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이 질투심을 당신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물건은 무시무시한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모든 수련을 다 해이해지게 만들 것이고, 당신을 망칠 것이다. 질투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1] 라고 하셨다. 수련생들은 모두 해이함과 안일한 마음이 관계가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번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해이함도 질투심과 연관이 있다고 하셨다. 질투심은 수련인에게 아주 엄중한 심성문제다.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을 말하려 하니 여러 수련생께서는 참고하기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2]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에서 질투는 마음속으로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생기며, 화나고 미워하며 싸우고 보복하려는 나쁜 마음도 모두 악한 자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련인으로 놓고 말하면 무엇이 해이함인가? 내가 이해한 것은 정법수련 중에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시시각각 안으로 찾지 못하며 중생구도 항목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며 임무완수 식으로 하고 어떤 일은 속이는 것도 있다. 헛소문과 난법자에게 시장을 제공해주며 법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수련의 정념이 부족하며 의지가 강하지 못하다. 그러면 질투심이 어떻게 수련인을 해이해지게 해서 멸망으로 이끄는가?
나는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과 관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생 중에서 한 부류는 ‘높음을 추구’ 하는 것으로 타인을 압도하고 타인의 강하고 우수한 것을 보면 가장 먼저 오는 반응이 자존심, 자신감 및 안전감에서 타격을 받는 것이다.
마음이 극도로 불편하고 ‘왜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많은 우수한 유전자를 주고 나는 이렇게 노력하게 만드는가? 하늘이 너무 불공평하다. 나는 꼭 그의 약점이나 결점을 찾아서 그를 압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 때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연공인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마성의 지배하에 일을 그르치고 심지어 크게 잘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있어서는 안 될 질투심이고 이 때문에 정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배척한다. 그러나 내심에서 파동이 너무 크고 질투심이 생기는 패턴이 너무 완강해 나쁜 생각을 뿌리 뽑지 못하고 강제로 억누르기만 한다면 다음 시기에 건드려지면 또 나오는데, 그 당시 법 공부를 얼마나 했고 심성을 장악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
오늘날의 사회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재산이 얼마나 되는 지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낸다. 질투심은 다른 사람이 얻은 명예와 지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촉동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대법을 수련하면 복을 받는다.”면서 큰돈을 벌어 친지와 친구들에게 인정받으려 한다. 겉으로는 진상을 더 잘 알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는 심리 평형을 위해서다. 수련자 뒤에 따르는 표준은 대법이다. 내가 이해한 것은 대법이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집착을 수련해서 없애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인은 무엇에 집착할수록 얻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일부를 점화해주실 수 있으나 점점 깊이 빠져 들어 헤어나지 못할 때는 구세력이 처리하려는 대상이 되고 사업, 투자가 여지없이 패배한다.
사부님께서는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3]라고 하셨다. 만약 대법제자가 이 질투가 진정 나와 무관하고 사탄마귀와 공산사령이 배후이며, 수련인의 정념과 근기를 망가뜨린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는 가운데 신심을 잃고 스스로를 수련에 소질이 없다고 의심하거나 박해 받을 때 사부님께서 관계하지 않으신다고 원망할 수도 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잘못 깨달아 훼멸의 길을 갈 수도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자대, 자아, 유아독존 등 ‘큰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표현하나 표현하지 않으나 속으로 나는 위에서 내려온 왕이고 대법제자이며 평범하지 않다! 수련에서는 ‘내가 이렇게 몸을 낮춰서 대했는데 너는 왜 호의를 알아주지 않니? 내가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내가 더 어떻게 해야 하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구하는 항목의 일을 할 때 속으로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면 사람을 구해야 한다면서 협조인이 배치한 일을 빨리 해버려야겠다고 생각하고, 현재 박해가 아직도 이렇게 심한데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 대충 말하면 된다고 하며 어쨌든 안 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많이 구하고 잘 하는 수련생들을 보면 당신도 하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체면 때문에 무리하게 버틴 결과 다 하고 나서는 아주 힘듦을 느낀다. 계속 이렇게 나가면 아주 고생스럽다. 수련생은 타인을 위해 기뻐하고 그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고생하면서 견지하면 필히 정법시간에 집착하게 되고 연장된 시간에 부담을 갖고 스스로 한계를 짓거나 사오자 및 특무의 거짓말을 듣게 되고 세간의 득실을 계산하게 되며 그로 인해 수련을 포기하고 멸망으로 나아가게 된다.
나의 자존심은 줄곧 타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데서 표현된다. 비록 수련해서 많이 제거했지만 최근 또 이 방면에서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 잘난 척해서 생긴 질투와 당 문화의 언어방식으로 드러났다. 상태가 좋을 때는 이런 나쁜 마음이 없고 타인을 관용하고 자비롭게 표현된다. 그러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남을 돕는다는 이유로 수련생을 지적한다. 사실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자기 수련을 느슨히 했기에 속인과 같은 정서로 변한 것이다. 말하는 방식도 당 문화의 방식으로 자신을 높은 위치에 놓는 오만한 태도다. 나는 평등한 마음이 없으면 온화한 언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수련한다는 것은 바로 마음의 용량을 수련해내서 부동한 층차에 있는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주법이 결정하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당신이 그가 속해있는 층차를 초월해 높은 표준에 도달하게 요구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때문에 모순이나 충돌이 생기면 먼저 자신을 수련하고 그 다음 선의로 타일러야 한다.
세 번째 부류는 높음을 추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일처리를 교활하게 한다. 세상은 완벽할 수 없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표준에 집착하고 더 많은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한다. 열심히 일하는 데는 유명해지려는 마음이 숨어있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왜 나를 이렇게 말하지? 내가 이렇게 못해? 모모도 이렇잖아’ 하고 생각한다. 교활한 변명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을 숨길 것이다. 목적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아니라 타인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은 못 하는 소리가 없이 대법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정확하지 않은 연공 동작을 전파하며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개의치 않아한다. 그러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며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 가지 일은 여전히 하고 있다. 법공부를 깊이 하지 못한 신 수련생과 법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는 노 수련생들이 혹하기 쉽다. 이런 사람은 개성이 강하건 약하건 모두 마성이 올라올 때 주이스(主意識)가 사악에 짓눌리기 때문에 사악에게 통제당하고 이용당하면서 자신도 전혀 모르고 제멋대로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모두 자신감이 없고 색심이 커서 이성이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 동년배 수련생이 있을 때 자신이 정진한다는 것을 각별히 나타내고 어떤 이는 심지어 눈빛, 거동도 모두 애매하다. 우리 여기에는 각 방면에서 모두 아주 잘하는 수련생이 있는데 법공부 팀에서 한 남자 수련생과 정이 생겼고(각자가 가정이 있음)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아 이미 사상 중에 수련생의 금기 “입으로는 경문을 읽으면서도 음흉한 눈길을 마주치니 도(道)와는 너무나 먼 것이라”[4]를 범했는데 계속 고치지 않았고 일선에서 진상을 알릴 때 납치당했다. 어떤 청년 수련생도 남녀관계에 문제가 있었는데 박해를 받아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떠돌게 되어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를 하는데 손실을 초래했다.
우리 이곳의 한 노 수련생은 얼마 전 갑자기 세상을 떴다. 그녀는 교활한 유형에 속하지는 않았는데, 질투심이 일으킨 원한과 투쟁이 조급한 성격을 고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매번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원망하는 어투로 불만을 호소했는데, 내가 법으로 그녀와 소통하려고 해도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전에 그녀를 도와주려고 한 모든 수련생들은 모두 방법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했다. 나는 전에 그녀에게 작은 일 때문에 호되게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에는 정말 짜증이 났지만 그 후에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는 그 과장되고 격앙된 목소리가 애당초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고 그녀의 뒤에 있던 사악한 마귀가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마귀는 내가 그녀를 도와주는 것을 포기하게 하려는 목적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수련생들은 그녀가 겉보기에 언행이 선하지 않다며 다시는 그녀와 함께 법공부 하지 않았고 신 수련생들은 그녀가 장기적으로 다리가 불편했기에 그녀를 멸시했다. 그러나 내가 본 것은 그녀는 수련생인 남편의 사망에서 온 정신적 충격과 함께 자기 신체가 박해받는 중에도 사람을 구하려고 생각했고 다리가 부어 코끼리 다리가 됐는데도 여전히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그녀는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차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사부님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그녀를 줄곧 위로했고 진정한 자신과 가짜 나를 구분하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그녀와 보통 인연이 아니어서 그에게 따뜻함을 주고 자신감을 준다고 느낀다 했다. 그러나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비교적 선의적으로 그녀와 소통했지만, 구체적인 일로 그녀의 마성을 건드려 그녀가 말할 때 그 다리가 다른 공간에서 벌레에 물렸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됐는데, 재빨리 위로한 후에야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았고 성질을 부리고 당 문화가 아주 짙어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을해도 피곤해 했으며 돌파구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나도 전에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해준 적이 있었는데 나 자신도 엄중하게 교란을 받았었다. 나중에 그녀는 구세력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이런 교훈은 각지에서 매년 발생했고 나도 왜 질투심이 일부 수련생들에게 이처럼 제거하기 어려운지 생각해봤다. 말로는 자아를 내려놓고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수련해 내면서 질투심의 근원을 제거한다고 하지만, 실제 수련 중에서는 많은 수련생이 해내기 어렵다. 나는 어떤 관념을 바꾸지 못해서 심성을 제고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왜 그렇게 심한 질투심이 없는지 돌이켜 보았다. 내가 나 자신을 깊이 파본 결과, 마음이 전일하게 사부님을 향하고 머릿속에 법이 있을 때 질투할 것이 없다고 느꼈다. 사람이 불평을 느낄 때는 불이익을 당한 것 같거나 이익에서 손해를 보았거나 직급이 강등되었거나 자존심이 타격받는 등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하늘의 뭇 신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생명이고 사존께서 친히 전수한 제자가 되는 것인데 지위가 가장 높은 것이다. 즉, 수련생 사이에서는 수련원만하면 각자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원래 어느 체계에서 왔으면 거기로 돌아가며 인류의 누구와 비교해서 좋다는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가 질투할 필요가 있겠는가?
자고로 많은 수련자들은 거의 모두가 소법소도(小法小道) 수련이지만 대법제자는 대법대도 수련일 뿐만 아니라 더 대단한 것은 우리가 얻은 것이 새 우주의 근본 대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수련자를 놓고 말하면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일이다! 우주의 부동한 고층 생명을 놓고 말하면 최대의 이득이고 생명이 새로운 우주로 바뀌는 보장이다. 대법제자에게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고 가장 위대한 법과 가장 신성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데 누구를 질투할 이유가 있겠는가? 오히려 많은 생명이 우리를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사부님께서는 “속인은 일부 마찰이나 조그마한 일도 아주 큰 것으로 여기고, 산다는 것이 바로 체면을 위한 것이라 여기는데, 참지 못해 극도에 이르면 아무 짓이나 저지른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남이 아주 대단하게 여기는 것이 당신에게는 아주 작게, 아주 작게, 너무 작게 보인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목표는 참으로 장원(長遠)하고 원대(遠大)한 것으로서, 당신은 우주와 같은 나이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시금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며, 당신이 크게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다 지나칠 수 있다.”[5]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이렇게 깨달았기 때문에 박해를 받고 가장 어려웠을 때 심지어 양친 부모마저도 압력에 의해 나를 저버렸을 때 비록 일시적으로 원망했지만 이후에 마음에 두지 않았고 덕으로 원한을 풀었다. 수련생에게 피해를 볼 때 안으로 찾을 수 있었고 수련생에게 정을 내려놓고 여전히 상대방을 선하게 대했다. 사부님만이 평생 내 곁에 계실 것이고 나는 사부님을 따라 천국에 가려하는데 그러면 마음속의 고통은 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수련생들에게 정법의 시간은 제한이 있고 핵심과 바른 길을 놓치지 않는 것이 현명한 것이며, 다시는 자신이 미래에 돌이키지 못할 일을 반복하지 말고, 생생세세를 윤회하면서 한 고생 등 신성한 이유와 천국 중생들의 우리에 대한 기대, 신임에 떳떳해야 하며 더욱이 우리를 더없이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사부님께 면목이 없어서는 안 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精進要旨)-경지(境界)’[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精進要旨)-수련자 금기(修者忌)’[5]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궁(法輪功)-제3장 心性(씬씽)수련’
원문발표: 2017년 6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29/3501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