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513경축 특집원고) 제18회 세계파룬따파의 날이 다가왔다. 이 성대하고도 상서로운 날에 나는 비할 바 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의 수련 중의 몇 단락을 써내어 이것으로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을 증명하고자 한다.
1995년, 남편은 몸에 병이 있어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모 기공에 막 접촉(당시는 어느 것이 부체인지 알지 못했다)해서 아직 깊이 배우지 못했다. 모 공을 가르치는 여인은 남에게 병을 봐주면서도 나에게는 병을 봐주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는 무슨 병이라는 건 없었지만 그저 호기심이 있었다. 나는 그녀 앞으로 나가 말했다. “선생님 나의 병도 봐주세요.” 그녀는 나를 흘깃 바라보고는 한 마디 했다. “파룬상전(法轮常转)”[1] 그리고는 더는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의심이 좀 갔다. 비록 당시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지만 파룬궁의 책은 보았으므로 “파룬상전’이란 파룬궁의 말임을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모 공의 흉장 하나를 샀는데 도금한 기린이었다. 나는 가슴에 달고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막 남편에게 자랑하려고 했는데 그 작은 기린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가 어려서부터 세상에는 신불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오성이 있는 셈이었다. 나는 즉각 생각했다. 남편이 파룬궁을 연마하니 그 물건은 나의 집에 감히 들어오지 못했고 그 여인도 나에게 ‘파룬상전’하고 말했는데, 파룬궁의 사부님이 나를 책임지고 계신다고 그녀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하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모 공을 포기하고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인연을 깨닫다
파룬궁 수련을 한 후 남편은 신체가 급속히 건강을 회복하여 얼굴 혈색이 아주 좋았다. 그는 나의 참여로 더욱 신바람이 났다. 날마다 법 공부, 연공, 출근, 가사일 등 갖가지 일을 조금도 그르치지 않았다. 나도 불법의 은덕에 빠져 가정의 화목과 안녕을 향수하게 되었다. 그 한 동안은 내가 태어난 이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1999년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로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우리는 수련 환경을 잃었고 수련에 게을러지게 됐다. 남편의 사업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고 늘 연장 근무, 추가 근무를 하게 됐고, 어떤 땐 온 밤을 지새우기도 하여 법 공부, 연공 할 시간이 없었다. 몸에 이상이 나타나고 심성도 떨어졌다.
그들 직장은 개혁을 하여 국영기업에서 사기업이 되어 직장에서는 더 이상 양로 보험금을 주지 않게 됐다. 이전의 십 여 년 근무 연한에 자신이 일부분 보험금을 내야 하는데 만 여 위안(한화 약 166만원) 돈이었다. 당시로 말하면 이건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직 40살도 안 되어 퇴직까지는 아직도 20여년이 있었으므로 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보험금을 내지 않으면 직장에서 감당하는 보험금 지원도 없게 돼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 먼저의 십 몇 년은 헛고생 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울적해했다. 신체적인 피로에다 심정의 울적함으로 하여 그의 건강은 갈수록 못해졌다. 2008년 가을 중병에 걸린 그는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여 사망했다.
남편의 사망은 나에 대한 타격이 엄청 컸다. 우리 부부는 사이가 아주 좋았다. 남편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어 사랑을 얼마 받아보지 못했으므로 결혼 후 내가 될수록 보상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는 이 가정을 몹시 소중히 여겼고, 나를 몹시 아꼈으며, 가사일도 다투어 했다. 그가 집에 있을 때 내가 퇴근하면 언제나 남편이 해 놓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수련을 함께 한 후 우리는 더구나 서로 존경했다. 지금 갑자기 그가 나를 버리고 가버리자 아들도 곁에 없는 집으로 퇴근해 돌아오면, 온 바닥에 널려있는 낙엽과 쓸쓸한 집을 보면서 마음은 처절하다 못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다행히 법 공부 연공 할 때면 책 속의 법리가 나로 하여금 서서히 마음의 평온, 너그러움을 찾아주어 눈물도 멈추게 되었다. 게다가 시시로 나에 대한 사부님의 가호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꿈에 이런 장면을 보았다. 광활한 하늘 사이의 상서로운 구름 위에 빨간 옷을 입은 어린 여자애가 인간을 향해 말했다. “(이 배역은) 너무 고생스러워!” 그녀 곁에 있던 자상한 어른이 말했다. “그들도 고생스럽지 않냐?”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더 고생스러워요…….” 어린 계집애는 울기 시작했고 어른은 자비롭게 말했다. “그래, 그래, 너는 그들보다 더 고생스러워.”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가끔 불쾌한 일을 만날 때면 언제나 하나의 염두가 나에게 알려준다. “기다려, 앞으론 좋아질 거야!” 나는 비록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어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지만, 매번 이런 일념이 나타날 때마다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해진다. 이 꿈은 나를 일깨웠다. 그 꿈속의 계집애가 바로 나이고, 그 어른은 바로 대법 사부님이시다. 사부님이 가리킨 ‘그들’이란 기타의 대법제자를 가리킨 것이다. 그 중에는 나의 남편, 아들이 포함되어있다. 우리가 인간세상에 온 것은 한 가지 큰일을 하는데 협력하려는 것이고 우리는 사명을 지니고 온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있지만, 인간의 험악함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각자가 연기하는 배역은 몹시 처량하고 고생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의연하고도 결연하게 사부님 따라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우리의 사명에 부끄러움 없이 하면 틀림없이 여전히 사부님을 따라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데 대해 신심이 가득하다. 그러나 인간세상에 온 후, 윤회전생 중 우리는 오히려 방향을 잃었고, 미혹 속에서 많은 업을 빚었다. 비록 대법의 인연이 줄곧 우리를 끌고 있었기에 우리는 이 한 생에 다행히 법을 얻었지만 우리는 소중히 여기지 않고 그저 그를 신체를 건강히 하는 것,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공법으로만 여겼다. 그러므로 조그마한 마난을 만나도 수련의 마음을 태만히 했던 것이다. 남편은 그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앞당겨 갔다. 그럼 아직도 인간세상에 남아있는 나는 마땅히 확고하게 고난을 직면하고 이후의 길을 잘 걸어야만 사명에 치욕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십 몇 년의 수련 기초는 나로 하여금 이 꿈을 알게 했고, 우리에 대한 사부님의 고심을 체득하게 했다. 인연을 깨닫게 된 후, 나를 곤혹스럽게 하던 뼈를 깎는 듯한 이별의 고통이 사라졌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음에 등댓불 있으니 길은 분명하다
남편이 세상을 뜰 때 나는 40여 살이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나에게 말을 전하거나 직접 묻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재혼 하지 않을래요?” 당시 나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거절했다. 우리 사부님은 시시로 모두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일을 함에 먼저 남을 생각하라.”[1] 남을 위하는 생명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내가 만약 개가한다면 아들이 크면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고아가 될 게 아닌가? 지금은 이혼율이 이렇게 높은데 엄마 아빠가 없는 많은 아이들은 사회의 불안정 요소가 되었다. 나는 아들을 떠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진, 선, 인의 이념으로 아들을 잘 교육해야 한다.
남편의 누님은 내가 혼자 고독하게 사는 게 가슴 아파 나를 타일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위 하나 데려오는 게 어때. 자기를 도와 이 집을 지탱하게 말이야.” 나는 큰 고모에게 말했다. “내 걱정 말아요, 나 조금도 외롭지 않아요. 난 아주 충실하게 살고 있어요. 날마다 시간이 모자라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 집은 아들의 결혼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합니다.” 고모는 침묵했다. 이렇게 서서히 결혼을 언급하는 사람이 없게 됐다.
하지만 오늘의 사회는 도덕이 파괴되어 당신이 깨끗하게 살고자 해도 모두 어렵고 시련은 시시로 있다. 과거 아주 가깝게 지내던 여자 동료가 나를 보러 왔다가 타이르는 것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못살게 굴지 말아, 나 같으면 먼저 애인을 찾아 사귀겠어, 무슨 아들이요, 손자요 그렇게 많은걸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어, 먼저 자신이 마음껏 즐긴 다음 다시 볼 판이지.” 나는 듣고 나서 담담히 웃으면서 말했다. “나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지금은 일사일념 모두가 진, 선, 인을 표준으로 해. 네가 나더러 남을 해치고 자신을 위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나는 할 수 없어.” 여 동료는 말해 봤자 재미가 없을 줄 알고 가버렸고, 후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잠시 잠잠하더니 또 이모가 찾아와 타일렀다. “지금은 모두 ‘가정부’를 찾는 바람이 불고 있는데(돈 있는 독신 남자가 젊은 여자를 데려다 결혼증서를 주지 않고 돈을 좀 주고는 같이 살면서 서로 돌보아 주는데 지금의 세인은 이런 일을 인정해 준다) 애도 크고 너도 실직하고 일을 못하고 있으니 우리 적당한 사람을 찾아보자. 그러면 애의 혼사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을 게고 너도 의지할 데가 있을 게다. 나는 우스워서 말했다. “이모, 이건 나더러 불법 동거를 하라는 게 아닌가요? 그건 죄를 짓는 거예요, 나는 수련인인데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내 걱정 말아요, 나에겐 사부님의 가호가 있어요.” 이모도 꿈에서 깬 듯 웃어댔다. 그러나 나의 뒤의 그 한 마디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말했다. “세월이 오래되면 이모도 알게 될 거예요.”
비록 이 파란곡절의 현상 역시 정 속의 것이지만 수련인에 대해 말한다면 그래도 안으로 찾아봐야 한다. 나는 나의 마음이 아직도 아름다운 속인 생활에 미련을 두었고 색욕심이 아직도 아주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후의 법 공부 심성 수련 가운데서 나는 서서히 자신을 바로 잡아 자신을 더욱 순수하고 인자하게 변하게 했다.
몇 년이 지나갔다. 나는 아주 조용히 살아갔다. 남편의 누님이 말했다. “이 몇 년 동안 너 아주 편안하게 사는구나(安生–방언: 뜻인 즉 한 과부로서 업신여기는 사람이 없고 뒷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건 너의 이웃들이 좋다는 걸 설명한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킨’[2] 거예요.”
사실 확실히 이러했다. 어느 해인가 나의 집 문틀이 뒤틀려 문이 닫히지 않았다. 나는 담장 밖에서 이웃집 오빠를 만나자 그의 집에 대패가 있는지 물었더니 있다고 하면서 나의 집에 들어가 수리해 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거절하기 무엇해서 그러라고 대답했다. 그는 열심히 나의 집 문을 수리해 주었다. 나는 예절을 차려 그에게 물 한잔을 따라 주고 텔레비전을 켜고 션윈 공연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는 몇 분만 보고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보지 않겠어요, 더 보다간 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그가 점심에 술을 마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때 술 냄새가 아주 지독했다) 비디오를 본 효과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일어나 그를 배웅하려 하는데 누가 알았으랴, 문을 나서려는 때 그가 나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여 동생, 앞으로 일이 있으면 오빠를 불러요.” 그의 이런 경박한 행동에 나는 크게 놀라지도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오빠에게 감사드려요.” 나의 냉정함이 그를 깨어나게 했다. 그는 얼른 손을 걷어 들였다. 그가 간 후 나는 자신의 전 과정의 언행을 검사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적절하지 못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참, 속인은 정말 불쌍해, 본래는 대법제자를 도와 좋은 일을 하게 되어 복을 좀 쌓게 됐는데 도리어 행위가 바르지 못하여 복을 되돌려 주었구나!
그러나 수련인에게는 우연한 일이란 없다. 그의 표현에는 내가 수련할 것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 진상을 알릴 때 상대방과의 거리를 줄이려고 가끔씩 어떤 땐 남녀를 불문하고 남의 어깨를 다독였고, 아주 익숙한 이성 수련생과 함께 있을 때면 가끔 때리면서 담소할 때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역시 모두 우리 사부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懷大志而拘小節)’[3] 나는 이 결함을 앞으로 꼭 고쳐야 한다고 자신에게 경고했다. 이튿날 이웃집 오빠를 보았을 때 그는 머리를 숙이고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주동적으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서히 그는 또 나와 자연스럽게 말을 건넬 수 있었는데, 단지 행위가 점잖아졌을 뿐이다.
사부님 가호가 있으니 정말 좋다
근 십 년 사이, 나는 이웃과 아주 잘 지냈다. 어떤 이웃은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 한 이웃은 남편이 장사를 떠나가서 그녀 혼자 집에 있게 되자 곧장 자신을 위로했다. 괜찮아. 아무개는(나를 가리킴) 이 몇 년 동안 그냥 혼자 살고 있지 않는가, 또 이웃 언니는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자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권유할 때 역시 나를 예로 들었다. 사실 나는 그녀들을 나와 비길 수 없다는 것을 속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수련인이고, 사부님께서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땐가 한 번은 밤중에 ‘쿵’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잇따라 한 남성이 급하게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말하는지 똑똑히 듣지는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공포에 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잇따라 오토바이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시계를 보니 마침 밤 12시여서 가부좌 하고 앉았다. 가부좌를 마치고 나서 방금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갑자기 알아챘다. 두 도둑이 나의 집으로 물건을 훔치러 왔는데, 한 명은 밖에서 받으려고 준비하고, 다른 한 명은 나의 앞채에 기어올랐다. 하지만 나의 앞채에 기어오른 그 도둑은 틀림없이 나의 집에서 그를 기겁하게 하는 어떤 정경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앞채에서 뛰어 내려 ‘쿵’하는 소리를 냈고 또 그 기겁한 함성이 들렸던 것이다. 나는 이전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도둑이 대법제자의 집에 도둑질 하러갔다가 대법제자의 울안에 갑옷을 입은 천신이 서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 도둑이 사부님 법신을 보았거나 나의 호법신을 보고 겁에 질려 그 모양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밍후이왕에서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보았다. 한 대법제자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강도를 만났다, 대법제자는 “사부님 절 구해 주십시오.” 하고 외치자 그 강도는 당시에 겁에 질려 도망쳤다. 그러나 이튿날 그 강도는 또 이 대법제자를 가로막고 물었다. “당신 사부가 누구요?” 대법제자가 물었다. “당신 그걸 물어 뭘 해요?” 강도가 말했다. “어제 당신이 사부님을 부르자 나는 가사를 입은 부처가 맨발로 나한테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소.” 대법제자는 자랑스레 말했다.” 나의 사부님이 바로 리훙쯔 대사님이요.” 후에 이 강도도 법을 얻었고 악습을 버리고 선을 행하면서 진정한 대법제자가 됐다고 한다. 사부님 가호가 있으니 정말 좋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혼자 살아도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하다. 날마다 바삐 돌아가는데 사는 게 정말 즐겁다.
지금 이모는 내가 말한 “내 걱정 말아요, 나에게는 사부님 가호가 있어요.”라고 한 이 말을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녀는 속인 이쪽의 표면 현상만 보았을 뿐이다. 나에게는 쉬운 일거리가 있다. 버는 돈은 많지 않지만 생활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들은 사업을 착실히 하고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철이 들어 여태 나를 걱정시키지 않았다. 매달 이틀씩 집에 돌아오면 날마다 나와 함께 법 공부를 한 강씩 한다.
최근 우리 이곳에서는 재개발을 하여 나의 원래 집을 방이 3개 있는 아파트 두 채와 바꾸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모두 부러워서 말한다. “우리는 일생을 분투하여 겨우 집 한 채를 마련했는데 당신은 차분하게 집 두 채를 마련했구려, 당신의 이런 것을 ‘후복이 있다’고 하는 거래요.” 이런 것을 얻어도 별로 큰 기쁨과 놀라움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싱글벙글 하면서 상대방에게 알려준다. “나 이건 수련해서 가져온 복이랍니다!”
수련의 체득은 많고도 많아 사흘 밤 사흘 낮을 다 말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하나는 사부님에 대한 나의 감사를 표현하려는 것이고 동시에 또한 세인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어서 법을 얻으라, 우리는 모두 법을 위해서 온 것이니 절대로 기연을 놓치지 말라!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킨다 〉
[3] 리훙쯔 사부님 저작:《정진요지》〈성자〉
원문발표: 2017년 5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승화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0/346785.html