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느 날 항목 협조 문제로 동료 수련생과 시비가 붙었다. 동료 수련생은 나에게 “당신은 너무 고집이 세요. 왜 융통성이 하나도 없나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자신이 제고할 요소가 반드시 여기에 있고 또 그가 일깨워주는 것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안으로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성격이 비교적 거칠고 화를 잘 내는 편이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큰 장애에 부딪쳐도 후퇴하지 않아 제법 많은 고생을 했다. 수련의 길에 들어선 후 자신의 심성이 변한 것을 느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너무 따지지도 않고 동료 수련생과 비교적 사이좋게 잘 지냈으므로 개인적으로 고집이 세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바로 면밀히 인식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면에서 일깨워주는 사람이 적었고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도 스스로 알지 못했다.
단순히 글자만 놓고 말하면 고집 셀 ‘강(犟)’은 위의 강할 강(强)자와 아래의 소 우(牛)자로 구성된다. 먼저 이 강할 강(强)자를 말해보자. 나는 말을 할 때 강압적으로 표현한다. 강압적으로 표현해야 다른 사람이 내가 말을 잘 한다고 여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수구를 잘 못하고 말이 많아 누락을 피하지 못했다. 무심결에 함부로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어 그는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워하면서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드러내면 시비가 벌어지고 장벽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러면 구세력의 이간책이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바로 나 같은 사람은 왜 자신을 잘 알지 못할까? 자아 감각이 너무 좋다거나 법리를 비교적 잘 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깊이 파헤쳐보면 이 강압적인 표현은 당문화다. 일반적으로 강압적인 사람은 양보하지 않고 늘 사소한 일을 가지고 따지면서 말썽을 일으킨다. ‘9평’에 악당은 ‘사악(邪), 기만(騙), 선동(煽), 투쟁(鬪), 강탈(搶), 불량(痞), 이간(間), 소멸(滅), 통제(控)’ 9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이 중에 나에게는 적어도 3가지가 있는데 모두 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는 투쟁이다. 강압적인 사람은 보통 모두 쟁투심과 질투심이 있다. 실컷 논쟁하다가 상대방이 그를 설득하지 못하면 득의양양해한다. 그러면 과시심과 환희심이 튀어나와 상대방에게 “저를 설득하지 못하잖아요. 역시 제 말이 맞죠.”라고 한다. 그러나 더 강압적인 사람이 그를 내리누르면 질투심이 나오고, 잇달아 불복하는 마음과 원망이 뒤섞여 올라온다. 이치에 맞지 않으니 들을 필요가 없다거나, 그런 말은 듣기 싫다고 한다. 강압적인 사람은 또 돌출되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사부님의 법으로 다른 사람을 누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일단 상대방이 할 말이 없어 대꾸하지 않으면 일리가 있어도 용서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말할 때에는 조목조목 다 말하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말하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심지어 화제를 바꾸며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말은 억지로 남에게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강탈이다. 강압적인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말 가로채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말이 말도 안 된다거나 자기 말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그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며, 또 이해가 되는 이야기도 가로챈다. 그리고 화제를 돌리거나 발언권을 가로채서는 혼자서 청산유수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런 강탈은 또 다른 방면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면 새롭고 신기한 것을 보고 들으면 누가 자기보다 먼저 말할까 봐 앞 다투어 말하고 또 자신이 무슨 좋은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이 모를까봐 먼저 앞 다투어 말한다. 그리고 귀찮아하지도 않고 어디를 가나 같은 말을 반복 한다.
예전에 동료 수련생이 운전 중에 신호를 위반해 주행차선의 차가 브레이크를 밟아 길을 양보하게 되는 장면을 봤다. 이 수련생은 그러고 나서 듣기 좋은 말로, 시간을 아끼려고 신호를 위반한 거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차에 타면 먼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어떤 이는 예전의 속인사회에서 어떤 책임자 역할을 했다고 과시하며 좋은 일을 자기 공으로 여긴다. 단체법공부를 할 때는 신분이나 지위를 과시하려고 이른바 주요 좌석을 차지한다. 앉기 편하고, 드나들기 편리하고, 빛이 잘 들어오는 곳을 노년 수련생에게 양보할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돈 몇 푼을 위해 물건을 빼앗고 이익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까? 강탈할 ‘강(搶)’이 얼마나 무서운가!
세 번째는 통제다. 먼저 한바탕 논쟁을 해 상대방을 강압적으로 내리누른 다음 다시 발언권을 가로챈다. 뒤이어 자기를 중심으로 말을 통제한다. 일단 말을 가로채면 다른 사람이 다시 말을 못 하게 하거나, 자기 말을 할 만큼 다 하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이 말하게 한다. 이것은 분명한 통제다. 만약 타인이 말참견을 하면 아주 불편해하고 그 다음 다시 강압적으로 말을 가로채는데 여러 번 이런 식으로 한다. 사당(邪党)문화의 ‘관본위(官本位), 일언당(一言堂) (관직과 권력을 숭배하고 한 사람의 말에 모두가 동조하는 것)’ 등 무가치한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셈이다.
아래에 있는 소 우(牛) 자를 말해보자. 나는 때로 사소한 일을 가지고 쇠뿔 끝을 파고들듯 꼬치꼬치 따지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제시하면 늘 자기 말만 되풀이하며 주도권을 잡는다. 표현하는 것 자체가 바로 자아 보호, 자아 견지, 자아 강조, 자기가 본 것, 자기 견해를 고집하는 것이다. 깊이 파보면 사실은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마음이 말썽을 일으켜 다른 사람이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행위는 주로 늘 자신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머릿속은 온통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어떻게 잘못할 수 있지?’ 하는 생각뿐이다. 잘못해도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우긴다. 혹은 말로는 인정했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고집한다. 동기가 불순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옳았고 당신이 잘못이 없다 한들, 또 어떻단 말인가? 법에서 제고했는가?”[1]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강변(強辯)에 부딪혀도 다투지 말지니, 안으로 찾는 것만이 수련이리라, 해석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거니, 마음 비워 집착 없으면 명견(明見)이 나온다네.”[2]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쇠고집은 아주 무서운 집착심으로서 정말로 가지면 안 된다. 밍후이왕을 빌어 수련생들의 일깨움에 감사드린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지설법10-맨해튼설법’[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가: ‘홍음3-논쟁하지 말라’
원문발표: 2017년 6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26/3501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