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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속에서 영원히 자신을 수련해야

/ 산시(陝西) 대법제자

[밍후이왕] 누가 맞고 누가 틀린가? 이 문제는 우리가 모순에서 집착하는 핵심문제다. 지금 속인으로 말하면 맞고 틀린 것은 도덕표준으로 가늠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표준에서 판단한다. 수련인으로서 어떻게 이 문제를 대해야 하는가? 사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모순에서 속인 중의 맞고 틀린 것을 따지지 않고 잘못한 것은 영원히 우리 자신이다. 혹은 모순은 우리가 계속 제고를 위한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찾을 수 있어야 비로소 제고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아래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후천적 사람의 관념과 자신의 주의식을 분간하지 못하다

모순에서 맞고 틀린 것을 판단할 때 당신은 후천적 관념으로 판단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주의식이 법에서 판단하는지 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대다수 사람은 후천관념이 당신을 좌우지 하고 있기에 똑똑히 분간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성격이 급해 일을 느리게 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어떤 사람은 일을 할 때 신중해서 세심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표현하기 좋아해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깨끗하고 청결해 위생에 주의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등등이다.

속인의 이치로 신중하고 청결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일하는 효율이 높아 모두 바른 이치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울 좋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우리의 생각대로 하게 한다. 만약 상대방이 개변하지 않으면 원망, 질책하고 불평한다. 지금 우리 수련인의 각도로, 법에 입각해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로 맞는가?

인간세상의 맞고 틀린 것은 수련인이 판단하는 맞고 틀린 것의 표준이 아니다. 이 일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집착심을 찾고 자신을 바로 잡으며 법에서 제고해야 비로소 수련인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때 자신을 보면 후천적 관념에 현혹돼 집착하는 마음에 동요돼 우리는 수련생과 간격, 모순이 생기고 법에서 문제를 보지 못한다. 사실 잘못한 것은 자신이다.

2. 억울함을 당해도 업을 갚는다는 것을 분간하지 못해

많은 수련생은 억울함을 당한 경험이 있다.(개인 생활에서 억울함을 당함, 박해와 관계없음) 내 앞에서 몇 명 수련생이 통곡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수련생이 배신했다며 억울해 했고, 어떤 사람은 남녀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억울함을 당했고, 어떤 사람은 수련생의 돈을 가져가고 갚지 않았다는 억울함을 당했다. 처음에 나도 이런 수련생에게 대우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왜 유언비어를 곧이곧대로 듣는지 생각했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을 위해 해석하고 억울함을 밝혔다. 그때 나도 수련생의 정에 눈이 멀었고 거기에서 빠져나와 법 중에서 이 일을 보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1]

사부님께서 수련 중에서 부딪힌 마난의 근원을 말씀하셨다. 단지 우리는 그 속에 빠져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당신이 억울해 통곡할 때 당신이 생전에 상대방에게 이런 억울함을 당하게 했다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이보다 더 심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인과 관계가 있다. 수련인은 우연한 일이 있을 수 없다. 모두 자신이 나쁜 일을 해서 업을 빚은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많이 감당하셨다. 우리는 갚아야 하지 않은가? 사부님께서 이 일을 이용해 우리에게 소업을 해주는 동시에 자신을 제고한 것이다. 당신이 억울함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예에 손해가 갔다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명을 구하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뭘 그리 고통스러워 할 필요가 있는가? 수련인으로 아주 기쁜 일이고 마음속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억울함을 당한 일에서 넘기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이런 업을 갚고 또 제고할 수 있는 좋은 일에서 우리는 절대 이런 기회를 잃으면 안 된다.

3. 수련생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다

우리 매 사람이 수련의 일념을 보낼 때 그가 어떻게 수련하든 고층차에서 보면 이미 금처럼 반짝이는 소중한 생명이다. 더욱이 우리는 조사정법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히 여기고 고층생명도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데 우리는 서로 다투고 얕잡아 볼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집착심과 관념에 끌려 한 행위다. 진정한 우리는 우주 특성에 동화됐다. 그들이 반짝이는 금처럼 눈부신 빛이 우리 마음을 비출 때, 그들 매 사람이 법에 동화된 미덕을 볼 때, 더욱이 그들이 수련 중 곤두박질하며 지금까지 걸어오고 확고하게 끊임없이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의지력과 위덕을 보고 사부님께서 우리 주변 대법제자를 모두 소중히 여기고 계신다. 이때 당신은 수련을 잘하지 못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정념에 있기에 상대 수련생의 수련을 잘하지 못한 부분은 그의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한 그런 나쁜 것은 점차 수련에서 바로 잡히게 된다.

우리 함께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배우자. “수련은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모순이 있을 때, 곤란과 불공평한 대우가 있을 때 여전히 자신을 찾아 안을 향해 볼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련으로, 비로소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으며,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2]

지금 자신을 수련함에 대한 인식은 모순이 생길 때나 문제가 생길 때 머릿속에 즉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자신의 잘못을 찾는 것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내 이해는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바로 수련인의 진정한 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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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만법회에 보내는 축사

원문발표: 2017617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18/3498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