 마음으로 진상을 전달하며, 마음이 서로 통해야 중생이 감동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또 곤두박질 한 후 뼈저리게 뉘우쳐야 이전의 잘못을 철저히 고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성심성의가 없으면 그가 한 말은 겉과 속이 달라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며 또 건성으로 대충대충 일을 처리한다. 모든 대법수련자는 모두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법을 스승으로 삼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초심을 갖고 정진하면 바로 정념이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수련하는 일념을 지키지 못하면 집착, 욕망에 미혹되어 사람과 신의 사이에서 배회할 수 있고, 또 좌우로 흔들거리면서 개인의 이해득실만 따지게 되어 수련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우리는 많은 시기 잘 걷지 못하고 또 많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법을 스승으로 삼는 초심을 잊어먹어 정념이 없고 불성을 잃어버려 사람마음만 남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마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임무를 완성하고, 무리하게 하며, 빼먹지 않고 많이 하는 것이었다. 사람마음을 품고 육신을 갖고 사람 마음으로 사람의 일을 하면 고생을 얼마 겪지 못하고 신통광대한 일도 없어 더욱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사부님께서 법공부를 하라고 해야 책을 들고, 사부님께서 강조하지 않으면 그는 해이해진다. 한 사람이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 자료를 배포하면 그의 마음은 중생에 있지 않고 임무에만 있기 때문에 효과가 좋지 않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법을 스승으로 삼고 용맹정진하려는 일념은 정념이다. 수련자는 성심성의로 진심진의(眞心眞意)로 수련하는 마음과 정념을 항상 유지해야 시종일관 바르게 나갈 수 있다. 진심으로 수련해야 수련 성취될 수 있고 또 진심으로 해야 잘할 수 있다.
오늘부터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수련하는 초심을 되찾고 불성과 정념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정진합시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7/11/3508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