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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묻다

/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느 날 작업량을 통계할 때 내가 한 항목 중 일부 작업은 1년 전에 동료가 한 내용임을 발견했다. 이번에 나는 프린트와 정리를 했을 뿐이다. 이 부분 작업량을 내 명의로 기록할 것인지 아니면 동료의 명의로 기록할지 고민했다.

이번에 내가 프린트하고 정리했기 때문에 내 명의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동료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고 다른 동료들도 다 이렇게 했다. 그런데 내 이름을 기록하자니 찜찜했다. 분명히 동료가 한 것인데 이건 다른 사람의 작업량을 훔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동료 이름으로 기록해야지! 동료 이름을 기록하자니 마음의 평형을 잡지 못했다. 내가 항상 어려운 것만 하고 이득을 조금도 보지 못한 것 같았고 이번에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 때마침 이 부분이 이전 것과 중복된 것인데 훔친 것으로 간주할 수 없지 않을까?

사람 마음이 일어났다가 잠시 후 정념이 올라왔다가 하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법제자다. 이어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을 사부님으로 삼아야 한다. 계속 나에게 물었다. 법에서는 어떻게 요구했는가?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연공(煉功)하는 사람이 무슨 재물을 구하겠는가?”[1] 나는 순간 확 트이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하늘의 공적을 훔쳐 자기의 공적으로 삼는 수련의 대금기를 범할 뻔했다.

나에게 물은 후 정말 많이 명석해졌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았다. 법이 생각났고 많은 사람 마음(명리심, 평형을 잡지 못한 마음, 질투심, 탐욕)도 발견했으며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속인 사회에서 생활하면 곳곳이 다 함정이고 시시각각 시련이 있다. 수련인도 사람 마음이 있어 생각이 사람과 신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을까? 늘 나에게 물었는데 안으로 찾는 한 가지이며 자신을 수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기에게 물으면 찰나에 그것을 잡을 수 있고 경계하고 깨달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비록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각자(覺者)처럼 그렇게 강하지는 못하지만, 매번 그릇된 염두가 나타나면 즉시 그것을 포착하는데, 그것이 그릇되었음을 아는 것은 당신의 수련이 잘된 그 부분 사상이 이미 아주 강해져 그것이 작용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 좋지 못한 사상이 나오기만 하면 곧바로 의식하고 그것을 잡는다.”[2]

자기에게 묻는 것은 본인의 사상을 거르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반응되어 나온 모든 사상을 정말로 모두 걸러내야 하며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이며 어느 것이 좋지 못한 사상인지 걸러내야 한다. 나쁜 사상은 역시 그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2] 사람은 관념을 쫓아가기 쉽다. 수련인의 주의식도 관념에 이끌리기 쉬우며 어떤 땐 아주 멀리 기울고도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그때 나처럼 생각할수록 내가 손해를 본 것 같고 점점 실속을 챙기려 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점유하려 한다. 때문에 제때에 본인 생각을 거르고 제때에 좋지 않은 행위를 멈추는 것이 아주 필요하다.

그 후 어느 날, 내가 친구 집에서 돌아올 때 방금 큰소리친 모습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방금 과시하고 자기를 실증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왜 널리 자료를 인용해 증명하고 장황하게 늘어놨을까? 자기에게 물으면서 또 아주 강한 자기를 실증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는 마음을 발견했다.

자기에게 묻는 것이 안으로 찾는 것이고 자기를 수련하는 것이며 주의식을 강화하는 것이고 정념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나의 좁은 식견일 뿐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깨우침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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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서부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7620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20/3498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