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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대법 수련자 중의 보통 일원일 뿐

/ 허베이성 대법제자 샤오리

[밍후이왕] 나는 수천수만의 대법제자와 마찬가지로 아주 평범한 대법 수련자이다. 20년의 수련과정에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날마다 있다. 대법의 신기함, 사존의 자비와 위대함, 나와 집 가족, 친척과 나의 백 세 어머니가 대법에서 얻은 은혜를 말하자면 끝이 없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 사례만 말하여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살아나다

1997, 나는 많은 병에 시달렸다. 만성 신염, 부종, 허리는 두 쪽으로 갈라진 듯 쑤시고 아팠으며 다리, 머리가 아팠고, 자궁 종류(아래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부인병, 산욕열, 협심증, , , 다리 경련, 온 치아가 다 흔들리고, 신경증에 눈마저 거의 실명에 이르렀다. 매년 의약비는 만 위안(한화 약 166만 원)에 달했고, 한약, 양약, 회도문(會道門), 입원치료 모두가 소용없어 그야말로 사는 게 죽기보다 못했다. 나중에 몰래 수면제를 사놓고는 남은 인생을 끝내기로 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들딸을 보니 참으로 힘들었다.

팔자이니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되겠다. 마음씨 고운 오빠가 전법륜한 권을 보라고 가져왔다 뭐 어떻게 좋다며 병을 없애고 무슨 소업 한다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정말 농담을 해도 분수가 있지, 내 눈이 아무 글자도 보이지 않는데 그렇게 두꺼운 책을 나더러……, 그는 책을 놓고 가버렸다. 나의 병은 갈수록 심해졌고 나중에는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어느 날 어디에서 온 힘인지 벌떡 일어나서 전법륜을 들고 보고자 했다. 책을 펼치고 눈을 찌푸리고 보았다. 책은 눈에서 한 치 거리에 있었고 한 글자씩 어렵게 보았다. 잠시 보고나니 눈이 몹시 아팠고, 머리도 빠개질 듯 아팠다. 나는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벽에다 쪼아대고는 눈을 감고 누웠다가 좀 완화된 것 같아 이어서 또 보았다.

바로 이렇게 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신체는 점점 더 좋아졌다. 나는 내 병이 나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는데 책 속의 그 알기 쉽고 심오한 이치가 나를 매우 깊게 끌어당겼다. 반평생 알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나는 보배를 얻은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을 나는 언어로는 형용할 길 없었다. 이 책을 나는 두 달 동안 보았고, 모든 병적 증상은 다 사라졌다. 그때로부터 나는 수련의 길로 걸어가는 행운을 지니게 됐다. 그때로부터 나는 병과는 인연을 끊게 되어 지금까지 약 한 알 먹지 않았다.

나는 내가 심신 건강무병하여 일신이 가볍다는 것에 진정으로 도달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올해 59세인데 길을 걸어도 마치 애들처럼 늘 퐁퐁 뛰고 싶다.

내 신체의 커다란 변화, 심성의 승화로 나의 시댁, 친정의 몇 세대 사람이 모두 ‘3했고, 파룬따파는 정법이란 것을 믿고 전후로 여러 친척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고모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은 진작 끝장났을 겁니다.”

며칠 전 나의 큰아버지 아들이 술좌석에서 폐부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정말이지, 우리 집 고모가 대법 수련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집은 진작 끝장났을 거요! 정말이요! , 이건 진심의 말이요!”

조카들은 나를 고모님’(老姑)이라고 부르지 숙모(老婶)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고모라고 부르는 게 더 친근하다고 여긴다.

수련 전, 나는 아들이 4살 되는 해 딸을 임신한 지 5달이 됐는데 오빠는 올케를 종용하여 내 집 문을 막아서서 쉴 새 없이 욕을 퍼부어댔다. 나는 그녀에게 도대체 왜 나를 욕하느냐고 물었다. 만약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다고 말하면 나는 꿇어앉아서라도 올케에게 사과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시비를 따지지 않았고 나는 그녀와 변론했더니 그녀는 나의 뺨을 후려쳤다.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집안 어른처럼 존경했고, 임신했는데도 나를 때렸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하마터면 농약을 마실 뻔했다.

후에 그들은 강압적으로 우리 집을 샀는데 스스로 값을 정하고 스스로 문서를 작성하고는 그들의 큰아들을 시켜 나의 남편을 불러다 억지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게 했다. 남편은 5천 위안(한화 약 83만 원)을 들고 와서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당시 우리 집 값은 만 위안(166만 원)은 되었다. 이때에야 나는 그들이 왜 찾아와서 싸움을 걸었는가를 알게 됐다. 우리를 쫓아내고 우리 집을 가지려고 한 것이다. 그때로부터 우리는 풀지 못할 원한을 맺었다! 여러 해 동안 왕래하지 않았다. 큰 조카가 결혼하게 됐는데 누가 나서서 화해시키기에 나는 억지로 조카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1997년 나는 대법을 얻었다. 법에서 이런 것을 배웠다. “나는 여러분에게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1] 나는 격동되어 전법륜보서를 안고, 진심 어린 마음을 품고 오빠 집에 가서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파룬궁을 배웠어요, 이 책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겠는가를 가르치고, 은혜와 원한을 풀어 가정이 화목하게 할 뿐만 아니라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데 신기한 효과가 있어요. 이 책은 사람에게 무엇이 수련인가, 수련하여 최후에는 반본귀진하여 불, , 신으로 된다고 알려 주었어요. 당신들이 보고 난 후면 이 이치를 알 것이고 당신들 부부간은 싸우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늘 싸운다) 누군들 행복하고 아름답고 원만한 가정이 있기를 바라지 않겠어요!”

그들은 나의 진심에 감동되어 쌍쌍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하지만 아주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막 배운 지 두 달 만에 중공의 광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나는 늘 납치당하고, 구금, 노동교양, 가택수색 등으로 엄중한 박해를 당했다. 그들은 박해당할까 두려워 수련을 그만두었다.

나는 수련을 하면서부터 대법의 소중함을 깊이 알게 되었고, 사부님 말씀을 듣고 곳곳에서 남을 배려하였으므로 우리 관계는 내내 아주 좋았다. 작년의 어느 날, 큰 조카며느리가 내 집에 와서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결혼할 땐 고모가 우리에게 준 돈이 아주 적었지만 내 동생이 결혼할 땐 그렇게 많은 돈을 주었나요? 나는 그때 내가 너희 혼례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괜찮은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시어머니와 싸운 일을 간단히 알려 주었다) 너의 남동생이 결혼할 때 나는 이미 파룬궁을 수련했으므로 지나간 일을 따지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준 돈도 많게 되었다고 했다. 생각 밖에도 그녀가 집에 돌아가서 남편과 시부모에게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큰 조카는 나에게 반기를 들었고 몹시 듣기 어려운 말로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와 따지지 않고 속으로 자신을 책망했다. 지나간 일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남의 약점을 꼬집는 것이 아닌가?

며칠 후 오빠가 내 집에 와서 식사하게 됐는데 남편이, 한 반찬은 젓가락으로 집기 어려웠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숟가락을 가져다주었더니 그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 질렀다. “, 날 짜게 먹여 죽이려는 거냐?” 내가 말했다. “그래요? 짠가요? 내 맛보죠, 아유, 짜네요.”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그는 트집을 잡으려 했으나 내가 화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사과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계면쩍어 했다. 그 며느리가 전한 말에 대해서 나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바로 이렇게 되어 한 차례 풍파가 가라앉았다.

작년 둘째 조카가 새집에 이사 가게 되어 친구 친척을 초대해 축하주를 마시기로 했다. 축하주를 마시기 전날 남편과 상의하고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집에 갔다. 아파트 안에 막 들어서자 마침 둘째 조카가 요리사 몇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고 돌아온 것을 보고 나의 남편은 좀 불쾌해서 이 막내 삼촌을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탓하면서 농담 삼아 너 이 가짜 둘째야 하고 말했다. 그때 나도 개의치 않았고, 남편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째 조카는 이미 화가 나서 욕설을 하면서 술기운을 빌어 화풀이했다. 우리를 쫓아내면서 앞질러 나가 나의 남편을 때리려고 했다. 남편은 우리가 가자고 했다. 나는 우리는 어른이고 그는 애이므로 식견이 같아서는 안 되며, 이렇게 가 버리면 내일 어떻게 또 올 수 있냐고 말렸다. 하지만 둘째 조카는 미친듯하여 누구도 그를 끌어당길 수 없었다. 내가 보니 안 되겠기에 그래도 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간 일이 크게 번질 것 같아 우리는 돌아왔다.

오는 길에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내가 어디서 잘못 했는가. 아니면 잘못 말했는가? 남편은 화가 나서 줄곧 욕을 해댔다. 나는 그를 타일렀다. 그래도 우리가 잘못했다. 당신은 그를 가짜 둘째라고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 애는 얼굴을 붉히는 사내인데 그가 오늘 이렇게 큰 화를 낸 것도 이 한마디 때문이 아닌가. 그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불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애에게 존경하게 하려면 친아들처럼 대해 줘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그 애 집에 쌍둥이 둘째가 태어나자 심장에 구멍이 있어 수술해야 하는데 그때 그에게 돈이 없었다. 그에게 돈을 주어 수술하게 했는가? 안 했다.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파룬궁 수련을 하여 늘 잡혀가 나는 혼자서 두 아이를 거느리고 엄마 노릇도 아빠 노릇도 하면서 늘 안절부절못하고 살았는데 언제 그런 걸 다 돌볼 사이가 있었겠는가?” 내가 말했다. “그래요, 당신은 어려웠어요, 만약 자신의 손자라면 당신은 돈을 안 내놓을 수 있겠어요?” 그는 말이 없었다. “또 더 말한다면, 그들이 식당에 가서 식사한 것은 내일 어떻게 식단을 짤 것인가를 상의하기 위해서인데 당신이 가서 뭘 해요? 그들은 모두 젊은이들인데 당신이 그곳에 가서 앉아 있으면 그들도 부자연스러울 거 아닌가요. 무릇 그래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자신을 봐야지, 그렇지 않은가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남편의 화도 가라앉았다. 나는 사존님의 일에 부딪혀 안에서 찾는다.”[2]를 생각하고 자신을 바로잡고 심태를 단정히 하고 많이는 그들을 배려했다. 나는 올케에게 전화로 그가 어떤지 물었다. 올케는 말했다. 우리 몇 사람이 억눌러도 그를 누를 수 없었고, 탁자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모두 부수어 버렸는데 마치 무슨 부체가 붙은 것 같다. 세 시 무렵에 조카 아내에게 전화로 조카가 어떤가를 물었더니 막 잠이 들었으니 고모도 쉬라고 했다. 아침 7시가 넘은 후 또 둘째 조카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둘째야, 좀 어때?” “아유, 고모님, 어제 너무 많이 마셨어요내가 말했다. “괜찮아, 오늘은 기쁜 날인데 우리 절대 많이 마셔서는 안 돼, 새집에 이사 가서 새 아파트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냐, 소중히 여겨야지.” “그래요, 고모, 나 알았어요. 잠시 후 오세요.” 나는 잠시 후에 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나는 그와 몰래 말했다. “고모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네가 말해 봐, 이렇게 할 수 있겠어? 늘 파룬따파 하오(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하는 것을 잊지 마라!” 그 아이는 연속 머리를 끄덕이며 알았어요, 알았어요.”라고 했다.

큰 시누이의 이야기

내가 젊었을 때 큰 시누이는 남편을 꼬드겨 나와 싸우게 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몇 년을 왕래하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옛날의 나쁜 감정을 털어 버리고, 일체 원한을 일소해 버렸다. 몇 년 전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 살게 되었고, 나는 늘 그녀가 즐겨 먹는 반찬을 해서 주었다.

그해 시누이는 갑자기 뇌출혈에 걸려 인사불성이 됐다. 나는 얼른 나의 며느리에게 전화로 너의 큰 고모가 병원에 있는데 오래 못 갈 것 같다고 했고, 아들에게 며느리를 어서 오게 하라고 일러 주었다. (나의 며느리는 고급 간호사로서 병원에 출근) 그녀는 나의 전화를 받고 몇 분 사이에 병원에 도착했다. 며느리는 병원에 도착한 후 재빨리 병원의 의사와 함께 톈진 무장경찰 병원에 연락하였고, 재빨리 시누이를 구급차에 태우게 됐고 내 아들과 며느리가 줄곧 호송했다.

그건 정말이지 목숨이 분초를 다투는 때였다. 수술을 거쳐 목숨을 부지했다. 깨어난 후 살아난 과정을 알게 된 그녀는 사람을 만나면 말했다. “내 동생의 아내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우리는 친자매보다 더 친하다.” 또 파룬궁이 어떠어떠하게 좋으며, 올케는 어떻게 좋다고 했다.

그녀가 늘 속인과 파룬궁이 좋다고 말했기 때문에, 신체 회복이 아주 좋아서 그렇게 심한 뇌출혈이지만 조금도 후유증이 없었다. 몇 년 전에 그녀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다. 80살이 될 사람이 일부러 날 보러 왔는데 내 집 6층으로 남의 부축 없이 올라왔다.

우리 매 대법제자의 언행이 바로 자신이 수련한 진실한 모습이며, 어떤 의미로 말하면 대법의 형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어 중생에게 내뿜는 것은 진실, 너그러움, 자상, 자비의 에너지다. 그래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유하기는 비교적 쉬운 것이다.

친정 가족의 이야기

2003년에 나의 언니가 중병에 걸려 머리카락이 다 빠졌고 남은 머리카락은 썩은 삼 검불 같았으며 쓴 탕약을 더는 마시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주동적으로 나를 찾아와 파룬궁을 배웠다. 두 달이 안 걸려 까맣고 반들거리는 갓난아기의 머리카락 같은 머리가 자라났다온 집 식구는 기뻐서 야단이었다.

둘째 올케의 다리가 갑자기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했다. 둘째 오빠는 둘째 올케에게 전기 자동차를 사주어 법 공부하러 다니게 했다. 그녀의 다리는 재빨리 나았다. 2년 전에 둘째 올케에게서 혈압이 높고, 혈당이 높고, 혈액지질이 높은 삼고(三高)가 검사에서 나타났다. 그녀의 여동생은 스자좡 병원의 의사인데 그녀에게 입원치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치료할수록 더 중해졌고, 다크서클은 판다와 같았다. 나중에 스스로 고집하여 집에 돌아왔다. 돌아올 때 그녀 여동생은 그녀에게 약 한 뭉치를 주었으나 돌아와서 다 버렸고, 파룬궁을 배우니 재빨리 다 나았다. 원래 둘째 오빠는 파룬궁이 박해당함으로 늘 반대했다. 우리 이 대 가정에서 나타난 기적은, 그가 파룬따파 하오를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역시 둘째 올케의 수련을 지지하게 되었다.

나의 셋째 오빠가 지난해 뇌출혈에 걸려 코에서 피가 흘렀고 병세가 아주 심했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을 연마하고 싶지 않는지 물으니 연마하라면 하지하고 말했다. 연공한 지 얼마 안 되어 병이 나았다. 65살인 그는 지금 얼굴이 불그스레한데 그야말로 희고도 불그스레하다.

나의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약 보따리이다. 의사는 그의 병에 대해 몹시 머리 아파한다. 어머니는 늘 허열이 왕성하고 체질이 허약하다. 보약을 먹으면 화가 더 왕성하고 화를 죽이는 약을 먹으면 허약한 신체가 감당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98년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녀는 글도 모르고 귀도 먹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부터 늘 어머니의 병을 봐 주던 의사가 그의 신체를 검사하고 나서 놀랐다. 각 방면이 젊은이보다 더 건강하다는 것이다.

어머니 몸에서 나타난 기적은 더욱 많다. 어느 해 여름, 물 주전자 바닥이 떨어져 막 끓기 시작한 한 주전자 물이 죄다 그녀의 발에 쏟아졌다. 그녀는 대법을 믿으면서 양말마저 벗지 않고 보지도 않으면서 할 일을 다 했으며, 계속하여 80여 세의 남편을 시중들었다. 저녁이 되어 발을 씻을 때 양말을 벗고 보니 단지 아주 옅은 붉은 점이 있었을 뿐이었다.

한번은 그녀가 넘어져 발가락이 뒤로 향했다. 80이 넘은 그녀는 바닥에 앉아서 손으로 발을 힘껏 잡아당겨 억지로 제자리로 오게 했다. 어머니는 전족을 한 작은 발이었다. 또 두 번이나 골절됐지만, 치료 없이 나았다. 어머니는 올해에 마침 백 살인데 여러 번의 생사고비를 넘겼다. 그녀의 비결이란 곧 믿음이다, 사부님에 대하여, 대법에 대하여 추호의 의심도 없다!

나의 연공으로 가족이 받은 수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연공 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3] 그러므로 남편이 늘 먼 길을 떠나도, 아이가 외지에서 공부해도 나는 모두 아주 시름을 놓는다.

89년 여름, 남편이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으나 깨어난 후 아무 일도 없었다. 남편이 앉은 차는 화물칸을 단 20m 길이의 큰 트럭이었고 차 앞쪽 부분은 긴 코 형이었다. 기사는 피로하여 졸면서 차를 운전하다가 한 화물차와 추돌했다. 그때 남편은 조수석에 누워서 잠자고 있었다. 기사는 사고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젠 피하기 어렵게 되어 본능적으로 핸들을 돌려 최대 위험을, 조수 운전사 좌석에 향하게 했다. 관례대로 하면 부 조수 좌석에 누운 남편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일이다. 긴 차 앞쪽이 차 안으로 부닥쳐 들어갔으니 양쪽의 문조차 열 수 없었다. 기사는 부근의 시공팀에 구해 달라고 고함쳤다. 시공팀 사람은 지렛대로 문을 부수어 열고 까무러친 남편의 발을 잡아당겨 꺼낸 후 현지 병원에 보내 응급처치했다. 남편의 머리에는 많은 피부 외상이 있어 의사가 여러 곳을 꿰맨 후 남편도 깨어났다. 골절도 없고 내상도 없어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겼다.

그가 집에 돌아온 후 내가 말했다. “당신의 팔자에는 마땅히 큰 난이 있을 것인데, 사부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구해 주셨기에 당신은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는 감사만 있을 뿐인데 또 무슨 돈을 요구할 게 있어요!”

사고를 빚어낸 기사의 문제를 처리하는 면에서 우리는 조금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고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또 자비로 차를 세내어 그에게 증명을 떼 주어 현지 교통국에서 기사의 차를 놓아주게 했다. 후에 남편은 날마다 2시 좀 넘으면 한동안 혼미한 상태가 나타났다. 나는 그에게 괜찮으니 진심으로 파룬따파 하오를 염하면 재빨리 나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후에는 그도 언제 다 나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의 신체는 젊은이보다 더 건강하다.

아들은 23살 때 한 차례 큰 화재를 만나 그는 겁에 질린 나머지 불 속으로 뚫고 들어갔지만, 상해를 받지 않았다. 일이 지난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너 왜 불 속으로 뚫고 들어갔니? 살고 싶지 않아서냐?” 그가 말했다. “아뇨, 도대체 왜 그런지 보려고 그랬는데 뚫고 들어갈 수 없었어요, 그 불이 나를 밖으로 밀어냈어요.” 내가 말했다. “어리석은 애야, 그건 사부님께서 너를 구하신 것이다!”

큰 손자가 두 살 남짓할 때 수족구병에 걸려 온 입안이 다 헐어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으면서 성심껏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염했고 그에게 발정념 반 시간을 해주었다. 아이는 깨어나자 먹기도 마시기도 하면서 퐁퐁 뛰어다니는 것이 아무 병에도 걸린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온 집에서 나 한 사람만이 파룬따파를 수련하지만, 가족에게는 모두 병이 아주 적다.

나의 이야기는 아직도 매우 많다. 사실 무슨 이야기라고 할 수 없고 진실한 역사일 뿐이다. 사람은 만약 실증 과학의 사유 방식에 따라 이런 초상적인 사물을 인식한다면 당신은 아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증 과학은 신불의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급 생명은 사람이 그를 부정한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를 믿고, 존경하면 그는 당신에게 신기함을 펼쳐 보일 것이고 그는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수련인이 모두 이 점을 증명했는가. 당신이 믿지 않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실이다.

중공은 국력을 다 쏟아 파룬궁을 탄압하지만, 오히려 전 세계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게 만들었다. 국내에서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박해는 문화대혁명의 홍색 테러를 훨씬 초과했지만, 사람들은 강권 폭력에 굴하지 않았고, 99‘720’이후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박해에 참여한 중공의 크고 작은 관리가 악보 받는 사례는 날마다 대량 나타나고 있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독자 여러분께서 이 문제를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명백해졌다면 당신의 인생길에는 전환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진상을 알고 좋은 운명을 맺기를 축복한다!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캐나다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 3 – 대뉴욕지역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원문발표: 201768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수련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제고하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6/8/3493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