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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역주해 따라잡자

글/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매우 영광스럽게 대법 홍전 25주년 이 특별한 날에 저의 수련 체험을 나눌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교류하고자 하는 제목은 ‘막판에 역주해 따라 잡자’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시간은 또 이렇게 긴박한데 잘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아직 기회가 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기회조차 없어졌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늦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면 당신은 오로지 뛰어야 한다.”[1]

내가 최초에 대법을 얻었을 때, 내가 수련하려고 한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내가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있고, 인간 세상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진한 그 사람들에 대해서 그들은 2년 사이에 원만에 도달할 수 있다. 너무 좋은 것이다. 그럼 나는 더욱 정진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경문 ‘진수(眞修)’를 인쇄해 그 종이를 내 침대 머리에 붙여놓았다. 이 경문을 읽는 것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었고, 역시 내가 밤에 전등을 끄기 전에 해야 할 맨 마지막 한 가지 일이었다. 나는 몸에 ‘전법륜(轉法輪)’을 지녔다. 나는 늘 이 책을 넣을 수 있는 호주머니가 있는 재킷을 선택했다. 만약 내가 차를 몬다면, 나는 늘 사부님의 9일 강의를 틀어놓았다. 늘 이러했다. 만약 나에게 틈이 있으면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복사했다. 나는 행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련생은 행진을 배치했는데 대법을 위해 나는 나갔다. 건강박람회로 가서 홍법도 했다. 차를 몰고 가고 비행기에 앉아 가도 괜찮았다. 신체에서 감당하는 고통이 클수록 소업할 때 흘러나온 피가 더욱 많았고, 상심할수록 심리적인 충격이 점점 컸고 더욱 좋았다. “사부님, 더욱 나쁜 상황일지라도 저는 해낼 수 있습니다.” “마난들아, 얼마든지 오라. 사부님, 감사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2년 내에 원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1998년인데, 바로 대법이 박해당하기 전년도였다. 하지만 박해가 시작됐을 때 나는 그 2년 동안의 목표를 잊었다. 중생은 구도를 받고 사악은 곧 깨끗이 제거되어야 했다. 나는 2001년 5월 19일 저녁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사부님께서는 캐나다 오타와(Ottawa)에서 설법하셨는데, 우리들에게 발정념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치셨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많은 중생이 우리들에게 곧 소멸될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들을 수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큰소리로 “이렇게 하지 마세요. 나의 사부님 말씀을 들으세요. 만약 당신들이 듣지 않는다면, 나는 곧 당신들을 소멸하겠습니다.” 나는 좀 더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나는 정식으로 모든 중생에게 선고하고 나서 다시 계속 발정념을 발했다. 나는 토론토로 돌아온 후 곧 모든 중생에게 편지 한 통을 쓴 후, 매우 높은 절벽으로 가서 북아메리카의 한 대호수를 굽어보았다. 나는 더는 울지 않고 큰소리로 낭랑하게 내 편지를 읽었다. 종이와 구름에 금빛 빛발이 반짝였다. 구름층이 천천히 산봉우리 앞으로 모였을 때 나는 중생도 역시 모였을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그들에게 계속 교란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장차 사부님께서 요구하심에 따라 발정념을 발해 다른 공간의 사악을 깨끗이 청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기간의 시간을 회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 나는 사실 통념상 재산이 있거나 책임감이 있는 젊은이가 아니다. 나에게는 단지 대법밖에 없었다. 나는 매일 대법에 의해 충실해졌다. 만약 내가 대법을 읽을 수 없고, 대법을 듣거나 대법을 외울 수 없으면 나는 곧 정념을 발하기 전처럼 자신을 청리했다. 그러나 나의 2년의 시간이 지나갔고 정법이 앞으로 추진됨에 따라 나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大法)의 전통을 유지하고 대법(大法)의 수련원칙을 수호하며 착실한 수련을 견지함은 매 대법제자의 장기적인 고험이다.”[2]

매번 이 경문을 읽을 때면 나는 모두 내심으로 사고했다. 이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더 엄숙하게 들렸다. 나는 ‘장기적’은 무슨 의미인지?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 물었다. 이런 생각은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여태 내심으로 이 공포를 찾은 적이 없다. 심지어 지금까지 내가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는 이 공포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이것은 이렇게 심각해져 나는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9일 학습반 설법 비디오를 보러 가면서 아주 잘 아는 속인 친구와 함께 갔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당신은 아주 특수한 사람 중 한 사람이며, 심지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태도가 있으면 안 됨을 경고하셨다고 반복해 말했다. 비록 나는 그들이 맞음을 알았으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이 집착을 보류했다. 지금 회상하면 이 같은 집착은 나의 ‘2년 동안의 목표’와 관계가 있었다. 본질적으로 말하면 나는 시간과 내가 우쭐대는 관념에 집착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수련하기 시작해서부터 나를 도와주시려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듣지 않았다. 수련 과정 중에서 모든 크고 작은 성공으로 이와 같은 집착을 자양했다. 본질적으로 이 집착은 확대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와 자신을 연계할 수 있을지까지 확대했다. 설령 이런 연결고리가 없더라도 말이다. 사부님의 미소에 대해서는 나에 대한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격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점차 나는 중생을 구도하는 동력과 자비를 잃었다. 나는 그 당시 자신의 수련 상태가 매우 취약하게 변했음을 깨닫지 못했다.

사부님은 조사정법을 요구하셨으나 나는 오히려 해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션윈의 사회자가 필요하셨다. 사부님께서 나의 중국어 수준을 검사하실 때, 내 중국어 수준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과거에 나는 중국어를 학습할 많은 기회와 시간이 있었으나 나는 배우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사부님을 실망시켜 드렸다.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배우지 않았는지 질문 받았을 때, 평생 처음으로 말문이 막혔고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전반 수련에서 사부님께서는 모두 나를 보살펴 주셨고 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셨다. 그러나 이번에 나에게 한 가지 일을 하도록 요구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해내지 못했다. 나는 극도로 슬퍼 가능한 한 잠을 많이 잤다. 이렇게 하면 나는 마음속의 고통을 감지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질문 받은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 때문에 배우지 않았는가’, 이것은 나의 수련과 관계됐는데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 상처는 너무나도 컸다. 이로 인해 나는 이와 같은 고통과 수련을 도피했다. 나는 차츰차츰 구실을 찾아 단체 법공부와 활동에 더욱 적게 참여했다. 나는 수련하려는 시도를 멈춘 적이 없다. 그러나 내 노력은 너무 표면적이었다. 나는 좋아지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집착과 완전히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다. 편안함을 느끼려 했는데 이기적인 집착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여태 보지 않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도피했다. 그런 다음 또 영화를 보는 방식으로 도피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때는 연속 두 편을 보았다. 나는 점점 인터넷에 빠졌다. 나는 상심하고 성질이 난폭하게 변했다. 여러 해 동안의 수련을 거쳐 많은 법리가 나를 도와주었음을 의식했다. 하지만 깊이 대법에 용해되고 진수하지 못해 자비심이 증진하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 법선 위의 승객에서부터 배 위에서 떨어져 손에는 여전히 끈을 잡고 있는 사람이 됐다. 파도로 나는 법선에 부딪혀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법공부 팀으로 가서 법공부 할 것을 주장했다. 한 노수련생이 나를 보러 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라며 걱정하는 마음을 말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매우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눈은 보기에 매우 상심하는 것이 비쳤다. 나는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집착을 해체했다. 나는 마음을 열고 그에게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과 그 원인을 알려주었다. 그는 열정적이고 진실하게 일부 간단한 건의를 제기했다. 그것은 내가 천천히 대법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것은 대략 6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뉴욕시에서 근무했고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문제가 나타나면 하루 시간을 들여 법공부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나는 열배로 복잡한 환경 속에 처했고 생활도 열배로 복잡해졌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달리라고 알려주시기 몇 해 전이다. 그러나 나는 단지 일어나서 똑바로 서려 했을 뿐, 여전히 내가 이 문제에 빠진 원인을 보려 하지 않았다. 하나 또 하나의 항목, 갈수록 커지는 약속들은 내가 정법수련으로 돌아오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따라가지 못하면 기적적으로 새로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더욱 정진하는 결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표면적인 행위에서 따라가야 하며 아울러 집착심을 버려야 한다. 만약 잘 하지 못하면 항목을 저애하고 협조인에게 교란을 줄 수 있다. 일체는 모두 매우 엄숙하다.

한 번은 내가 어떤 항목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 항목 협조인은 여러 해 전에 나를 공격했다. 나는 그들을 신임하지 않았다. 그들은 확실히 잘못했다. 게다가 나에 관한 많은 거짓말을 퍼뜨렸다. 나는 완전히 그들을 신임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속인이 아니었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다. 게다가 단지 우리 이 몇 명뿐인데 만약 내가 협조인 때문에 그 항목 중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마치 내가 사부님의 배치가 좋지 않다고 사부님께 알려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치 내가 사부님께 ‘사부님, 저를 위해 다른 사람을 배치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부님을 돕기에 편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치 내가 사부님께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사부님, 다른 사람으로 선택할 수 없는지요? 그들의 모든 업력을 제거하고 그들의 수련을 배치해줄 수 없는지요? 그래야 그들이 나에게 적합해 내가 사부님의 정법을 도울 수 있습니다.’ 나의 이런 생각은 매우 황당하다. 사실 이곳에서 오직 우리들이 서로 돕고 있다. 내가 이 점을 깨달은 후 나는 어떤 항목에라도 투입할 수 있었다. 더는 누가 협조인인지 관계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나는 매우 명석해졌다. 좋던 좋지 않던 쟁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는 수련생과 쟁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헬스 전문가이며 늘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막판에 힘을 내야 하는지 가르친다. 일반인에게 있어서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심장이 아프거나 폐에 열이 날 수 있고 목안이 건조하며 복사뼈를 삐고 무릎이 비틀리거나 쓰러지며 심지어 구토할 수 있다. 수련 과정 중에서 막판에 역주하기란 더욱 어렵다. 특히 앞서가는 이를 따라잡으려 시도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일체가 막아설 것이고 감당해야 하는 몫이 갑자기 소실되지도 않는다. 수련하려면 장애물을 돌파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을 믿으며 그 힘은 나에게 가속도로 작용한다. 하지만 내가 해낼 수 있다고 보증할 수는 없다. 중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최근에야 안일함과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나의 몇 해 동안의 노력을 막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매우 뚜렷하게 보였으나 나는 그것과 마주할 수 없었다. 나는 반드시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했고 이로써 교만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며 편안함을 가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집착은 나의 의지와 내가 구도해야 할 중생을 무너뜨렸다.

현재 나는 매일 중국어를 배우고 자신의 사업을 경영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생각돼 휴식도 하지 않는다. 지금에서야 자신이 막판 역주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자신에게 막판역주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

최근 영광스럽게 뉴욕 북부 미들타운(Middletown)에 위치한 페이톈(飛天) 예술학교에서 체육교사를 담당하게 됐다. 이 학교는 사회로부터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미국과 전 세계 학생이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환영하고 격려한다. 하지만 제1기 학생은 모두 대법제자였고 90%는 모두 중국어로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반인이 접수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하는가가 절박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속인사회에 부합돼야 했고 그래야 그들을 구할 수 있다. 영어문화가 매우 강대한 미국 다문화 환경에서 더욱 중요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소수자인 한 사람으로서 나는 특수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중국어 배우기가 절박한 나에게 있어서 이는 접수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나는 왜 이런 정황에 봉착했을까?

안으로 찾아보니 중국어를 배우려는 집착으로 자신의 교만한 관념을 자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중국인이 되고 싶어서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 내가 중국어를 배움은 여러 가지 언어로 교류하고 싶어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언어 자체에 대해 사고하게 됐다. 또 언어가 정법 중에서 역할이 무엇인지도 사고했다.

최근에 나는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해 그것들의 서면언어를 인류에게 전달하는 내용의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일종 비선형(非線) 상형문자로 된 서면언어였다. 사진으로 보면 마치 한자와 같았으나 상형문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진은 추악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선형문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우리의 시공에서 선형이나 그들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 이런 ‘비선형언어’는 사람들의 사상에 영향을 줄 것이고, 그들과 시공간의 관계를 개변하고 과거와 현재, 장래의 과정을 개변할 수 있다. 당연히 이것은 한계가 있는 현대 과학에 근거한 것으로, 시공의 이해에 대해 한계가 있었으나 원칙은 명확했다. 언어는 매우 중요하다. 이는 우리의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일종 문화를 그 속에 용합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중생끼리의 소통 또는 중생 내부와 그들 작은 울타리 지간의 교류다. 마치 우리가 미들타운에 설립한 페이톈 예술학교 이 작은 울타리와 같다.

영화 관람 후, 대법제자인 나의 중국어 선생님에게 어떻게 해야만 전체적으로 중국어를 이해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한자는 모두 작은 문자 부호로 구성된 것인데 마치 미세한 입자가 더욱 큰 물질을 구성하고 이런 물질이 무수한 층의 우주와 무량한 중생을 구성한 것과 같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중국어는 무궁무진한 한자와 의미의 배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예를 들었다. 한 폭의 그림은 천개에 달하는 글자를 감당할 수 있으며 한자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사람이 배우고 다다를 수 있는 층차와 의의는 끝이 없다. 이 외에 진정한 한자 서예는 일종 예술이고, 구두어는 음악의 성조를 띠고 있다. 현대 신경과학가는 예술과 음악에 대한 학습은 정상적인 지식 연구에 비해 사상을 더 분발시킬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인류에게 유익한 이러한 것들은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표준 중국어에 들어있다.

내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원인은 대법이 중국어로 전해졌고, 곧 법정인간 시기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중국어로 법공부를 하게 하려면 우리가 이 공간에서 초범적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한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학교를 설립하고 있으나 비참한 것은 당(黨)문화가 매우 큰 파괴 작용을 했다. 언어를 전수하는 문화는 당문화로 해낼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중국어를 학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언어를 배워 다문화를 이해해야 함이 필요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한 공부가 아니며 더욱 큰 범위에서 사부님을 도와 중생구도를 하려는 것이다. 많은 것에서 우리는 바르게 걸어야 하며 미래의 인류를 위해 길을 다져놓아야 한다.

요즘 나는 다른 공간에서 안일심과 관련된 물질과 중국어 공부를 가로막는 물질을 겨냥해 발정념을 한다. 잇따라 생활상 더욱 많은 고난이 생겼고 시간이 더욱 빠듯해졌다. 이는 사악이 나의 의지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이나 최종적으로 고생을 낙으로 여겨야 함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므로 나는 배로 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존경하는 사부님, 수련생 여러분, 저는 과거에 굽은 길을 걸은 적이 있으나 다시는 굽은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든지, 어떻게 어렵든지 막론하고 우리는 반드시 잘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7년 뉴욕 법회 발언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속인 마음을 버리고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자’

원문발표: 2017년 5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9/34838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7/5/21/1639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