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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을 앓았던 남편, 14년이 지나도 여전히 건강하게 살아있다

글/ 산둥 대법제자 둥메이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한 노수련생이다. 남편은 2003년에 암에 걸려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대법이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은 심각한 교훈도 있었고, 법을 얻고 새로운 삶을 얻은 후 대법 사부님의 무량한 홍은에 대한 깊은 감격도 있었다. 여기에서 사부님께 머리 조아려 절 올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내가 법을 얻을 때 남편은 무신론의 해독을 입어 수련을 믿지 않았다. 1999년 720 때 파룬궁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된 후 남편은 하늘땅을 뒤덮는 사당의 거짓말 선전으로 겁에 질려 수련을 못 하게 했다. 하지만 대법의 뿌리는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기에 그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었다. 절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박해 초기 남편이 협박으로 인해 사악의 편에 서다

2000년 12월, 나와 수련생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현지 경찰에게 납치되어 15일간 불법 감금되었다. 이후 동사무소와 마을 사람들은 여러 차례 집에 와서 교란했고 또 보안요원을 배치하여 문밖에서 나를 감시했다. 남편은 매일 공포 속에서 생활했다.

2001년 가을 동사무소에서 내게 단체 여행에 참여하라고 통지했다. 외지에 가서 세뇌반을 꾸릴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하루는 남편 직장의 사람이 남편을 협박하고 속이면서 “이번에 당신 아내를 며칠만 여행하고 돌아오게 할 겁니다. 이는 좋은 기회입니다. 만약 이번 여행에 불참하면 구속하고 노교소에 보낼 겁니다. 당신은 출근을 못 하게 되며 아이도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놀란 남편은 집에 돌아와 우거지상을 한 채 말이 없었고 소파에 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상해서 머리를 드니 낯선 사람 두 명이 들어와서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했다. 당시 동생의 아내도 우리 집에 있었고(그녀는 수련하지 않았다. 장사가 바빠서 내가 아이를 봐주고 있었다) 두 딸도 집에 있었다. 세 사람은 나에게 가지 말라고 했지만, 남편은 가라고 핍박했다. 남편은 동생의 아내에게 우리 집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들에도 말을 못 하게 했다. 나는 옷가지를 챙긴다는 핑계로 두 딸의 방에 들어가 문을 걸었다. 조급해진 남편이 발로 힘껏 문을 차 문짝에 금이 생겼다! 그래도 뜻대로 안 되자 남편은 유리를 깨고 손을 넣어 문을 열겠다고 했다. 동생의 아내는 울부짖으며 두 딸의 이름을 불렀다. “얼른 얼굴을 유리에 대고 있어. 그래도 감히 유리를 깨나 보자” 두 딸은 울면서 얼굴을 문의 유리에 갖다 댔다. 낯선 두 사람은(후에 안 일이지만 파출소에서 온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더니 마당에서 전화로 현지 공안국장과 서기 그리고 많은 경찰을 불렀다. 그러자 동생의 아내는 부엌에서 식칼을 추켜들고 문을 막아서면서 “누가 들어와서 내 큰형님을 잡아가면 나는 목숨을 걸고 막겠다!”라고 외쳤다.

그 서기는 “당신 큰 형님을 붙잡지 않아요. 그저 수련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라고 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동생의 아내는 바로 “안 됩니다. 저의 큰형님은 절대로 수련하지 않겠다는 말을 안 할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수련해도 됩니다. 집에서 조용히 수련하십시오. 파룬궁의 어떠한 조직 활동에도 참여하지 마시고요.”라고 했다. 동생의 아내는 내게 그 말을 전했고, 내 말을 다시 그들에게 전해 주었다. “저의 큰 형님은 집에서만 수련하고 나가서 수련하지는 않았답니다. 파룬궁은 어떠한 조직도 없고 조직 활동에는 더구나 참여하지 않았고요.”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전부 철수했다. 세 시간 넘는 정사대전(正邪大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응보를 받은 남편이 드디어 진상을 듣다

이 대전(大戰)에서 남편은 박해가 두려워 사악의 편에 서서 몇 번이나 사악을 도와주었다. 이튿날 그는 다리가 아파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약도 먹고 침술도 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리가 아픈 것은 당신이 문을 걷어찼기 때문이에요! 속으로 잘못을 인정하면 나아요.”라고 알려주었다. 남편은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2002년 봄이 되어 남편은 자주 배가 아프다고 했다. 8월에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의사는 장암 말기라고 하면서 반드시 바로 입원하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하기 전 나는 남편에게 성심성의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당부했다. 수술할 때 밖에서 속으로 남편의 이름을 부르면서 ‘반드시 남편이 법을 얻고 수련하여 마난에서 걸어 나오게 하겠다’고 하며 사부님께 가지를 요청했다. 수술 후 남편은 20여 일간 입원하면서 큰돈을 썼다. 퇴원할 때 의사는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도 해야 하며 정기적으로 검사해야 한다고 했으며, 재발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없다고 했다. 어쩌면 6개월에서 1년밖에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내게 말했다.

퇴원하여 집에 돌아온 후 이웃 수련생이 경찰에게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외지 친척 집에 갔다. 친척 집에서는 방사선 치료도 화학요법 치료도 모두 할 수 없었다. 친척은 한약을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사악의 거짓말을 믿고 거기에 협조했기 때문에 이 병에 걸린 것이에요. 반드시 진심으로 사부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하면 어떤 병이든 다 나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남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연말까지 친척 집에 있다가 음력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불치병에 걸린 남편이 대법 수련에 들어오다

2003년 봄, 나는 남편과 텃밭에서 일하다가 한낮 무렵에 일이 있어서 혼자 집에 갔다.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복경찰에게 납치되어 차에 올랐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고 현지 파출소에 감금되었다. 점심때 남편이 집에 와 보니 내가 없었다. 이웃은 내가 납치당한 사실을 알려 주었고 수소문 끝에 현지 파출소에 감금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매우 놀랐지만, 이번만큼은 맑게 깨어있었다. 남편은 먼저 내 대법보서를 잘 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과 동생의 아내도 우리 집에 왔다. 남편은 두 사람에게 “안 되겠어. 나 쓰러지려고 해. 너무 피곤해!”라고 했다. 동생의 아내가 “큰아주버님, 안 돼도 견지해야 해요. 오늘 반드시 큰형님을 데려와야 해요. 오늘 데려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데려오기 더 어려워져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 셋은 식사도 하지 않고 파출소에 갔다. 나도 파출소에서 계속 발정념했으며, 사부님의 시사 ‘슬퍼하지 말라(別哀)’, ‘두려울 것 뭐냐(怕啥)’ 등을 외우고 자신의 집착심을 찾았다. 남편은 파출소에 도착하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은 옷깃을 열고 몸에 있는 한 자가 넘는 칼자국을 파출소장에게 보여주면서 “내 몸은 아직도 회복기에 있어 아내가 돌봐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당신들이 내 아내를 보내주지 않으면 나도 돌아가지 않고 살지도 않을 겁니다. 당신들 여기에서 죽고 말아야지요. 어쨌든 나는 그저 이 모양이고 살날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라고 했다. 동생의 아내도 울면서 말을 거들었다. 이리하여 파출소에서는 사람을 석방한다고 대답했고, 저녁 5시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그들은 우리가 없는 틈을 타서 수색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남편이 내 대법 서적을 잘 숨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고비를 넘은 후 중국공산당 요원은 다시는 나를 교란하러 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내 제의로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수련한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의 몸은 아주 빨리 회복되었다. 무슨 일이든 거의 다 할 수 있었다. 2년이 지나 남편은 만 55세가 되었다. 직장에서는 병으로 퇴직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는데 병원에서 큰 병을 앓는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수술 후 방사선치료와 화학치료를 하지 않았으며 재검사를 하지도 않았다. 병원에 증명서를 발급받으러 갔더니 의사는 깜짝 놀라며 “우리는 당신이 벌써 사망한 줄 알았습니다!”라고 했다. 의사는 남편과 함께 입원했던 사람이 7, 8명이며, 최근 2년 사이에 암 수술한 사람이 2백여 명인데, 지금은 한 사람도 안 남고 남편 혼자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무슨 영약을 먹고 나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담이 작은 남편은 두려워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웃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내게 말하자, 나는 “왜 파룬궁을 연마하여 나은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어요?”라고 하며 남편을 나무랐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은 것입니다.’라는 쪽지를 써서 몰래 그 의사에게 전해 주었다.

14년이 지나도 남편은 건강하게 살아 있다

작년에 남편과 나는 본명으로 장 고발에 참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출소의 사람이 우리 집에 교란하러 왔다. 나는 집에 없었고, 남편은 그들에게 당당하게 “파룬궁은 그저 좋지요. 나는 파룬궁이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범죄입니다. 당연히 고발해야 하고, 내가 그를 고발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단 말입니까”라고 말했다. 파출소 사람은 할 말이 없어 가버렸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지금은 암에 걸린 사람이 매우 많고, 많은 가정에서 많은 돈을 들여 수술하고, 방사선치료와 화학치료를 하고, 한약을 먹고, 이런저런 치료를 하지만, 결국에는 사람도 잃고 돈도 다 날린다는 것을. 그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파룬따파를 수련하였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도하셨다. 몸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평화롭고 즐겁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를 구도하시어 천당의 아름다운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신다! 우리는 정말 행운이다.!

여기에서 우리 온 가족은 재차 사부님께 머리 조아려 절 올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English Version Available: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7/7/1/164479.html

문장발표: 2017년 6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대법과의 연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25/3500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